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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Feb 05. 2024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죽을 뻔했다

한국 와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첫 번째 순간을 고르자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일 것이다. 캐나다에서 20년 넘게 사는 동안 너무나 익숙해진 길 건너기 습관 때문에 한국에 오자마자 죽을 뻔한 것이다. 그곳에선 신호등이 없어도 횡단보도가 있다면 거의 99% 차가 서줬다. 때론 정지 표지판이 있기도 했고, 정지 표지판이 있다면 사람이 서있든 없든 100% 횡단보도 앞에서 차가 멈췄다.


만약 정지 표지판이 있는데, 사람이 서 있든 서있지 않던 정지를 제대로 3초간 하지 않았다면, 어디선가 경찰차가 삐뽀삐뽀 하며 나타나 약 $110 (11만 원 정도, Ontario Canada 기준)의 티켓을 준다. 그리고 벌점 3점은 보너스로 받게 된다. 그럼 안 그래도 비싼 자동차 보험료는 더 많이 오르게 된다.


비싼 티켓과 벌점 때문인지, 아니면 길 건너는 사람을 기다려줄 여유가 있는 건지, 정지 표지판이 있다면 무조건 서고 보는 운전자들이 많은 캐나다에서 온 나는 별생각 없이 한국에서 아주 당당하게 길을 건너버렸다 (정지 표지판이 있던 횡단보도였다). 당연히 차가 멈출 거라는 기대와 함께. 아니 애초에 그런 기대조차 하지 않은 매우 무의식 적인 행동이었다. 내가 죽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끼-익!" 차가 급작스레 멈췄다. 아직 한국에서 길 건너는 법을 파악을 하지 못하고 '설마 나를 치겠어. 당연히 서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길을 건너던 나와, '저 사람이 차에 치이고 싶지 않다면 내가 이 속도로 가는데 설마 길을 건너겠어'라고 생각하는 듯한 운전자와 맞닥뜨린 순간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운전자와 혼자만의 기싸움에서 그렇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날 나는 다행히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후로도 여러 번 비슷한 경험을 했고, 결국 길을 건널 땐 양쪽 모두 잘 살피고 운전자가 서줄 건지 쌩하고 그냥 갈 건지 대략 파악이 됐을 때 건너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한국에서 살아보기를 결정했을 때 사실 ‘길 건너다 죽을 수도 있음'을 걱정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운전자'로서의 경험을 걱정했다. 내가 과연 한국에서 차선 바꾸기를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을지, 운전자들이 깜빡이를 켜면 공간을 잘 내어줄지 등을 걱정했었다.


나의 운전실력을 간과했던 것이었던지, 생각보다 한국에서의 운전은 할 만했다. 내비게이션 안내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다만 적응해야 할 것이 있다면 꽤 자주 울리는 과속, 신호 위반 단속 카메라 알림 소리가 꽤나 시끄럽다고 느껴졌다.”땡땡땡땡” 소리와 함께 핸드폰 화면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나왔다 한다. 캐나다에서 운전할 땐 그런 서비스가 있는 내비게이션 어플은 없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 카메라가 이렇게 많지도 않았다. 한국은 아무리 짧은 거리를 운전한다 해도, 이 단속 카메라 알림 소리를 여러 번 듣게 되는 것 같다.


과속 위반 단속 카메라 때문에 발견한 재밌는 현상이 하나 있다. ‘왜 갑자기 다 같이 브레이크를 밟지’라고 생각하다 ‘아 하!’ 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 여기선 쌩쌩 달리다 앞, 뒤, 옆차들과 함께 다 같이 속도를 줄이고 카메라를 지나고 나면 또 다 같이 속도를 올리는데 마치 현실판 운전 게임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구간단속이라는 것을 처음 접했을 땐 정말 다양하게 행동규정을 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다시 보행자의 시선으로 돌아오자면, 처음엔 길을 건너는데 천천히 속도를 줄여 차분히 서주지 않는 운전자들에게 화가 났다. 실제로 지나가는 차 엉덩이에 대고 화를 내기로 했다. 진심으로 화를 내는 나의 모습에 스스로도 낯설다 느껴졌다. 그러다 이곳에서 한두 달 지내다 보니 내가 무얼 깜빡하고 있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냥 내가 살던 곳에서 익숙했던 ‘사회 규범'을 그대로 들고 와 이곳에 적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회규범(社會規範)은 사회생활의 준칙(룰)인 도덕·관습·법률 규범의 총칭이다. 사회에서 공동으로 또한 평화적으로 생활해 나가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규칙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


한국에는 한국만의 운전방식과 길 건너기에 관한 사회규범이 있을 텐데 그것에 대한 고민보다는 캐나다에서 가져온 사회규범을 이곳에 적용하며 혼자 불평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캐나다에선 보행로는 물론이고 도로마저도 주인은 걷는 사람이다. 사람이 우선이고 잠시 차가 그 길을 빌려 사용하는 느낌이 더 든다. 걷는 사람, 즉 주인이, 나타나면 빌려 쓰던 자동차는 당연히 양보한다.


또 다른 해석은 보행자와 자동차 힘의 구도에서 너무나도 자동차가 우세하기 때문에 (속도, 무게, 결국 해를 끼칠 수 있는 정도)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려는 느낌도 드는데 둘 중에 어떤 설명이 더 캐나다의 운전자와 보행자의 무언의 사회규범을 잘 설명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한국에서 받은 느낌은 도로는 당연히 자동차의 것이었다. 이건 운전자에게만 그렇게 인식되고 있는 건 아닌 듯했다. 길을 건너려는 보행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길을 건널 때 건너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나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건너는 느낌은 없었다. 멀리서 라도 차가 다가오고 있으면 일단 차가 지나가고 도로가 완전히 빌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운전하다가 보행자를 보고 차를 멈춰줘도 그냥 차 먼저 지나가라고 손짓하는 경우도 흔했다. 나의 멈춤을 부담스러워하는 듯했다. 또는 멈춰줘서 고맙다고 고개를 한번 숙인 후, 민망한 듯 뛰어서 빨리 자리를 비켜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그것이 길을 건너는 보행자의 도리라는 듯이 뛰는 것 같았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찾아보니 한국의 보행자 사망사고는 OECD 평균대비 2배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도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무조건 사람이 먼저라고 한다. (https://blog.naver.com/mltmkr/222286956672)


사실 지난 2년간 나는 이제 한국의 ‘길 건너기'와 ‘운전하기'의 사회규범을 매우 잘 받아들였다. 적당히 빨리 운전하다 과속 단속 카메라 앞에서 적절한 거리를 가늠하며 브레이크를 밟을 줄 알게 되었고,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고 서있는데도 무조건 서주던 빈도가 조금 줄었다. 또한 길을 건널 때 주변을 잘 살피고 차들이 다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건넌다. 


이제 다시 캐나다에 돌아가면 멀찍이 진작에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차를 세워주지 않았다고 나를 비난하는 소리를 당분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남은 몇 달 동안만이라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서주는 운전자가 되어야겠다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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