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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Mar 07. 2017

두번째 글라스톤베리페스티벌

여름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뜨거운 무대.

으슬으슬 추웠던 간 밤엔 있는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잤다. 6월의 여름, 캠핑, 페스티벌이 맞는 건가, 이렇게 추운데! 축축해진 텐트의 입구를 여니 심지어 바깥공기가 텐트 안보다 조금 나은 것 같았다. 밖에서 자는 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은 느낌에 지난 밤 내가 한 게 캠핑인지 노숙자 체험인지 좀 헛갈리는 기분이었다. 축축한 영국 날씨에 하는 캠핑은 3일 정도가 한계다. 절대 한 번을 거르지 않고 꼭 오는 비 때문에 텐트가 완전히 마를 날이 없고, 심한 경우 바닥에서부터 물기가 계속 올라오기 때문에.




몸을 일으켜 기억을 더듬어 샤워실이 있던 키즈필드로 향했다. 가끔은 게을러도 될 것 같은 캠핑이지만 그래도 샤워는 해야 밤새 웅크렸던 찌뿌둥한 몸이 조금이나마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꽤 걸렸다. 샤워를 해도 발과 다리가 답답한 장화를 신지 않을 수 없고, 옷이 진흙에 또 더러워져도 그러려니 할 수 밖에 없다. 그냥 여기가 그런 곳이다.



샤워 후에 훨씬 상쾌해진 몸을 이끌고 다시 텐트로 돌아가 타임테이블을 확인한다. 페스티벌에 오면 어느 정도 계획을 세워야 대략적으로라도 이동경로를 잡을 수 있으니 그리 하는 편이지만 미리 계획을 세우긴 사실 어렵다. 그리 꼭 할 필요도 없기도 하고. 새롭게 알게 되는 아티스트도, 우연찮게 발견하는 음악도 이 곳에서 누릴 수 있는 우연의 재미이니 그런 여지는 늘 남겨둬야 하니까, 라고 말하는 건 내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수법 중에 하나지만 꽤나 그럴 듯한 변명이다. 몇가지 해야 할 일로 (1) 스테이지 전부 다 가보기 (2) 볼만한 아티스트 챙겨보기, 이렇게 두 가지 정도만 생각해두었다. (실상 무계획과 매한가지) 사실 이 외에는 뭐든 하면 어떠랴라는 생각으로 어깨에 무거운 짐을 좀 내려놓고 편히 있고 싶었다. 물론 공연이든 페스티벌이든 그 장소에 도착해서는 숙제와도 같은 부담감으로 여기저기를 뜯어보기 시작하는 건, 내 몹쓸 버릇인지 잘 고쳐지질 않지만 오롯이 '관객'으로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거니까, 좀 마음 편하게, 즐기자, 놀자라는 생각이 컸다.



타임테이블을 보다보니 참 난감하다. 낮에 진행되는 공연은 별 문제가 없는데, 밤에 공연을 하는 헤드라이너들이 문제였다. 보통 한 페스티벌에서 하루에 한 팀을 봐도 넘칠만한 헤드급 아티스트 세 팀이 각 스테이지에서 같은 시간에 공연을 하는 거다. 첫 날은 뮤즈, 디스클로저, 시규어 로스가 같은 시간에 공연이 잡혀 있었다. (근데 이건 좀 심하지 않니, 쫌.) 뮤즈 공연은 최근 한국에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뮤즈의 오프닝부터 중간까지 공연을 보다가 셋 리스트가 거의 비슷한 듯 해 디스클로저가 공연하고 있는 아더스테이지로 향했다. 스테이지에 도착하니 그레고리 포터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Holding On'을 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형제, 디스클로저하면 떠오르는 그림으로 보던 그 얼굴이랑 참 다르다. 음악에서 주는 느낌과도 다르게 차분하고, 말도 굉장히 조리있게 잘하는 훈남들이다. 얼굴보다 음악이 더 많이 알려진 EDM DJ에 대한 내 편견같은 것이었을까, 똘끼 넘치는 듀오일 것 같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미안해, 오해해서.





헤드라이너의 공연이 끝나면 제각각 사람들은 여기저기 DJ가 음악을 틀 거나 밤 사이 연주하는 곳을 찾아 흩어진다. Arcadia의 거미는 양 옆으로 하늘을 향해 불을 뿜고, Block 9이나 Common Ground와 같은 클러빙 위주의 스테이지 쪽은 사람이 넘쳐 들어갈 수조차 없다. 사람들은 조촐히 모인 스테이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라틴댄스를 배우기도 하면서 밤을 지새운다.




역대급의 계속되는 비로 인해 글라스톤베리페스티벌 부지는 이미 첫 날 이후부터는 진흙탕을 넘어서 갯벌처럼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웅덩이가 생기고, 중간중간 찐덕찐덕하게 굳어버린 진흙밭을 지날 땐 심한 경우 장화가 바닥에 잡혀버려 움직이지 못하거나 신발이 심지어 벗겨지는 경우도 있었다. (벗겨진 신발을 놔두고 다음 발걸음이라도 떼면, 으악!) 뭐라도 떨어뜨리거나, 넘어지기라도 하는 순간엔 최악이다. 나도 Shangli-la 쪽으로 들어갔다가 장화를 신은 발이 아예 진흙바닥에 딱 붙어 옴짝달싹하지 못해 지나가던 사람이 구제해주기까지 했다. 그 곳이 그 안에 있는 Hell과 Heaven스테이지의 중간이었는데, 말 그대로 Hell(...)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밤에 열심히도 스테이지를 찾아 부지런히 이동 중이었다. 그 중에 한 명인 나도 중간중간 장화 안에서 혹사당하는 발을 좀 쉬게 해주려고 앉을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가서 일단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자리에 좀 앉고 나면 다리며 허리며, 몸이 아려오기 시작한다. 워낙 이러니 이 놈의 페스티벌에서는 체력이 제일 중요하다는 게 맞는 말이다. 여행도, 페스티벌도 내 몸 하나 잘 가눠두어야 한다. 그래야 더 충분히 더 누릴 수 있다.




둘째 날의 헤드라이너는 아델이었다.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와서 보던 이 무대에 섰다는 아델은 글라스톤베리 무대에 선 것을 매우 영광스러워하며 감격해했다. 그 감격을 격하게 욕으로 표현해가며, 그 욕과도 비슷할 것 같은 마음을 후벼파는 듯한 목소리가 그 넓은 곳을 채웠다. 사람들은 그 목소리에 떼창으로 화답했다. Hello, from the outside.





그 무대를 꿈꿔온 아티스트들이 피라미드 스테이지에 당당히 서면서 그에 대한 감상을 하는 것을 보자니 그들에게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상황을 거쳐 지금의 그들이 되어 있을지는 내 머리 속에서 생각하기에도 벅찼다. 당장 집구석에서 기타를 들고, 피아노를 치며 음악을 만들고 있을 미래의 아티스트에게는 꿈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큰 것일 그 무대에 서는 그 날은, 어떤 기분일까.






레프트 필드(Left Field) 쪽에서는 매년 강연이나 프로그램 등이 음악공연과 번갈아 진행되는데, 마지막 날에 프로그램을 지나가는 길에 들르기로 했다. 페스티벌 기간동안 키즈필드 쪽에서 아이들이 시나 글을 쓰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모양인지 그 결과물을 아이들이 돌아가며 낭독했는데, 그 고민이 '세계를 바꾸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꽤나 심오하다. 그 내용을 들으며 지역사회의 교육에 대해 앉아있던 현 교직원도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것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해 속상한 마음이 좀 들면서, 괜히 뭉클한 마음까지 드는 내가 주책같았다. 교육이 교육으로 바로 서고, 아이들도 이상을 꿈꿀 수 있는 곳. 현실가능성에 지레 겁을 먹고 빠르게 포기시키거나, 꿈을 비웃지 않는 곳. 나이에 맞게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일탈도, 꿈꿀 자유도 주어지지만 우리에게는 더 빠르게 기성세대나 어른이 되도록 사회가 종용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졌다.



프로그램 종료 후 진행을 이끌어간 스탭에게 '안 된다, 어렵다고 했지만 이렇게 섭외와 진행까지 대단히 해낸 그들에게 박수를'이라 고마움의 인사를 하는 것을 보자니, 이 사람들도 이 이상적인 일을 하기 위해 얼마나 현실과 싸워왔을지 상상되었다. 영국의 예술가를 보아오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면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부분이 우리나라와 정말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이 '예술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차이'였는데, 그 일을 한다는 말을 했을 때의 반응이 영국에서는 '너 정말 멋진 일을 하는구나,'였다면 한국에서는 '그거해서 나중에 뭐 먹고 사니, 일치감찌 정말 재능있는 게 아니라면 다른 길 알아보는 게 낫지 않아?'라는 반응이 당장에 나타난다는 거였다. 강하게 내가 해내리라는 걸 보여주겠다고 그 길을 밀어붙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사람이 그 무대에 설 자격이 주어지는 거겠지만.


나한테 몇 년 뒤 이 무대 설 거라니까 병신, 지랄하네 했던 놈들, 나 여기 서 있는데?


올해 페스티벌에서 안 보이는 곳이 거의 없던 제스 글린(Jess Glynne)이 피라미드 스테이지에서 한 말이다. 걸크러쉬를 뿜뿜하는 그 언니, (언니 맞죠?) 내 스타일이다. 진짜. 누가 뭐래도, 어떤 '극딜'을 당해도, 내가 그보다 훨씬 더 나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의 짜릿함은 그를 이겨내온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과도 같은 것일 거다.




글라스톤베리의 마지막 헤드라이너는 콜드플레이. 이 날 같은 시간에는 얼쓰,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가 다른 무대의 헤드를 맡았다. 런던에서 다녀온 콜드플레이 콘서트와 비슷한 셋리스트로 진행된 공연은 페스티벌답게 콘서트보다도 더욱 더 뜨거웠다.



이 날의 압권은 특별히 마련된 비지스(Bee Gees)와의 콜라보레이션 무대였는데, 'Staying Alive'를 연주하는 순간엔 80년대 디스코장으로 관객을 데려다놓았다. 콜드플레이의 음악은 글라스톤베리의 어둑어둑한 하늘에 조명과 함께 뿌연 무지개색으로 빛났다. 영국이 외로운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페스티벌에서의 자유와 포용, 누구라도 상관없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페스티벌 스피릿이라고, 그걸 기억하자는 말을 할 때 듣고 있던 관객들이 호응하며 박수를 치던 모습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환기시켜주었다. 브렉시트로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게 되는 방향으로 국가의 운명이 정해졌지만, 글라스톤베리에서는 너와 내가 달라도 서로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은 어두워진 하늘을 향해 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질척거리는 비와 진흙, (사실은) 거지같은 캠핑 환경에 치여 내가 어디에, 왜 왔는지도 잊을 뻔했었던 찰나에 이 얼마나 다행인가, 마지막 날의 하늘을 밝힌 조명 아래서 나도 이 중에 한 명인 것이, 그리고 이 때에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



콜드플레이 공연이 끝나갈 즈음, 얼쓰윈드앤파이어 공연을 조금이라도 보고 싶어서 이동했다. 가는 길은 어둑어둑하고 물웅덩이는 질퍽거렸지만 그 사이로 들리는 그 특유의 그루브한 음악이 내 귀를 때렸다. 마음이 급해져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도착했을 때는 마지막 곡을 다 끝낸 멤버들이 인사를 하면서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In the Stone' 이였으려나, 그 음악이 울리는 무대에서 손을 잡고 인사를 하는 그들이 부럽도록 행복해보였다.




마지막 날 밤은 Stone Circus의 사원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의 불빛을 보며 마무리했다. 가만히 앉아 마음 정리를 좀 할 시간이 필요해졌다. 다시금 시작할 내 여정에 중간 마침표를 찍으며, 이 곳에서밖에 느낄 수 없을 알싸한 진흙과 바람냄새를 맡으며.



무대는 각 사람에게 별도로 주어진다. 그 위에서 어떤 것을 만들어내든 그 공연은 그것대로 가치가 있고, 완성도가 있으며, 유니크하다. 나도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나 스스로를 나로서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이 순간을 지나 언제 어떻게 무대에서 흩뿌려지는 꽃잎처럼 화려하게 장식될 수 있을지, 그게 어떤 형태일지 모르지만 그 끝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렇지만 그 끝에서도 뭐가 없으면 어떠랴, 현재를 사는 내가 지금 이 곳에 있고 내 무대는 지금 한창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니까. 그걸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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