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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Feb 16. 2024

나는 지금 런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30 런던 어학연수가 끝났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30  런던 어학연수가 끝났다. 


+ 어학연수 연장 괜히 했나? 

런던에 온 지 7주 만에 어퍼인터미디어트로 올라갔고 막상 어퍼인터미디어트에서 공부를 해보니 내가 배우고 싶은 영어는 모두 어퍼인터미디어트 수업에 있었다. 하지만 어학연수까지 남은 기간은 2주가 전부였기에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에서 어학연수가 끝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고민 끝에 어학연수를 연장해 10월 말까지 런던에 머물기로 결정을 했다. 내가 런던에 좀더 머물기를 결정했다고 하니 선생님들도 반 친구들도 모두 박수를 치며 좋아해 준다. 마리암 선생님은 런던 연수 후 다시 몰타로 돌아간다는 내게 '몰타보다 런던'이라며 런던 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하지만, 내 욕심과 달리 내 머리와 체력은 이미 한계상황이었고 이미 찾아온 극심한 슬럼프는 더 심해졌다. 런던에 오면서 빈약한 어휘로 인해 줄곧 어휘 외우는데 전력질주를 하다 보니 말하기와 리스닝에 투자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어퍼인터미디어트에서 수업을 하려니 모든 것이 그야말로 총제적 난국인 상황이었다.  머리가 포화상태라 아무리 공부를 해도 머리에 하나도 입력이 되지 않았다. 


★ 어퍼인터미디어트 수업과 극심한 슬럼프 : https://brunch.co.kr/@haekyoung/74


시월이 되면서 런던은 서울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초겨울로 진입했다. 여름 내내 화창하게 맑았던 날씨는 비가 오락가락하는 전형적인 영국 날씨로 변했다.  아침저녁으론 10도 아래로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한낮 기온도 15도 정도였다. 컨디션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평소에도 환절기에는 일교차로 인해 편도선이 계속 말썽인데 전형적인 영국날씨는 나에게 최악이었다. 


몰타에서 가져온 대부분 옷을 전부 껴입고도 추위가 가시질 않았다. 시월 초중순에 몰타로 돌아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겨울옷은 모두 몰타에 두고 왔다. 이 상태로는 시월말까지 견딜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집에 보일러까지 며칠간 고장이 나서 난방도, 온수도 안 되니 가을 초반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는 감당이 안 됐다. 소음인인 나로서는 본격적인 난방이 시작되기 전 초겨울에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자니 컨디션이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몰타행 비행기표를 다시 발권하면서 수하물 캐리어를 23kg 하나만 선택했기에 짐을 늘리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어 겨울 옷을 사야 했다. 


계속 편도선이 붓고 미열에다가 간간히 기침까지 모든 증상들이 번갈아 가며 반복했다. 컨디션이 나아질 기미가 없어 간이 키트로 검사를 해보니 코로나는 아니었다. 몰타에서 코로나에 한 번 걸려 고생을 한 뒤로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는데 어학연수를 연장하자마자 몸 상태는 최악이었고 가지고 온 비상약을 다 먹고도 모자라서 런던에서도 갖은 약을 사 먹어야 했다..

런던에서 먹어댔던 약들 (사진을 못 찍은 약이 더 많다)


설상가상으로 10월 초 어학원도 유스턴 역에서 엔젤 역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회사 등이 이사를 할 경우 주말 동안에 모두 깔끔하게 정리를 하는 것이 당연한데 목요일부터 어학원은 이사를 위해 온라인 수업에 들어갔다. 이사를 끝내고도 대략 2주 남짓 어학원이 너무 어수선해서 학업에 집중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매주 만나는 4명의 완벽한 선생님들과 공부를 더하고 싶어 어학연수를 연장했는데 하필이면 어학원 이사 시기와 맞물렸다. 이사 전부터 어학원은 어수선했고 선생님들도 이때다 싶어 휴가를 내니 두 명을 제외하고 계속 다른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어학원 선생님이 전체적으로 다 바뀔 예정이었다. 9월 중순에 런던 일정을 2주 연장한 이유는 10월 초에 선생님이 바뀌어도 4주 정도 같이 수업할 수 있는 것도 큰 이유였다. EC london의 경우 어학원이 일 년에 세 차례 선생님들이 다 바뀌는 시스템으로 원래는 10월 첫째 주에 바뀔 예정었다. 그랬는데 어학원 이사와 맞물리면서 선생님들 개편은 2주 뒤로 미뤄졌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4주 동안 같은 선생님이 아니라 2주마다 다른 선생님들로 바뀌어서 수업을 해야한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너무 좋은 선생님과 수업이 4주 연속이 보장이 안 된다니 내게는 청천벽력이었다. 몸은 안 좋지, 선생님은 계속 바뀌지, 갑자기 영어는 너무 어렵지.. 손뼉 칠 때 떠났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2주 연장한 걸 진짜 후회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새로 이사를 한 엔젤 역은 집에서 훨씬 가까웠도 환승 없이 지하철 5 정거장이면 되는 거리라 집에서 15분 정도면 충분했다. 어학원이 이사를 가는 줄 모르고 기존 어학원 주변으로 숙소를 구한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도, 기차와 지하철을 번갈아 이용했던 사람들은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해 질 녘이면 아름다웠던 EC london
새로운 건물로 이사한 EC london
어퍼에서도 수업이 끝나고도 혼자 남아서 여전히 공부모드 


어학원도 이사를 했고 선생님도 전체가 다 바뀌니 2주 정도는 너무 어수선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컨디션이 안 좋으니 어수선함이 더 크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어학연수를 2주 연장하면서 기대했던 순간이 실망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괜히 어학연수를 연장했나 싶어 후회가 밀려왔다. 이렇게 어영부영 2주를 보내기엔 시간도 돈도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걸 탓하기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EC london 선생님들이 다들 잘 가르치는 분들이긴 했지만 그중 정말 잘 가르친다 생각했던 선생님은 알렉시스 선생님과 마리암 선생님이었다.  런던에서는 월요일 오전에 수업을 하는 A반에서 계속 공부를 했는데 새로 바뀌는 선생님과는 한 번도 공부를 해보지 않은 분들이었다. 다행히도 그동안 인텐시브 수업을 담당했던 알렉시스 선생님이 마침 어퍼 B반에 배정됐기에 남은 2주간은 B반으로 옮겼다. 


나의 경우는 공부할 때 한 챕터의 내용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모두 다 다루기보다 필요 없는 부분은 생략하고 중요한 핵심 위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하고 전체가 한눈에 파악이 되는 걸 선호한다. 어퍼와 인텐시브 수업을 함께 했던 알렉시스 선생님과 마리암 선생님은 공부하는 방법에선 나와 유사한 스타일이었기에 공부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 두 분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마리암 선생님은 어퍼보다 한 단계 높은 프리어드밴스를 맡게 됐고 인텐시브 수업도 변경이 돼서 그녀의 수업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알렉시스 선생님은 EC london에서 첫 주부터 마지막주까지 수업을 함께했기에 내게는 정말 특별한 선생님이다. 이분은 필요 없는 건 생략하고 정말 필요한 부분만 진도를 나갔고 매주 금요일 두 번째 시간에는 무조건 테스트를 통해 복습하는 시간을 따로 가졌다. 다른 사람들은 진도를 다 못 나가서 건너뛰기 일수였는데 복습까지 하다니. 어학연수 전체 기간을 통틀어 이렇게 효율적으로 수업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공부라면, 특히 노트 정리, 요점 정리는 자의 반 타의 반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는 내가 느낄 때 그의 교수법은 정말 놀라웠다. 그동안은 인텐시브 수업만 들었는데 마지막 남은 2주 수업을 함께하니 공부는 힘든데 진심 알렉시스와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컸다.

 알렉시스 선생님의 일목요연한 정리, 매주 금요일은 그 주에 배운 어휘, 문법 테스트로 복습


문제는 내 마음과 달리 머리가 따라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영국 날씨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니 몸 컨디션은 회복이 됐는데 체력이 떨어지니 집중력은 급속도로 저하됐고 그동안 쌓인 피로감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극심한 영어 슬럼프는 어학원이 끝나는 날까지도 같은 상태였다. 


급하게 머릿속으로 집어넣은 단기 지식들은 다 뒤죽박죽이 됐고 아는 것도 모르겠고, 모르는 건 더 모르겠고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뇌가 피곤하다는 걸 살면서 처음 느껴본 것 같다.  그러니 아무리 책상에 앉아 있어도 머리에 들어가지가 않았다.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내가 공부가 하기 싫어지는 상황에 나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어학연수는 거의 끝나가는데 내가 원했던 만큼의 실력이 아니란 생각이 드니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왜?'를 묻지 않는 한국적 교육에다가 주입식 교욱방식에 최적화된 나로서는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냐'를 끊임없이 묻는 그의 수업방식은 매일이 챌린지였고 굳어져가고 있는 나의 뇌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리는 과정이었다. 이젠 따라주지 않는 체력과 머리의 한계는 매일 좌절감의 연속이었지만 그마저도 행복했다. 

영어 선생님이자 싱어송라이트였던 알렉시스 (음악은 내 스타일이 아닌 거로)


+ 마지막 에세이, 나는 지금 런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런던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니 저절로 마음속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계속 울렁거렸다. 마음은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조울증 환자처럼 마음이 널을 뛰고 있었다. 가을로 접어든 런던의 날씨도 센티해지는데 한몫 거들고 있었다. 


매일 주어지는 24시간이 런던을 떠날 때가 되니 어찌나 빨리 줄어들던지 살면서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나도 내가 너무 당황스러웠다. 런던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건 얕은 일반상식 정도였고 런던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었다. 그랬던 런던이었는데 무엇이 나를 이토록 런던에 미련을 갖게 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도저히 진정되지 않아 뭐라도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 마지막으로 쓸 에세이 주제로 정했고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을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고치고, 며칠이 걸렸다. 글을 쓰고 있으니 비로소 감정이 정리되며 마음이 차분해졌다. 알렉시스는 내 에세이를 수정해 주면서 굉장히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극찬을 했다. 평소에는 영어식 사고로 문장을 쓰려고 노력했는데 마지막 에세이라 내 스타일 대로 글을 적고 번역을 했는데 어쩌면 그래서 신선하게 와닿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마지막이니 후한 립서비스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에세이  I'm breaking up with London now. 


+ EC london의 마지막 한 주 

이제 EC london에서 생활도 일주일만 남았다. 런던과 몰타의 어학연수는 모든 면에서 다 달랐다. 그중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수업시간을 제외하면 친구들과의 액티비티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몰타의 경우 어학연수를 마치고 나면 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고 각자의 집에 초대하는 건 다반사였는데 런던은 집이 워낙 협소하고 대부분 방을 셰어 해서 살고 있기에 각자의 집에 초대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마지막 주 어느 날 가장 친한 친구인 세실리아와 프란체스코에게는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고 좀 더 특별한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 점심 도시락으로 김밥을 준비했다. 김밥을 여는 순간 휴게실에 모인 사람들이 너나없이 맛보고 싶다고 다들 덤벼들었고 김밥은 인기폭발이었다. 결국 친구와 나는 김밥은 맛만 보고 끝났다. 일본 친구들은 나보고 몰타 가지 말고 런던에서 김밥 장사하라고까지 했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자주 김밥도 싸 오고 잡채도 맛 보여 줄 걸 뒤늦게 후회가 됐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김밥 도시락
인기만점이었던 한국 과자. 초코파이 사진은 어디로 갔나?


몰타에서 24주 수업 후 런던으로 올 예정이었지만 여자저차해서 생각했던 시간보다 빨리 런던으로 오게 되면서 같은 EC라서 환불받지 않고 몰타에서 남은 수업을 런던으로 넘겼다.  뒤늦게 몰타 측에서 계산을 잘못해 1주 차 수업이 남은 상태였기에 환불을 받는 대신 몰타에서 수업을 1주 더 받기로 했었다. EC몰타에서 수업에 진행하기 앞서 화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내가 없는 동안 EC 몰타도 휴게실 등 전체 리모델링을 끝내고 산뜻하게 바뀌었다. 몰타에 있을 때 액티비티를 담당했던 알렝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기에 알렝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내가 접속하자마자 '어서 와, 해경, 런던에서 잘 내고 있어, 이젠 몰타로 와야지'라며 특유의 자상함으로 반긴다. 몰타는 그동안 새카맣게 잊고 있었는데 막상 알렝의 얼굴을 보니 갑자기 그리움이 밀려왔다. 기다려 몰타, 곧 내가 간다. 

EC 몰타 어학원, 화상으로 오리엔테이션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어학원 수업 마지막 날이 됐다. EC malta는 수업시간에 수료증을 나눠주는데 EC london은 학생 휴게실에서 정오에 그 주에 수업이 끝나는 학생들이 한꺼번에 모이면 수료증을 나눠줬다. 수료증을 받으니 그제야 어학원을 마친다는 실감이 났다. 친구들이 모두 내려와서 축하를 해줬다. 다른 선생님은 수료증 나눠줄 때 거의 참석을 안 하는데 학생들을 유난히 잘 챙기는 다니엘은 매번 빠지지 않고 함께 자리를 했고 기념사진을 같이 찍었다. 


'유종의 미'는 물 건너갔고 돌이켜보니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영어는 제자리인 것 같아 후회와 아쉬움이 너무 컸다. 왜 그런지 내 마음을 알 수 없어 계속 생각을 부여잡고 있었지만 마음은 안개밭을 헤매는 중이었다. 이 여정이 모두 끝나는 날 알 수도 있겠다 싶어 생각은 그만하기로 했다. 어쨌든 수료증을 받고 보니 당분간은 영어와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너무 홀가분했다.  


나중에 애들이 찍어준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매번 공부가 너무 힘들고 나이 들어서 공부는 하는 게 아니라고 우는 소리를 달고 살았는데 수료증 받을 때 이렇게 행복한 표정이라니- 내심, 한동안은 영어와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정말 홀가분했나 보다. 내내 죽상을 하고 근심 가득한 얼굴이었는데 진심 이렇게 환하게 웃고 있을 줄이야. 

진짜 홀가분했나 보다 이렇게 환하게 웃고 있다니-
친한 친구들과 인터미디어 선생님이었던 숀 그리고 마리암 선생님과 함께


금요일은 정규수업이 오후에 있기에 수료증을 받은 후 진짜 마지막 수업을 들었다. 일주일 내내 마음이 울렁거려 힘들었는데 다행히 수료증 받을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괜찮았다. 막상 교실에 들어와 알렉시스와 친구들 얼굴을 보니 다시 기분이 울렁거렸다. 친구들이 축하한다고 한 마디씩 거드는데 갑자기 왈칵 눈물이 차올라서 참느라 힘들었다. 그렇게 모든 수업은 끝이 났다. 


어학연수 기간을 연장한 뒤 선생님가 전부 바뀌었기에 지금 친구들은 실질적으로는 2주 동안만 수업을 같이했다. 수업시간이 조정되면서 새로 만들어진 반이라 나도 그들도 함께한 수업은 처음이었다. 인터미디어트에서 같이 공부를 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다 자기 나라로 돌아갔기에 2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친구를 사귀는 데 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나와 터키, 며칠만 있었던 독일친구를 제외하면 전부 중남미 출신 사람들이라 귀가 따가울 정도로 그들의 에너지가 엄청났다. 


특히 이 친구들 나이대가 전부 다른데도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한 번은 독일친구가 DMZ를 얘기했고 한국에도 있다고 하자 모든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그래서 한반도의 분단상황, DMZ zone 등에 대한 설명에 애들이 관심이 폭발했다. 한번 빗장이 풀리자 '한국은 왜 아직도 분단국가냐',  'BTS 팬은 왜 보라색을 쓰느냐', '한국 화장품 추천 해달라' 등등 한국에 대한 폭넓은 관심은 식을 줄 몰랐다. 


그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조용필 님 사진을 보여주며 나이를 맞혀보라고 했더니 많아도 40대 정도로 예상했고 실제 1950년 생인 조용필 님 나이에 다들 뒤집어졌다. 한국인은 너도 그렇고 왜 다들 엄청나게 동안이냐며 짜증을 내기도 해 안 바탕 웃고 난리가  났었다. 


어학연수에서 선생님도 중요하고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1주 차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2주 차가 되니 이 조합이 진짜 퍼펙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공부는 또 어찌나 열심인지 몰타와 런던 통틀어서 제일 학구적인 애들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탐구하고 그날 배운 어휘와 문법을 써가며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선생님들도 학구적인 수업 분위기를 굉장히 칭찬했고 소위말하는 가르칠 맛이 난다며 얘기를 많이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직업이 다들 변호사, 의사, 선생님 공부하면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어쩐지. 그렇다고 공부만 하는 샌님들은 아니어서 선생님도, 친구들도 어찌나 유쾌한지 매시간 엔도르핀이 팍팍이었다. 


이 환상의 팀도 다음 주면 누군가는 떠나고 또 누군가가 새로 들어오면 이런 분위기는 아닐 것이라며 위안을 삼았다.  나와 함께 더 공부하고 싶다고, 나의 마지막 수업이 너무 아쉽다고 말해주는 멋진 친구들이 있어 나 역시 너무 행복했다.  좋은 선생님과 멋진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내가 더 행운이었다. 

2주간 수업을 함께 했던 환상적인 친구들 
다들 30대 초중반인데 나도 그렇겠거니 생각해 줘서 땡큐!! 너희들은 최고였어!!


+ 영원한 이별이 아니니까 울지 않을 거야. 

처음에 런던에 갔을 때 좀 힘들었다.  매일 선생님이 바뀌는 시스템도 정신이 없는데 정규수업이 아닌 날은 예습을 할 수 없으니 수업을 따라가기가 너무 벅찼다. 게다가 분명 인터미디어트인데 다들 말은 어퍼 이상으로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사람들 옆에 앉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시실리아는 처음에는 멀리 떨어져 앉았는데 언젠가부터 거리가 좁혀지더니 아예 옆자리에 앉게 됐다. 


런던 어학연수에서 대학생의 경우 유학이 목적이라 장기 연수가 흔한데 30+반의 경우 몰타와 달리 런던은 장기로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체로 2주, 길어도 4주를 넘기지 않았다. 좀 친할만하면 헤어지고 또 좀 친할만하면 헤어지고의 반복이었다. 그랬는데 시실리아와 그녀의 남편 프란체스코는 24주로 장기연수를 온 특이한(?) 케이스였다. 멕시코 출신으로 의사와 간호사 부부인 둘과는 우연하게 한국음식 '짬뽕' 얘기를 하다가 친해졌고 이후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함께 외식을 다니며 절친이 됐다. 


요구르트를 좋아하는 그녀는 언제나 내 요구르트를 챙겨 왔다. 


혹여라도 학원을 결석하는 날이면 시실리아는 나보다 더 걱정을 했다. 내가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의사인 프란체스코는 어떤 약을 먹어야 하는지 일일이 살폈고 영어가 힘에 부쳐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뇌가 쉬어야 한다'며 강제휴식을 권하며 살뜰히 챙겼다.  혼자 산 세월도 길고 성격상 혼자서도 잘 지내는 편이지만 단언컨대 시실리아가 없었다면 런던이 떠나기 아쉬울 만큼 좋아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그만큼 런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던 건 런던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심리적 안정감이 크게 좌우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의 마지막은 특별할 건 없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늘 그랬던 것처럼 함께 저녁을 먹고 2차는 어김없이 펍에서 맥주를 함께 마셨다. 그리고 이제 진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멀쩡하게 웃고 떠들었는데 막상 헤어지려니  하루종일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이런 내게 시실리아가 "우리의 엔딩은 지금이 아니야. 그러니 나는 오늘 울지 않을 거고 안녕이라는 말도 안 할 거야." 물기 가득 머금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녀의 어조가 어찌나 단호한지 눈물에 콧물까지 나오려던 것이 쑥 들어갔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꼭 만나자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뜨거운 포옹과 함께 우리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고 돌아섰다. 


혹 누가 알겠는가.  2026 중남미 월드컵에 우리나라가 진출하면 내가 멕시코에서 그들과 함께 축구장에 앉아 우리나라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을지. 

다시 만날 약속과 함께 뜨거운 포옹으로 안녕



런던에서 살아본다는 것은 

수업은 금요일에 끝났지만 몰타로 돌아가는 비행기표가 수요일이니 런던에서 4일이 남았다. 런던을 언제 다시 볼 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못했던 것도 하고 좋았던 곳을 다시 가보기로 했다.  부지런히 미술관을 다니고 수없이 걸어 다녀 익숙해진 런던 시내를 다시 또 걸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런던 중심 거리에 화려하게 불이 켜지는 장식들은 이미 설치가 되어 있지만 앞으로 열흘 뒤에 불이 켜질 예정이니 상상으로 마음속에서 불을 켰다.  

여름과 겨울의 런던시내


런던에서의 삶은 여행자도 아니고 학생도 아닌 중간 그 어디였던 것 같다. 1도 기대가 없던 런던에서 살아보니 런던은 나와 정말 잘 맞는 도시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래된 지하철이 풍기는 퀴퀴한 냄새도 좋았고 허구한 날 파업을 하던 것도 느긋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살인적인 물가라 강제적으로 초미니멀리스트로 살 수밖에 없는 런던이었지만 내 방 작은 창으로 보이는 초록 가득한 정원이 있어 그걸로도 충분히 괜찮았다. 때때로 큰 나무 가지를 타고 오르내리며 호기심 가득한 눈망을 로 내 방을 엿보는 청설모도 있어 그들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동네에서도 공원에서도 길고양이보다 더 흔히 볼 수 있는 청설모는 훨씬 정겨웠다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독서를 하고, 음악을 들으며 사색을 하는 등 공원에서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이 늘어날수록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현저히 줄어들곤 했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런던에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 동네 지하철  
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던 청설모가 내 방을 엿보기도 
길고양이 대신 동네 어디에서도 쉽게 볼수 있었던 청솔모


내가 제일 좋아했던 햄프스태드, 손흥민 선수가 사는 곳이다.

런던은 어느새 가을을 지나 겨울로 향해가고 있었다. 비로소 여행자 모드가 됐지만 가벼운 마음은 아니었다. 런던에 오고 나서 일요일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8시간 이상을 영어공부에만 매달렸다. 약 두 달여간 그렇게 생활을 하고 나니 몸도 고되고 무엇보다 머리가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러니 '이 나이에 수천 만원을 쓰면서 늘지도 않는 영어를 하느라 괜한 짓을 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럼에도 이렇게 고군분투했던 런던에서의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적지를 몰라도 괜찮다. 우리는 이루고 나서야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했는지 알게 되고 그것을 이루는 동안에는 왜 내가 열심히 하는 지를 모를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삶의 결과가 모든 것을 답해줄 것이다. 달리는 동안 종착지를 몰라 불안해도 '나를 찾는 과정' 그것이 곧 결과일 수도 있다. 


영어는 단기에 정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니 평생 함께 할 친구로 여기고 잘 지내보기로 했다. 마음이 좀 홀가분해졌다. 다만, 영어와 여행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줄 몰랐더라면 좀 더 효율적으로 살았을 텐데 이도저도 아닌 것 같아서 많이 아쉬웠다. 늘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건 만고에 진리다.


마지막 해가 넘어가는 순간까지 떠나기 아쉬운 런던을 천천히 걸으며 모든 순간을 눈에, 마음에 담았다. 

런던, 언제가 다시 만나. 

런던에서 마지막 산책


+ 다음 이야기 : 어학연수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50대의 어학연수는 핑계고4>가 새로운 브런치 북 연재로 찾아옵니다. 발행은 주 1회, 매주 목요일 발행 예정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alta-londo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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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몰타'는 브런치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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