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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답게 살기 위해, 이사 갈 거예요. 아주 멀리.

회사에 통보하고 새로운 도시로 팀 변경 요청을 했다.

by 안개꽃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그건 뭘까?

나는 어려서부터 이상한 쪽으로 확고한 신념 같은 것이 있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나이지만, 어린아이의 눈으로 어른들을 바라볼 때면, 아이고.. 저 어른답지 못한 어른 같으니라고, 난 커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같은 생각 들. 세상이 정해 놓은 규칙들에 대해 반항심이 들던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언니와 싸울 때 도대체가 네가 왜 언니인지 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우긴 적이 있다. 그냥 생물학적으로 나보다 먼저 태어났을 뿐, 그게 뭐? 왜 맏이라고 언니라고 특별 대우 (언니라고 불러주는 특별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맥락으로 고작 1년 선배라고 한껏 무게 잡고 어른인 척하는 중, 고등학교 선배들은 언니가 왜 언니여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보다 더 못마땅해하곤 했다. 우린 그냥 다 같은 인간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였는지 몰라도, 어렸을 때부터 학교는 친구들과 놀러 가는 곳!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가기 싫으면 안 가려고 꾀병도 잘 부렸다. 모범생인 언니와 달리 학창 시절 내내 개근상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엄마는 나의 경쟁심에 불을 붙여 공부를 더 시켜보고 싶어 하셨으나 먹히지 않았다. 친구가 상 받는 게 부럽지 않았고, 시험 점수가 나보다 높은 것도 관심이 없었다. 특히나 내 점수가 낮은 것에 대한 창피함이 전혀 없었다.

왜 그런 걸까. 난 학교 갈 때 오늘은 그동안 잘 얘기를 못 나눠본 친구를 떠올리며, 오늘은 그 친구와 대화를 좀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등교를 했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궁금해하면서 대화를 걸어보곤 했다.


내가 이런 쪽으로 부모님의 방해를 받지 않고 클 수 있었던 이유는, 5남매를 낳고 바쁘게 사시는 엄마 아빠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물리적으로 나에게 쏟을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부족해서 그냥 믿음으로 알아서 잘 크겠거니 하고 내버려 두신 덕분이다. 내가 부모가 되고 나니, 점점 난 알아서 혼자 컸다고 생각해 오던 것들이 그게 아니었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하늘의 뜻에 맡기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지켜봐 주는 것도 옆에서 따라다니면서 닦달하는 것 못지않게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는 중이다.

우리는 누구나 나는 좀 남들과 달리 특별하다고 느낄 것 같다. 내가 남이 되어본 적이 없고 평생 '나'로만 살수 밖에 없으니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부자가 아닌 부모님이 5남매를 키우셨으니, 크면서 용돈을 잘 받아본 적이 없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동네 친구와 학교 앞 떡볶이 집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친구와 둘이 한쪽 구석에서 삶은 계란 껍데기 벗기기가 주된 업무였다. 한 2주를 틈틈이 일하고 받은 아르바이트비를 그날 바로 그 떡볶이 집에서 거의 다 써버린 기억이 있다. 내가 번 돈으로 넉넉히 사 먹는 떡볶이. 맛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그 뿌듯했던 기분만은 기억난다. 하지만, 내 시간 투자와 떡볶이 몇 접시가 타산이 맞지 않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 거의 바로 그만두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난 늘 '을'이지만 '갑'같은 태도로 사회생활을 해 온 것 같다. 이 아쉬울 거 없다는 태도는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누군가 내 자존감을 건드리려 할 때면 가차 없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주었다. 예를 들어 같은 알바인데 결혼한 동료 언니와 내 시급이 너무 차이가 컸다. 그래서 조금 올려 달라고 용기 내어 말했는데, 사장님 말이 그러고 싶은데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했다. 두 번 시도했다가 공부를 핑계로 그만뒀다.

큰 슈퍼마켓 캐쉬어 알바를 할 때는 점심시간 및 쉬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었다. 그래서 생계가 걸려있어 눈치 보는 아줌마들을 대신해서, 앞장서서 최소한의 시간은 내 점심시간으로 지켜내려 노력도 했었다. 이때는 누군가한테 '내가 대신 우리의 권리를 위해 싸워줄게요'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행동했었다. 난 학생이니깐 혹시 잘리 더라도 다른 알바 또 구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팀 미팅 때 돌아가면서 발표를 하는 기회가 생겼다. 투자 상담가인 나는 내 발표 날에 내 개인 적인 우리 집 가계부 현황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결혼하고 10년 동안, 얼마에서 시작해서 지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러면서 한 말이 우리 부부는 실험적인 정신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결혼 초반에는 실험정신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상상으로 그치곤 했었다. 보통 사업 아이디어 들이다.

지난 3년 전부터는 실험정신이 매우 빠르게 행동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처음에는 얼떨결에 시작했다. 둘째를 임신하고 막달에 시작한 크림치즈 사업이 그 첫 번째이다. 시어머님 표 크림치즈를 우리끼리 먹기 너무 아까워 지인들에게 패키지로 선물하다가 팔게 되었다. 그러다 상표를 만들고, 로고 디자인을 하고, 웹사이트도 만들도, 사업자 등록도 하고, 사업자 보험 가입까지 하면서 일이 커져 버렸다. 둘 다 직장이 있었기에, 남편이 육아휴직 6주 후 직장으로 돌아가고 나서는 점점 흐지부지 되다가 한 8개월 만에 결국 접게 된 우리의 첫 번째 사업이다. 혼자 먹기 아까워 팔고 싶었으나, 예전 떡볶이집 알바 때처럼,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남는 돈이 얼마 되지 않는 걸 깨달았다. 남는 돈을 키우려면 엄청난 대량생산과 함께, 우리 상품을 팔아줄 가게들을 뚫어야 하는데 그 에너지가 우리에겐 없다고 판단되었다. 이것도 아마 전문적으로 해결해 주는 음식 상품 에이젼시가 있을 것도 같다. 어쨌든 투자를 더 해야 하는 상황이라 우선 접었다.


이 크림치즈 사업으로 배우고 느낀 것이 참 많았다. 당장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알아보고 결정해야 하니, 알아보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이렇게 알아보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프로세스를 트레이닝받아서 지난 3년간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일들이 생겼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우선 돈을 바라보는 시선이 묘하게 달라졌다. 10년째 월급을 어떻게 쪼개어 쓰고, 어떻게 저축 및 투자를 하고, 어떻게 아직도 10년째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는지에 머물러 있던 시선이 아주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주식투자, 펀드 투자, 대출금 갚기 등 다양한 금융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시스템을 만들어 투자를 하고 돈을 직접 벌어들이는 경험은 월급에 비해 아주 아주 적은 액수였지만, 우리가 다른 사업을 벌이기에 최적의 멘탈로 만들어 주었다.


돌아보니 나를 나답게 해 주는 것들은 내가 내 '촉'을 믿고 움직일 때인 것 같다. 그냥 정해진 룰을 반항하지 않고 따르기보다는, '언니'는 왜 언니인지, '선배'는 왜 선배인지, 학교는 왜 '공부'만 하러 가는 곳이 아닌지, 그럼 대학은 왜 꼭 가야만 하는 건지, 부모님 이상형과 맞지 않는 배우자 (종교적인 이유로)를 내 나이 20살에 결정해 버렸는지 등 얼핏 보면 아주 얌전하고 문제아와는 정반대 이미지의 나는 사실 엄청 '내 멋대로 살아야지'라는 마음을 품고 커왔던 것 같다.


이 내 멋대로 살기 신념은 내 나의 30살 중반인데 아직도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다행히 엄청 꿍짝이 잘 맞는 남편을 20살에 만났다. 중요한 시기에 만나, 서로에게 더더욱 '니 멋대로 살아라'라고 격려해 주면서 커 버린 듯하다. 이제 두 달 후면 비행기 5시간 타고 가는 곳으로 이사를 간다. 같은 캐나다 안이지만, 거의 이민 가는 수준의 장거리이다. 집을 먼저 정해 버리고 둘 다 회사에 통보를 했다. 우리 이사 갈 거니깐 그 쪽 동네 오피스로 사무실 옮겨 줘 라고. 그래도 되는지 물어보는 게 아니라 통보였다. 아직 인사과에서 다 문제없이 가도 된다는 확정은 안 나왔지만, 그렇게 되리라 믿고 계속 진행 중이다. 간혹 우리 이러다 회사 잘리는 건 아니겠지?라는 불안감이 올라오지만, 지금처럼 재택근무 환경이 당분간 지속된다면 이사 갔다고 자르지는 못하지 않겠나.. 하는 게 우리 생각이다. 물로 이사도 이사 나름이긴 하지만..

이렇게 또 한 번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에 인생을 걸고 실험해 보는 중이다. 그리고 이 글을 공모전을 위해 쓰는 이 행동도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에 포함된다. 아.. 여러므로 두근거리는 하루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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