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살 땐 병원에 잘 가지 않았다. 아프면 우선 열을 쟀다. 그다음 열이 높으면 해열제를 먹었다. 잘 쉬고, 잘 먹고 하다 보면 며칠 안에 몸 컨디션이 돌아오곤 했다. 그런 곳에서 20년 넘게 살다 와서 그런지 한국 와서도 병원에 잘 안 가게 됐다.
몇 달 전 눈다래끼가 살짝 올라온 적이 있다. 나는 캐나다에 살 때처럼 병원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여러 명이 "어머! 눈이 왜 그래요? 다래끼 났어요? 병원은 갔다 왔어요?"라고 물어왔다. 정말 살짝 올라온 건데 용케들 잘도 케치 했다. 질문의 마지막은 항상 병원방문 체크였다. 나는 매번, "아 네. 며칠 지내다 보면 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병원엔 안 갔어요."라고 답했다.
그러다 강력한 한 명을 만났다. 당연히 병원을 가야지 무슨 소리라며 나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괜히 방치했다가 나중에 더 아픈 시술을 받을 수도 있다며 겁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눈다래끼가 며칠 안에 사라졌다면 가볍게 무시하고 넘겼겠지만, 이번엔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병원을 가 볼까 말까 갈등해서 그런지, 다래끼가 사라지는 시간의 감각이 캐나다에서보다 길게 느껴졌다.
결국 집 근처 안과를 검색해 찾아갔다.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 당황스러웠다. 눈 관련 환자가 이렇게나 많다니..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다 보니 내 차례가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언제부터 다래끼가 생겼나요?" 나는 한 이주 정도 되어 간다고 했다. 선생님은 "아니! 2주 동안 병원 안 오고 뭐 하셨어요?"라며 나를 나무랐다.
다행히 다래끼는 크지 않았고, 처방해 준 안약을 넣으니 점점 작아졌다. 의사 선생님이 3일 지켜보고 안 없어지면 또 오라고 했는데, 완벽히 없어지지 않았지만 다시 가진 않았다. 언제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완벽히 사라지고 없다.
캐나다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인 의료 시스템에 20년 넘게 살다 보니 적당히 아픈 건 참는 게 일상이 되었다. 장점은 무료라는 점이고 단점은 무료라서 내가 원하는 치료를 바로바로 받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타이레롤, 애드빌, 아스프린, 나잇퀼, 데이퀼 (감기약) 등을 집에 쟁여놓고 아플 때마다 먹는다. 뼈가 부러지게 다쳤거나, 어디가 심하게 찢어져 꼬메야 하거나, 39도 이상 고열에 며칠째 시달리거나 하지 않는 이상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병원에 가도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보통 의사는 물 많이 마시고, 해열제 먹고 잘 쉬라고 한다. 그런 곳에 살다 보니 웬만하면 참는 게 익숙해졌다.
2년 전 겨울, 캐나다에서 스케이트를 타다 엄청난 엉덩방아와 함께 유난히 튀어나와 있던 내 꼬리뼈를 심하게 다친 적이 있다. 난 그때도 병원에 가지 않고 버텼다. 한국에 사는 언니는 당장 정형외과를 가라고 했다. 캐나다엔 바로 예약하고 찾아갈 정형외과 병원이 없다. 우선 집 근처 가정의 한테 가서 꼬리뼈를 다쳤다고 말한 뒤, 정형외과 전문의를 추천해 달라고 해야 한다. 그다음 추천서에 적힌 정형외과 전문의한테 전화예약을 한 후 방문해야 한다. 그래서 귀찮아서 약 먹고 몇 달 고생하며 버텼다. 결국 느리지만 점점 살만해졌다.
아마 내 꼬리뼈는 금이 갔거나 부러졌거나 했을 거라 짐작한다. 왜냐하면 난 몇 달 동안 자리에 앉지도 똑바로 누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이었다면 다친 그 당일에 병원에 갔을 거라 생각한다. 캐나다에 오래 살면서 고통을 참는 맷집만 는 거 같다. 다행히 내 꼬리뼈는 괜찮아졌다. 그래도 한국에 있는 동안 엑스레이라도 찍으러 가봐야 하나 고민되기도 한다. 순전히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아직 내가 모르는 치료가 필요한 경우 일수도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지내면서 사람은 적응에 동물이기도 하지만 또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고도 느꼈다. 왜냐하면 여기 와서도 우린 여전히 병원에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감기 기운이 있어도, 콧물이 나도, 눈다래끼가 나도 웬만하면 약국약을 먹으며 기다린다. 역시나 대부분은 며칠 (때론 1-2주) 지나면 자연스레 몸 컨디션이 돌아온다. 주변 사람들은 병원에는 다녀왔느냐고 재촉하지만, 나는 점차 괜찮아지고 있는 거 같아서 안 갔다고 대답할 때가 많다.
나는 학습된 습관으로 병원에 안 가려 하고, 한국에선 나와는 반대로 학습된 습관으로 조금이라도 아프면 병원부터 가보는 것이 당연한 듯했다. 나도 이곳에 좀 더 오래 살았다면 결국 병원에 즉각적으로 가보는 것이 당연한 사람으로 변했을 것 같다. 그러기엔 2년이란 시간이 부족했다. 비록 내가 병원에 자주 가진 않았지만, 캐나다에 돌아가면 언제든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는 게 아쉬워질 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