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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Oct 15. 2016

프리마베라사운드, 봄의 소리(2)

헤드라이너와 스테이지, 아티스트의 재발견


바르셀로나의 6월은 봄보다는 여름에 가까워져 있었다. 페스티벌 전체 일정동안 비는 단 하루도 오지 않고 쨍쨍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페스티벌 프로덕션 측에는 비가 오지 않으면 그 덕분에 전체적인 페스티벌의 문제 발생률이 줄어들기 때문에 날씨가 좋은 것도 참 복이다. 저녁엔 조금 쌀쌀했지만 낮엔 뜨거웠고, 그만큼 시원한 저녁은 낮에 뜨거워진 열기를 식히기에 충분했다.


디아고날 반대편 끝 비치클럽에는 Bowers&Wilkins sound system 무대에서 디제잉이 이루어지고, 옆 잔디밭에서는 볕만 조금 따갑다 하면 태닝을 하기 위해 눕거나 짐을 맡기고 바다에 해수욕을 하러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바다에 가는 사람을 위해 타올과 사물함을 사용하는 건 디포짓을 받지만, 실제 사용료는 부과하지 않고 짐을 찾고 타올을 돌려주면 디포짓을 그대로 돌려준다. 혹시 모를 분실에 대한 부분을 관리하기 위해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적어두는 정도로 운영되고 있었다. 비치클럽엔 잔디밭으로 위에 설치된 무대에서의 디제이가 틀어주는 디스코 음악을 들으며 햇빛, 바다, 술, 음식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에헤라디야, 여기가 천국이로구나.



페스티벌의 메인 스테이지 중에 하이네켄의 이름을 딴 스테이지가 있다는 건, 알만한 사람을 이미 알겠지만 페스티벌의 공식 맥주가 하이네켄이라는 거다. 대부분의 바에서 맥주 뿐 아니라 보드카, 럼, 위스키 등도 같이 취급하기 때문에 그 중엔 바카디가 페스티벌 내에 큰 부스로 들어와있었다. 비치클럽 쪽은 메인무대와 거리가 좀 있고 가려면 다리 하나를 건너야 하는데, 메인무대들이 옹기종기 내륙 쪽에 모여 계속 공연이 번갈아가며 이루어지고 있다면 비치클럽은 먹고 마시고 쉬면서 노는 분위기다. 그래서 한번 가면 다시 메인 무대 쪽으로 돌아오기가 힘들고, 또 메인무대 쪽에 있다면 사실 비치클럽 쪽으로 찾아가기 위한 노력이 좀 필요한 구조였다.


프리마베라사운드 전체 맵



페스티벌의 꽃, 아티스트 중 헤드라이너는 페스티벌에 오기 만드는 원동력이면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것과 동시에 그 페스티벌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 어떤 페스티벌이냐를 정의내리는 것이기도 하다. 프리마베라사운드는 전체적인 아티스트 섭외에 장르 편향적이 아니라 여러 장르를 수용하는 편이었고, 다양한 장르를 연주하는 아티스트를 섭외했다.


그 중에 이번 프리마베라사운드의 티켓을 매진시킨 라디오헤드의 무대는 이튿날 하이네켄 스테이지에서 진행되었다. 올해 런던에서 공연을 하고, 프리마베라사운드 무대에 서는 라디오헤드의 공연은 새 앨범의 곡을 거의 다 부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셋리스트에 신곡이 가득 찼다.


나는 2012년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라디오 헤드의 무대를 한 번 접하고, 지산밸리록페스티벌에 라디오헤드가 방문했을 때는 일정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었는데 그 이후 벌써 4년이 흐른 거였다. 전 세계에서 팬들이 4년을 기다린 거다. 그래서인지 관객이 너무나 많아서 서 있는 자리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였고, 2개 무대가 놓여져있는 전체 스테이지 양쪽이 모두 관객으로 꽉 채워질 정도였다. 그들의 무대는 이젠 라디오헤드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듯한 공중에 놓인 패널에 각기 멤버들의 연주 영상을 쏘는 것과 큰 패널에 들어가는 영상으로 전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더욱 드라마틱한 효과를 주었다. 레전드라 불리는 밴드의 라이브 무대를 볼 때면, 저게 진짜 라이브가 맞는지 의심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나의 작품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라디오헤드의 마지막 곡은 다름 아닌 'Creep'이었다. 2012년 투어 때도 라디오헤드가 크립을 부르느냐 아니냐를 두고 온갖 추측이 있었지만 결국 그 땐 부르지 않았는데, 이번엔 드디어! 내가 라디오를 통해, TV를 통해 듣던 그 음악을 처음으로 라이브로 보는 거였다. 알고보니 이 곡, 7년만에 부르셨다더라구요? 징글징글한 사람들.


Radiohead, 그대들에게 건배.



그 다음 날 헤드라이너였던 시규어 로스의 무대는 Heineken의 반대편 H&M 스테이지에서 이루어졌다. 시규어 로스도 이번에 앨범을 내고 월드투어를 오랜만에 하는 것이었는데, 올해 꽤 많은 페스티벌에 라인업으로 들어가 있었다. 2013년에 한국에서 시규어 로스를 접한 이후 나도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는데, 한국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어서 체조경기장을 꽉 채운 그 때 당시가 기억이 난다. 흰 천에 영상이 흐르듯 움직이다 천이 떨어질 때 조명이 밝혀지며 그 뒤로 밴드의 연주가 점점 고조되던 그 때의 오프닝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잘 모르던 나같은 사람의 시선도 잡아끄는 다른 밴드와의 확실한 차별점이 내 기억 속의 시규어 로스가 아이슬란드의 이미지화로 각인되는 데에 한 몫을 했다고 하면 좀 비약일까.


Sigur Ros의 무대


그들의 음악은 몽환적이며 독특하지만 라이브로 볼 땐 이게 라이브를 보는 게 맞는지, 잘 만들어진 영상을 보는 건지 잘 모를 정도로 음악과 영상, 그리고 무대 세트 모두 그 3박자가 딱 떨어진다. 시규어 로스 전 무대는 반대 편에서 진행된 PJ Harvey의 무대였는데, 그 사이 무대에 어느 새 시규어 로스의 무대가 전부 세팅되었다. 감각적인 영상으로 시작된  시규어 로스의 무대는 관객들도 모두 그 음악을 보는 것 이상으로 느낀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라고 할 정도로 그 어떤 공연보다도 관객들이 멍하니 조용하게 보는 무대였다. 그만큼 시규어 로스는 머리 속에 울리는 이미지와 음악의 향연으로 가득차는 아티스트였다. 그 밤, 활로 연주하는 기타와 가성으로 울려퍼지는 노래소리가 무대가 놓인 광장을 가득 채웠다.

PJ Harvey의 무대


페스티벌의 묘미는 내가 잘 몰랐던 아티스트 중 무대를 보고 좋아할 법한 음악, 그리고 듣고 싶은 음악을 발견해낸다는 데에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 무대가 많고, 아티스트가 많은 페스티벌은 버겁기도 하지만 그만큼 발견해낼만한 것이 많아 즐거운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차려진 밥상에 안 먹어본 반찬이 없도록, 구석구석 뒤져가며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무대를 모두 돌아다니면서 귀에 감기는 음악을 찾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렸다.


Primavera stage


앞에 언급된 메인 무대 이외에도 프리마베라사운드는 해외초청 아티스트나 루키 위주로 이루어져 있는 무대인 Night Pro, 언플러그드 스타일의 공연을 주로 하는 Ray-ban unplugged를 비롯해, 디제이나 밴드 위주의 공연을 제한된 사람에게만 들어갈 수 있게 하는(표를 구매하는 건 아니지만 티켓을 매표소에서 요청해 받아야만 입장이 가능하고 티켓이 없는 경우는 기다려서 자리가 생겨야 입장, 스탠딩) Heineken Hidden stage가 소규모, 그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인 Adidas, Pitchfork가 조금 더 큰 규모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서브 스테이지라고 할 수 있는 Primavera와 Ray-ban(언플러그드와 별개)으로 나머지 무대가 이루어져 있었고, 디아고날 입구에 있는 공연장인 Auditori Rockdelux에서도 공연이 이루어졌다. 또한 비치클럽 쪽 Bowers&Wilkins는 전부 디제이셋으로 새벽까지 공연이 진행되었다.

Heineken Hidden stage
Pitchfork stage
Adidas stage


여행을 가면 언제 어디든,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난 그 중요한 '누구와'의 요소를 배제한 체로 혼자 여행을 선택했고, 그러다보니 날 움직이게 할 만한 원동력을 지속적으로 찾아야 했다. 물론 '페스티벌에 간다'는 가장 큰 목표 지점은 있었더라도 작은 움직임이 모여 큰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듯이 작게나마 무언가를 해보는 게 나름의 자극제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그 중에 하나로 이번 유럽 페스티벌 여행을 계획하면서, 페스티벌에 갈 때마다 '한복'을 입어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최근 유럽에서 한복 인증샷을 찍는 대학생 어린이들의 트렌드가 이슈가 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페스티벌이니 내 나름의 드레스 코드로 생각하고 한 군데 갈 때마다 한 번씩 입어보자고 생각해 프리마베라사운드부터 한복착장을 시도했다. 외국인들이 좀 더 관심을 보여줬으면 했는데 내가 입은 한복이 전통한복이 아니라서 외국인들에게는 기모노나 드레스 정도로 보이는 것 같아 좀 아쉬웠다. 아예 전통한복이었다면 좀 더 좋았을 걸, 내심 혼자 괜히 서운하고 그랬더랬다.

페스티벌에서의 한복


4일을 스테이지를 종횡무진하며 하루 하루가 갈수록 아쉬워지는 느낌은 모든 사람이 비슷한가보다. 마지막 날 메인 스테이지의 공연이 끝나고, 프리마베라사운드 글자에 불이 밝혀진 입구 앞에서 사진을 남기고, 못내 아쉬운 마음에 공연장 근처를 서성대거나, 앞에 있는 잔디밭 죽치고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들 모두 이 축제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싫어 그 끝을 잡고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발길이 잘 돌려지지 않아도 어쨌거나 다시 일상이다.


그리고 난 다시 다른 곳을 찾아 떠날 채비를 한다. 그 곳이 또 어디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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