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남편이 대학원을 같은 해에 졸업하면서 만 25세, 26세에 바로 결혼했다. 둘의 학자금 대출금을 합치면 약 13만불 (남편 9만 5천, 나 3만 5천)이였다. 지금 환률로 계산하자면 1억 2천만원이 조금 안된다. 남편은 외동 아들이고 나는 오남매 중 둘째이다. 둘다 100% 정부에서 주는 학자금 대출로 등록금을 해결했다.
남편은 부모님 집에서 학교를 다녔고, 나는 언니와 바로 아래 동생과 셋이 함께 알바를 하면서 집세를 내면서 학교를 다녔다. 캐나다는 전세가 없고 자가 아니면 월세인데, 그당시 15년 전에 우리가 냈던 월세가 한달에 백만원이 조금 넘었다. 나중에 언니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바로 아래 여동생과 나는 따로 살기로 결정하면서 월 50만원 정도 내는 정말 작은 고시원 방 같은 사이즈에 화장실과 부엌을 쉐어하는 곳에서 한동안 살기도 했다. 그곳에서 살다 졸업하자마자 시댁으로 들어가 남편 방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년을 시댁에 살다, 시부모님이 주신 살림 밑천 4만불을 받고 첫 집을 샀다.
캐나다는 전세가 없는 대신 집값에 작게는 5%만 내고도 집을 살수가 있다. 5%만 낸다면 95%는 은행 대출를 받고 사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기본이 20%는 다운페이를 해야 하는건데, 그 아래는 정부가 관리하는 기관에서 보장하는 집보험에 무조건 가입해야 하며, 그 보험액수는 내가 얼마나 다운하냐에 따라서 %가 달라진다. 그 액수만 해도 천만원이 넘을 수도 있다. 그 보험료는 내가 받게 되는 은행 대출에 더해져서 매달 갚아 나가게 된다.
우리는 2011년 첫 집을 10% 다운하고 90% 은행 융자를 받아 샀다. 시부모님이 독립하라고 주신 4만불 중 반 이상은 첫 집(16평 정도)을 사느라 썼고, 남은 돈은 학자금 갚는데 썼다. 30년 상환에 원금과 이자로만 한달에 1500불 정도 나갔던것 같다. 그래도 그동네 비슷한 사이즈 콘도 월세와 비슷한 금액이였다.
그렇게 우리의 빚은 결혼 일년만에 학자금 대출 13만불 플러스 집 융자 25만불이 되었다. 어마어마 한 빚에 결혼하고 4-5년 정도는 마이너스 자산에서 플러스로 넘오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과 나는 열심히 살았다. 그곳에서 4년 넘게 살면서 첫째도 낳고 첫째가 돌이 되기전 더 큰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정부에서 받은 학자금대출은 이자율이 5.5% (지금은 6.5%라고 한다)였다. 은행에서 따로 받은 남편 대학원 대출금 이자율이 4.5% 였다. 이 학자금 대출은 작년에 딱 결혼한지 10년만에 모두 갚게 됬다. 학자금 대출을 다 갚는날 꼭 파티를 하자고 10년 내내 생각했건만, 코로나와 함께 우리가 살던 곳에서 아무도 없는 타주로 이사오면서 그냥 우리둘이 조용히 자축하는것으로 지나가 버렸다.
이랬던 우리가 지금은 부자다. 부자의 정의는 각자 다르겠지만, 내 기준으로 나는 지금 부자다. 나중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우선 지금은 부자가 확실하다. 남편과 회사는 다르지만 전략적으로 같은날 보스에게 사직서를 내고 2주후에 한날 같이 퇴사했다. 아직도 퇴사하겠다고 각자의 보스들과 회사 노트북으로 화상 채팅하던 날이 생생하다. 그 전날 잠은 잘 못잤고, 미팅 한시간 전부터 긴장으로 가만히 있질 못했다. 서로 미팅하러 가면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 주고, 돌아왔을때 힘든일 했다면서 다독여 줬다. 무슨 의미인줄 모르겠으나, 눈물도 좀 났던것 같다. 원하던 퇴사를 해서 좋은건지, 앞으로 잘 살아낼 수 있을건가 하는 두려움인지, 몇달동안 마음 고생 하던일을 일단락 지었다는 안도감인지 매우 복잡한 마음 이였다.
퇴사를 하고 나니 이 동네 작은 비행장에서 하는 경비행기 투어를 하며 퇴사를 자축하고 싶었다. 그러다 또 문득 경비행기 타다 사고나서 죽기라도 하면, 유언장도 없는데..먼저 유언장을 만들어야겠다 싶어졌다. 이런 내 로직에 남편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이제는 우리도 유언장이 필요한것 같다는 내 말에 동의했다. 캐나다에서 유언장 없이 죽게될경우, 모든 재산은 우선 정부가 관리하게된다. 부부가 모두 죽게 될 경우 법원이 누가 남은 아이를 법적 보호할 건지 정해 주고, 재산 분배도 법원이 한다. 또 혹시라도 채무자가 나타날 경우, 그 문제가 해결된 후 재산분배가 이루워 진다. 또한 법원이 꽁짜로 그 일을 해주는것이 아니라 fee도 때어간다. 그래서 나는 부자가 되었다고 느끼게 해주는 우리의 재산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분배하고 싶었고, 특히나 아직 성인이 안된 우리 아이들을 누가 돌바줄 건지 미리 정해 두고 싶었다.
우선 아이들 문제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한국에 언니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전에 이 문제를 시부모님 앞에서 거론한 적이 있는데 당연히 시부모님이 법적보호자가 되어야 하지 무슨 소리냐 하셨다. 우리 부부는 여러가지를 고려해 봤을때 우리 언니가 적합 하다고 판단했다. 언니도 흔쾌히 오케이 했다. 이제 남은건 재산 분배였다. 변호사 미팅을 몇일 앞둔 시점 우리 부부는 남은 재산이 있다면, 재산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기부하고 일부분만 아이들에게 남겨주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물론 이 기부도 살아생전에 하면 더 좋겠지만, 유언장에 이렇게 못박아 둠으로써 우리의 뜻을 더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남편은 더 많은 사람들이 부의 대물림을 끊어내고 사회에 환원한다면 지금 전 세계가 격고 있는 부의 불평등이 많은 부분 해소 될 것이라 믿고있다.
4월부터 유언장 작성을 한것 같은데 8월에야 모든것이 끝났다. 처음 한번 미팅하고 그 다음엔 이메일로 드라프트가 오고갔고 다시 만나 증인과 함께 4명이 (우리부부, 변호사, 변호사 사무실 직원) 싸인을 하고 정부 유언장 부서에 우리의 유언장을 등록하고 번호를 받고 다시 가서 원본을 찾아오고 하는데 몇달이 걸렸다.
유언장은 남편과 내가 각각 따로 작성했고, 서로가 혹시 아파서 메디컬 쪽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경우에 사용할수 있는 법적 대리인 서류도 작성했다. 이 모든 비용이 거의 1,500불 가까이 든것 같다.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비싸니 결혼한지 10년이 넘도록 유언장 작성을 못하고 계속 미뤄왔던 것이다.
그렇게 결혼한지 11년만에 유언장이 생겼다. 아직 경비행기를 타보진 못했다. 다음달 투두리스트에 있으니 조만간 날 좋은날 둘째를 맡기고 가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