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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Sep 28. 2024

꿈같았던 한국 생활에서 캐나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중

이년만에 집으로 돌아오고 한 달 정도 지나자, 잡초만 가득한 앞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그전엔 집 안을 정비하느라, 바깥까지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어느 햇살 좋은 날 온 가족이 장갑을 끼고 잡초를 뽑아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작은 앞마당은 듬성듬성 맨 살을 들어냈다.


땅을 부드럽게 고르고, 그 위에 잔디 씨앗을 뿌렸다. 씨앗을 뿌린 후에는 물을 흠뻑 줘야 한다고 안내서에 적혀 있었다. 그래서 물을 흠뻑 주고 기다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는데 아직 씨앗들이 그대로 있었다. 기다리는 건 어려운 일이다. 지난 한 달간 잔디 씨앗에서 새싹이 트기를 기다리며, 나는 job offer (취업 성공 이메일)도 기다려야 했다. 9월 동안 총 8번의 취업 인터뷰를 했다.


잔디 새싹이 올라오고 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니 핸드폰을 만지는 시간도 길어졌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퍼즐을 하나 샀다. 1,000 조각이나 되는 귀여운 팬다 퍼즐이었다. 시간 때우기 용으로 최고라 생각하며 둘이 열심히 테두리부터 조각 맞추기를 시작했다. 테두리가 끝나자 어려운 구간이 찾아왔다. 팬다는 너무 까맣고 하얗고, 하늘은 또 죄다 하얗고.. 결국 퍼즐은 거실 한쪽 구석에 널브러져 아무도 건들지 않는 날들이 늘어갔다.


다시봐도 어려워 보인다


그러다 다시 리디북스에 돈을 채워 넣고, 좋아하는 정지우 작가의 신간을 다운로드하여 읽기 시작했다. 마음이 불안할 땐 역시 핸드폰 보다 책이 낫다. 제목은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이다. 나한테 하는 말도 아닌데 제목만 보고 약간 뜨끔했다. 돈만 너무 열심히 벌지 말자고 해서 회사를 나왔는데, 버는 건 정지되었는데 오히려 돈 생각은  더 많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런 아이러니함 속에서 다시 돈을 벌겠다고 다짐하고 인터뷰를 하고 다니던 차에 만난 책이다. 다 읽고 나면 감상평을 한번 적어 볼 생각이다.




며칠 전은 남편이 3년 반 만에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우리의 자발적 백수 시대가 오피셜 하게 끝났음을 알리는 날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밴쿠버 오피스로 출근해야 하는데, 우리 집에서 아침 7시에 출발했는데 오전 9시 40분에 사무실에 도착해 버렸다. 첫날부터 지각이었다. 다행히 남편의 상사는 매우 친절해서 괜찮다고 말해주며 집에 갈 때 또 차 막힐 수 있으니 일찍 퇴근하라고 했다고 한다. 집에 올 땐 다행히 한 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그렇게 몇 년 만에 다시 회사로 돌아간 남편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일하면 우린 얼마나 바빠지게 될지 상상해 봤다. 그리고 사실 아직 첫 월급도 받기 전이지만, 월급이 들어올 생각을 하니 슈퍼에서 장 보는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두둑해질 통장을 생각하면 설레기도 하다.  


우린 돈 버는 행동을 정지한 대신, 엄청난 자유시간을 보상받았고 최대한 그 시간을 잘 써보려 노력했기에 후회는 없다. 생각보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시 월급생활로 돌아가지만 다음번에 또 퇴사에 도전한다면 그땐 아마 지금보다 더 길게 백수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을거라 장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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