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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비키 Dec 08. 2023

티빙-웨이브의 합병 결정이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

OTT 시대, 토종 OTT의  생존방식은?



티빙-웨이브의 합병이 가시권에 들었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애플TV와 파라마운트+도 제휴를 맺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래서인지 올 한해 내내 시끄러웠던 OTT 시장은 연말에 더 시끄러워진 듯 하다.

연일 이런저런 전망이 나오고, 오랜만에 들어간 페북에서도 피드가 시끌시끌하다.


출범 당시부터 많은 이들이 주장했던 바람(?)이 현실화되기 직전이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이번 소식에 대해 잘한 결정이라며 환영하는 입장을 보였다.

물론 이러한 환영 속에는 넷플릭스에 휘둘리고 있던 그간의 말못할 속앓이도 일부 담겨있겠지만.  



<관련 기사 보기>


특정 플랫폼의 ‘독주’ 체제, 특히 그것이 ‘해외 플랫폼’이라는 것에 대한 불안은 어쩔 수 없이 나 또한 갖고 있다. 그래서 두 토종 플랫폼이 힘을 합쳐 넷플릭스에 대항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응원하는 마음도 당연히 크다.


그러나 응원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이번 합병 발표는 기대보다 아쉬움이 더 크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1. 가입자수와 콘텐츠 수급, 기대만큼의 효과가 있을까?


우선 가장 많이 언급되는 합산 가입자수를 살펴보자.


단순 합산한 935만 명 중에서 중복 가입자수를 빼면, 합병 OTT는 650만~720만 수준이 될 것이다. 중복 가입률은 어림잡아 20~30%로 대충 계산한 숫자인데, 현실적으로 SK번들링 가입, KT와 LG 번들링 가입 등 통신사 번들상품 가입자수를 고려했을 때, 두 플랫폼의 중복이  20% 미만일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0~30%도 매우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고, 실제로는 30~35%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


합병 후 가입자수가 650~720만 수준이라면, 이것이 두 토종 플랫폼의 합병 효과를 견인하는데 충분한 숫자가 될까?


설령 중복가입률을 0%로 잡아서 합산 가입자수가 935만이 된다 해도,  

또는 더더욱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합병후 시너지 효과로 가입자수가 1천만이 된다고 가정해도,

의무가입기간이 없는 OTT 환경에서 이는 어디까지나 한시적이고 불안정한 숫자일 뿐이다.


이용시간 점유율에서도 두 플랫폼의 합산 이용시간은 넷플릭스의 88%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다. 미디어 시장에서 넷플릭스는 더 이상 경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나마 이번 합병의 베스트 시나리오는 합병 효과로 가입자수가 1천만 명을 넘어서면서  안정적인 ‘국내 2등'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포화상태인 국내 OTT 시장에서 가입자 1천만명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다, 이 숫자조차 현재의 적자모델을 리쿱하거나 플랫폼 가치를 올리기엔 여전히 부족하다.


출처 : 연합뉴스 (2023.9.13)

가입자수와 오리지널 콘텐츠만으로 OTT의 가치와 경쟁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늦게 잡아도 팬데믹이 끝나면서 함께 끝났다.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로는 합병을 하든, 원래대로 있든, OTT 사업자의 흑자전환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물론 긍정적으로 보면 합병시 두 회사의 콘텐츠 수급경쟁이 줄어들어 협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올려놓은 콘텐츠 제작비가 떨어질리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협상력이 높아진다 한들 수급비용과 제작비용이 얼마나 감소할지는 의문이다.


혼자 감당할 비용을 둘이 감당하게 되고, 비용 경쟁이 떨어지니까 수급도 수월해 질거라고 보기에는 제작비 시장이 정말 "너무", "심하게"  올랐다.

게다가 증가 속도도 유례없이 "빠르고" 말이다.


결국, 합병으로 콘텐츠 비용의 증가폭이 살짝 줄어들 수는 있지만, '콘텐츠 비용' 자체는 줄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에 비해 누적 적자폭만 2배 가량 증가하는 셈이라 한동안 재정구조는 더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2. 복잡한 주주구성에 따른 강력한 운영 리더십의 부재


양 사의 복잡한 주주구성도 합병효과의 기대치를 낮추는 요인이다.

원래 "모두의 것“이 되면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된다.

티빙과 웨이브 모두 이미 각자 주주들이 너무 많은 상황에서, 의사결정 또는 책임분담에 대한 내부교통정리가 선행되지 않으면, 자칫 합병해놓고 이전보다 더 답이 없어질 수도 있다.


출처: 한국경제 (2023.11.29)

게다가 두 플랫폼의 주주들은 국내외 시장 할 것 없이, 자사 OTT에 콘텐츠를 ‘독점으로 몰아주는’ 구조를 이미 오래전에  스스로 파기해버렸다.


웨이브의 2대 주주인 KBS는 2023년 가을에 독자플랫폼인 KBS+를 출시했고,  티빙을 탄생시킨 CJ ENM과 JTBC는 자사의 핵심 콘텐츠를 넷플릭스에 함께 판다.



웨이브의 직접 주주는 아니지만, 웨이브 최대 주주인 SK스퀘어의 계열사 ‘SKB’는 2023년 추석 연휴 직전,  자사에 유리하게 흘러가던 넷플릭스와의 망사용료 분쟁을 갑자기 종결하는 대신, SKB는 2024년에 넷플릭스와의 결합상품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집안싸움까지는 아니지만, SK측에서 웨이브에 대한 관심이 많이 사라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웨이브의 대주주인 SK스퀘어는 SKB와 별도 회사이긴 하지만.)


<관련기사>


두 플랫폼에 대한 주주들의 각각의 행보가 합병이라는 거대 이벤트를 통해서 교통정리가 되는 계기가 된다면, 이것이 이번 합병으로 기대할 수 있는 본질적인 시너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양 사 주주들이 합병OTT의 성장을 위해 이전보다 더 적극적인 투자를 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양 사의 주주사들은 국내 방송 및 통신의 대표 기업들이 모두 참여했는데, 이들이 합병  OTT 운영에서 공통의, 지속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어주리라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자칫 방치 또는 방임하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나타나지 않도록, 합의과정에서 '리더십'에 대한 치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3.  갈수록 강력해지는 넷플릭스의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


플랫폼 시장은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가 발현될 때 성공한다.


문제는 온라인 환경에서 이러한 네트워크 효과는 1등 플랫폼의 독식이 일반적 현상이라는데 있다.


국내외 OTT 시장에서 넷플릭스는 이미 강력한 네트워크 효과를 구축했고, 이를 깨뜨리고자 디즈니+,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등 다양한 후발주자들이 등장했지만, 넷플릭스의 네트워크 효과는 오히려 더 공고해졌다.

오픈 플랫폼 시장에서 유튜브가 절대지존에 올랐듯, 구독스트리밍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network effect

따리서 넷플릭스처럼 이미 네트워크 효과가 구축된(깨뜨릴 수 없는) 선도기업에 대항하려면, 넷플릭스와는 다른 전략으로 부딪혀야 한다.


플랫폼 합병을 통한 '거대한 하나'가 아니라, 원래의 모습으로 틈새(niche) 시장을 굳건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대강’으로 맞붙는 것은 넷플릭스의 네트워크 효과가 아직 불안정할 때, 얼마든지 깨질 가능성이 있을 때였어야 했다. 현실적으로 지금 시점에서 합병을 통한 몸집불리기 전략을 추진하는 것은 타이밍이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그동안 국내 미디어 시장에서 티빙, 웨이브가 각각의 플랫폼으로 존재할 때는 "합병"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다.


모두가 두 플랫폼에 대해서 '합병하라'고 외친 것은, 공룡에 맞서기 위해 둘이 힘을 합치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이 있었다는 얘기다.

어려울 때 손을 맞잡는 '연대'는 전통적으로 빠르게 힘을 키우는 효과적인 전략으로 여겨져왔으니까.


그런데 현실적으로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넷플릭스의 구독자수에 영향을 미치리라고 보기는 어렵고, 넷플릭스의 네트워크 효과는 두 플랫폼의 합병과 상관없이 갈수록 더 커질 것이다.  


결국 합병 후에도 지금의  점유율, 비즈니스 모델, 재무구조 등이 개선되지 힘들다고 본다면,  합병은 오히려 넷플릭스에 대응할 수 있는 토종 OTT 및 국내 콘텐츠

플랫폼 시장의 자생력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점유율이 단기간에는 반짝 오를수도 있다. 그러나 의무 가입기간이 없고, 합병으로 인해 양사가 쌓은 기존 브랜드의 특징이 희석될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합병에 따른 점유율이 크게 오를 가능성은 적다.


4.   콘텐츠 제작자(CP)의 플랫폼 의존도 심화


두 플랫폼의 합병을 가장 반기는 것은 아무래도 이용자들이다. 두 개 가입할 것을 하나만 가입해도 되니, 이용자 입장에서 이건 나 또한 반가운 부분이다.


그러나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CP의 플랫폼 의존현상은 더 높아진다.

이미 넷플릭스에 들어간 콘텐츠 기획안만 수천편이 넘는다는 소리가 들리고, 넷플릭스에 제안한 기획안의 가부 여부를 알기 위해서는 최소 2달 이상의 회신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플랫폼이나 채널이 많을 때는, 콘텐츠 제작자들이 플랫폼 또는 채널 특성에 맞게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제안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방송 채널의 제작 여력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콘텐츠 기획안은 이제 OTT로 몰리는 중이다.


따라서 넷플릿스, 디즈니플러스,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가 존재하던 국내 시장에서, 두 기업의 합병은 플랫폼에 '간택'받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을 의미한다.


덕분에 콘텐츠 제작 시장은 소수의 대기업계열 스튜디오 일부만 남고 중소형 제작사들은 다수가 사라지는 구조를 초래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


가뜩이나 넷플릭스가 촉발시킨  제작비 상승현상으로 생태계 교란이 심각해지는 중에,  

두 토종 플랫폼의 합병은 대기업의 자회사를 제외한 일반 CP들의 생명력을 더욱 앞당기는 시그널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이용자의 플랫폼 선택권이 약화되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부분이 크다.


5.    글로벌 진출 전략의 모호함 : 플랫폼인가 콘텐츠인가?


한편, 두 플랫폼의 합병이 글로벌 진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토종 OTT가 '플랫폼 서비스'로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글로벌 시장은 국내 시장보다 넷플릭스의 입김이 더 큰 곳이다. 여기에 디즈니 플러스,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등 또 다른 공룡 OTT들이 이미 다수 점유율을 차지했다.


냉정하게 보자면, 결국 합병을 하더라도, 합병 OTT가 ‘플랫폼’으로서 공략할 수 있는 글로벌 시장은 없다.

동남아 VIU가 차지했고, 일본은 넷플릭스와 훌루 제팬이 잡고 있다. 중국은 외국 플랫폼 사업자의 진출 자체가 막혀 있다.


서구권으로 묶이는 북중미, 남미, 유럽 지역은 넷플릭스와 디즈니+의 2파전이 한창이고, 애플TV와 파라마운트+조차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 중이라 제휴하는 판이다.  


그 어느 시장에서도 국내 OTT 플랫폼에게 호의적인 곳은 보이지 않는다.


반면, 콘텐츠 시장은 국내 콘텐츠에 호의적이다. '한류' 현상은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가 주도했다. 한국의 OTT 플랫폼 사업자들은  이 흐름 속에서 콘텐츠의 판매/유통(Distribution) 전략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해왔으며, 이러한 전략합병과 관계없이 이미 진행 중이다.


티빙은 오리지널 콘텐츠 일부를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비디오, VIU 등에게 방영권을 판매했으며, 파라마운트+와도 제휴하여 유럽쪽에 공동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유통 중이다.  

웨이브는 북남미 지역에서 자회사를 통해 한인들 대상으로 K콘텐츠에 특화된 '코코와' 서비스를 하고 있다.


OTT 비즈니스는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규모를 볼 때, 규모의 경제, 즉 ‘글로벌 시장’ 진출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플랫폼' 단위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티빙과 웨이브그 합병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넥스트 플랜이 안 보인다.


티빙과 웨이브가 이를 모를 리 없다. 분명 예상되는 부분일 거고 그래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합병을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거다.


결국,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은 이들 모기업인 CJ ENM과 SK스퀘어, 지상파3사 등의 서로 다른 니즈들이 결합되면서 ‘의도치 않게‘, ’어쩔 수 없이’ 도달한 결론으로 보인다.


CJ ENM과 지상파3사는 티빙과 웨이브를 tv채널의 광고매출감소분을 일부라도 리쿱할 수 있는 '세컨드 광고채널' 또는 콘텐츠 유통을 통한 '부가수익원'으로 바라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SK스퀘어는 11번가 매각 (콜옵션 포기)에 이어, 웨이브도 티빙에 합병시킴으로써, 수익성이 좋지 않은 사업들을 서서히 정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거 있다. 게다가 2024년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려했던 계획도 틀어지면서, 합병을 통해 이에 대한 책임 부담을 완화하려고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내 시장에서 플랫폼 선택권만 줄어들고, 합병을 통해 적자 개선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주주사들의 적극적 지원을 기대하긴 더욱 어려워졌다. 자금력과 네트워크 효과에서는 합병하더라도 넷플릭스와 게임이 되지 않는다.


합병 발표 전, 티빙은 광고 비즈니스를 추가한다고 발표했고, 웨이브는 오리지널보다 콘텐츠 유통 자체에 더 힘을 쏟겠다고 했었다.

애플TV와 파라마운트+가 합병 대신 ‘제휴’를 선택한 것처럼, 각자의 그 전략을 유지하면서, 서로 차별화된 브랜드를 수립하고, 합병대신 ‘제휴’ 등으로 협력했다면 어땠을까.


두 플랫폼의 합병 소식이 (주주들이 처한 상황을 봤을 때) 이해는 가면서도, 새삼 아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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