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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Feb 12. 2024

너무 친절한 한국 공무원들

2년 전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추운 겨울날, 몇 년 만에 좋은 호텔에서 일박했다. 그 호텔을 예약한 건 순전히 그곳이 한국 영사관 바로 옆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린 최대한 영사관과 가까운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새벽 6시부터 영사관 건물 앞으로가 줄을 서야 했다. 9시 전에 나눠준다는 대기표를 받아 당일 업무를 보려면 그 방법 밖에 없었다. 그 시절엔 (코로나시절) 영사관 업무가 그렇게 돌아갔다.


그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처리는 여러 가지였다. 그중 아이들 한국여권 신청이 우선순위였는데, 아직 출생신고도 하지 못했던 둘째는 여권 만들기 전 출생신고를 먼저 해야 했다. 벌써 네 살이 되었지만 캐나다에선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나의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한 건 한국에서 살아보기로 상상해 보면서부터였다. 이중 국적이었던 아이들은 한국에 들어갈 때 한국 여권으로 입국해야 한다고 하는데, 우선 여권을 만들려면 출생신고먼저 되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가 난관이었다. 몇 년 사이 우리는 영사관이 있는 도시와는 많이 떨어진 외각에 작은 도시로 이사했고, 영사관에 가려면 이젠 반나절이 아닌 하루종일을 생각해야 하는 거리로 바뀌어 버렸다. 거기에 더해져, 코로나로 인해 한국 방문이 까다로워진 시점부터는 영사관 예약은 하늘에 별따기였다. 예약 한 번에 한 종류의 업무만 볼 수 있었고, 예약을 하지 못한 자들은 새벽 6시부터 건물 밖에 줄을 서야 겨우 표를 받아 입장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밴쿠버 영사관에 들어갔는데, 출생신고는 주가 다르기 때문에 태어난 도시인 토론토 영사관에 서류를 보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나는 캐나다에서 한국 출생신고 하는 미션을 포기했다. 더불어 한국 여권 만들기도 함께 포기했다. 한국여권을 포기하고 나니 이번엔 캐나다 여권이 문제였다. 1년 남짓 남은 둘째의 캐나다 여권으로 한국 입국은 문제없었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캐나다 영사관에서 다시 캐나다 여권을 만드는 것은 절차자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코로나 시절 캐나다에서 캐나다 여권을 만드는 일은 새벽 6시부터 한국 영사관 앞에서 줄 서는 것 못지않게 험난했다. 캐나다 여권을 만들기 위해 밤샘 줄도 마다하지 않는 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신청을 한다 해서 끝이 아니었다. 여러 커뮤니티에 본인의 여권 신청이 어떻게 되었는지 몇 주째 깜깜무소식이라고 하소연하는 글들이 많았다. 나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캐나다에서 둘째 여권 신청하는 예약을 취소했다. 새 여권을 받으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여권을 줘야 하는데, 여권이 몇 달 동안 나오지 않을 경우 비행기 티켓을 취소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여권 신청이 그렇게 고민될 일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다.  


한국에 와보니 정부 관련 업무 보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출생신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되었고 (비록 늦게 신청한 벌금은 냈지만), 한국 여권 신청은 이틀 만에 받아볼 수 있었다. 캐나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일 처리 속도도 충분히 놀라웠지만, 그 보다 더 놀라운 건 공무원들의 친절함이었다.


캐나다 공무원들의 특징은 굉장히 무뚝뚝하다는 데 있다. 각자 자신만의 속도가 있어서 사람들이 얼마나 줄을 길게 서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각자에게 정해진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줄이 빨리 줄어들지 않더라도 무리한 속도를 내지 않는다. 친절한 미소는 절대 상상할 수 없다.


안 그래도 느린 속도가 코로나로 인해 더없이 느려져서 답답함의 절정을 맞이할 무렵 한국에 왔다. 말로만 듣던 모든 것이 빠른 한국을 처음으로 마주한 곳이 관공서에서였다. 사실 처음에 ‘오 왜 이렇게 다들 친절하시지. 그렇게까지 빨리 해주지 않으셔도 되는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느린 곳에 살다가 빠른 곳에 오니 정신없는 이 속도감을 열심히 즐겼다. 다만 이제 조만간 느린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나의 인내심이 다시 늘어나려면 꽤 고생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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