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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Mar 23. 2017

로스킬레, 이 미친 사람들의 축제여.

유럽페스티벌프로젝트#4. 덴마크의 이면을 발견하다.


텐트를 쳤다. 작은 텐트 하나를 칠 곳을 찾을 때까지도 꽤 돌아다녔다. 

캠핑촌이 정말 '개판'이다.


아직 한창 페스티벌 기간 중, 아직 공연도 시작 안 했는데 이미 폐허.



로스킬레 페스티벌. 덴마크의 최대 페스티벌이기도 하지만 그 특이성의 명성이 자자하기 때문에 사실 더 궁금했던 페스티벌이기도 했다. 다른 페스티벌이 일반적으로 3-5일 정도인 것과 다르게 로스킬레는 8일동안 진행되는 데다가, 그 중 반은 페스티벌 전야제처럼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된 후 공연이 4일 간 진행된다. 페스티벌 내 여러 프로그램 중 단연 유명한 것이 '누드달리기'인데,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프로그램들이 끝난 게 많아서, 그 적나라(?)한 현장을 만날 순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낚시의자 놓고 모인 사람들은 같이 게임을 하기도 하고, 술을 먹으면서 세상 걱정 전혀 없어보인다. '니네 며칠 째 이러고 있는 거니'라고 묻고 싶게 다들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것 같다. (중간에 축구공도 나한테 한번 날아왔어........ 옛다, 놀아라)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이 끝나고 집에 가서 텐트를 빨아 마르는 대로 다시 짐을 싼 나는, 덴마크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런던 루튼 공항으로 향했다. 4일간의 캠핑과 더불어 행군을 방불케하는 진흙과의 사투를 벌이느라 도저히 바로 로스킬레로 향할 만한 체력이 아니었던지라, 하루는 코펜하겐에서 묵으면서 조금 회복을 하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비행기를 타자마자부터 이륙을 하는지도 모르고 잠이 들 정도였다면 그 몸 상태는 안 봐도 이미 뻔한 거였다. (눈을 뜨니 난 상공을 날고 있고, 난 누구, 여긴 어디? 그러고 또 금세 기절.)



코펜하겐 공항 도착!
쾨벤하운 중앙역




코펜하겐 공항에서 중앙역으로 가서 숙소에서 짐을 풀고 난 후 나와 둘러본 코펜하겐의 저녁은 생각보다 북유럽의 여름치고도 빠르게 찾아오는 것 같았고, 곳곳에 있는 반지하의 상점들이 정겨웠다. 어둑어둑해지면서 여기저기 불을 밝힌 레스토랑과 펍의 야외에서, 숍 안에서 모인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며 술을 한잔씩 기울이고 있는 여유있는 모습은 첫 날에 맞이한 덴마크의 첫 인상으로 기억되었다.




하루동안 코펜하겐 시내를 둘러보기로 한 김에, 이튿 날 디자인 박물관과 히피들이 사는 곳으로 알려진 '크리스티아나'를 방문하기로 했다. 어슬렁거리며 걷기 시작한 코펜하겐 시내는 매우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거리며 오래되었을 법한 건물들 또한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이었고, 길 사이 사이에 강과 운하를 걸어 코펜하겐 시내를 눈에 담았다.


디자인 박물관은 영국에서 발급받았던 국제학생증 덕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는데,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이 쇠로 된 토큰같은 것이어서 입장 시에 보여주고 나올 때 반납해 티켓을 100% 재사용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하고 있었다. (다른 티켓의 경우에 별도의 티켓을 발급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박물관 안에 놓인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탁자나 의자부터 색감이나 모양 등에서 왜 '북유럽 = 디자인'이라고 말하는지를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덴마크의 디자인은 특출나지는 않지만 사용 시에 더 좋은 모양새로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드러나듯 드러나지 않은 은근한 매력이 있어서,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괜찮지만, 눈치채주면 더 좋을 츤데레같은 느낌이었다. 사실은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견뎌야 할 만큼의 소위 '간지나는' 것을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멋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멋 안에 깔려 있을 '사용자의 편의'가 더욱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지 않나. 겉만 멋진 것은 처음엔 입에 달지도 모르지만 뒷 맛에 씁쓸함이 남아 더 이상 갖고 싶어지지 않게 되기도 하니까.  




덴마크어를 몰라도 이건 'Kiss me'


디자인 박물관을 나와 걷다 강과 마주쳤다. 저 멀리서 오페라 가수들이 노래하는 소리도, 그에 화답하는 박수소리도 들렸다. 잠시동안이긴 했지만, 해가 강에 비춰 반짝거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나와서 햇빛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북유럽에서는 더욱 더 짧은 시기일 낮이 긴 이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디자인 박물관에서 본 덴마크 특유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철학 자체가 코펜하겐 도시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 했다. 코펜하겐의 모습은 꼭 말끔하게 수트를 잘 차려입은 사람의 단정한 뒷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운하 길을 지나서 도착한 크리스티아나는 그 자체로 너무나 다른 공간이었다. 가는 길에서부터 하나 둘 벽에 그래피티가 그려진 것을 보고 '여기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 크리스티아나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흑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흑인들보다도 더 검은 것 같아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들이 그냥 얼굴빛이 까만 게 아니라, 꼭 은행털이 강도들이 쓸 법한 까만 마스크를 쓴 채 위협적인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게 사진을 찍지 말라는 무언의 표시였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난 내가 시공을 넘어서 어디론가로 온 줄만 알았다. 그 언젠가 일본 후쿠오카에 가서 예의바른 사람들과 깔끔한 도시를 보고 일본의 기본적인 예의의 문화가 대단하다고 느낀 이후, 저녁에 포장마차를 찾으러 갔다가 그 주변에서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미끼를 찾아 헤매는 홍등가의 여인들과 줄줄이 앉은 넥타이를 멘 아저씨들이 빠찡꼬를 하고 있는 모습을 접했을 때의 당혹감과도 비슷한 기분이었을까.



지켜보고 있다.



크리스티아나는 곳곳에 마리화나를 파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사진찍는 것을 금지하며, 이 판매상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까만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사진찍지 말고 그냥 즐겨'라고 벽에도 여기저기 그래피티가 되어 있었다. 독특한 느낌을 주는 이 동네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주거지역이어서, 안 쪽으로 쭉 더 가다보면 집들이 강가에 접해있다. 





색색으로 칠해진 건물들과 바 바깥에 놓여진 탁자에 앉아 사람들 모두 맥주를 한 병씩 들고 편안하게 대화하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어디든 볼 수 있는 흔한 유럽의 풍경이라지만, 더 편안한 것 같은 모습이랄까. 여담이지만 '7 years'를 부른 루카스 그래함(Lukas Graham)도 이 지역 출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 몽환적인 색채의 음악을 한다는 추측을 하는 듯 했다. 


크리스티아나의 그 독특하고 다소 충격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주변을 둘러보다 마주친 가정집들은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안이 훤히 보였는데,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대조적이면서도 생경한 느낌을 주었다. 그들은 복잡해보이고 어두울 것 같은 바깥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아보였다.




덴마크의 완전히 상반된 인상은, 로스킬레에서도 계속되는데....



이 때까지는 아무 것도 몰랐다.



그래, 그 때까지 몰랐던 것이었을지, 몰랐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었는진 몰라도, 결론적으로 내가 마주한 곳은 깔끔함과 질서정연함의 반대편에 자리할 법한 숨겨진 덴마크의 이면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해도 될 지 모를 일이었다.


크리스티아나의 소울을 공유한 것 같은 그 무질서함의 정점에 서 있는 곳, 로스킬레 말이다.




로스킬레 기차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팔찌를 받아 들어간 공연장 내부는 경악 그 자체였다. 지나가면서 쌓인 쓰레기와 벌써 망가진 것 같은 텐트와 의자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음악을 중구난방 다 틀고 있는데 다들 그런 것엔 아무도 신경쓰고 있지 않고 있었다. 이 분위기에 적응 못 하고 있는 사람은 그저 나 한 명 뿐인 듯 했다. 





페스티벌 사이트 안에 들어간 첫날부터 공연이 시작되었다. 며칠동안 프리파티로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이 거의 마무리되고 공연을 제대로 진행하는 첫날의 헤드라이너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였다. 다섯 개 정도되는 무대에서 진행되는 로스킬레페스티벌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어도 메인 스테이지인 오렌지 스테이지가 주는 이미지가 매우 강한 느낌이었다.



로스킬레의 메인 스테이지 'Orange stage'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공연이 진행되는 오렌지 스테이지에 사람들 사이에 낑겨 있자니 단차도 없는 벌판에서 공연을 보기가 안 그래도 쉽지 않았는데 내 앞에 신난 커플 하나가 신나도 너무 신난 모양이다. 맥주 잔을 흔들흔들, 컵 안의 술은 넘실넘실하다 못해 뒤에 있던 나한테 다 쏟아진다..... 소리 하나 못 지르고 (오 마이 프레셔스) 가죽자켓 위로 쏟아지는 술을 보며 '어, 어-' 하는 와중에 눈이나마 마주친 그 사람에게 '너 술 나한테 다 쏟았는데?'라며 한 마디 겨우 한 나에게 '아, 그래? 하하하하'라며 그새 바로 떼창을 하는 데에 더 집중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니 내가 바랄 걸 바랬어야지 싶어지다가도 난 왜 그 쉬운 '악' 소리를 하나 못 지르나, 미련한 날 책망하기나 했다. 


근데 그렇지, 여기가 페스티벌인데 얘들처럼 미친 듯 신나게 놀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디까지나 정신 똑바로 붙잡고 있는 이성적인 내가 이상한 사람일 수 밖에 없는 거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문법과 이상한 생활을 이해 못 하는 다른 세계의 사람.





영국의 페스티벌보다는 산뜻한 잔디가 아직은 보존되어 있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해먹이나 조형물, 벤치 등이 충분하게 제공되고 있는 편안한 느낌으로 첫 날의 로스킬레의 전체적인 인상은 마무리되는 듯 했다. 서브스테이지인 Arena에서 하는 Wiz Khalifa 공연이 끝난 후 돌아온 캠핑촌은, 안 그래도 어둑어둑해서 텐트 자리를 되찾으러 가기가 어려웠다. '분명 여긴데, 여긴데' 싶어 비슷한 자리를 맴돌기를 몇 여분, 원래 텐트를 친 곳에서 비스듬히 대각선 방향의 다른 텐트 뒤 쪽에 있는 내 텐트를 드디어 발견했다.



응? 왜, 여기 앞에 있던 게 왜 저 뒤로 가 있지?

.......

응?


......어?!?!!!?



멘탈붕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신조어의 사용법을 경험으로 제대로 익히는 순간이었다. 아니, 그냥 사실은 그럴 정신마저 없었다. 일단 텐트를 열어 구석구석 혹시라도 없어진 게 없는지 뒤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누군가가 옮겨둔 게 분명했다. 텐트 안에 두었던 배낭, 매트 모든 게 텐트를 옮긴 흔적을 남기며 여기저기 쏠려있었다. 누구의 짓이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심지어 옮겨진 자리는 캠핑촌 군데 군데 놓인 큰 스피커가 자리한 바로 앞 쪽이었다. 조명에 음악까지 밤새도록 켜두는, 출력은 거의 클럽 한 쪽에 설치된 앰프 정도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캠핑촌을 쩌렁쩌렁 울릴만한 것 말이다.



음악은 누가 디제이가 되었든 상관없다. 

근처에 텐트를 친 누군가가 계속 음악을 튼다. 

일렉트로닉 음악이다. (쿵치쿵치쿵치쿵치) 

텐트가 웅웅 울린다. 

조명도 계속 텐트에 들어와 빛이 계속 스며든다. 

잠을 도저히 잘 수가 없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늘 밤은 이미 늦어 뭣도 보이지 않는 캠핑촌에서 텐트를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가, 스탭을 찾기에도 어려워보여 이 밤은 뜬 눈으로 지새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일은, 내일은. 

화가 나다 못 해 결국은 화가 나는 것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새벽 4-5시쯤 음악이 멈춘 것 같다.

그 때부터 온몸으로 오는 피로를 느끼며 눈을 다시 감았다. 



아, 대체 뭐하는 동네지.

여기 뭐야! 이 미친 사람들만 가득한 것 같은, 이 미친 동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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