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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유나 Mar 01. 2018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대한민국 적폐 청산의 끝은 친일파 청산이어야 한다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집회를 한다고 해서 내가 태극기까지 미워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태극기가 무슨 죄라고. 근데 그래도 밥 먹을 때는 밥 좀 편하게 먹게 해주시면 좋겠다. 태극기 집회에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며 일장 연설을 하시는 사장님 덕분에 촛불 혁명에 촛불 들고 뛰쳐나갔던 나는 어제 점심도 얼마 먹지 못하고 다 남겼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쯤에서야 밖에 나가 샌드위치를 사 들고 들어와 우적우적 씹으며 일했다. 먹고살기 힘들다 진짜.


3.1절이 목요일인 덕분에, 연차수당 안 주려고 샌드위치 휴일마다 연차 팍팍 쓰게 해주는 회사 덕분에, 4일 연휴를 맞이한 오늘. 출근 안 하는 여유 있는 아침에 뒹굴 거리며 채널을 돌리는데 뉴스에서 올해 3.1절 기념식은 “서대문 형무소”에서 진행된다는 소식이 나왔다. 공중파에서 일제히 방송하는 국가 기념식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이 번이 처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다 본 것도 이 번이 처음이었다.


서대문 형무소. 대학생 때 사진 동아리 활동을 했던 나는 사진의 재미에 한참 빠져있을 무렵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모델 역할을 해 줄 친구 한 명과 함께 늦은 겨울에 서대문 형무소를 찾은 적이 있었다. 인적 없는 평일 흐린 겨울날 쌀쌀한 날씨와 스산했던 그 곳의 분위기. 그리고 역사의 현장이 주는 알 수 없는 중압감. 삐까뻔쩍한 세종문화회관이 아닌 그 곳에서의 첫 번째 3.1절 기념식은 몰랐으면 몰라도 알고서는 안 볼 수가 없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그 날 그 곳에서 찍은 사진들"



99주년 3.1절 기념식. 역사의 현장에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독립선언서"를 나눠 읽는다. 덕분에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들을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는 박근혜 정부의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분노했던 내 마음에 위로가 되기에 충분했다. GDP 11위의 국력을 가진 나라가 왜 대체 왜 돈을 받아가면서 이 문제를 합의한다는 것인가 누구 마음대로. 박근혜 전대통령 본인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도 아니면서 대체 누구 마음대로. 독일 총리가 나치수용소 앞에서 사죄를 하듯이 일본 총리가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징용 피해자들 앞에서 사죄하고 이미 돌아가신 분들의 무덤에 꽃을 바치러 와야 한다. 어디 감히 더러운 돈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가. 어디 감히.

"독일은 하는데 일본은 왜 못한다는거냐 꽃 살 돈만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을"



감옥 안에서도 대통령의 딸로 살고 계실 그분이 하셨다는 그 한 마디 “지금도 애국활동 하시는지요” 태극기를 들고 모이는 본인 지지자들의 활동을 어떻게 “애국활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본인이 국가도 아니면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곧 국민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100%가 본인을 지지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태극기 집회를 “애국활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었던 그녀는 국가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그리고 다 좋은데 태극기 말고 다른 거 들고 하시면 안 되는 건지 아니면 최소한 성조기라도 빼고 하시면 안 되는 건지도 묻고 싶다.

"태극기가 이렇게 아름다운겁니다 여러분"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가 흠잡을 데가 없어서 마음에 안 드셨는지 오늘 기념식에 예쁜 빨간색 목도리를 하고 앉아계시던 분은 행사가 끝나고 대통령이 인사하러 오는 것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나가버리셨고 국회는 과거 역대 각종 “겐세이” 발언들로 시끄럽다. 다른 날도 아니고 3.1절이다. 사회적 지위도 있으시고 연배도 있으신 양반들이 제발 오늘 하루만이라도 자제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 3.1절에 뉴스에서 “겐세이”라는 단어를 계속 들어야 하겠는가 국민들이. 세금 아까워 환장하겠네.



펜은 총보다 강하다. 99년 전 3.1 운동을 무력으로 탄압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총.칼은 이제 더 이상 이 땅에 없지만 “독립선언서”는 아직 남아 내년이면 100년의 역사를 갖게 된다. 그 역사를 계속 지켜나가는 것은 후손들의 몫이다. 오늘 내 마음에 너무나도 큰 울림을 주었던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독립선언서 낭독. 이번 글은 독립선언서의 일부를 인용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슬프다! 오래전부터의 억울을 떨쳐 펴려면, 눈 앞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협을 없애려면, 눌러 오그라들고 사그라져 잦아진 민족의 장대한 마음과 국가의 체모와 도리를 떨치고 뻗치려면,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아들 딸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자자손손에게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끌어대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천만의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어 굳게 결심하고 인류 공통의 옳은 성품과 이 시대를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라는 무기로써 도와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취하매 어느 강자를 꺾지 못하며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현 사태를 수습하여 아우르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 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그것은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개척함일 뿐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워 쫓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묵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에 희생된 불합리하고 부자연에 빠진 어그러진 상태를 바로잡아 고쳐서 자연스럽고 합리적이고 올바르고 떳떳한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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