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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트럭에 사는 가수

by 신지승


어제 어떤 유튜브 영상을 보고 속으로 흐느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지 못한 이들의 꿈은 죄악인가, 아니면 축복인가?

'행복하시네요?'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대구시민들과 공동으로 제작한 이 작품은 실제 지적 장애를 가진 성민, 차 사고로 다리 장애를 얻은 아빠와 그의 가족, 소녀 시절 시인의 꿈을 키워온 60대 노인, 그리고 가수의 꿈을 가진 한 여자 등, 실제로 꿈과 상처를 지닌 사람들의 연기와 이야기를 하루하루 엮어 만든 영화다.


지적장애인 성민의 꿈

영화의 이야기는 거리에서 즉흥적으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지적 장애인 성민으로부터 시작한다.

두류공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는 성민.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애써 그려준 작품을 버리고 가기 일쑤다. 웃으며 조롱할 때도 있지만, 성민은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 늘 두류공원으로 나와 그림을 그릴 사람을 찾는다.

성민은 사람들이 버리고 간 사람들의 얼굴 그림들을 차곡차곡 모아 놓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공원에서 길을 잃은 아이를 만나게 되고, 그 아이에게 그들의 버려진 얼굴 그림들을 보여준다.

길 잃은 아이는 "왜 작품이 모두 똑같냐"라고 묻는다.

그 질문에 성민은 망설임 없이 "다 다른 그림"이라고 대답한다. "

그런데 왜 버리고 갔어?"

"못 그렸대."

어릴 적 차 사고로 의족을 하게 된 아빠가 길 잃은 아들을 찾기 위해 두류공원을 헤매다 성민과 함께 있는 아들을 발견한다.

하지만 장애인과 함께 있는 아들을 보고 성민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아들을 데리고 가버린다.

영화는 두류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성민을 중심으로 교차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길 잃은 아이의 아빠는 성민의 '못 그린' 그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두류공원을 오가며 서로를 알아가던 이들은 마침내 두류공원 숲 속에서 성민의 전시회를 열어준다.

공원을 오가며 성민에게 자신의 얼굴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 닮지 않았거나 멋지게 그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버려졌던 얼굴들이 나무에 전시되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문득 깨달았다. 이 영화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영락없이 내 이야기였다. 나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참여한 모두의 실제 이야기가 한 곳에 모이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권세주라는 사람의 이야기

공부도 1, 2등을 하며 모범적인 시골 아이였던 그는 나훈아의 노래에 반해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수의 꿈을 품고 서울로 올라왔다. 세상을 울리고 싶었다는 거룩한 꿈은 좌절되었지만, 그 꿈을 포기하지 않은 권세주 씨. 성공을 위해 트럭에서 살면서도 동네 쓰레기를 모으고 세상에 버릴 것은 없다는 그의 철학은 나와 참 비슷하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면 흔히 돈키호테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늙은 노인을 떠올리며, 마치 '세상에 이런 일이'처럼 그들을 소비해 버리고 만다.


어느 소녀의 꿈

2005년, 강원도의 한 마을에서 영화를 찍고 있을 때였다. 소아마비를 앓던 한 소녀의 아빠가 나를 찾아와 소녀가 댄서를 꿈꾸고 있다고 했다. 그때는 참 난감했었다. 그런데 10년 뒤 외국의 영상에서 휠체어 댄서를 보고 나서야 왜 그때는 그런 상상을 하지 못했을까 싶었다.


어느 농부의 헛바람

전남의 한 마을에서 피곤해서 트럭보다 편한 빈 마을회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밖에서 고함 소리가 들리고 문을 열려는 소리에 잠이 깼다. "왜 우리 마을에 들어와 순진한 사람들 헛바람 들게 하는가"라는 고함을 쳤다. 결국 서로 몸싸움까지 벌였던 한 여름밤의 마을회관 습격 사건.

나는 그 와중에 이야기했다. "누가 헛바람을 넣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상업영화들이 스타들을 데리고 하는 짓이 헛바람인지, 아니면 내가 이 마을 사람들과 이 마을 이야기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 헛바람인지."

다음날 아침에 이장을 만나 전날 밤의 사건을 고자질하고 다시는 그 미친놈이 나의 근처에 오지 않도록 혼내달라고 단단히 부탁했다. 그런데 그날 밤, 내가 앉아 있는 논두렁으로 그가 다가왔다. 그리고 청개구리 암수, 참개구리 암수가 우는 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아냐고 물었다. 나는 그를 통해 여름 밤 개구리들이 공연하는 '논의 교향곡'으로 생전 처음 초대받았다. 내가 그 마을을 떠날 때 나를 환송하는 마을 사람들 중 그가 끼어 있었다. 그는 "차 운전 조심하세요 "라고 말했고 우리는 함께 웃었다.


성민의 그림, 권세주의 노래, 휠체어 소녀의 춤꿈은 원스 (Once, 2007)같이 좌절을 이겨낸 열정의 해피엔딩영화와는 다를 것이다. 내 영화 또한 소수의 재능 있는 연기자(사실 재능 있는 연기자는 없다. 운이 좋은 연기자만 있을 뿐이다)들이 아니라, 재능 없는 다수의 영화인지라 반전의 운명은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스파르타에서 전사로 키울 수 없다고 판단된 약한 아기를 버리던 아포테타이(Αποθέται, Apothetae)처럼 , 무능력한 이들을 너무 야박하게 내몰고 있는 곳이 된 듯하다 .

하지만 돈의 힘도, 능력의 힘도 아니라 그저 삶 그 자체로, 포기하지 않는 열정 그 자체만 있다면 영화가 만들어지는 영화 장르 하나쯤은 지구 위에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가 사는 주차장이 있는 지역 혹은 마을에서 트럭에 사는 권세주 씨에게 공연 한 번 청하는 멋진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가을이 되면 그 울산의 주차장으로 그의 노래를 들으러 소풍 한 번 갈 작정이다. 노래가 꼭 가수의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는 것이기도 하니깐.

예술이란 버려진 꿈과 존재를 다시 우리 세계로 초대하는 '인간적'인 행위이기도 하다면, 그의 노래는 존재 이유가 당당하다.

삶 자체가 축복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인간적이고 철학적 역할이 있다면 , 그는 뛰어난 가수의 화려한 무대의 '그림자'를,우리 사회의 아포테타이를 몸으로 부르는 가수이기도 하다.

(세상은 유능하고 뛰어난 사람보다 무능하고 평범한 사람이 더 많다. 만개영화 프로젝트는 그들을 향하고 있다. )

https://youtu.be/CcLr-Q9AOu4?si=awBLd2UiOnQFSEXw

509606430_24303963245876654_485068203566016444_n.jpg 행복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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