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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Sep 29. 2016

프리마베라사운드, 봄의 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봄, 첫번째 페스티벌

페스티벌 프로젝트의 시작. 그 첫번째는 프리마베라사운드였다. 바르셀로나의 대표격인 가우디를 제쳐둬야 할 정도로 열성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일단 바르셀로나에 온 이유인 페스티벌로 향했다.


바르셀로나에는 말라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저녁 늦게 도착했다. 페스티벌 장소에서 걸어 2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숙소를 잡았는데, 현지 주소를 알아보는 데에 익숙지 않아 거의 다 도착해서도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몇 블럭 떨어진 다른 곳에서 호스트에게 전화를 걸어 집이 어디인지 물었다. 에어비앤비의 프로필 사진상 나이가 많은 아주머니일 것으로 추정하던 예상은 적중했고, 게다가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다.



'아, 망했다으아으아으아.....'




숙소의 후기가 없었어도 페스티벌 기간동안 선택할 수 있는 숙소가 별로 없었던 터라 예약을 했던 거였는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못 알아듣는 스페인어를 알아 들으려 노력하며 찾아간 집 앞에는 노부부가 나를 맞이하기 위해 나와있었고, 다행히도 두 분 모두 인상이 좋은 분들이었다. 11시가 넘어 도착했던지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할머니가 밥은 먹었느냐 묻는다. 아니라고 하니 그럼 앉으라고 하시더니만 무심히도 음식을 데워주신다. 감자와 생선, 야채를 넣은 국물을 대접해주셨는데, 너무 맛있다.....? 심지어 왠지 우리나라 음식 맛과는 다른 데도 비슷한 것 같은 묘한 느낌인 이 음식은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심지어 요거트, 과일을 계속 주시면서 천천히 먹으라고 하시는 이 곳은... 우리 할머니 집인가. 걱정되던 집에 대해 생각은 눈녹듯 사라졌다. 방은 두 분의 사진과 그림 등이 꾸며져있는 아늑한 방이었고, 침대도 넓어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남의 집이 아닌 할머니댁에서 자고 갈 수 있는 포근한 느낌의 집. 내가 느낀 집 같은 편안함은 그 날 그렇게 밤이 다 되어 먹을 걸 주신 할머니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스스로 내가 그리 단순한 사람은 아닐 거라 믿고 싶다.) 본디 집의 방을 내어주고 누군가가 머무를 수 있도록 현지의 특별함을 전한다는 하우스쉐어링의 개념도 처음엔 이런 것을 표방했을텐데, 사실 대부분의 호스트가 그냥 숙박업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든 것 같다. 물론 그 할머니도 내가 맘에 들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겐 에어비앤비를 통해 머물렀던 집 중에 가장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숙소였던 것엔 틀림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할머니가 손짓으로 와서 앉으라고 하신다. 킁킁,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스르르 홀린 듯 식탁에 앉았더니 할머니가 또 뭔갈 차려주신다. 조를 넣어 만든 팬케익을 연신 굽고 계셨는데 그 냄새가 마치 우리나라에서 길에서 파는 호떡 굽는 것 같기도 하고, 찹쌀도너츠같기도 했다.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던 그 팬케익은 담백하게 아침식사로 먹기에 충분했다. 두 분은 러시아에서 오신 분들이었는데 그 집엔 노부부 말고도 러시아 사람들이 몇몇 더 거주하고 있었다. 그 집에 머무는 사람 중 20대 정도로 보이는 아가씨도 있었는데, 프리마베라사운드에 간다는 내 말을 듣더니 꼭 다녀와서 어땠는지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페스티벌 관객 혹은 일반인 중에 그 페스티벌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될 때마다 하나같이 느끼는 건 '공연'이 우리나라에서만 '그들만의 축제'는 아니라는 거였다. 똑같이 유럽에서도 공연을 보러 간다는 것은 사실은 꽤 돈이 많이 들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보다는 조금은 사치스러울 수 있는 것이 맞지만 이를 즐기기 위해 1년동안 돈을 더 아끼고 갈 준비를 해서 그 시간동안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올해는 내가 주머니 사정이 안 되지만 내년엔 꼭 갈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너무 멀리 있어서 이루기 힘든 꿈 같은 건 아니라는 것. 물론 훨씬 더 고가의 공연은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유럽에서의 페스티벌은 그런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는 1순위로 삭감해야 할 예산이요, 지출이지만.



페스티벌, 그 서막.


프리마베라 사운드는 6월 1일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시작된 프리마베라 사운드의 첫날엔, 내가 너무 낮부터 일찍 들어간 탓인지 여기저기 아직 준비가 한창이었다. 오후 5시 이후부터 MD판매도 시작되고, 바, 음식을 파는 벤더 모두 그 때까지는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왜 그 시간에 일반 관객을 들여보내주었는지가 좀 이해되지 않았다. 혹시 스탭인 줄 알고 들여보낸 건 아니겠지만(설마....?), 그 영향으로 한산했던 덕에 사람이 아직 들어오지 않은 조용한 페스티벌 사이트를 둘러보았다. 첫 날은 일반인에게도 개방하는 무료공연으로, 스웨이드가 헤드라이너였고 메인 스테이지로 운영되는 2개의 스테이지 쪽은 첫 날에는 운영되지 않았다. 전체 페스티벌에서 중간 정도의 크기인 프리마베라 스테이지에서 첫 날의 주요 공연들이 이루어졌고, 관객이 지나다니는 동선 또한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자꾸 다른 길로 가서 헤멘 건 비밀도 아님.) 공연이 시작되고 프리마베라 스테이지에 접해있는 잔디언덕에 올라서 전경을 둘러보자니 신선놀음이라도 하는 양 '아,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저 멀리 다리 건너 보이는 바다, 정박된 배들, 따사로운 햇살, 그리고 음악. 봄이라 하기엔 뜨겁고 정열적인 나라 스페인이지만, 정말 페스티벌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을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소며 무대의 음향과 영상 패널까지 흠잡을 곳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아직 메인 스테이지가 오픈을 한 게 아니고 준비 과정 중이어서 다소 정돈되지 않아보이긴 했지만, 모든 사람이 이 페스티벌을 위해 각자의 맡은 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프리마베라 스테이지, 스웨이드의 공연


프리마베라사운드의 주요공연은 바다에 인접해있는 디아고날 쪽에서 대부분 이루어지고, 바르셀로나의 중심인 까딸루냐 광장 근처에 있는 CCCB에서 무료공연 및 전시, 강연 등의 프로그램이 동시에 진행된다. 첫 날의 공연은 운영되는 스테이지 수가 적어 단촐하게 끝이 났고, 본격적인 전체 스테이지의 개방은 이튿날부터였다. 디아고날 쪽 메인 페스티벌의 스테이지 수는 13개였는데, 생각 외로 공간이 넓어서 꽤 시간을 들여야 전체를 둘러볼 수 있었다. 까딸루냐 광장에서 디아고날까지는 버스로 3-40분 정도가 소요되는 정도의 거리였고, 주변에 쇼핑몰도 있는 도심형 페스티벌의 전형이었다. 버스, 지하철, 트램 모두 운영되는 접근성이 좋은 위치였고, 쾌적한 느낌과 더불어 인접한 바다로 인해서 탁 트인 시야를 가질 수 있어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초창기에는 CCCB에서만 페스티벌을 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하루에 5만 5천명 정도를 수용하는 전체 관객 20만명 이상의 페스티벌로 성장한 것이라고 한다. 관객이 믿고 찾는 '미친 라인업'의 페스티벌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아티스트가 가장 사랑하는 페스티벌이라고. 나조차도 이 페스티벌이 전체적으로 공연에 대해 아티스트를 배려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은 비단 좋은 음향 뿐 아니라 무대 세팅 등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메인스테이지의 경우 무대를 번갈아가며 공연이 진행되는데, 반대편 무대에서 진행되는 공연이 끝날 때쯤엔 다음 아티스트의 단독 공연을 방불케 하는 무대 세팅이 전부 다 되어 있다. 게다가 백스테이지 쪽에는 아티스트를 위한 음식이나 쉴 공간들을 최대한으로 지원한다고 하니, 아티스트가 좋아하는 페스티벌이 될 수 밖에. 물론 관객의 불편에 대한 피드백도 즉각적으로 개선하려 노력하는 편이라, 화장실 및 편의시설 부분 또한 페스티벌 기간 내내 쾌적하게 유지되었다.


CCCB내에 설치된 DAYPRO 무대
디아고날 내 메인 스테이지



올해 한국 아티스트들도 몇몇 팀이 참가했는데, 큰 무대는 아니었어도 이런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일단 아티스트 팔찌를 받을 거 아니야.... 보통 페스티벌에서 관객, 스탭, 아티스트에게 제공되는 팔찌들은 색도 다르고 모양도 조금씩 다르지만, 제일 멋있고 예쁜 팔찌는 스탭 중에서 어디든 다 들어갈 수 있는 전체 프로덕션 스탭인 AAA(All Access Allowed, 보통 금색이나 반짝거리는 재질로 만들어져 눈에 잘 띔)와 아티스트 팔찌다. 더군다나 공연 중에 촬영되는 영상에서도 아티스트 팔찌를 앵글에 잡기도 하기 때문에 더 신경써서 예쁘게 만들지 않나 싶은 건 나의 추측.

일반, VIP도 아닌 그냥 일반 관객 팔찌.


사실 말도 안 되는 불평이긴 한데, 꽉 찬 라인업만큼 공연 일정을 소화해내려는 관객에 대한 배려는 없어도 너무 없다. 헤드라이너 공연을 새벽 2시에 하는데, 끝나고 나면 4시. 그 땐 몸도 마음도 다 지쳐서 숙소로 돌아가야 하고, 그건 다음 날도 마찬가지다. 물론 관객 입장에서는 좋은 공연을 많이 누릴 수 있으니 당연히 좋은 것이지만, 말 그대로 너무 '빡세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새벽까지 진행되는 공연 스케줄에 버금가게 트램/지하철/버스가 새벽 5시까지 운행되기 때문이다. 페스티벌 기간에 특별 운영되고, 대중교통의 일반적인 아침 운행 시작시간이 6시여서 사실은 페스티벌 기간에는 대중교통이 1시간밖에 쉬는 시간이 없는 거다. 그만큼 지역 사회에서의 지원이 대단하다는 것, 그리고 새벽까지 진행되는 공연을 관객들 또한 모두 소화한다는 것. 놀라움의 연속이다.

메인 스테이지인 H&M, Heineken.


페스티벌을 여러 군데 다니기 시작하면서 뭐 판이야 잘 짜놓고 예쁘게 만드는 건 각각의 페스티벌마다의 특성도 있고, 심미적인 독특함 또한 다르지만 모두 괜찮은 페스티벌 자체를 만들어두었기 때문에 그를 완성하는 건 관객이라는 생각이었는데, 뭔 놈의 유럽 페스티벌을 찾는 이 사람들은 그런 공식이 잘 맞아떨어지지가 않았다. 우리나라 관객만큼의 절실함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이게 문화인가 싶게 다들 본인의 일행들과 잡담하고 노는 게 공연을 보는 시간들보다 더 중요해보인다는 건 사실 좀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페스티벌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관객이 제일 별로였다는 건 농담도 아니고 진심이다.



야, 떠들 거면 저기 가서 떠들어... 뽀뽀할 거면 저기 가서 해... 여기서 무대 가리고 사운드 먹을 듯이 떠들면서 하지 말고 좀... 공연보러 온 거 아니고 마약할 거면 니들끼리 저기 가서 하고 쫌.... ㅠ_ㅠ



담배 냄새가 자욱한 젊은 사람들의 혈기왕성한 페스티벌 뒤에는 가족들과 이 곳을 찾은 '가족관객', 이를테면 '애들'이 있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페스티벌 내에서 애들이 지쳐 잠들기 전까지는 진행된다(깨면 난 몰라요.). 우쿨렐레 강습부터, 구연동화 및 그림 그리기 등의 프로그램이 이루어지고, 아이들의 부모님은 옆에서 지켜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좋겠다, 니들은.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이런 곳에 데려와줄 수 있는 부모는 어떤 사람들일까, 사뭇 우리네 부모님들 생각이 잠시 났다. 본인이 좋은 건 다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영화 한 편, 공연 한 번 보는 게 사치였을 어른들은 아직 무언갈 위해 가슴이 뛸 힘이 남아있을까. 새삼 콧등이 시큰해지는 기분이었다.




프리마베라사운드의 전체 전경과 분위기, 그리고 이 때의 날씨 모두 페스티벌이 시작되는 봄, 그 소리와도 같았다. 봄 내음이 나는가 싶다가 어느 새 완연한 봄이, 그리고 무더위가 또 금방 찾아오듯이, 이 페스티벌의 서막을 장식하는 프리마베라사운드를 물꼬를 트는 것을 시작으로 유럽 곳곳에서 페스티벌이 봇물터지듯 앞뒤를 다투어 개최될테니.



그렇게 봄은 시작되었다. 화려함을 등에 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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