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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Jan 08. 2024

영국의 맛 그리고 한국의 맛 [런던라이프]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21 런던고 한국의 맛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21 영국의 맛 그리고 한국의 맛  



+ 영국의 맛

약 4개월 정도 머물렀던 런던이기에 전형적인 영국의 맛 혹은 런던의 맛은 그리 잘 알지 못한다. 개인적으로는 미식가도 아니거니와 맛에 엄청난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긴 해도 어학원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어울리면서 외식을 하긴 했는데 그때도 메뉴선택은 친구들에게 일임했다. 같은 이방인이지만 그들은 어떤 음식을 선호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한식도 좋아했기에 때로는 친구들과 한식도 자주 먹으러 다니면서 런던에서 뜨거운 한식의 인기도 실감할 수 있었다. 


런던에서 머물렀을 동안 좀 특별하게 기억되는 나만의 '영국의 맛고 한국의 맛'을 소개해 볼까 한다. 



 피시 앤 칩스 

영국의 대표적인 음식 하면 누구라도 '피시 앤 칩스'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튀긴 대구와 감자튀김에 곁들이는 맥주 한 잔은 어쩌면 영국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다. 어학원에서 선생님께 피시 앤 칩스 맛집을 알려달라고 누군가가 물었더니 선생님은 아주 난색을 표했다. 딱히 어디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구글에서 '피시 앤 칩스 런던'으로 검색을 약 4만 5천 개가 나올 정도인데 꼭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펍에서도 피시 앤 칩스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피시 앤 칩스는 뭐랄까. 우리나라에 비유하자면 '백반'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메뉴인 데다가 기본 구성은 똑같지만 집집마다 모두 그 맛은 다르니 말이다. 희한하게도 이렇게 심플하고 간단한 요리인 '피시 앤 칩스'도 맛이 없게 만드는 곳도 영국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러니 영국음식은 맛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나 역시 몇몇 레스토랑 혹은 펍에서 피시 앤 칩스를 먹어봤는데 맛은 천차만별이었다. 그중 가장 좋았던 곳은 '더 앵커(The Anchor)'다. 학교 선생님 추천도 추천이었지만 바로 옆이 셰익스피어 극장이 있어 셰익스피어 단원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라는 스토리도 흥미로웠다. 


튀긴 대구와 감자튀김 별거 없는 조합인데 템즈 강변을 바라보며 퇴근 후 런더너들이 술 한 잔 기울이는 모습을 낭만 삼아 곁들이니 다 맛있게 느껴졌다. 런더너처럼 식초 팍팍 뿌리니 오리지널 런던의 맛이 이거지 싶었다. 

분위기도 맛에 일조하던 더 앵커
더 앵커의 피쉬앤칩스


스콘

조금 쌀쌀한 날씨에 따끈한 홍차와 스콘을 곁들이는 나만의 애프터눈티는 꽤 만족스럽다. 이런 스콘이 논란의 중심이라는 건 영국을 가보기 전에는 몰랐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탕수육의 부먹이냐 찍먹이냐처럼 스콘에 쨈을 먼저 바르느냐 버트를 먼저 바르느냐를 가지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니 말이다.  무엇을 먼저 바르는가에 따라 맛이 좀 달라진다고. 


이게 논쟁거리나 되나 싶지만 실제로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확실히 맛이 좀 달랐다. 그건 아마도 스콘에 곁들이는 클로티드 크림(clotted cream)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었다. 클로티드 크림은 영국 남서부 지방에서 우유로 만든 크림이라고 하는데 생긴 모양이나 질감은 좀 뻑뻑한 크림치즈 같은데 맛은 일반버터보다 훨씬 고소했다. 


거국적으로 크림을 듬뿍 바르고 그 위에 다시 쨈을 듬뿍 올린 다음 따끈하면서 부드러운 스콘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크림과 쨈의 두 조합에서 이런 맛이 난다고 싶을 정도로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홍차 한 모음을 마시고 입가심을 한 다음 이제 반대의 순서로 듬뿍듬뿍 올리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순서만 달라졌을 뿐인데 기가 막히게도 좀 다른 맛이 났다. 분명 두 버전 모두 다 아는 맛인데 다른 맛이 날 수 있나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이럴 때 뭔가 기준이 필요한데 작년에 타계한 엘리자베스 여왕님은 잼을 먼저 발라서 드셨다고 한다. 


그대들은 어디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지 런던을 여행한다면 꼭 한 번 테스트해보시라. 

코츠월드에서 스콘 논쟁을 시험해 보니 쨈 버터 둘다 맛있는데 어떡하죠.


커리 

런던에서 만났던 음식 중 가장 의외의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코 '커리'다. 우리에게 흔한 음식인 커리 혹은 카레는 런더너가 피시 앤 칩스보다 더 자주, 더 많이 먹는 음식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커리를 파는 곳이 많았다. 가게가 많기도 많지만 혹자는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커리'를 손꼽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실제로도 인도 커리의 한 종류인 '치킨 마살라'는 이미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지 오래다. 커리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에 소개됐는데 영국에서는 해군이 소고기 스튜의 묵은내를 없애기 위해 커리가루를 섞은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커리는 전통적인 인도 커리가 아니라 영국식으로 변형이 된 음식으로 런던에서 꼭 한 번은 먹어봐야 하는 음식이다. 


이런 커리를 먹어보게 된 건 친구들의 초대였다. 친구가 선택한 커리 레스토랑은 구글 평점 4.3으로 분위기도 맛도 모두 좋았다. 향신료가 너무 강한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맛있게 잘 먹었을 정도로 괜찮았다.  이날 친구는 향신료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나를 위해 특별한 맥주를 제조해 줬는데 일반 맥주에 컵 가장자리에 고추장맛 비슷하게 나는 소스에 깨를 묻혔다. 특별히 멕시코 방식으로 제조된 맥주 조합에 곁들이는 커리 조합은 정말 잘 어울렸다. 

친구들이 찾아낸 커리 맛집 RAJDOOT


런던 패밀리 레스토랑 

함께 공부했던 친구가 먼저 어학연수가 끝나서 페어웰로 정한 곳은 패밀리 레스토랑인 해피(happy)였다. 족히 백여 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엄청나게 넓은 곳이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이야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다 거기서 거긴데 분위기가 매우 젊었다. 가족들, 연인들 혹은 직장동료들과 함께 하고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젊은 층이었다. 


한참 얘기가 무르익을라치면 갑자기 불이 꺼지고 생일 축하 송이 흘러나왔고 해당 테이블은 어김없이 20대 젊음이 충만한 아이들의 텐션 높은 생일축하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생일파티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 공식이 있을 정도로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 한두 번은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라 재미있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소리도 커지고 실내분위기가 너무 시끌벅적해지니 정신이 좀 사나웠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최대 장점은 다양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각 지역별 음식이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영국은, 런던은 세계 모든 인종이 모이는 곳인 만큼 세계 각국의 음식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었다. 친한 친구들이 대부분 아메리카 대륙인데 런던은 멕시코 출신이 베프였기에 그들 덕분에 다양한 라틴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 

선택지가 다양한 패밀리레스토랑
라틴 지역에서 아보카드는 거의 필수 음식.
디저트까지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
우리 런던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가성비 레스토랑을 원한다면 올드 캠던 브라세리(Old Compton Brasserie)


소호에서 현지인들이 가는 곳에서 한 번쯤 런더너처럼 런던의 맛을 즐기고 싶었다. 우연한 기회에서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까지 끝낸 사람을 알게 됐다. 사업차 런던을 다시 오게 됐고 스무 날 정도를 런던에서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잘 통해 우리는 소호지역에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됐다. 소호 지역은 워낙 선택지가 다양한 곳인데 나보고 소호에서 먹을 곳을 찾으라고 했으면 멘붕이지 않았을까 싶다. 


올드 캠던 브라세리(Old Compton Brasserie)는 소호에서 음식이 맛있으면서 가성비가 높은 곳으로 런더너 사이에게도 인기가 많은 레스토랑이었다. 꼭 식사가 아니어도 칵테일 한 잔 하는 곳으로도 꽤 유명한 곳이었다. 대부분 소호 지역의 레스토랑은 인기시간 대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는 곳이 다반사인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스타터, 메인, 디저트까지 풀코스로도 괜찮고 단품 주문도 가능했다. 음식들은 모두 맛있었는데 이곳을 다녀온 뒤 후기를 찾아보니 단품 메뉴들도 전부 평이 좋았다. 다음에 런던을 다시 간다면 이곳에서 칵테일 한 잔 하며 소호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은 곳이다.  

소호에서 런더너처럼


런던에서 힙한 곳, 메르카토 메이페어(Mercato Mayfair)

평소에도 '도시재생'에 관심이 많은 나는 런던에서 도시재생으로 성공한 사례 몇 가지를 찾았었고 지역커뮤니티를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학연수기간 동안 내 코가 석자라 도저히 그런 여유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SNS에서 '성당이 푸드코트로 변신했다'는 것을 보게 됐고 이곳은 꼭 한 번 가봐야지 싶었다.  


메르카토 메이페어 일대는 런던 시내와 고작 두어 블록 떨어진 곳일 뿐인데도 다소 한가한 지역이었다. 이런 곳에 런던에서도 가장 핫하다는 곳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됐다. 한적한 외부와 달리 안으로 한 발 들여놓는 순간 깜짝 놀랐다. 성당 안 푸드코트는 엄청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뭐가 있나 살펴보기도 전에 앉을자리 걱정을 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더욱 놀란 건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교회는 세인트 마크 교회(St Mark's Church)로 1828년부터 영국 문화재 1등급으로 등록된 곳이다. 한때는 원래 교회이름보다 '미국교회'로 더 많이 불렸단다.  미국 대사관이 바로 근처인 데다가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엘리노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모두 이곳에서 예배를 들렸기 때문이라나. 그렇게 유명했던 교회이지만 1974년 이후로 더 이상 교회로 사용하지 않고 폐쇄됐다. 이후 2015년까지 골동품 시장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그러다가 5년 전인 2019년에 500만 파운드를 들여 복원해 '메르카토 메이페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게 된 곳이었다. 복원을 하면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오르간, 제단 등은 원래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 


이렇게 재개발된 교회의 용도는 놀랍게도 '마켓'이다. 다양한 음식과 함께 식료품 등을 판매하는 소규모 가게들이 입점해 있는데 런던에서도 아주 핫한 곳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중이었다. 지하 1층과 2층까지 총 3개 층에 맥주, 파스타, 랍스터, 아이스크림, 꽃가게 등 다양한 가게들이 입점해 있었다. 영국다움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교회가 마켓으로 변신하는 모든 과정들이 영국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만든 사람들이 누군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메르가 토 메트로 폴리타노(Mercato Metropolitano)라는 단체였다. 도시재생을 모토로 지역사회와 함께 지속가능한 가능성 증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이곳에 입점하고 있는 가게들의 경우 사업계획서를 받아 선정했고 몇 년간은 임대료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 듯했다. 더 놀라운 점은 내가 두 번째로 이사한 지역도 슬럼가에서 도시재생으로 변모한 지역인 엘리펀트앤캐슬(Elephant & castle)이라는 곳인데 그곳을 도시재생으로 탈바꿈시킨 것도 바로 메르가토 메트로 폴린타노였다. 


도시재생이라는 것이 단순히 있는 건물을 그대로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메르가토 메트로 폴리타노가 지닌 철학처럼 예전의 것에 새로움을 힙하게 접목시키는 시도야 말로 도시재생의 진정함이 아닐까 싶었다. 레트로가 대세인 요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정신이야 말로 21세기 도시재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드는 의문은 우리나라라면 이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교회를 과연 마켓으로 허가를 내줄 것인가 싶다. 과연, 

교회 안에 푸드코트가 있다니요!
우리나라라면 가능한 일일까
먹고 마시는 것 외에도 식료품점, 수공예품 등 다양한 가게들이 입점해 있다.
 아이템과 사업계획서 심사를 거쳐 입점한 가게들로 지역상생을 위해 몇 년간은 임대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옥상테라스에서 만난 런더너, 퇴근 후 한 잔은 어디 가나 만국공통 


테이트 브리튼에서 점심

미술관만 보고 다녀도 하루가 모자란 런던이니 미술관에서 한 끼는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미술관에서 카페는 당연하고 식사까지 가능한 곳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서 테이트브리튼에서 한 끼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런던에서 참 좋은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미술관을 좋아하고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생면부지의 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좋아하는 곳에서 한 끼는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수프와 홈메이드 샐러드, 샌드위치, 현지에서 생산하는 맥주 등 뭘 골라 먹어야 할지 고민이었던 메뉴들은 점심 한 끼라는 게 너무 아쉬울 정도였다. 영국 미술을 시대별로 볼 수 있는 테이트 브리튼이기에 다음에 다시 와서 천천히 그림 감상을 하자 싶어 정작 미술관은 후뚜루마뚜루 보고 나왔는데 결국 런던을 떠나는 날까지 다시 가보지 못했던 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영국 미술과 함께 맛있는 한 끼 


런던의 펍 문화, 캠던마켓 

나는 맥주파다. 술을 잘하고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어느 나라를 가던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반드시 먹어보려고 노력한다. 아, 그렇다고 맥주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다거나 뭐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맥주는 내 생활의 엄연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펍을 자주 가보지는 못했다. 여행과 달리 막상 살아보니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반 강제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펍을 가긴 했으니 그건 바로 학교 액티비티의 일환이었다. 어학원에서 몇몇 젊은 선생님들 주도하에 금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펍에서 모여 수다를 떨었다. 어학원이 유스턴에 있을 때는 캠든마켓에 있는 더 아이스 워프(The Ice Wharf - JD Wetherspoon)가 지정 장소였다. 자연스레 금요일 수업 마치고 나면 친구들과 1차로 저녁을 먹고 2차로 펍에 가는 것이 수순이었다. 


특이했던 것은 이 펍을 출입할 때 누구나 예외 없이 신분증 검사를 한다는 것. 딱 봐도 신분증 검사를 할 나이가 아님에도 신분증 제시는 필수였다. 캠든 마켓 자체가 영국 록의 발상지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젊은 층들이 많았다. 만에 하나라도 젊은 혈기에 술에 취해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출입구에 아주 덩치 큰 가드들이 있는 것도 내 눈에는 신기했다. 클럽이 아닌데도 말이다. 


너무 시끌벅적한 분위기라 대화를 할라치면 소리를 꽥꽥 질러야 할 정도였기에 처음에는 소란스러운 분위기 적응이 싫었다. 하지만 연례행사가 되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는 떠들썩한 분위기가 싫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근처에 리젠트운하가 있어 여름밤 운치를 더하는 곳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리젠트 운하와 접하고 있는 캠든마켓.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프림로즈 힐이 있어 특히나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안팎으로 시끌벅적했던 캠든카멧 더 화이트 워프 펍 



+ 영국에서 만나는 한국의 맛

런던에서 느끼는 K-열풍은 실로 놀라웠는데 음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런던에서 한식의 맛은 어떤지 궁금해 일부러 찾아다녀보기도 했었고 어학원 친구들도 한식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그들과 때때로 한식을 함께 먹으러 가기도 했었다. 


레스토랑 이름이 '김치' 

제일 친한 친구가 하루는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한식을 먹었다며 자랑을 하는데 짬뽕이었다. 짬뽕이 너무 맛있어서 두 번씩이나 먹으러 갔다고 하는데 문제는 중국 사람이 짬뽕 비스무레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에게 제대로 된 한식을 맛 보여야겠다 싶어 어학원에서 가장 가까운 킹스크로스 역 근처 '김치'라는 곳을 찾았다. 외국에서 한식은 어떤 맛일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던 차였다. 


메뉴는 영어가 없다면 영락없는 한식 그 자체였다. 친구가 가장 먹고 싶어 했던 짬뽕이었기에 그것만 빼고 골고루 맛 보여주기 위해 불고기, 김치전, 잡채, 보쌈 이렇게 주문했다. 우동면발이 일본식 우동면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음식은 한국에서 먹는 것과 맛이 똑같았고 심지어 맛있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소맥. 친구들은 내가 소맥을 마는 것을 보고 아주 신기해했고 서툰 젓가락질을 배워보겠다고 열과 성을 다했다. 


문제는 이렇게 먹고 마시고 나니 금액이 무려 128파운드가 나왔다. 대략 원화로 환산하면 22만 원 정도이니 헉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외국에서 가장 비싼 음식은 한식이라더니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물론 시내 중심가이도 서비스 차지가 있는 곳이라 다른 곳보다는 상대적으로 조금 비싼 집이긴 했다. 친구는 식당도 찾고 메뉴 설명도 해주고 젓가락질도 가르쳐줬다며 한사코 자기가 비용을 내겠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그렇게 친한 상태는 아니었는데 어찌나 완강하게 이야기를 하던지 결국 그녀가 모두 비용을 지불했다. 

친구들이 정말 좋아했던 한식. 그러나 가격은 사악하기 그지 없었다. 저렇게 먹으면 런던에선 22만원이다.


서울도쿄 삼겹살 

김치에서 한식을 먹은 다음 보답을 해야겠다 싶어 육식파인 친구에게 대접한 음식은 바로 '삼겹살'이었다. 외국에서 식재료 중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가격이 저렴하다 생각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삼겹살이다. 삼겹살 부위를 잘 먹지 않는 외국의 특성상 가격이 저렴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몰타도 마찬가지였다. 런던 시내에서도 삼겹살을 파는 곳이 여러 곳이 있었는데 '서울도쿄'는 가성비 좋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게다가 두 번째로 이사한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고 식사 후에는 타워브리지까지 슬슬 걷기에도 그만인 곳이었다. 


고기를 불판에 굽는 문화가 아예 없는 문화권이라서 그런지 삼겹살이 구워지는 것 자체를 정말 신기해했다. 상추에 된장을 찍은 삼겹살에 파채까지 올려 한 쌈으로 먹는 삼겹살의 맛은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건 외국인도 마찬가지였다. 삼겹살 먹은 후 김치찌개에 라면사리까지 넣어 먹고 나니 제대로 한식 먹방이었던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일전 배웠던 젓가락질을 다시 복습하면서 점점 한식에 빠져드는 친구를 바라보고 있자니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한식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후 우리는 둘도 없는 베프가 되었다. 

외국인들이 더 좋아했던 삼겹살
김치찌개에 라면사리는 더 못참지


3 KOBROS

나는 곰탕 종류의 음식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런던에서 꼬리곰탕을 먹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런던이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컨디션이 급속도록 떨어졌다. 일교차가 심해지면 어김없어 나타나는 편도선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는 계절이 나에게도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뭔가 급하게 영양보충을 할 음식이 필요했기에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에 눈에 띈 게 바로 꼬리곰탕이었다. 


카나리 와프에 위치하고 있는데 내가 움직이는 동선에서는 카나리와프가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도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었다. 꼬리곰탕을 먹고야 말겠다는 내 의지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분명 해가 있을 때 출발했는데 식당에 도착하고 나니 10월 인데도 6시도 안 된 시간인데 이미 캄캄했다. 전형적인 한식인 꼬리곰탕이니 당연 한국사람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내가 간 시간에는 외국인들이 훨씬 많았다. 놀라웠다. 보편적인 메뉴라고 하기엔 다소 거리가 있는 음식임에도 한식의 인기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큰 뼈 3개나 들어있는 맑은 꼬리곰탕은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입맛에 맞았다. 한국에서 꼬리곰탕을 먹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기에 사실 어떤 맛인지 잘 모른다고 하는 편이 더 맞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뜨끈한 국물 한 숟갈이 식도를 타고 흐르니 '그래, 이거지.'라는 마음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양이 많다 싶었는데 이거 누가 다 먹었나 싶을 정도로 게눈 감추듯 싹싹 다 먹어치웠다. 


그릇이 바닥을 보일 때즈음이 돼서야 한국에서도 잘 안 먹는 꼬리곰탕을 런던에서 먹고 있는 게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런던에서 먹었던 나의 소울푸드는 수많은 음식을 다 제치고 아이러니하게도 꼬리곰탕이지 싶다. 고로 나는 천성 한식파에 한국사람이다. 

런던에서 꼬리곰탕을 먹을 줄이야


런던 시내에서 만났던 한국의 맛 


런던 시내 곳곳에서 만나는 한식들도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런 곳들도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훨씬 많은 것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한식먹으로 한식당 갔는데 마치 내가 이방인인 느낌이랄까. 게다가 음식들도 한국에서 먹는 맛과 진배없고 오히려 더 맛있기까지 했다. 

밥앤 술의 제육볶음과 김치찌개
주막 39의 짬뽕, 근처의 요리까지


+ 다음 이야기 :  런던 미술관에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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