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재보궐선거가 있는 날인데요. 보궐선거라서 그런지 해당지역의 투표율도 너무 저조하고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재보궐선거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몰타에 있었던 작년 3월에는 몰타에서 아주 특별한 선거가 있었는데요. 바로 5년마다 한 번씩 실시되는 몰타 총리를 뽑는 선거였답니다. 우리나라와는 정말 다른 몰타의 선거문화가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 몰타 선거 승리 자축 세리모리를 이렇게 한다고?
몰타는 대통령과 수상이 함께 공존하는 나라로 두 개의 체제가 공존하는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대외적인 행사에는 대통령이(국왕이 있는 나라에서의 국왕 역할을 수행) 실제 정치는 수상이, 우리나라로 치면 대통령의 역할을 수행하는 나라다.
처음에는 선거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유튜브 광고에 선거 관련 홍보 영상이 한동안 나오면서 선거가 있는 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이고 이 나라에 잠깐 머물다 갈 나로서는 누구를 뽑는 선거인지, 투표가 언제인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거리에서 선거벽보를 본 적도 없고 유세차량은 더더군다나 본 적이 없었기에 선거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랬는데 일요일 아침, 밖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밖을 내다보니 차량의 경적소리가 쉴 새 없이 울리고 차에는 몰타 국기를 달고 행진을 하며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법석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건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차량에 국기를 달고 환호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무슨 축제가를 하는 건가?'
몰타에서 와서 이렇게 많은 차량 행렬은 처음이었다. 한동안 이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정오가 가까워오니 소음은 점점 심해졌고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지인에게 물어보니 선거에 이긴 지지자들이 선거 축하세리모니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뭐라고, 이게 선거 승리 축하 퍼포먼스라고?"
와, 이건 또 뭐지 싶었다. 선거가 아니라 유로파 혹은 월드컵 우승이라고 한 줄 알았다. 아니, 월드컵 우승을 했다고 이렇게나 격렬하게 축하 퍼포먼스를 벌일까 싶을 정도로 열기는 어마어마했다. 도저히 궁금해서 참을 수 없어 구경을 하러 나갔다.
선거에 이긴 걸 축하는 사람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선거 유세 현장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그 흔한 선거 포스터도 보지 못했고 조용한 나날이었건만, 이런 열기를 지닌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다 몰려나와 선거에 이긴 걸 온몸으로 축하하고 있었다.
어쩌면 선거에 승리한 건 핑계고 그냥 하루 이렇게 환호하고 놀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까 잠시 생각을 해봤을 정도로 승리를 자축하는 세리모니는 어마어마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쪽은 안 그래도 속이 쓰릴 텐데, 이 꼴을 하루 종일 보고 있으려면 분통이 터지겠다 싶었다.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승리에 이긴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사람들
그런데 더 특이한 것은 누가 봐도 대부분 노동자나 블루칼라 직종의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트럭, 중장비 등 을 직접 개조해 마치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듯 온갖 응원문구로 치장한 차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침에 본 차량을 정오쯤에 한번 그리고 저녁 즈음에 다시 한번 보았으니 아마도 하루 종일 몰타 곳곳을 돌아 다니며 자신들만의 승리를 만끽하는 듯했다. 선거에 이겨도 조용한 우리와 달리 선거에 진심이고 이렇게까지 정치에 뜨거운 나라가 몰타였나 싶어 몰타라는 나라가 새삼스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자정이 될 때까지 시끌벅적함은 멈출 줄 몰랐고 하루종일 소음에 시달려야 했는데 자정이 되자 갑자기 소음이 뚝- 멈췄고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마치 신데렐라가 12시면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여하튼 정말 신기했다.
월요일 수업 시간에 다들 주말 동안 거리가 너무 시끄러웠다는 이야기를 하게 됐고 자정이 지나 거짓말처럼 조용한 것이 신기했다고 하니 선생님 왈, 몰타는 자정 넘어서 고성방가는 법적으로 금지라 아무리 선거 자축이라고 해도 자정까지만 즐겼을 것이라고 했다.
차에 랩핑을 하기도 하고 자축 현수막을 붙이는 차량까지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선거에 이긴 것을 만끽하고 있다.
+ 5년마다 한 번씩 실시되는 몰타의 총리선거
갑자기 몰타 선거가, 몰타 정치 상황이 너무 궁금했다.
몰타에 온 다음 날 우연히 발레타를 가게 됐는데 그때 법원 앞에서 어떤 여자의 사진을 걸고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Daphne Caruana Galizia)라는 기자로 전 정부인 무스카트(Muscat) 행정부 고위관계자의 부패를 밝히고 있던 중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었다. 한참 사건을 파헤치고 있던 중에 당한 의문의 교통사고였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고를 위장한 테러고 테러는 정부 고위인사가 사주를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요즘 세상에 기자가 테러를 당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기에 몰타는 물론이고 EU 각 국가에서도 주목했을 정도로 꽤 큰 사건이었단다.
어학원에서도 다소 진보적인 성향의 선생님은 이 사건에 대해 분노하며 정치적인 테러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건 이 사건을 계기로 총리부터 내각이 사퇴를 했는데도 불구하고야당인 국민당이 집권을 한 게 아니라 노동당이 재집권을 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번 몰타 선거가 궁금할 수밖에.
2017년 자동차 테러로 사망한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Daphne Caruana Galizia)를 추모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각종 뉴스에서는 역대 최저의 투표율이지만 그 어떤 선거보다 큰 표차로 이겼다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쏟아내고 있었다. 투표율 85.6%, 통상 우리나라의 경우 대선이 약 75% 정도고 총선은 60% 정도인걸 감안하면 투표율 85.6%면 투표율이 엄청나구나 싶었다. 그런데 역대 최저의 투표율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몰타 사람들이 정치에 이렇게 고관여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직전 선거 었던 2017년에는 92%의 투표율이었는데 이번 선거는 1955년 첫 선거가 실신된 이후 가장 낮은 투표율이고 처음으로 90% 아래로 떨어졌다고 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에서 39,474표의 차이로 승리는 지난 총선보다 더 많은 표차의 승리라며 역사적으로 낮은 투표율에도 큰 표차로 승리를 했다며 언론에서는 호들갑이었다.
몰타에서 노동당(PN)과 국민당(PL) 크게는 2개의 정당과 소수 정당들이 존재한다.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은 55.11%, 국민당은 41.74%, 소규모 정당 3.2%를 득표했고 노동당이 39,474 표차로 승리했다. 몰타 13개 지역구 중 총 8개의 지역구에서 승리했다. 8,9,10,11,12 지역구에만 국민당이 승리를 했고 나머지 지역구는 모두 노동당이 승리를 했다.
이미지 출처 = Malta Times
이번에 총리가 된 로버트 아벨라(Robert Abela)는 44세니 매우 젊은 총리다. 공약으로 법인세 25% 인하, 무료보육확대, 무상 의료, 버스요금 무료 등 철저히 서민 중심의 공약을 내걸었다. 전 정부의 악재를 그대로 이어받았음에도 이번 선거 승리로 인해 노동당은 3 연임이니 노동당은 15년째 집권을 이어가게 됐다. 왜 그렇게 거리에 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를 쏟아져 나왔는지 이해할만했다.
나중에 선거 관련 이런저런 뒷말이 있었는데 선거당일에 각 가정으로 '생활비' 수표를 보냈다는 보도가 나왔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노동당을 찍었을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지만 유야무야 됐다.
옆에 지도를 보면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나뉘는데 진한 붉은색은 몰타 남부로 전형적인 어촌과 농촌마을이고 푸른색은 소위말하는 몰타의 강남지역이라고 보면 된다. 내가 느낀 바로는 노동당은 다소 보수적인 성향이고 국민당은 다소 진보적인 성향이었고 지도에서 보다시피 지역에 따라 정치적인 성향도 다르고 작은 나라지만 몰타 섬 안에서도 지역감정이 있고 크게는 몰타섬과 고조섬 간의 지역감정도 있었다. 어쨌거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였다.
몰타 곳곳에는 노동당 깃발이 걸렸고 기념품 가게에는 득표차를 기념하는 모자도 팔고 있었다.
+ 영화제 레프카펫 행사 같았던 선거 승리 공식 세리모니
월요일, 모든 것은 평안해졌고 다시 또 일상이 시작됐다. 몰타 교통카드에 문제가 생겨 발레타에 있는 교통카드 센터를 찾았다. 교통 카드 문제를 해결하고 오후 어학원 수업까지 시간이 남아서 발레타를 좀 둘러보고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거리 안쪽으로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 경찰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들 몰타국기와 노동당 깃발을 듣고 선거 때 입었던 노동당 컬러인 붉은색 옷을 입고 나와 어제의 선거 승리 분위기를 그대로 재연하고 있었다. 이미 메인도로는 모두 막은 상태였고 대통령 집무실, 성요한 성당, 메일 도로 뒤쪽에 위치한 각 정부 기관들이 있는 곳을 지나 수상집무실로 이어지는 것은 모두 통제가 됐다. 그 길은 모두 지지자들로 순식간에 채워졌다.
발레타 주요 도로는 모두 통제가 됐고 지지자들로 가득 메웠다.
경찰 호위 차량이 먼저 들어오고 고위 차량들이 일부 지나간다.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각종 카메라들도 이런 모습을 담기 위해 분주했고 어떤 기자들은 인파들 속에서 리포팅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게 무슨 행사예요?"
"이번에 당선된 수상이 발레타에 있는 수상 집무실로 걸어서 들어가는 행사다. "
이번 행사는 우리나라로 치면 당선된 대통령이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 방문, 청와대 입성 등의 행사를 하는 것 =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수상 취임식을 따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선거 후 첫 월요일에 요식행위로 대통령 집무실에서 당선증을 받은 다음 어디에선가 서명을 하고(너무 시끄러워서 어디에서 서명을 하는 것인지는 듣지 못했다) 대통령 집무실까지 이 길을 따라 걸어서 간다고 했다.
몰타는 수도인 발레타에 대통령 집무실, 수상집무실 등 모든 국가 기관이 다 있는데 대통령 집무실에서 수상집무실까지 걸어서 약 10분 정도면 도착할 정도로 작은 곳이다.
아, 그래서 이동동선을 이렇게 전부 바리케이드로 막은 거였구나. 아직 학원 수업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구경을 좀 더 하기로 했다.
엄청난 인파가 새로 선출된 수상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렇게 공개된 자리에서 대통령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건 드문 일이다. 게다가 시민들, 관광객들이 모두 어울려 이렇게 가까이에서 수상을 볼 수 있다는 게 무척이나 낯설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걸어오기 시작한다. 아마 이번에 함께 내각을 책임질 사람들처럼 보였다. 아니면 이번 선거에 당선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물어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환희에 찬 표정으로 자신들이 지지한 정치인들이 나타나자 환호성이 터졌고 정치인들은 기꺼이 자신의 지지자들과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선거 기간이라면 모를까 당선된 직후부터 지지자들과 멀어지는 우리네 정치문화와는 너무나 달랐다. 마치 무슨 영화제 레드카펫 행사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곳에 모인 지지자들은 정치인이 아닌 연예인 대하듯 정치인을 대하는 모습도 무척이나 생경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지나갈 때면 환호성을 지르고 축하한다며 거침없이 표현을 하고 정치인도 이에 화답했다. 길을 걷다가 자신이 아는 지지자가 있으면 기꺼이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포옹을 하고 사진을 찍고... 정치인이 아니라 연예인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옆에 있는 아주머니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치 소녀 같았다. 그리고 정치인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오 마이 갓'을 외치며 거의 울기직전의 표정으로 목소리까지 떨리는 모습이었는데 이건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그렇게 정치인과 악수를 하고 나자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연신 '오 마이 갓'을 외치는 것이 아닌가.
이러니 투표율이 90% 이상인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젠 발을 돌려 수상 관저로 향하니 이곳에서도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수상이 최종적으로 이곳에서 연설이 있을 모양이었다.
몇 시간씩 서 있으려니 다리가 너무 아파서 앉아 있자니 한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온다. 그래서 노동당 지지자냐고 물었더니 노동당이 실시하는 정책에 대해서 찬사가 쏟아진다. 할아버지께 들은 바로는 몰타 사람들은 집 렌탈비용도, 전기료 등 각종 세금에도 일정 부분 보조를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 내세운 공약으로 인해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교통까지 제공받게 됐다면서 엄청 좋아했다.그야말로 노동당 부심이었다.
국민당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 정책을 펴는 대신 엄청난 부패가 있다는 걸 숨기고 있는 현 정부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좀 궁금하기는 했지만 너무 오버인지라 그냥 축하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어학연수의 특성상 현지인들과 정치를 주제로 얘기할 기회는 거의 없었고 있다고 해도 아마 그 정도까지는 영어가 안 되니 이야기를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어학연수 중에도 각 나라의 정치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기회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정치, 종교 등 예민한 문제는 되도록이면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5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몰타 선거는 우리와 정말 달랐고 월드컵 우승보다 더한 선거 승리 축제 열기를 직접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덧. 실제로 작년 10월부터 몰타 거주자 교통카드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버스요금 무상이 실시됐다. 몰타에서 6개월 이상 어학연수생에게 몰타 거주자 교통카드를 발급해 주는데 코로나 시국이라 어학연수 생들에게 매달 10유로씩 버스 카드 충전을 해주었다. 11월에 다시 몰타로 돌아왔을 때 교통카드 사용이 안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교통카드는 살아있었고 당연히 버스는 무상으로 타고 다녔다.
몰타 시민들에게는 '무상'이 당연히 좋겠지만 관광과 어학연수 외에 큰 기간산업이 없는 몰타에서 이 많은 재정을 어떻게 감당할까 궁금해졌다. 일부는 EU에서 재정지원을 받는다 치더라고 결국 나머지 돈은 관광이나 어학연수 생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사실. 몰타가 물가가 다른 유럽에 비해 싸다고 하지만 어학연수 비용이 생각했던 것보다 싸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