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up of tea at the festival
이비싸에서 바르셀로나로 돌아가 이틀을 지낸 후 영국에 돌아가자마자 다시 짐을 꾸렸다. 빅토리아에서 코치를 타고 2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영국 최남단에 위치한 섬 '아일오브와이트(Isle of Wight)'였다.이 곳에서 열리는 '아일오브와이트 페스티벌'은 글라스톤베리페스티벌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역대 레전드의 무대로도 유명하지만, 외국인이 많이 찾는 페스티벌이라기보다는 가족 단위, 영국인들이 찾는 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외국인을 보기 드문 페스티벌이었다. 그렇게 영국인들로 거의 구성된 관객이 가득한 페스티벌을 본 건 처음이었을 거다. 더욱이 프리마베라사운드에서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며칠 간 마주치다가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영국의 최남단 섬에 옹기종기 모인 영국인들의 전통적인 모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페스티벌은, 토속적인 영국 페스티벌 특유의 느낌을 고집해온 듯해, 현재까지 그 과거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린코치라는 빅토리아 코치스테이션에서 출발해 버스 자체를 페리에 태워 페스티벌 사이트까지 데려다주는 서비스 덕에 쉽게 도착한 페스티벌 사이트에서 처음으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양쪽으로 펼쳐진 파스텔톤의 텐트가 가득한 캠핑존이었다. 팔찌를 받고 입장한 게이트 양옆으로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고, 형형색색의 부스들이 아일오브와이트 페스티벌의 첫 인상을 눈 앞에 그림처럼 보여주었다.
그리 좋지 않은 날씨와 오는 길에 내내 복잡하던 머리 속이 들어오는 길에 보이는 예쁜 풍경들 덕분에 한결 나아졌다. 영국에 있는 페스티벌은 글라스톤베리페스티벌 이후 처음 방문해보는 것이어서 어떤 게 비슷하면서도 다를지 궁금했었는데 아일오브와이트는 페스티벌 사이트 자체도 더 작은데다가 분위기 자체가 더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 워낙 글라스톤베리의 부지가 넓어서 그런 것이지, 실상 아일오브와이트도 작은 규모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전체적인 페스티벌의 디자인이 그 규모를 작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에 한 몫하는 듯 했다.
입장게이트부터 메인 스테이지까지의 거리는 꽤 멀었지만, 내부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둘러보고 싶어져 들어가자마자 배낭을 멘 채로 길을 따라 쭉 올라갔다. 캠핑존이 이리저리 흩어져있을 거라 생각했던지라 좀 더 메인스테이지와 가깝게 자리를 잡으려던 것도 있었지만, 양옆에 늘어서 있는 구조물들이 발걸음을 그리로 이끌었던 것도 있었다. 작은 스테이지들도 가는 길 양옆에 나타났는데 그 중 가장 시선을 강탈하던 것은 곳곳에 있는 놀이기구였다. 그 덕에 페스티벌엔 흡사 놀이동산을 가져다 둔 것 같았는데 그 종류도 많은 편이었고, 규모도 제법 컸다.
아일오브와이트페스티벌은 70년대부터 시작되어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 페스티벌인만큼, 굵직한 레전드 아티스트 위주의 헤드라이너가 편성되어 있었고, 서브스테이지는 디제이나 현재 각광받는 아티스트가 주로 포진되어 있었다. 그에 걸맞게 더 후(The Who), 퀸+아담 램버트(Queen+Adam Lambert), 페이스레스(Faithless), 스테레오포닉스(Stereopheonix), 이기팝(Iggy pop) 등의 아티스트가 메인 스테이지에 섰다.
밥 딜런의 무대 등의 전설과도 같은 이름들이 이 스테이지에 섰던 그 시간을 지나 2016년이 된 아직까지도 매년 쉬지 않고 무대를 올린다는 것은, 페스티벌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얼마나 의미가 깊은 일일까. 생각해보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무언가가 여러 사람에게 회자되고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그걸 만드는 사람에게 그 컨텐츠가 그만큼 큰 의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누군가에게 의미가 된다는 것도 그만큼 만든 사람에게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오게 되지 않을까.
스테이지와 가깝게 텐트를 쳐보겠다는 내 바람은 고사하고 배낭을 맨 채로 스테이지 가까이 갈 수록 캠핑존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돌아온 일반 캠핑존으로 가는 길은 입구로 들어오자마자 오른쪽으로 가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사실은 캠핑존은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가장 먼 곳이었던 셈이다. 이정표를 그냥 지나친 덕분에 메인스테이지까지의 여정을 거쳐 다시 돌아가야했던 캠핑존에는 다행히 텐트를 칠 여유가 아직은 있어 보였다. 캠핑을 하는 페스티벌에 가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당연히 캠핑존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치는 것인데, 몇 번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페스티벌에 가서 텐트를 칠 때 내가 제일 많이 고려하는(혹은 고려하게 된) 것이 몇 가지 있다. 그것은 아래에 나열해본다.
(1) 캠핑존 입구 쪽과 가까울 것
- 캠핑존에서 나갈 때도, 돌아올 때도 간편하다.
(2) 씻는 곳 및 화장실과 거리는 멀지 않되 너무 가깝지는 않을 것
- 씻으러 다녀오는 길이 험난할수록 오고 가는 길이 귀찮아질 수 있기 때문, 화장실은 너무 멀지 않아야 취침 전이나 아침 기상 이후 화장실로 갈 때 덜 불편하다. 그리고 너무 가까우면 텐트 쪽까지 (이동식 화장실이기 때문에 냄새가 불가피하게 날 수 밖엔 없다.) 냄새가 날 수 있으므로 너무 가까운 곳은 피한다.
(3) 많은 사람들이 한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 근처에서는 조금 떨어져 자리를 잡을 것
- 이미 그들끼리 낚시의자로 '여기 우리 자리요'하고 원형으로 모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의 자리를 만들어두기 때문에 모임 자체가 어느 정도의 숫자인지는 대략 보인다. 그리고 보통 그네들은 아침에도 저녁에도 지칠 줄 모르고 떠들기 때문에 피곤한 텐트에서 밤잠을 설칠 수도 있다. 안 그래도 잠들기 어렵다는 건 이미 알만한 사실이니 이 부분은 굳이 설명하진 않겠다.
별 것 없는 캠핑용품으로 효율적인 캠핑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 정도의 고려사항들에 대략 맞는 곳을 찾아 텐트를 쳤다. 2인용 텐트는 그리 큰 면적을 차지하지 않아 어디든 슬쩍 끼워넣어 칠 수 있을 정도였다. 텐트를 치고, 짐을 두고 나니 다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았지만 잠시 앉아 재정비를 하고 다시 스테이지로 향했다. 봄이 늦게 찾아온 영국의 6월 페스티벌 첫 시작인 아일오브와이트는 역시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나도 덥질 않았다. 직전에 뜨거운 스페인의 햇살을 받으며 여행을 하던 것과 사뭇 다른 날씨의 영국은, 그래도 낮엔 조금 해가 뜨고, 밤엔 비가 조금 뿌리는 정도였다. 여름이라고 하기엔 가을 밤을 맞는 느낌이었다.
첫날이 지나 아침을 맞이했을 땐 시끌벅적한 소리에 스스로를 깨울 수 밖에 없었다. 텐트에서 잠을 이루는 것도, 추운 새벽에 잠을 다시 청하는 일도 이 여름에 내가 내내 맞아야 할 과업과도 같아서 내 스스로를 벼랑으로 몰아가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견딜만한 날씨에 첫 날 저녁은 잘 난 듯 해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텐트 밖으로 나왔을 땐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옆 텐트에서는 캠핑을 하는 그 와중에 주전자에 물을 끓여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정말 영국스럽다' 싶게, 지나가며 안부를 묻고, 서로를 칭찬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서로 욕을 흠씬 하는 그들이 왠지 모르게 정겨웠다.
아이들부터 나이가 지긋해보이시는 어른들까지 같은 공간에서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 건 똑같아보였다. 시간이 멈추어진 곳, 그 네버랜드에서 사람들은 제 각기 그 시간을 살고 있었다. 구름이 하늘에 그림처럼 덮였고, 잔디밭에서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과 자유롭게 누워있는 사람들은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그들의 평화로운 시간을 방해받지 않았다. 왜 난, 우리나라에서는 하는 행동마다 옆 사람을,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그리 연연하고 의식하는 걸까. 누군가 날 '이상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볼까 걱정하고, 남과 '다르다'는 것이 부정적인 것이 될 때, 스스로 그 '정상'이라는 울타리 안에 날 끼워맞추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인가.
사실 모든 사람은 서로 각기 다르게 이상한 게 아닐까, 그걸 인식하지 못하도록 사회 안에서 무뎌짐의 주사를 맞고, 개개인의 고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교육을 우린 은연 중에 학습했고, 그렇게 사는 법을 체득해왔다. 그게 사춘기를 유예시키며 기성세대처럼 살기 위해 노력해온, 늦깎이 청춘의 고뇌가 절절히도 아픈 이유지 않을까. 내 나름의 개똥철학에 의하면, 그래서 그런지 이 놈의 사춘기를 못 겪어내어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자꾸 내 갈 길을 몰라 헤맨다. 물론 모두 초보의 일상에서 날 감당하는 방법을 매일 배우며 사는 게 일반적인 사람의 삶이라지만, 그래도 더 고민해야 할 시기에 고민하지 않는 건 결론적으론 할 일을 미뤄오다 게으름의 미성숙한 나를 대면해야 하는 순간엔 나 자신을 나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른다.
올해만 해도 데이빗보위, 프린스와 같은 굵직한 아티스트의 죽음이 연이어 있었다. 페스티벌 한 켠엔 그들을 기리는 연주로, 음악을 트는 무대로 영원히 지지 않을 음악계의 별들을 추모했다. 그 음악에 대해 열띤 반응으로 화답하는 관객을 보며 그들의 죽음이란 어떤 의미일지, 조금은 궁금해졌다. 특히 프린스보다도 영국 음악과 패션의 선두에 섰던 데이빗보위의 죽음은 유럽 각지에서 충격적인 소식이었겠지만, 그에 대한 파장은 어디보다도 영국에 가장 클 터였다. 페스티벌 여기저기 보이는 보위의 마스크나 번개모양의 장식 등이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에게도 직접 오지 않는 충격을 조금 빗대어보자면 마이클잭슨과 휘트니 휴스턴의 죽음을 연달아 접했을 때의 것과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겐 또 데이빗 보위가, 혹은 프린스가 그런 역할을 하겠지.
낮에 잠시 무대 뒤쪽에 펍처럼 마련되어 있는 자리에 맥주 한잔을 사서 앉아있으려니, 악센트가 거센 아저씨들이 말을 건다. 그 아저씨들은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했었나보다. 일본 사람일지 중국인일지, 혹은 한국인일지가 궁금했던 모양인 그 아저씨들은 본인들끼리 누가 맞았는지를 이야기해가며 그래서 북한에 대해선 어찌 생각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내게 묻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이 사람들은 첫 번째부터 묻기 시작한다.
생각 외로 어디서든 'Where are you from?'이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게 내가 출신지가 어디인지도 맞지만, 런던에서 뭘 타고 왔는지를 묻는 것인 경우도 사실상 굉장히 많다. '런던에 살고 있는데, 난 한국인이야', 라고 답하면 가장 정확하게 답을 하는 게 되려나. 그럼 늘 되돌아오는 답변, 'Whereabout, North or South?'
사실은 들을 때마다 지긋지긋한 물음이고,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은 묻지 않을 질문인 그 말이 나의 뿌리를 깨닫게 하는 순간으로 재정화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이라는 곳 자체가 분단 국가이다보니 우리가 말하는 한국이라는 곳이 남한과 북한으로 분리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린 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외국인들에게는 Korea는 북한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고, 그 말인즉슨 그만큼 한국이라는 곳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정말 없다는 뜻이기도 한 거니까. 그럴 땐 지구촌이라 하는 세계가 굉장히 크고 멀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시간이 멈춘 섬에서의 축제는 3일간 지속되었다. 각기 분장을 하고, 앨리스 인 원더랜드의 캐릭터와 같이 옷을 입은 사람들과 평범하듯 평범하지 않을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섬에 가득히 울려퍼지는 음악과 내 옆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순간들.
이 시간이 이 공간 안에서의 '나'를 온전히 나답게 할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곱씹어지는 으슬으슬한 또 하루의 밤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