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작가 정해경 Jan 19. 2024

[런던어학연수] 어학연수 끝날즈음 심한 영어 슬럼프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24 어퍼인터미디어트 수업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24 어퍼 인터미디어트 수업, 심한 영어 슬럼프  



+ 차원이 다른 어퍼인터미디어트 수업 

어학연수를 시작할 때 최종 목표는 이왕이면 어퍼인터미어트까지는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7월 마지막 주에 인터미디어트에서 시작했던 런던 어학연수는 7주 차에 어퍼인터미디어트로 레벨테스트를 통과했다. 솔직히 시험을 한 번에 통과할 줄은 몰랐는데 운이 좋았다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레벨테스트 통과하고 좋았던 건 결과를 확인한 딱 그때뿐이었다. 레벨이 올라간 후 첫 수업은 언제나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어퍼인터미디어트 수업은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어려운 건 당연했고 어퍼인터미디어트에서 배우는 내용들이 인터미디어트 수업과는 차원이 달랐다. 인터미디어트 때부터 미친 듯이 외워야 했던 단어보다 외워야 할 단어가 더 많이 쏟아졌다. 본격적으로 구동사(phrasal verb)가 등장하니 내가 알고 있는 동사의 뜻도 전부 새로 외워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구동사가 기본이었던 어퍼인터미디어트


인터미디어트 수업에서 가끔씩 접했던 이디엄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문법의 경우도 일반적인 문법을 배우는 정규수업 외에 추가로 들었던 문법 수업에서는 영어문학작품에서 문학적인 수사가 필요한 문법을 공부했다. 정규수업도 그렇고 추가로 듣는 수업도 인터미디어트에서는 한 번도 배우지 않았던 내용들로 구성된 수업이었다. 그 말은 내가 지금껏 해왔던 공부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다양한 이디엄 
문학 작품에서 도치구문의 문법적 활용


어느 날은 선생님이 단편소설을 준비해 왔다. 4~5명씩 그룹을 나눈 후 문장을 잘라서 다 섞고 난 뒤에 텍스트를 바탕으로 줄거리를 유추해 원래 소설의 순서를 유추하는 수업도 진행됐다. 내용도 이해해야 하고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원래 소설의 순서를 맞춰야 했다. 원래 줄거리가 있는 정답이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이 문장 다음에 다른 문장으로 원 소설과는 다른 내용을 만든 것을 합리적으로 선생님을 설득시켜야 하기도 했다. 수업은 재미있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나라면 이 문장 다음에 이런 문장이 와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만... 


+ 내가 배우고 싶었던 영어는 모두 어퍼인터미디어트에 있었다. 

인터미디어트와 어퍼인터미디어트 수업은 레벨 차원도 달랐지만 가장 다른 점은 원어민이 사용하는 표현들, 즉 성인인 내가 한국어를 말하는 수준의 영어 표현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차에 부딪쳐 튀어 오르다, 앞유리가 깨어질 뻔했다, 좀 과장해서 말하다, 멍하니 바라보다, 번개가 두 갈래로 갈라지다, 이중잣대, 빚더미에 쩔다.' 등 내가 구사하는 한국어의 표현들 대부분이 어퍼인터미디어트 내용이었다. 어퍼인터미디어 레벨은 원어민 수준에서 말하기가 가능하다는 뜻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비로소 알아차렸다. 


어학연수를 해보니 인터미디어트까지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어퍼인터미디어트부터가 원어민의 영어를 배우는 실질적인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몰타에서 처음 어학연수를 시작할 때부터 모든 사람들이 무조건 레벨테스트를 보고 최대한 높은 반으로 빨리 가라고 했는지 어퍼인터미디어트에서 공부를 해보니 비로소 피부에 와닿았다. 내가 모국어로 말하는 수준의 영어를 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어퍼인터미디어트 수준은 되어야 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들은 모두 어퍼인터미디어트에 있었다. 


+ 좌절의 연속  

원어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구동사, 이디엄 등을 배우기 시작하고 유튜브 수업도 병행을 하니  공부는 정말 유익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영어를 배운다는 유익함과는 별개로 솔직히 수업을 따라가기에는 너무 힘들었다인터미디어트 수업 때도 수업 전에 모든 내용을 예습을 했었는데 어퍼인터미디어트는 인터미디어트 때보다 예습하는데도 훨씬 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문제는, 인터미디어트까지는 처음 보는 어휘들이 있어도 크게 어려운 단어는 아니어서 그때그때 외워서 그때그때 써먹을 수는 있었는데 어퍼 인터미디어트는 일단 어휘자체가 어려우니 잘 외워지지 않았다.  하루에 8시간 이상을 공부를 하는데도 어제 뭘 공부했나 싶을 정도로 아침이면 다 까먹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내 나이가 공부하기에 너무 많은 나이라는 것만 매일매일 뼈저리게 확인할 뿐이었다. 한때 총명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시절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한 번도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영어가 뭐라고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 20~30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미치도록 했었다. 살면서 머리에 무언가 들어갈 공간이 없을 정도로 꽉 찬 느낌을 이때 처음 받았던 것 같다. 

예습 복습만이 살 길.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니 어휘 공부하느라 신경을 쓸 수 없었던 리스닝과 스피킹은 어퍼인터미디어트에서 큰 복병이 되어 있었다. 교재를 배우는 월, 수, 금의 정규수업 외에 화, 목의 수업은 선생님이 준비한 텍스트 자료로 수업을 했었는데 어퍼인터미디어트에서는 유튜브의 영상 위주로 수업이 진행됐다. 주로 테드, 다큐멘터리, 영국 뉴스 등 3~5분 정도의 유튜브의 영상이 주된 교육자료였다.  


교재의 경우는 미리 예습을 할 수 있었지만 유튜브 영상 수업은 예습이 불가능했다. 교재보다 모르는 어휘가 더 많았지만 어휘보다 더 문제는 리스닝이었다. 어휘를 모르니 안 들리는 건 당연했고 내용 파악이 안 되니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나마 경험이 좀 있어 몇 개 아는 단어들과 영상으로 유추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복어 독에 관한 유튜브 영상
테드 영상으로 수업, 이렇게 많이 틀릴 수가. 


새로운 수상이 선출된 후 진행된 회의 중계 BBC 영상도 수업에 활용되기도 했다. 


+ 극심한 영어 슬럼프가 찾아오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런던을 떠날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학연수가 마무리되는 시점이었건만 아무리 생각해도 영어가 늘었다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휘'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분명히 아는 어휘고, 내용도 다 아는데  막상 입으로 나오지 않으니 당황스러웠다. 충분히 예습을 다했고 모르는 단어도 없는데 입으로 말이 나오지 않는 정말 희한한 경험이었다. 선생님은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라 생각해 질문을 하는데 내가 계속 대답을 못하고 엉뚱한 소리만 하니 스스로도 굉장히 스트레스였다. 


그때 알았다. 외운 어휘가 입으로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처음 어학연수를 왔을 때 다 아는 쉬운 단어지만 말을 못 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동안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외우기에만 급급했기에 그렇게 외운 어휘가 언제든지 바로 입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하는데 임기응변으로 수업시간에만 잠깐씩 말해보는 것이 전부였다. 급하게 외웠던 단어들은 머리로는 아는 어휘였지만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어휘는 아니었다. 신경조차 쓸 수 없었던 리스닝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이쯤 되니 아는 것도 모르겠고 모르는 것은 더 모르겠고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었고 때때로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런던에 오고부터는 일요일 하루만 빼고 꼬박 매일 8시간 이상을 영어 공부만 했는데 이런 상황이라는 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학연수는 끝나가는 데 어학연수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느낌은 나를 미치게 했다. 


'노후를 준비해도 모자랄 나이에 영어가 늘면 얼마나 는다고 그 나이에 영어 공부냐'라고 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거렸다.  '꼭 영어가 필요한 직업도 아닌데 늘지도 않는 영어를 위해 수천 만원이나 쓰면서 이렇게 하고 있는 게 맞는 일일까?' 어쩌면 숨겨둔 나의 본심일지도 모르는 내 안의 자조 섞인 목소리도 튀어나왔다. 모든 것에 후회가 밀려왔다. 


극심한 슬럼프였다. 

다니엘과 얘기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게 된다. 

   

이렇게 뭔가 실패한 느낌으로 어학연수를 끝낼 순 없었다. 그러기엔 그간 내가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 무엇보다 돈이 너무 아까웠다. 학생들의 학업을 담당하는 다니엘 선생님을 찾아갔다. 


"어학연수가 거의 끝나가는데 영어가 크게 향상된 것 같지 않아요. 그동안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내가 뭘 한 건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다니엘은 먹고 있던 샌드위치를 내려놓은 다음 정자세로 고쳐 앉았고 의자를 내어주며 앉으라고 했다. 


"네가 그런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한 거다." 

"네? 당연한 거라고요?" 


다니엘의 말을 믿을 수 없었는 나는 반신반의했다. 이런 내게 다니엘이 그래프 하나를 제시했다.  

https://marianblogt.nl/en/the-learning-curve/ 


영어는 통상 계단식으로 향상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다니엘이 보여주는 그래프는 업 앤 다운이 반복되는 그래프였다. 그러면서 내가 있는 위치가 두 번째 계곡이라고 설명했다. 영어 학습자는 누구나 예외 없이 슬럼프를 겪게 되는데 두 번째 슬럼프에서 대부분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겪는다며 그러니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나의 경우는 실력이 급상승한 케이스라 두 번째 계곡이 다른 이에 비해 좀 더 빨리, 더 깊게 온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통상 두 번째 계곡은 처음 시작할 때 느꼈던 영어 수준보다 실력이 더 떨어지는 것으로 느끼기 마련이기에 내가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보다 더 못 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해경, 난 네가 EC 런던에 처음 왔을 때를 기억하고 있어. 첫날 수업이 어렵다고 몇 번이나 반을 바꿨잖아. 그때 너는 정말 간단한 수준의 영어만 이야기할 수 있었어. 너도 기억날 거야. 그런데 지금은 어때? 네가 처한 상황을 아무 어려움 없이 나에게 얘기를 하고 있잖아. 그만큼 너의 실력이 향상됐다는 증거야. 너는 지금 누구보다도 굉장히 잘 해내고 있는 거야." 


다니엘은 두 번째 슬럼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길고 오래갈 것이라고 했다. 이럴 때일수록 지치지 말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며 계속 공부하다 보면 실력향상이 되어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될 거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슬럼프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나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알고 나니 약간 안심이 됐다. 



+ 어학연수를 연장하다. 

 정말 잘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진짜 내가 배고 싶은 영어 공부는 이제 시작인데 남은 시간이 단 2주뿐이라는 게 너무 아쉬웠다. 몰타에서 내겐 너무 쉬었던 수업인 엘리멘트리에서 어영부영 보낸 2주, 너무 길게 있었던 프리인터미디어트의 시간이 정말 아까웠다. 이제야 공부다운 공부를 시작했는데 몰타에서 최소 4주 이상을 그냥 버린 시간들이 너무 후회가 됐다. 무조건 빨리 반을 업그레이드하라는 말을 흘려듣고 내 고집과 판단을 너무 믿었던 게 내 발등을 찍은 셈이 됐지만 누굴 탓하랴.  


약간 맛만 본 상태에서 어퍼인터미디어트 수업을 끝내기에는 더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어학연수를 연장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숙소가 가장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같은 가격으로 10월 말까지 2주 연장이 가능했다.  지금 남은 2주에 2주를 더해 4주 수업이면 어퍼인터미디어트에서 7주 수업이라 교재의 50% 정도는 배울 수 있으니 그나마 덜 아쉬울 것 같았다. 비행기표는 연장하는 것보다 새로 발권하는 오히려 가격이 저렴했기에 40만 원은 그냥 날려야 했지만 조금이라도 공부를 있다 생각하니 그런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선택했던 어학연수 연장, 과연 좋기만 했을까? 



+ 다음 이야기 :  런던에서 꼭 가야 할 박물관 





+ 구독하기, 라이킷, 댓글 부탁드려요~ 글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

+ 알림 설정을 해두시면 가장 먼저 글을 받아보실 수 있어요. ^^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몰타'는 브런치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런던어학연수 #런던라이프 #런던여행 #런던 #london #londonlife

#몰타어학연수 #몰타라이프 #몰타여행 #몰타 #malta #maltalife






이전 23화 [런던 트레킹] 색다른 런던 여행, 템즈강 트레킹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