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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Jan 16. 2024

[런던 트레킹] 색다른 런던 여행, 템즈강 트레킹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23 콜시에서 팡본까지 15km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23 템즈강 트레킹, 콜시(Cholsey)에서 팡본(Pangboune)까지 15km 


템즈 강을 따라 걷는 템즈 패스 트레일 


런던을 가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런던은 걷기에 정말 좋은 도시다. 영국 공식 트레킹 사이트인 내셔널  트레일 (National trails)에는 다양한 트레일 코스를 안내하고 있다. 이중 템즈패스(Thames Path)는 1996년에 조성된 트레일 코스로 영국의 트레일 코스 중 유일하게 강을 따라 걷게 된다.  


템즈 강은 전체 길이가 346km지만 템즈 패스는 이중 약 298km에 트레일 코스가 조성돼 있다. 코츠월드 인근의 템즈 발원지인 템즈 헤드(Source of the River)에서 출발해 런던 도심 뱅크지역인 울위치(Woolwich)에서 끝나게 된다. 템즈 패스는 우리가 아는 도시인 옥스퍼드, 원저 등도 지나가는 데다가 템즈 강가에 위치한 다양한 마을들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어 인기가 많은 코스 중 하나다. 


템즈 패스를 걷기 위해서는 런던 시외지역까지 나갈 필요는 없다. 런던 도심을 흐르고 있는 템즈 강 128km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런던 도심 템즈 일대에 런던의 주요 볼거리들이 있으니 템즈 패스를 걷는 것이야 말로 런던을 좀 더 특별하게 여행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템프 패스 298km 전체지도 (지도출처 =  https://www.nationaltrail.co.uk/)


그냥 따라기만 하면 되는 현지인들과 함께 걷는 주말 트레킹은 어느새 주말을 기다리게 되는 런던의 일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돌아오는 주말 온종일 템즈 패스 코스인 콜시에서 팡본까지 약 15km 트레일 공지가 떴다. 일전에 이 팀과 함께 걸었던 옥스퍼드 운하 트레일 중 일부가 템즈 패스에 속해 있었다. 강을 따라 걷는 템즈 패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었기에 템즈 패스를 좀 더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기에 얼른 따라나섰다. 


▶ 옥스포드 운하 트레일이 궁금하다면


템즈 패스는 워낙 긴 거리다 보니 서울둘레길처럼 다양한 곳에서 접근이 가능했다. 이번에는 콜시역에서 출발해 템즈 패스를 따라 팡본까지 간 다음 팡본역에서 런던으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였다. 패딩턴 역에 다 같이 모여 9시 32분 기차를 타고 약 1시간 10분 정도 달린 후 콜시 역에 도착했다. 


트레킹이 아니었다면 런던 시내만 왔다갔다 했을 텐데 현지인들과 함께 트레킹을 다니게 되니 어디를 가는지 고민 없이 새로운 장소를 가보게 되는 점도 매력이었다. 워낙 멤버가 많은 모임이다 보니 갈 때마다 구성원들이 많이 바뀌긴 해도 아는 얼굴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좋았다. 내가 어학연수를 하고 있는 걸 아는 사람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영어 좀 늘었어?"라고 안부를 물어준다. 

패딩턴 역에서 기차를 타고 약 1시간 정도 걸렸던 


콜시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기에 얼마 걷지 않아 들판으로 접어들었고 바로 템즈강을 만났다. 이곳의 템즈 강은 강폭이 가장 좁은 지역이어서 원래 코스는 강을 가로질러 건넌 다음에 강을 따라 팡본까지 걸어가는 루트였다. 그랬는데 초반부터 변수가 생겼다. 보시다시피 엄청난 강물이 불어나서 강을 건널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영국은 비가 자주 내렸고 가랑비가 오락가락했던 런던 도심과 달리 이곳은 전날 저녁에 폭우가 쏟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보시다시피 강물이 엄청 불어서 이 강을 늘 건너 다니는 주민들도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길을 좀 더 돌아가는 다른 루트로 걷게 됐다. 어차피 이 코스는 처음인 데가 방향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러나저러나 큰 상관은 없었다. 

불어난 강물에 강아지가 헤엄쳐 건너고 있다.  


숲길이라고 하기엔 자연 그대로 정비가 전혀 되지 않은 길을 따라 걸었다. 혼자라면 무서워서라도 절대로 걷지 못할 길이었지만 길을 잘 아는 리더가 있고 현지인들과 함께 걸으니 아무 걱정이 없었다. 우리가 지나온 길로 템스 패스 중 일부였던지 템즈패스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계속 보였다. 


걷기 시작한 지 1시간 여 다시 템즈 강이 나타났다. 스포드(Moulsford) 지역이었는데 강가에 있는 펍에서 점심도 먹고 쉬어간다고 했다. 호텔과 레스토랑을 같이 운영하고 있는 The Beetle and Wedge였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밖에서 볼 때와 달리 상당히 넓은 곳이었다. 점심 도시락으로 유부초밥을 준비했기에  테라스에 앉아 다 같이 모여 준비해 도시락과 간식을 함께 먹었다. 따뜻한 음료를 준비해 가기는 했지만 커피가 먹고 싶어 커피를 한잔 시켰다. 


청명하게 맑은 날씨에 고요하게 흐르는 템즈강을 바라보고 있자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이곳에 앉아 할랑거리며 이러고 있자니 런던 도심도 녹지가 많아 답답한 느낌은 전혀 없었는데도 도심은 도심이었는지 뭔가 답답한 속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다시 걷기가 시작됐다. 이래 저래 시간이 조금 지체된 느낌이었기에 아마도 팡본역까지는 부지런히 걷게 될 것 같았다. 


템즈 패스라서 계속 템즈 강가를 걷는 것인가 했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다. 템즈 강 바로 옆으로 길이 나있기도 했지만 강 옆으로 나무가 많이 조성되어 있는 곳은 강 안쪽의 들판을 따라 걷는 길이었다. 그러다가 템즈 강 바로 옆을 걷다가 들판을 걷다가 길은 계속 반복이었다. 


템즈 강변에 지어진 다양한 집들은 서민적이기도 했고 어떤 지역은 한눈에 보기에도 굉장히 고급스러운 전원주택 느낌인 곳도 있었다. 분위기는 다 달랐지만 한 가지 템즈 강을 공유하고 있다는 공통점은 불과 런던에서 1시간 떨어진 곳임에도 충분히 전원생활을 만끽하는 삶이었다. 주말에 개를 데리고 템즈 강을 산책하는 주민들, 템즈 강을 누비는 유람선,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 다들 각자 자신만의 템즈강을 온전히 누린다. 

템즈 강을 즐기는 다양한 모습들 


길은 지겨울 틈 없이 강, 숲, 들판, 목장길 다양한 모습으로 팔색조 매력을 드러낸다. 길은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느낌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꽤 긴 시간을 쉬지도 않고 걷고 있는데도 계속 달라지는 풍경 때문이었을까. 신기하게도 그리 피곤한 줄 몰랐다. 내가 아니라 길이 길을 걷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날 그랬다. 

다양한 모습의 템즈 패스 


이제 중간 지점인 고링(Goring on Gab)에 도착했다. 템즈 강을 다 걸어보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그림 같은 풍경도 흔치는 않겠다 싶었다. 다양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자리를 잡고 있어 런던에서도 꽤 유명한 곳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지역이 지정학적으로는 옥스포드셔와 버크셔를 나누는 곳이라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이상적이 남편(An Ideal Husband)'과 '고링 경'이라는 주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곳에서 영감을 얻었고 여기에서 머물면서 이곳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아마도 영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 번쯤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겠구나 싶었다.  

독특한 수문이 있던 고링 


고링에서부터는 템즈강을 따라 걷는 길이다. 옥스퍼드 운하를 걸을 때도 그랬지만 템즈에는 정말 다양한 배들이 다니고 있다. 산업혁명 시기에 템즈강을 따라 많은 물류선이 이동을 했고 그런 강을 보고 살았던 런던 사람들에게 템즈 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내 눈에 비친 템즈강의 모습 중 가장 신기한 건 주거용 배였다. 런던 도심의 집값이 워낙 비싼 탓에 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정박하고 배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어도 템즈 강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배가 정박하고 있는 것을 보기도 했는데 한 번씩 배를 몰고 런던 도심까지 갔다 오기도 한다고 했다. 


한강에선 전혀 볼 수 없는 풍경이었기에 배에서 주거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신기했고 주말에 레저 삼아 템즈 강에 배를 몰고 다니며 유람을 하는 풍경은 더 신기했다. 

템즈 패스 트레일 


템즈 강을 열심히 따라 걷다가 다시 들판길이 이어진다. 10월 중순인데도 들판에는 야생꽃들이 한창이다. 런던에서 야생화가 피는 계절은 대략 5~6월이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 템즈 패스를 걷는다면 정말 다양한 야생화를 볼 수 있겠다. 가을도 좋지만 기회가 된다면 야생화가 피는 시기에도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들판이라고 하기엔 환경이 너무 좋다 싶었는데 구글 지도를 확인하니 하츠록(Hartslock)이라는 자연보존 지역의 일부인 것 같았다. 템즈 강과 접하고 있는 곳이라서 전체 지형이 궁금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하츠록 언덕에서 템즈강이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매우 멋진 곳이었다. 우리가 걷는 트레일 코스는 아니겠지만 영국에서 법으로 보호받을 정도로 귀한 원숭이 난초가 5월이나 6월 초에는 이 일대 피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정말 다양한 길이 끝도 없이 펼쳐지던 템즈패스 트레일 


마지막 종착지인 팡번의 위트처치(WhitChurch thames path)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는 빨간색으로 표시된 템즈 패스 주변에 있는 건물의 이름과 간단하게 설명이 적힌 표지판이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유서 깊은 마을일 경우 자신의 마을에 어떤 중요한 건물이 있는지 설명해 놓은 걸 보기도 했는데 이런 표지판이 있으니 좋았다. 이 지역은 노르만 이전부터 꽤 큰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었다. 


다만 함께 걸어가는 일행이 있고 정해진 도착시간이 있기에 표지판을 하나하나 살펴볼 여유가 없었고 유명한 건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고 갈 정도의 시간은 없었다. 점심을 먹은 후부터는 거의 쉬지 않고 몇 시간째 걷고 있는 상황이라 피곤이 몰려왔다. 위트처치에 도착하고부터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구글지도로 계속 거리를 체크하는 게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 마을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누가 봐도 유서 깊은 건물이겠구나 싶은 곳이 많았고 오래된 역사가 녹아 있는 곳이겠구나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템즈강 다리 중 개인 소유 다리가 2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위트 처지다리(WhitChurch Bridge)다. 개인소유 다리는 또 다른 말로는 유료라는 의미인데 통행료를 받는 다리인데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무료라고 한다. 이 다리가 처음 세워진 건 1792년이고 이후에 2번이나 수리를 했다고 하는데 건축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굉장히 오래된 다리구나 싶었다.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 올라서니 갑자기 탁 트인 풍경이 나타났다. 캠핑장 시설까지 갖추고 있는 이 지역의 공원인 팡번 미도우(Pangbourne Meadow)였다. 영국의 소시민들이 가족들과 함께 공원에서 보내는 주말 모습이 TV 속 풍경처럼 느껴졌다. 

개인 소유 다리인 위트처지 다리 
캠핑장까지 갖추고 있는 팡본 미도우 공원 


위트처지에 접어들기 전부터 앞서 걷는 사람들과는 상당한 거리가 벌어졌다. 후미에서 떨어져 걸었던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갈림길 중간에 계속 길을 찾아야 했다. 트레일에서 일행들과 떨어지는 불상사는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다행히 혼자가 아니었기에 괜찮았다. 위트처지 전에 어느 펍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오후 6시 정도에 기차를 탄다고 들었는데 다들 걷기에 녹초가 된 상태였기에 곧장 팡본역으로 향했다. 


트레일 코스는 너무 좋았는데 점심 먹은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걸었던 탓에 팡본역에 도착하니 너무 피곤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바로 런던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터덜터덜 팡본역 기차역으로 들어서니 우리보다 훨씬 앞서간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얼마 기다리지 않아 런던으로 돌아갈 기차가 사뿐하게 앞에 멈춰 섰다. 


팡본 역이 서서히 등뒤로 멀어져 갔다.  

누가봐도 노르만이구나 싶었던 팡본역 앞 조형물 


런던에서 지내는 4개월 동안 거의  두 달 정도는 영어 공부를 하느라 다른 데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러다간 아무것도 못하지 싶어 용기를 내 가입한 런던 트레일 모임이었다. 뒤늦게 트레킹이 시작됐고 10월 초슨을 지나면서 주말마다 계속 비가 오고 편도선이 계속 부어 컨디션이 점점 좋지 않아서 더 이상의 트레킹은 할 수가 없었다. 런던에서 트레킹은 고작 3번이었지만 런던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면 트레킹 모임에 참석했던 일이었다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장 특별한 경험이었다. 


마지막 트레킹을 끝내고 리더에서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런던을 다시 오게 되면 언제든 트레킹 모임에 참석하라며 두 팔 벌려 환영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런던도, 몰타도 트레킹을 할 수 있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 곳이다. 


+  다음 이야기 : 심한 영어 슬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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