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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Jan 23. 2024

[런던 라이프] 런던 박물관 어디를 가볼까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25 가볼 만한 런던 박물관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25 가볼 만한 런던 박물관 


런던에서는 가야 할 미술관도, 가야 할 박물관도 정말 많이 있다. 앞서 런던에서 가야 할 미술관을 소개했는데 (https://brunch.co.kr/@haekyoung/216) 이번에는 런던에서 가야 할 박물관을 소개하겠다. 여기서 박물관이라는 것은 '박물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


통상적이었다면 내셔널 갤러리 혹은 테이트 모던이 내가 런던에서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이었겠지만 뜻밖에 자연사 박물관을 가장 먼저 가게 됐다. 자연사 박물관을 가장 먼저 가게 된 건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몰타에서 런던으로 온 첫날은 내가 살아야 할 동네를 익히기 위해 여기저기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기에 어느 미술관을 먼저 가볼까 고민하며 이곳저곳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중세풍의 고풍스러운 공간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룡뼈(실제는 흰 수염 고래뼈)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사진이었는데 그 사진을 보자마자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그곳은 자연사 박물관이었고 런던에서 미술관을 제치고 가장 먼저 가본 곳이 됐다. 

자연사 박물관 중앙홀의 사진을 보자마자 다음 날 바로 찾아갔다.


런던에서 어학연수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런던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여행으로 런던을 방문하는 것이었다면 이곳저곳 갈 곳을 찾아보고 공부도 했을 텐데 다른 때와 달리 날 것으로 부딪쳐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솔직히 내가 얄팍하게 알고 있는 런던 정보에 '자연사 박물관'은 없었기에 그냥 박물관이겠거니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내가 가본 전곡리 선사유적 박물관,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정도를 생각하고 자연사 박물관을 찾았다. 


평소라면 긴 줄이 늘어서 1~2시간 기다리는 건 기본이라고 했는데 내가 갔을 때는 줄이 그다지 길지 않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약 150년 전인 1881년에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졌다는 박물관은 규모도 규모였지만 외관에서부터 풍기는 아우라가 엄청났다. 


이게 박물관이라고?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박물관에 들어서기 전부터 약간 기가 죽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소심한 발걸음으로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는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와- 엄청나구나. 

1881년에 지어진 자연사 박물관의 고풍스러움이란.


사진으로 봤을 때 천장에 매달린 동물은 공룡이 아니라 흰수염고래였다. 19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박물관이 풍기는 이미지까지 더해지니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감동적이었다. 박물관이 이렇게까지 멋스러울 일인가 싶어 감탄을 했는데 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와 '패딩턴'을  이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박물관 메인 홀 천장에 매달린 흰수염고래는 실제로 보니 어마어마했다. 몸길이 25m, 약 3톤에 달하는 무게를 가진 흰수염 고래는 지구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동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고래의 아래턱 골격이 모든 동물을 통틀어 가장 길다고 한다. 이 흰수염고래는 ‘호프(희망)’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는데 2017년에 설치된 것이라고 한다. 


내가 이곳에 다녀왔다고 하니 아직도 고래가 있냐고 물어보는 선생님이 있었는데 계속 있는 건 아니고 때가 되면 다른 동물로 교체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았다. 울산도 고래의 도시라 울산 고래 박물관 중앙 홀 천장에 귀신고래 모형이 매달려 있다. 그 고래의 경우 약 14m인데 귀신고래를 처음 봤을 때 어찌나 큰지 꽤 놀랐었다. 


그 이후 국내 박물관은 물론이고 타이완의 자연사 박물관 등 몇 군데 자연사 박물관도 귀신고래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서 만난 흰수염고래는 크기도 크기지만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 고래의 모든 부분을 골고루 볼 수 있는데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모두 달랐다.  

박물관 메인 홀을 가득 메운 흰수염고래


런던 자연사 박물관은 파리 자연사 박물관, 뉴욕 자연사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자연사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약 8천만 종에 이르는 생물 표본과 화석, 광성 등을 소장하고 있는데 제대로 본다면 반나절 아니 그 이상이 꼬박 걸릴 것 같았다. 이런 곳이 무료입장이라니 정말 땡큐지 않은가. 


밖에서도 볼 때도 엄청난 규모였는데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어디부터 가야 할지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기본적으로는 색깔별로 특정 주제로 분류해 블루, 그린, 오렌지, 레드의 4개의 섹션으로 구분해 놓았다. 하지만 따로 관람동선이 없기 때문에 보고 싶은 곳을 먼저 가도 되고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여기저기 막 돌아다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공룡, 포유류, 나비, 파충류, 조류, 어류, 곤충 엄청난 자료들을 차례로 둘러보는데 지질학 섹션은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각 섹션마다 엄청난 전시물이 가득했다. 

박물관 이곳저곳을 한참 다니다 새 건물로 연결되는 곳으로 넘어가니 현대적인 건물의 다윈센터(Darwin Centre)가 나타났다. 다윈센터에는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수천만 개의 보존 표본들도 기꺼이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는데 실로 엄청난 경험이었다. 투어 신청을 하면 따로 공개되지 않는 자료들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진화론의 찰스 다윈이 영국사람이란 게 새삼스러웠다. 

다윈이 영국사람이었지


전시장을 반 정도 돌고 나니 규모도 상당한데 사람까지 많으니 전시 집중력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섹션은 보지 않고 지나칠까 싶기도 했지만 여기를 두 번 올 것 같지는 않아서 다리가 아픈 걸 꾹 참고 전시실로 들어섰는데 깜쪽 놀랐다. 환경을 주제로 지구 온난화와 관련된 전시 섹션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지구 기후변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전시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경각심을 느끼게 하는 '기후변화 체험전' 전시였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이런 전시가 진행되는 것이 상당히 의외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테이트 모던도 그렇고 위기를 맞고 있는 지구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느낄 수 있는 전시는 영국 곳곳에서 쉽게 만날 있었다. 

자연사 박물관의 전시를 그대로 옮겨 작년 10월에 수원 컨벤션 센터에서도 열렸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을 한 가지만 들라면 흰고래수염도, 수천만 종의 전시물도, 다윈센터도 아닌 박물관 직원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아이들이 관심이 많은 공룡의 모형을 들고 다니며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만져보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질문에도 몇 번이라도 기꺼이 대답을 해주며 아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통상 박물관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보여주기 위한 곳이라는 생각이 컸던 나는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서 그런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졌다. 관람자들이 직접 참여해 체험을 하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런 곳들은 어김없이 아이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시끄러운 박물관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이 와글와글 했는데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지나친 엄숙주의가 아이들의 상상력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말마다 부모님과 함께 박물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기초과학 분야에 대해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우게 되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박물관이 내 눈앞에 있었다.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자연사 박물관이었다. 

아이들의 호기심 천국으로 이끄는 자연사 박물관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

설명이 필요 없는 대영박물관은 영국에서 반드시 가야 할 박물관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전 세계 각국에서 수집해 온 약 5만 여점의 유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대영 박물관은 또 하나의 작은 지구촌이자 다른 방식의 세계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대영박물관은 '약탈 문화재'라는 오명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전 인류의 엄청난 문화유산이 가득한 박물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 내심 고마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박물관을 오픈 시간은 10시지만 이미 10시가 되면 줄이 족히 수백 미터가 늘어서는 곳이니 최소 9시 30~40분 정도부터 줄을 서서 미리 기다리는 게 상책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워낙 볼 것이 많은 곳이라 박물관 전용 오디오 가이드도 있지만  좀 더 자세하게 유물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다면 마이리얼트립의 도슨트 투어도 좋겠다 싶었다. 


엄청난 고대 이집트의 미라와 무덤 유물을 보고 있자니 도대체 이집트에 남아 있는 게 있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가장 궁금했던 로제타스톤이 있는 전시실은 어찌나 인기가 많은지 사람들로 발 디디도 틈이 없을 정도로 바글바글했다. 

이집트 관 


미술관이든 박물관이든 언제나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는데 대영박물관의 경우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그랬다. 복도 양쪽을 가득 채운 메소포타미아 유물인 부조벽화 <아시리아 왕의 사냥> 실로 어마어마했다. 


아시리아 아슈르바니팔의 왕이 사자를 사냥하는 모습의 부조를 자신의 왕궁 벽에 만든 것인데 무려 기원전 645~635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얼추 2,700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인데 여전히 지금까지 보존이 된다는 것도 놀랍지만 현대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정교했다. 용맹하게 사자와 맞서 싸우는 모습, 사자가 창을 맞고 죽어가는 모습 등 하나하나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리얼한 부조는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찬란했던 문명
사자를 사냥하는 아슈르바니팔의 모습을 담은 신 아시리아 니네베 왕궁 부조 


대영박물관에서 봐야 할 것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건 파르테논 신전이다.  그리스를 여행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건축의 기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진품들은 정작 그리스에는 볼 수 없다. 진품은 모두 이곳, 대영박물관에 있기 때문이다. 근 200여 년간 대영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로 파르테논 신전이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다른 유물들도 그렇지만 특히 파르테논 신전을 둘러싼 양국 간의 외교 갈등은 오래된 숙제다. 


최근에 그리스 정부가 '파르테논 마블스' 반환조건으로 '아가멤논의 가면'을 대체 유물을 제공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 한번 대영박물관의 파르테논 마블스가 화제가 됐다. 대영박물관에서 파르테논 마블스를 보면서 이 엄청난 조각이 남의 나라 얼굴이라니 싶어 맘이 짠했는데 뉴스로 접하게 되니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파르테논 마블스는 그리스가 오스만제국에 점령됐던 19세기 초 당시 주재 영국 외교관이었던 토머스 브루스(엘긴 경)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간 대리석 조각들이다. 양국 간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과연 파르테논 마블스가 그리스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미 떼어내면서 원래 있던 색깔이 다 지워지고 하얀 대리석으로 보존되고 있는 지금의 파르테논 마블스가 파르테논 신전에 원래 있던 모습으로 있다면 과연 똑같은 것일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 혼자 심난해졌다. 

파르테논 마블스
파르테논 신전 유물 진품은 정작 그리스가 아닌 대영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67번의 한국관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는데 한국 전통을 콘셉트로 마련된 전시실은 위치고 외진 곳이었고 생각보다는 좀 작은 편이었다. 한국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많은지 주로 도자 유물이 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띈 건 이수경 작가의  ‘번역된 도자기’였다. 깨진 도자기 파편을 이어서 금박으로 이어 붙여 작품은 전통과 현대가 한 작품 안에서 연결되는 느낌이라 독특했는데 대영박물관이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대영박물관 한국관


약간은 올드한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박물관이었는데 건물 중앙으로 자연채광이 쏟아지는 멋진 건축물 덕분에 유물과의 시간 간격을 좁혀주고 있어 색다른 느낌이었다. 누구나 예외 없이 기념사진을 남기는 뷰 포인터에 서고 보니 카메라에 절로 손이 갔다. 중요한 유물만 빨리빨리 본다고 해도 반나절이 그냥 지나갔다. 곳곳에 카페도 있고 기념품 가게의 굿즈도 다양해 사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다음을 위해 꾹 참았다.  

대영박물관 사진 포인트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Victoria & Albert Museum) 


V&A라는 약자로 불리고 있는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은 장식, 패션, 디자인 박물관으로 약 230만 개가 넘는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걸어서 약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자연사 박물관 다음으로 자연스레 찾게 되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워낙 다양한 컬렉션이 있어 한번 가본 사람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에 마지않는 박물관인데 정통적인 박물관이 아니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큰 관심은 없었다. 그러다 내가 이 박물관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런던에 있는 동안 이 박물관에서 한류 전시가 있었다. 첫날 매진 사태에 전시를 보기 위해 현지인들이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런던에서 한류문화가 인기폭발이라는 기사 때문이었다. 도대체 한류 전시가 어떤 것이고 어떤 박물관이기에 전시를 하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V&A 박물관은 무료 박물관이지만 특별전은 유료였는데 내가 갔던 날도 입장을 위해 긴 줄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앙에 굿즈샵이 위치하고 있는 공간도 색달랐는데 다른 나라 박물관 굿즈숍에서 한글이 적힌 상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었다. 전시는 K-pop에 최첨단의 IT 기술을 접못된  전시인 것 같았는데 내가 굳이 돈을 내면서까지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V&A  박물관에서 성황리에  이뤄진 전시 한류. 


V&A 박물관은 1851년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를 둘러본 빅토리아 여왕 부부가 박람회 수익금으로 설립한 왕립박물관이다. 처음 출발은 왕실의 소장품을 보관하는 미술관이었으나 몇 번의 증개축을 거치는 동안 전통적인 미술관의 역할에서 디자인 분야에 특화된 곳으로 박물관의 성격이 바뀐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인 갤러리나 박물관에서 볼 수 없었던 패션, 직물, 금속공예, 보석류, 가구 등은 물론이고 사진 전시도 하고 있는 점은 굉장히 독특했다. 박물관을 둘러보다 보면 영국 산업혁명 시대의 영화가 어땠는지 간간히 느껴지기도 했다. 회화, 조각, 드로잉, 판화, 사진 등 순수미술의 경우 작품수는 많지 않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어도 순수미술에 상업미술까지 모든 분야의 예술이 총망라된 느낌이었다.    

모든 예술이 총망라된 V&A 박물관 


내가 눈여겨본 공간은 복제품이 가득한 '카스트코트(The Cast courts)'관이었다. 전시실로 들어섰을 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랬는데 황금의 '천국의 문', 벽에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심지어는 도나텔로의 '다비드 상'도 있었다. 피렌체에서 꼭 봐야 하는 예술품이 여기다 모여 있을 줄이야. 하지만 반전이 있으니 이 작품들은 모두 복제품이다. 이렇게 유명한 미술관에 복제품을 당당하게 전시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의하했다. 


유럽에서도 여행이 자유롭게 된 건 중세 십자군 전쟁 이후에나 가능했기에 훌륭한 예술작품들을 복제해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복제품은 다 없앴다고 하는데 V&A 박물관의 경우 누구나 진품을 보러 다닐 수는 없기 때문에 비록 복제품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예술작품을 쉽게 볼 수 있고 또 이를 통해 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전시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원본이 훼손됐을 때 V&A에 있는 복제품을 보고 복구를 했다고 하니 실용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이런 곳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 싶어 역시 영국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품보다 더 진품 같다는 소리는 괜한 말이 아니었다. 

여왕이 다비드 상을 보고 주요 부분을 가리라고 해서 무화과 잎을 따로 만들어 붙인 건 유명한 일화다.  


V&A에서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보석 컬렉션이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유럽 주얼리의 역사가 총망라된 곳인데 세상의 진귀한 보석은 여기에 다 모였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이야말로 V&A 박물관이 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보석을 자랑하는데 영국 왕실을 비롯해 세계의 유명인들이 착용했던 보석들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아마 여자 관람객이라면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족히 1시간은 머물지 않을까 싶었다. 

보석 컬렉션은 V&A의 꽃
도서관마저도 아름답네 

한국관도 있는데 전시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이동하는 복도 통로에 마련되어 있어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전시품들도 전통, 현대적인 디자인 가미된 작품들이긴 했는데 내 눈에는 뭔가 이도저도 아닌 듯한 기분이라 많이 아쉬웠다. 

너무 미미했던 한국관
박물관 관람이 아니어도 야외 카페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V&A


시네마 박물관(The Cinema Museum)

시네마 박물관을 가게 된 건 우연이었다. 왜냐하면 런던에서 이사를 한 번했는데 두 번째로 살았던 동네는 '엘리펀트 앤 캐슬'이라는 동네였다. 산책을 위해 구글지도를 살펴보던 중에 동네에 시네마 박물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세상에 무성 영화 시대의 위대한 배우인 찰리 채플린이 어렸을 때 살았던 곳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찰리 채플린'이라는 이름을 보게 될 줄 몰랐기에 너무 반가웠다. 내가 살고 있는 상암에도 영화박물관이 있는데 런던에서도 시네마 박물관이 있는 곳에 살게 되니 이런 우연이 있나 신기했다.  


구글 지도가 알려준 대로 길을 걷긴 했는데 계속 주택가 골목이 나오니 이런 곳에 박물관이 있나 의심이 될 즈음 시네마 박물관이라는 반가운 표지판이 보였다. 시네마 박물관은 내가 기대했던 그런 곳은 아니었다. 일단은 주택가 안쪽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그렇고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은 오랜 세월을 증명하고 있었다. 시네마 박물관은 매일 영화 상영을 하는 곳은 아니고 스케줄에 따라 영화 상연, 공연, 강의 등의 행사가 간헐적으로 진행되는 곳이었다.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 참조)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던 시네마 박물관 


박물관 관람의 경우 원래는 예약자에 한해 유로 투어로 진행되는데 마침 마침 영화 관련 행사 주간이라 이벤트로 관람객 무료 투어가 진행되어 운 좋게 예약할 수 있었다. 관람시간이 되자 수염을 멋있게 기른 관계자분이 나와 인원체크를 했고 나를 포함 열댓 명이 그를 따라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다. 


박물관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소품들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만 무성영화가 상영되던 시절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한때 극장이 잘 나가던 시절의 모습을 담은 사진에서 몇몇은 나도 알만한 사람들의 얼굴이 있었다. 

과거의 영화가 그대로 박제된 소품들 


극장은 1층과 2층에 있는데 1층은 입구와 통로가 전부였고 2층에 상영관이 있었다. 곳곳에 찰리채플린과 관련된 다양한 소품들이 있는데 메인 상영관의 채플린 조각상에 자연스레 시선이 멈췄다. 철골 프로토 타입으로 제작된 조각상이 인상적이긴 했지만 공간에 비해 너무 크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예술가이자 박물관 자원봉사자인 안나 오드리치(Anna Odrich)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철골 프로토타입으로 제작된 찰리채플린 조각상이 꽤 인상적이었다.
찰리채플린과 관련된 다양한 소품들


찰리 채플린이 여덟 살 때 그의 어머니가 궁핍에 직면했을 때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고 해서 이곳이 찰리 채플린이 살았던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게다가 이곳 역시 영화관도 아니었고. 어쩐지 영화관이라고 하기엔 시설이 좀 애매하다 싶었다. 


관람객들에게는 음료가 제공됐는데 음료를 마신 후 담당자가 나와서 간략하게 이곳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후 약 10분 정도 되는 다큐멘터리를 함께 봤다.  비로소 이곳이 어떤 곳인지 이해가 됐다. 


이곳은 램버스 작업장(Lambeth Workhouse)으로 말하자면 '구빈원'이었다. 런던의 극빈층에게 숙소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종의 빈민구호제도로 주로 성벽이 없는 큰 성당에 만들어졌다. 이곳도 성당과 그 부속건물이었던 모양이다. 찰리채플린의 경우 아버지와 이혼 후 엄마와 함께 약 1년 남짓 이 작업장에서 지냈다고 한다. 찰리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 등 여러 영화의 내용들이 그의 불우했던 삶과 그가 경험치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런 곳 중의 한 곳이 이곳일 줄이야. 


이런 작업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영국 흑사병으로 인해 노동력을 충당하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19세기로 접어들면서 빈민보다는 노인, 허약자, 환자들을 위한 곳으로 변해가면서 병원 등이나 공공 지원 기간 등으로 성격이 바뀌게  됐다고.  


작업장이었던 이곳도 병원으로 바뀐 후 한동안 이어지다가 1986년 영화를 좋아했던 로널드 그랜트(Ronald Grant)와 마틴 험프리스(Martin Humphries)이라는 사람이 그들이 모은 소장품과 영화, 기념품, 역사 용품을 전시하는 영화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운영이 그리 녹록지 않았던지 2017년에 건물을 소유했던 곳에서 건물을 매각하기로 결정이 되자 영화박물관을 살리기 위해 유명 영화인들이 나서서 캠페인을 벌였고 5만이 넘는 사람들의 청원이 이어지면서 다행히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저 동네에 있는 박물관 구경이나 하자고 나섰다가 이런 어마어마한 스토리가 있는 줄 뒤늦게 알고 소름이 돋았다. 

시네마 하우스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상영


이곳에서 보관하고 있는 아카이브 필름들을 정기적으로 상영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밖에 포스터, 아르 데코 시네마 의자, 1940 년대와 50 년대의 안내원 유니폼, 티켓, 재떨이 및 팝콘 상자뿐만 아니라 수백 권의 책, 약 100 만 장 이상의 사진 및 1700 만 피트의 필름을 자랑하는 아카이브를 포함한 독특한 영화 기념품 등은 영국 영화 역사에 있어서 나름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찰리 채플린을 만들어낸 곳이라는 상징성이 있지만 이제 세상은 변했다. 멀티 플렉스 극장이 주를 이루면서 전통적인 극장이 대부분 사라지고 퇴색돼 버린 건 한국이나 영국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아 많이 아쉬웠다. 이곳이 언제까지 유지되고 있을까 돌아서는 발걸음이 괜스레 무거워졌다. 

서가에 판매하고 있는 영화관련 책들.



+ 다음 이야기 :  그리니치 천문대가 전부는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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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몰타'는 브런치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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