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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Feb 13. 2024

[런던라이프] 런던은 랜드마크가 도대체 몇 개냐?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29 볼 것이 너무 많은 런던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29 볼 것이 너무 많은 런던 


내가 런던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유럽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은 도시 가운데 하나라는 런던은 볼 것이 너무 많은 여행지라는 걸 런던을 와보기 전에는 몰랐다. 브런치 정책상 30개의 글로 제한되어 있기에 런던 명소들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소개하기보다 박물관, 미술관, 기차역, 공원, 뮤지컬, 트레킹 등으로 몇 군데를 엮어 그동안 연재를 했다. 이제 단 2개의 글만 적을 수 있는 상황인데 여전히 소개하지 못한 곳이 수두룩하다.  그중 소개하지 않고 사장시키기엔 너무 아까운 곳들을 하나의 글로 묶어 소개한다. 내용이 좀 길다는 점 미리 양해를 구한다. 



웨스터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영국 역대 왕들의 대관식이 치러지고 영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위인들이 잠들어 있는 웨스터민스터 사원. 런던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빅벤과 국회의사당이 함께 있는 곳이기에 웨스터민스터 사원 안을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다. 그러니 런던 제1의 랜드마크를 꼽으라면 바로 웨스터민스터 사원 일대가 아닐까 싶다. 


웨스터민스터 사원은 단순한 종교시설물이 아니다. 이곳은 역대 왕들의 대관식이 치러졌고, 동시에 영국을 빛낸 수많은 위인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가깝게는 65년 만에 최장기 왕세자 찰스 3세 영국 국왕 대관식이 열렸고 그보다 앞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장례식이 이곳에서 열렸다. 여왕의 장례식 내내 웨스터민스터 사원의 모습은 전 세계로 생중계가 됐다. 


여왕의 장례식에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약 20시간에 달하는 기다림은 무리였기에 장례식이 치러질 당시 두 어번 정도 웨스터민스터 사원을 가보기는 했었다.  런던에서 두 번째로 살던 집에서 버스를 타면 빅벤과 웨스터민스터를 지나 런던 시내까지 가는 노선이라 수시로 지나다녔고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곳이었다. 굳이 내부까지 볼 필요있나 싶을 정도로 친숙한 곳이었다. 그러다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여왕의 장례식을 계속 보고 있자니 실내의 모습이 너무 궁금해 런던 떠나기 직전에 다녀왔다. 성수기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예약을 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10월 말 정도가 되니 예약없이 현장에서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가을로 접어던 웨스터민스터
한국어 수신기도 구비되어 있다.
중요한 볼거리는 안내판과 수신번호가 있어 수신기가 큰 도움이 됐다.



워낙 역사적인 장소이니 아는 만큼 보이는 곳이 '웨스터민스터'였다. 다행히 한국인 수신기가 있고 설명이 필요한 곳은 안내판과 수신기 도움을 받았다. 천천히 이동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전체적인 내용 하나하나 들으며 관람을 하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시간이 꽤 걸렸다. 


영국 여왕의 장례식 당시 웨스터민스터를 입장할 때 바닥에 빨간 꽃 부분을 피해서 지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어떤 곳일까 궁금했는데 '무명용사를 기리는 비'였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수많은 무명용사들이  보이지도 않는 어느 구석자리 한 곳에 잊힌 채로 있는 것과 달리 영국에서 가장 일 순위로 여겨지는 장소에서도 가장 정중앙 귀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심지어 여왕이라고 하더라도 이 비석을 함부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신사의 나라, 영국의 품격'을 인정하지 않을 수없었다.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무명용사의 비


웨스터민스터는 하늘로 쭉쭉 뻗은 고딕양식의 성공회 성당인데 밖에서 보는 것보다 안에서 보는 것이 훨씬 더 극적인 느낌이었다.  장쾌하게 늘어선 열주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시선 끝에 닿는 천장들도 화려하게 장식을 했다. 천장마다 전부 다른 장식으로 꾸며졌고 창문마다 다른 스탠드글라스는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성당 건축도 볼거리였고 영국 역사의 변곡점마다 거쳐갔던 왕들의 무덤도 있으니 꼼꼼하게 봐야했다. 왕실의 행사가 많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고 워낙 중요한 인물들이 많이 안치되어 있어서 그런지 성당 본래의 기능보다 거대한 박물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시즌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인데 성수기 시즌이라면 발 디딜 틈이 없을 것 같았다. 


화려한 천장
아름다운 고딕건축과 스태인드 글라스
에드워드 왕의 어좌


처음에는 동선을 따라다니면서 구경을 하다가 어느 순간 동선에서 벗어나 이리저리 내 맘대로 걷기 시작했다. 메인성당에서 뒷공간으로 이동하니 성당 내 안마당이 보인다. 이곳에서도 창마다 스태인드글라스는 빠지지 않는다. 성당의 회랑들은 그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수없이 봤는데 웨스터민스터의 회랑은 독특했다. 


관광객으로 보이지 않았으니 런더너였을 텐데 사람 없는 한적한 회랑에 앉아 햇빛을 쬐며 사색에 잠긴 사람도 있고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 여느 카페 같은 모습이라 다소 놀랐다. 영국왕실의 상징이기도 한 곳이니 엄숙하고 근엄한 것만 생각했는데 웨스터민스터를 이렇게 친근하게 느낄 수도 있는 공간이구나 싶어 새삼스러웠다.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다.
런더너의 슬기로운 웨스터민스터 즐기기 
웨스터민스터 사원 부조 


화려한 볼거리에 끌려 하늘로 향하던 시선은 어느새 아래로 내려왔다.  영국 군주들과 그의 배우자가 안치되어 있고 그 밖에도 영국을 빛낸 다양한 유명 인사들, 찰스 디킨스, 뉴턴, 다윈, 리빙스턴 등 묘비와 기념비 등이 있다. 중요한 인물들의 경우에는 동상도 세워져 있어 누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재미도 솔솔 했다. 


이곳에서 미사가 진행될 때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지만 미사를 보는 장소만 입장이 가능하고 사진은 찍을 수 없다고 한다. 4개월이나 있으면서도 웨스터민스터도 그렇고 세인트폴 대성당도 그렇고 미사를 볼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니 그 참... 


영국의 명물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빨간 전화부스다. 런던 시내 곳곳에 빨간 전화기 부스가 있지만 웨스터민스터 빨간 공중전화는 무조건 인증숏을 찍어줘야 한다. 이렇게 빅벤과 함께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지금 런던이야!'를 자랑할 수 있는 중요 포인트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만 이곳에서 인증숏을 찍는 건 아니었다. 외국 사람들도 어김없이 공중전화박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고 간혹 인증숏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 런던 랜드마크 인증숏은 전세계 각국 공통인 셈이다. 

이런 인증샷 하나는 꼭 찍어줘야 한다. 


스카이 가든(Sky Garden)


런던은 랜드마크 빌딩마다 별명을 붙이는 걸 참 좋아하는데 원래 이름 대신 '워키도 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곳이 있다. 정식 이름은  '20 Fenchurch Street'인데 이 빌딩을 보기 위해 매 시마다 사람들로 긴 줄이 늘어서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로 이 빌딩 최고층인 38층에 '스카이 가든'이라는 정원이 있기 때문이다.


큐가든을 가보고 싶었는데 결국 가지 못했다. 대신 빌딩 맨 꼭대기에 있다는 스카이 가든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무료로 입장이 가능한 곳이지만 매시간 입장 인원이 정해져 있어 예약을 해야하는데 성수기에는 예약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다. 7월 중순에 런던을 왔고 예매를 위해 스카이가든 홈페이지를 수시로 들락거렸는데도 내가 원하는 시간에는 아예 갈 수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러다 10월이 넘어가면서 오전 시간에 취소표가 생겨 어학원 가기 전에 잠시 들러볼 수 있었다.  

워키도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빌딩 최상층에 스카이 가든이 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이 스카이가든을 가보고 싶어 하는지 이곳에 올라와보면 알 수 있다. 유리로 만들어진 덕분에 런던을 360도로 조망이 가능한데 정말로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곳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으니 문전성시를 이룰 수밖에. 게다가 식물을 콘셉트로 꾸며진 정원이라 그야말로 나의 취향을 완전히 저격한 곳이었다. 

이런 곳을 무료로 개방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총 3개 층을 스카이가든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템즈강과 접하고 있는 곳은 바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 멋진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낮에도 이렇게 멋진데 해가 질 때는 정말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건 누구나도 짐작이 된다. 그래서 해 질 녘에는 예매창이 열림과 동시에 피 튀기는 예매 전쟁인데 4개월을 있으면서도 한 번도 예매 성공을 하지 못했을 정도니 어느 정도 인기인지 상상에 맡기겠다. 

저 멀리 윔블리 스타디움의 조형물까지 다 보이는 구나. 


날이 맑으니 런던시내 주요 명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저 멀리 웸블리 스타디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런던이 평지에 조성된 곳이라는 게 새삼스러울 정도였다. 이곳에 카페와 레스토랑이 여러 개가 있는데 음료 한 잔 필수라던가 이런 조건이 없이 예약에 성공하기만 하면 그냥 무료다. 


여의도 고층빌딩 꼭대기에도 서울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이 여럿 있지만 그곳에서  한 끼 식사 가격을 생각하면 스카이가든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렇다고 이렇게 좋은 뷰에 커피 한 잔도 안 마시고 올 수는 없는 일이긴 했다. 게다가 머무는데 제한시간이 없어 얼마든지 있어도 된다. 시간만 넉넉했다면 이곳에서 해지는 것까지 보고 오고 싶었으나 어학원을 가야 해서 돌아서려는데 어찌나 아쉽던지. 

런던의 랜드마크들을 전부 볼 수 있다. 
식물과 어우러지는 곳곳에 크고 작은 다양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위치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주문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원래 이 빌딩은 200m 정도의 높이로 계획이 됐으나 세인트 폴 대성당, 런던 타워 등 런던의 상징물인 다른 건축물이 너무 왜소해 보일 수 있다고 해서 설계안이 변경되었고 160m 높이로 완공이 됐다고 한다. 160m의 높이에서도 내려다보는 런던도 충분히 멋있었다. 한번 가보고 너무 좋아서 보려고 차례 예매를 시도했으나 결국은 가보지 못했다. 런던을 간다면 무조건 이곳을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나의 최애 장소, 하지만 두 번은 가볼 수 없어 아쉬웠다. 


더 샤드(The Shard) 


집에서 샤드까지는 걸어갈 수 있는 곳이라 산책 삼아 걸어 다녔다. 사드까지 산책이라니- 런던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자 유럽에서 6번째로 높은 건물인 더 샤드는 영국 어디에서나 보이는 빌딩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세모로 모아지는 건물은 현대판 '마천루'를 절로 떠올리게 하는데 그 높이가 무려 309.6m나 된다. 


영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고 해서 약간의 경외심(?)이 있었는데 그것이 와장창 깨진 건 잠실 롯데타워 때문이다. 영국에서, 유럽에서도 높은 건물로 인정하는 곳이라 롯데타워보다 높은 줄 알았다. 그런데 롯데타워가 무려 555m로 더 샤드를 이겨먹었다. 내가 이런 사대주의 마인드였다니. 맙소사. 


더 샤드의 꼭대기는 당연히 전망대가 위치한다. 런던에서 가장 높은 곳인 데다가 맨 꼭대기층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 런던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하기에는 환상적인 곳이지만 문제는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 이미 런던에 익숙해진 상황이었기에 어마무시한 입장료가 아니어도 굳이 갈 생각은 없었다. 


여기서 숨은 팁 하나! 굳이 비싼 돈을 내야 하는 전망대가 아니어도 더 샤드에서 템즈강의 멋진 풍경과 런던의 스카이 라인을 감상하는 방법이 있다. 

런던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샤드


더 샤드 52층에 있는 칵테일바 'Gong'을 이용하면 된다. 런던을 방문한 지인이 더샤드를 꼭 가보고 싶다며 찾아낸 곳인데 뷰가 전망대나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다만, 무조건 예약을 해야 하는데 예약할 때 예약부도를 방지하기 위해 보증금조로 미리 30 파운드 선불을 걸어야 한단다. 지인은 예약 부도나면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없으니 꼭 가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당부를 했다. 당근, 부도를 낼 리가 있나. 게다가 집이 코 앞인데. 


맨날 지나만 다니다가 안으로 들어가려니 입구가  어딘지 못 찾아서 조금 헤맸다. 호텔쪽 출입문으로 들어가리셉션에서 카페 간다고 했더니 타야할 엘리베이트를 안내해준다. 영국 여왕이 서거했던 시기라 호텔도 그렇고 실내 곳곳은 여왕의 사진으로 추모하고 있었다. 중간에 엘리베이터를 한번 갈아타고 52층에 도착했고 마침 운 좋게도 창가자리가 비어 있었다. 


더 샤드에서 바라보는 런던 야경 


앵커에서 저녁을 먹은 뒤였기에 가볍게 칵테일 한 잔을 주문하고 환한 불빛으로 빛나는 런던의 스카이라인을 마주한다. 확실히 위에서 내려다보니 다른 느낌이다. 그동안은 공부한다고 왔다 갔다 하느라 여행자도 아니고 학생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지인 덕분에 호사스러운 여행자 모드가 된 듯하여 기분이 한껏 업됐다. 


칵테일은 대략 18파운드 정도였고 서비스 차지까지 포함하면 1인당 20파운드인데 전망대보다는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분위기까지 낼 수 있으니 괜찮았다. 전망대를 이용하는 경우 전망대에도 카페나 칵테일바가 있는데 맛은 소소였다고 한다. 전망대 비용에 칵테일까지 더하면 가격은 어마무시해질 테니 꼭 전망대가 아니어도 기분을 내고 싶다면 더 샤드 52층 칵테일바 Gong도 괜찮겠다. 

52층에는 칵테일바가 51층에는 다양한 레스토랑이 있다. 


리젠트 운하(Regent Cannel) 

런던 로컬만 안다는 리젠트 운하는 나의 최애 장소였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빌딩숲을 걷는 것도 좋아했지만 운하를 따라 걷는 것은 색달랐고 무엇보다 이렇게 멋진 운하가 런던 도심을 가로지르고 있는 런던이 정말 좋았다. 


리젠트 운하를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런던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왔기에 틈만 나면 구글 지도를 들여다보는 게 취미생활일 정도였다. 내가 다닌 EC london 어학원이 유스턴에 있었는데 킹스크로스역까지 걸어서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리젠트 운하는 킹스크로스 역을 지나가는 코스였다. 그리고 어학원이 엔젤역으로 이사를 갔는데 엔젤역 역시 리젠트 운하가 지나가는 코스였다. 잘하면 운하를 따라 걷는 길도 있겠다 싶었는데 진짜로 있었다. 

엔젤역 근처 리젠트 운하 출입구 


리젠트 운하는 패딩턴 베이슨(Paddington Basin)과  라임하우스 베이슨(Limehouse Basin)을 있는 약 13.6마일(약 22Km)의 수로다. 리젠트 운하는 런던 시내 명소들과도 연결되는데 운하를 걷다가 리젠트파크, 런던 동물원, 캠든마켓 등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운하의 정취가 워낙 아름다워 인기 명소가 많은데 캠든(Camden), 리틀베니스(Little Venice), 킹스크로스 일대가 인기가 많았다. 이중 캠든과 리틀 베니스 사이는 운하가 물류 수송이 한창이던 시절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보트투어도 운영 중이고 가끔 방송에 소개되는 수상 서점은 킹스크로스역 근처에 있다.  


전체코스를 다 걸어보지는 못했고 어학원이 있는 엔젤 역 인근과 킹스크로스 역에서 캠튼 마켓까지는 걸었는데 도심을 걷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운하에는 당시에 사용했던 시설들이 산업유산으로 남아있는데 중요한 시설물의 경우 안내판도 있었다. 리젠트운하 박물관도 있으니 한번 들러보면 좋겠다 싶었는데 거기까지 가보지는 못했다.  

엔젤 역 근처 리젠트 운하의 풍경


리젠트 운하가 만들어진 건 1820년이니 역사만도 200년을 거슬로 올라간다. 그런데 런던 도심에 왜 이런 운하를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런던의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했고 인구가 늘어나면 항상 '물'이 문제가 된다. 늘어나는 인구에 따라 런던의 수도 문제를 해결하고 도심의 인프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젠트 운하를 만들게 된 것. 


특히 1838년에 런던과 북부 산업도시인 미들랜드(Midland) 중심도시인 버밍엄까지 철도가 개통되면서 이 지역에서 기차로 실어온 석탄과 건축자재, 물품  등을 런던 각 도심으로 실어 나르기에 리젠트 운하는 이보다 더 좋을 수없는 운송방식이었다. 운하가 지나가는 킹스크로스 역 등 북부 산업도시와 각 역이 기차로 연결되면서 북부지역에서 실어온 물자들을 리젠트 운하를 통해 운송하면서 리젠트 운하는 산업혁명 시기와 맞물려 물류 운송수단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약 140년간 부지런히 리젠트 운하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영원할 줄 알았던 리젠트 운하의 물류 수송도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점차 시들해졌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운하보다 더 효율적인 수송이 가능한 도로와 자동차가 발달했고 무엇보다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 석탄이나 건축재 등의 대규모 운송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1962~63년의 겨울 이상기온으로 인해 리젠트 운하가 꽁꽁 얼어붙었고 몇 주 동안 화물이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대부분의 화물 운송은 자연스레 도로로 이동했고 한번 이동해 간 운송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현재 리젠트 운하는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운하의 정취를 즐기는 사람 등 런던의 색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사랑받고 있다. 

리젠트 운하 


리젠트 운하는 도로보다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데 운하로 들어서는 순간 이곳이 런던 도심 한복판이라는 생각을 잊게 할 정도로 톡특한 느낌이 들었다. 느낌만 비교하자면 청계천과도 살짝은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부러 조금 일찍 출발해 어학원 수업 전에 짧지만 종종 리젠트 운하 산책을 즐겼다. 일전 옥스포드 운하를 걸을 때도 그랬지만 이곳 리젠트 운하에서도 정박한 배가 눈에 띄었다. 


‘내로우 보트'(narrow boat)로 불리는 이 배들은 모두 주거용이다. 최근에 비싼 주택 가격과 관련해 우리나라 언론에서 집 대신 배를 주거공간으로 이용한다고 뉴스에 소개된다.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사는 사람의 경우에는 별도의 난방시설이 없어 겨울에는 춥고 안에 샤워시설이 없어 다소 불편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편함을 기꺼이 견디는 데는 런던의 비싼 집값도 한몫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리젠트 운하에 정박해 있는 배는 내로우 보트로 주거용 배이다.
가을이 내려앉은 리젠트 운하 


짧은 시간으로 런던을 방문하는 경우라면 킹스크로스 역 근처의 리젠트 운하를 느껴보는 것도 괜찮겠다. 리젠트 운하와 킹스크로스 역 주변은 런던에서도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로 늘 언급된다. 킹스크로스 역과 접하고 있는 카널사이드 그린 스텝츠(Canalside Green Steps)는 런더너들도 좋아하는 곳이라 런던을 소개하는 여행책자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 근처에 구글도 위치하고 있다. 


어학원이 이곳까지 걸어서 약 10분 남짓이라 금요일이면 친구들과 이 근방에서 한식도 먹고 이곳에서 맥주도 한 잔 하는 등 유유자적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여름 주말 이곳에서는 영화상영도 하고 다양한 행사들이 많이 열리는 곳이라 리젠트 운하를 걷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리젠트 운하 근처의 예술대학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대학
킹스크로스에서 캠던까지

킹스크로스 역에서 운하를 따라 약 2km 남짓 걸으면 캠던 지역에 도착한다.  엔젤 역에서 이어지는 운하보다 개인적으로는 킹스크로스역에서 캠던까지 이어지는 운하의 풍경이 더 좋았다. 한적하면서도 색다른 느낌이었기에 혼자 걸어도 좋았다. 친한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으니 캠던까지 걷는 길도 짧게 느껴졌다. 캠던마켓까지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해도 좋지만 조금 색다른 느낌을 느껴보고 싶다면 리젠트 운하는 꼭 걸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캠던 지역의 리젠트 운하


캠던마켓(Camden Market) 

런던은 다양한 마켓이 유명한데 신선한 먹거리가 있는 버로마켓(Borough Market), 골동품 시장인 포토벨로 마켓 등은 런던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시장 중 하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유명한 마켓은 바로 캠던마켓이다. 


런던에서 MZ세대가 가장 많이 가는 곳을 찾는다면 '캠던마켓'일 것이다. 캠던마켓은 리젠트 파크 북쪽에 있는 곳인데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만큼 런던 최신 유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도 캠던마켓의 지하철역인 캠던타운(Camden Town)을 나서는 순간 세 번 놀라게 된다. 엄청난 인파에 놀라고 런던 시내에서 본 적 없는 패션을 착장하고 있는 사람들에 놀라고 희한한 간판에 놀란다.  


게다가 이 일대는 다양한 클럽과 펍이 있어 주말이면 그야말로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곳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와 성수동을 묘하게 섞어놓은 느낌이 드는 곳이라고 할까. 마켓이 규모가 있는 편이기에 색다른 아이템과 맛집들을 찾기 위해서는 골목골목을 누비는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캠던마켓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보면 독특한 디자인의 의류들, 빈티지 제품들, 다양한 수공예품 등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리젠트 공원, 프림로즈힐에서도 걸어갈 수 있는 곳이기에 캠던마켓과 함께 일정에 넣으면 반나절 코스로도 멋진 런던을 즐길 수 있다. 버스로도, 지하철로도, 걸어서도 가봤지만 뭐니 뭐니 해도 리젠트 운하를 걸어서 만났던 캠던마켓의 느낌이 가장 좋았다. 

캠던마켓 
리젠트 운하 다리를 건너가면 펍이 있다. 매주 금요일 어학원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여서 맥주를 마셨다. 
구석구석 잘 찾아다녀야 하는 캠던마켓
인증숏은 필수


던트북스(Daunt Books Marylebone) 

'문학의 도시'인 런던에서 서점투어는 멋진 여행 콘셉트가 될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서점마다 돌아다녀보고 싶었으나 시간상 그러지 못했고 몇몇 군데 유명하다는 곳을 둘러보기는 했다. 그중 우리나라사람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던트북스가 나 역시 가장 인상적이었다. 


던트 북스의 '던트'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사람이름이었다. JP모건(JP Morgan)에서 일하던 제임스 던트 (James Daunt)라는 사람이 원래 이곳에 있던 서점을 사들였고 자신의 이름을 붙여 여행 전문 서점으로 만든 것이었다. 던트 북스는 런던에 총 5개의 지점이 있는데 이중 메릴본이 본점이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햄프스테드 공원 근처에도 던트 북스 2개의 지점이 있는데 공원 입구에 있는 지점은 공원을 갈 때마다 종종 들러기도 했다.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게는 던트북스의 북백이 런던 기념품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나 역시 기념품으로 북백을 구매했다. 

던트 북백은 런던 기념품으로 인기가 많다


런던 소호를 지나면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갑자기 한산해지는데 리젠트 공원 쪽으로 걷다 보면 던트북스를 만날 수 있다. 던트북스는 베이커 스트리트 거리에서 한 블록 안으로 들어오면 메릴본 지역인데 이 거리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이다. 여름과 달리 가을이 되니 억새풀도 피어있어 운치를 더하던 메릴본이었다. 여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은행나무 가로수가 눈에 띄었는데 우리나라처럼 노란 단풍으로 물이 들지는 않는 것 같았다. 

가을이 찾아온 멜린본


서점 입구에서 깜짝 놀랐다. 여름에는 없었던 책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는데 다름 아닌 '파칭코'였다. 이민진 작가의 파칭코 요약본 버전인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민진 작가처럼 비슷한 경험을 한  엘리자 수아 뒤사팽(Elisa Shua Dusapin)의 두 번째 소설, '파친코 팔러(Pachinko Parlour)'였다. 그녀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프랑스 작가로 그녀 역시 한국 전쟁 당시 일본에서 거주하며 파칭코를 운영하는 조부모가 있는 도쿄를 방문했을 때 벌어진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었다. 작가 자신이 겪은 이민, 삶의 정체성 등이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책이었다.  


한국인 이민자의 다소 마이너 한 감성일 수도 있는 그녀의 소설이 서점의 메인을 장식하고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내가 주목한 건 던트북스에서 기획한 출판물이란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서점인 교보문고의 경우 독립적인 출판물을 내는 곳이 아니기에 서점 자체에서 책을 기획하고 출판한다는 게 나로서는 생소했다.


던트북스의 주인인 제임스 던트는 가디언지가 '영국 출판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5' 중 한 명으로 뽑은 인물이었다. 어떤 인터뷰에서 그는 “책과 서점의 세계는 아주 흥미로워요. 좋은 서점은 지역사회의 중심점이 될 때가 많아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의 서점 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던트북스가 왜 이 책을 출판했는지 알 것 같았다. 던트북스는 단순히 책만 파는 서점이 아니었다.  

던트북스의 출판물인 파칭코가 메인 출판물로 자리를 잡았다. 


이 서점이 인기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3개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구조가 매우 독특했다. 안으로 들어서면 '와- 예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천장에는 부드러운 자연채광으로 감싸고 1층의 개방함은 2층의 복도로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공간은 또 다른 세계로 초대되는 느낌이었다.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주는 아늑함이 더없이 좋았다.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여행전문 서점이니만큼 전 세계 각국의 다양한 여행지를 만날 수 있는데 런던을 소개한 다양한 책자에 눈이 갔다. 이번은 어학연수에 집중하기 위해 여행은 접어둔 상태였기에 정말 가고 싶고, 하고 싶었던 것은 거의 하지 못했다. 런던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온 상태라 런던에 대한 정보가  없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런던을 소개하는 책에 자꾸만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런던에서 런던 책 구경
꼭 책을 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 번쯤은 방문해 보면 좋을 던트 북스



+ 다음 이야기 :  지금 런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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