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방주, 5톤 트럭

by 신지승


공동 창작. 함께 사는 삶터의 이야기, 축제로서의 창작. 이 목적을 위한 나의 여행은 5톤 트럭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먹고 자는 문제가 가장 고민이었다. 결국 돈이었다. 들풀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영화를 찍겠다는 발원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10년 넘은 중고트럭을 사서 직접 공사를 했다. 촬영기자제 보관부터 컴퓨터 편집, 심지어 부감 촬영을 위한 지붕강화작업, 태양열 전기, 식수 샤워 그리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의 보안까지 세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도 없이 비포장 도로의 끝자락 마을에서 민박집 월세 사는 이가 방방곡곡을 다닐 것인가 아니면 그 돈을 모아 전셋집을 구하든지 그 동네 땅이라도 사야 하는지 고민하기는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가진 돈으론 적절한 평수의 땅은 구할 수 없었던 터라 뭉치땅을 사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5톤 트럭은 방방곡곡을 누비며 마을영화의 상징이 되었다.

트럭이 멈춰 선 곳이 곧 스튜디오가 되고, 이야기 발굴을 위한 토론광장이 되며, 아이들과 주민들이 모여드는 사랑방이 되었다. 영화가 만들어지면 트럭은 마을 영화 축제의 스크린이 되었다.

수많은 나라를 짓밟고 영토를 넓혔던 알렉산더의 부케팔로스(Bucephalus)' 정복한 땅을 다시 순행하며 타고 다녔던 진시황의 청동 마차(Bronze Chariots)가 부럽지 않았다. 나는 5톤 트럭으로 발길 닿는 곳마다 공동체의 이야기를 다수의 평범한 영웅들이 만들고 연기하며 새로운 문화를 새겼다. 거창하지만 허무한 정복이 아닌, 그게 나에겐 정복이고 혁명이었다.

숙소이자 일터, 놀이터이며 극장인 이 트럭. 나는 대체 무엇을 더 부러워해야 할까? 첨단 기술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로봇 '트랜스포머'조차 견줄 수 없었다


집에 불이 났을 때는 트럭은 유일하게 불타지 않았다. 5톤 트럭은 우리 가족의 방주가 되었다.

무엇보다 '초저예산의 일과 삶'을 현실적으로 구현했으며 경제적 인력적 물질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 준 고마운 우렁각시였다.

폐차를 하고 그 트럭을 다시 샀다. 마당 앞에 두고 나의 심장을 계속 뛰게 하려고.

나의 역사이기도 하고 어느 마을 아이들의 추억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트럭 안에 그네를 만들었다. 마을 아이들과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타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강원도 공용 주차장에서 생활할 때였다. 모 정부 관련 기관에서 찾아왔다. 마을을 위해 고생한다는 의례적인 멘트를 날린다. " 난 공무원이 아니다 . 더 큰 가치 -아마 공동창작 창작의 축제화 등을 이야기 헸을 것이다- 를 위해 살아 가지만 세상이 눈이 멀어 우리 가족을 이렇게 주차장에 살게 하고 있다.

이 트럭이 차라리 우리 가족을 품고 있다." 뭐 이런 신세타령 하다 보니 대통령상을 주겠단다. 주눅 된 아이들에게 우쭐거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검증을 위해 그동안 다닌 100개가 넘는 마을의 이름을 제출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지금 먹고 살 길 없어 어린아이들이 주차장에 살고 있는데 무슨 상타령인가? 싶었다.

쌀이 되지 않는 그 상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그 당시 나랑 가까운 사람이 받았다.)

나처럼 외롭고 가난하고 재주 없는 이들이 '같이' '먹고' '놀고' '살' 수 있는 영화란 어떤 것일까?

그 오랜 숙제를 품고 살게 해 준 것도 이 '5톤이' 때문이고 탓이고 덕분이다.

몇 차례의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한 사건도 있었다.

트럭을 운전하고 떠나야 하는 날이면 악몽에 시달렸다. 5톤 트럭의 큰 핸들을 몇 시간 동안 잡고 있다 보면 오른쪽 어깨가 욱신거려 며칠 동안은 불편했지만 마을에서의 기쁨은 그 모든 것을 잊게 했다.

1993년 세상에 나온 '5톤이'는, 2003년부터 여느 트럭도 머물지 못했던 마을로 향하는 특별한 여정을 시작했다. 그 특별한 임무를 묵묵히 수행해 오다가, 마침내 2020년 멈춰 섰다.하지만 아직 휴전선 10km 마을극장dmz 마당에 서 있다. 한 사람의 방주와 우렁각시가 아니라 한국영화의 방주였고 세계영화의 우렁각시 였다고 평범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극영화로 세상에 알린 영화혁명의 시작이었다고 추켜 세워 줄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 '5톤이'는 더 크고 더 높은 더 황당한 꿈을 꾸게 하는 떠돌이였다.


463835581_8964064233626471_6961737983378286703_n.jpg
487184261_9905092336190318_4156637384908604462_n.jpg
2022081612475415984_x.jpg
515512638_24390692763856782_3091815864535517535_n.jpg
508857450_24248532191406174_4698992251646961260_n.jpg
507701353_24248532318072828_1089259237539243948_n.jpg
508328174_24239134169012643_605589931266690750_n.jpg
508339321_24239117289014331_9032231961040697061_n.jpg
509268876_24057515070576842_1367704935064469082_n.jpg
511321622_24352997337639911_7608348944918426680_n.jpg
19_data_454_95_454957fe45a56.jpeg
다운로드 (81).jpeg
시사회8.png
추추가1.jpg
1616CF1E4B20DFAA43.jpeg
ssak_20211220_04.jpg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이전 18화새로운  나의 영화를 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