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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 Nov 10. 2017

제50회 몽트뢰재즈페스티벌 (1)

찬란한 50년의 시간, 그럼에도 호수처럼 잔잔한. 그 염원의 곳.

몽트뢰는 몇년 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생중계를 해주던 그 해, 라디오를 들으며 너무나 가고 싶어졌던 곳이었다. 한달간 재즈를 연주하는 페스티벌이라니, 그런 별세계가 어디 있담. 본격적으로 몽트뢰를 앓았던 건 마일즈데이비스 트리뷰트로 허비행콕, 마커스밀러, 웨인쇼터가 몽트뢰재즈페스티벌 홈페이지에 턱하니 걸렸을 때가 가장 심했을 거다. 심지어 그 해인 2013년에는 프린스도 공연을 했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몽트뢰 재즈페스티벌이 등재된 것도 이 해였다.



휴가를 여길 갈까, 생각은 했지만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나에게 있어 스위스는 너무도 먼 곳이었다. 그저 심리적 거리가 너무나 멀었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휴가를 가는 그 며칠을 얻기조차 어려운 시간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쉬는 며칠의 시간조차도 마음놓고 어디론가 갈만큼의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던만큼, '가지 못하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몽트뢰이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멀고도 멀었던 몽트뢰는 내 그 다음 목적지가 되어 있었고, 2016년의 50주년이라는 타이틀은 몽트뢰재즈페스티벌을 가는 당위성을 부여해주었다.

 


티 인 더 파크가 끝나고 글라스고에서 찾아간 스위스의 풍경은 비가 내리고 날씨는 쌀쌀했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제네바에서 기차를 타고 로잔에서 기차를 한 번을 더 갈아타야 하는 브베라는 곳에 숙소를 잡았다. 몽트뢰와 버스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브베는, 찰리 채플린이 사랑했던 도시로도 그 명성이 있는 곳이다. 브베에서는 5일간 머무르며 한달동안 진행되는 그 페스티벌에 잠시동안 몸을 담그기로 했다.




브베에 머무르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해주는 대중교통 승차권 덕분에 별도의 비용이 없이 몽트뢰까지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20분 정도를 가니, 음악이 들리고 몽트뢰재즈페스티벌이라고 적힌 아치가 보인다. 아치 쪽으로 약간의 내리막길을 가면 레만호수가 있고, 호수를 둘러싼 음식 벤더들과 간이 무대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외부 공연장에서는 12시부터 공연이 시작되었고, 유료공연장은 저녁에 공연을 시작하는 터라 티켓부스를 4시부터 열었다. 당일 공연을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은 몇 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당일에 소량 판매되는 매진 공연의 티켓을 사기 위해 기다려야 했다.



호수를 빙 둘러싼 길엔 메인 공연장인 오디토리움 스트라빈스키가 있는 큰 공연장 건물도 있었지만, 천막처럼 세워둔 간이 공연장이나 밤에 DJ가 음악을 트는 클럽같은 곳들도 중간중간에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자리한 벤더들에서는 각국의 음식과 기념품 등을 판매했고, 공식 머천다이즈를 판매하는 부스도 야외에 별도로 있었다. 벤더들을 구경하며 쭉 호수를 따라 올라가다보니 탁 트인 레만 호수에서 도시의 전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그 곳에 서 있는 동상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프레디 머큐리였다. 살아서 그리 사랑했다던 몽트뢰의 한 가운데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마이크를 들고 선 그의 역동적인 동상은 잔잔한 호수와 대비를 이루고 있었지만, 이 조합이 잔잔하듯 역동적인 재즈와도 닮아있다는 느낌이 스쳤다. '마음의 평화를 느끼고 싶다면 몽트뢰로 오라'고 했던가. 죽어서도 그 곳에 세워진 그의 동상 덕에 그는 지금 평화로울까.



날씨는 그리 좋지 않아서 비가 올 것만 같았다. 밖에서 들려오는 연주소리를 뒤로 하고 메인 공연장의 매표소로 향했다. 맥스 주리(Max Jury)와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의 공연이 있어 줄을 서서 티켓을 샀다. 공연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의 연령대나 출신은 제각각으로 보였다. 온 가족들이 함께 온 사람들이 있었고, 홀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재즈가 좋아서 온 사람들도, 스위스에 온 김에 페스티벌에 들러본 사람들도 있는 듯 했다.



유료로 진행되는 공연은 오디토리움 스트라빈스키 외에 재즈클럽, 재즈랩의 이름으로 두 개의 공연장이 더 있었다. 공연마다 두 팀이나 세 팀의 아티스트를 조합해 공연이 진행되었다. 오디토리움 스트라빈스키에서는 가장 인지도가 높고 관객 동원의 규모가 큰 아티스트 위주로 공연이 진행되었고, 재즈클럽에서는 좀 더 스탠다드 재즈 아티스트가, 재즈랩에서는 실험적인 사운드 위주의 아티스트가 공연을 했다.




티켓을 사고 호수 주변을 다니면서 MD를 사고 음식을 사먹노라니 호수의 보트 선착장에 재즈보트라고 쓰인 게 보였다. 몽트뢰에 오면 재즈를 연주하는 보트나 기차를 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보트는 내가 머무는 동안 맞는 일정이 없고 기차는 모조리 매진이었다. 몽트뢰 기차역에도 가서 티켓을 살 수 있는지 물어봤지만 불가능했다. 그러나 아직 기회가 더 있다고 생각하고 아쉽지만 다시 호수길로 되돌아왔다.




몽트뢰의 무료로 진행되는 프로그램 중에 워크샵도 있는데, 꼭 가보고 싶었던 것이 마커스밀러의 워크샵이었다. 스트라빈스키에서 하는 공연 전에 들러보기 좋은 5시에 예정되어 있었고, 베이스나 재즈 퍼포먼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로 워크샵을 하는 강당이 가득찼다. 1층에 3-40명 정도, 2층도 비슷한 수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진행된 워크샵에서 마커스밀러는 본인이 세션으로 참여했던 시절부터 마일즈 데이비스와 작업했던 때, 그리고 솔로 활동 때까지를 언급하며 연주를 곁들여 진행했다.



워크샵은 기본적으로 질의응답 위주로 진행되었고, 세션으로 베이스 연주를 하는 것과 솔로 연주를 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대해 기본적인 연주자의 자세와 하모니에 대한 대답으로 귀결되었다. 쫀득하고 강렬한 연주로 유명한 마커스 밀러가 말하는 좋은 연주는 '음악에 도움이 된다면 얹되, 하모니를 해친다면 빼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치기어렸던 화려한 애드립에 대한 큰 형님들의 멱살잡이와 협박에서 얻은 교훈이라고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했지만, 기본을 무시하지 않고 전체적 앙상블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면서도 본인의 색채를 더하는 것이 그가 현재의 위치에 설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었다. 중간중간에 그가 들려준 즉흥 연주 또한 대단했다. 마커스 밀러는 베이스기타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는 이미 레전드 중 하나였지만 음악과 하나가 되어 있다 못해 손가락에서도 베이스기타 소리가 날 것만 같은 그의 연주를 보다보니, 저 사람의 지금을 만들어내었을 집념과 노력이 새삼 더 멋져보였다.



연주의 법칙과도 같은 하모니를 위한 애드립은 비단 재즈를 연주하는 아티스트만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삶의 조미료가 필요하듯, 기본의 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을 애드립이 즐거움을 허락해주듯 말이다. 그것은 그냥 우연만이 아닐 거고, 의도된 방향으로 얻어진 결과에 대한 기쁨을 증폭시켜줄 수도 있지 않을까.



티켓을 공연장에서 팔찌로 교환하고 줄을 섰다. 오디토리움 스트라빈스키의 좌석은 1층은 스탠딩, 2층이 좌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2층 좌석이 적다보니 보통 온라인 상으로 매진되고, 1층 스탠딩에 한해 당일에 소량으로 판매하는 거였다. 당일에 구매가 가능했던 티켓은 98프랑의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저렴한 티켓이었다. 들어가보니 그리 공연장이 크지가 않았다. 몽트뢰라는 이름에 걸맞게 엄청난 무대 스케일을 생각했던 나로서는 아담한 공연장의 크기를 보고서는 생각보다 조촐한 곳이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생각해보니 호수 옆으로 늘어서 있던 부스들이나 야외 무대에서도 느꼈던 그것과도 비슷한 거였다. 유명하고 요란할 듯 했지만, 정적이고 조용한 듯한 의외의 모습 말이다.



생각보다도 스탠딩에 사람이 많아서 재즈 공연인데 이렇게 막 몰아넣어서 서서 봐도 되나 싶긴 했어도 콩나물처럼 다닥다닥 붙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연을 기대하는 얼굴들로 무대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 귀를 의심할만큼의 소리에 웃음이 비실비실 비집어나왔다. 아니, 여기 음향은 어떻게 소리를 잡길래 이렇게 좋을 수가 있지...? 내가 좋은 귀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확연히 차이가 있는 좋은 소리였다. 이 때까지 가봤던 공연장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음향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내가 몽트뢰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순간이 오디토리움 스트라빈스키에서 연주되는 곡이 처음 흘러나왔던 그 때라도 해도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50년을 이어온 세계적인 페스티벌의 자존심임을 내 감각기관을 통해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초반에는 멍하니 무대를, 천장을, 음향장비들을 번갈아쳐다보기만 했다. 소리에 취하는 순간을, 그로 인해 멍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했다. 맥스 주리의 중성적이고 몽환적인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다. 감탄사는 그럴 때 무심결에 뱉어져나오는 소리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리 감동도 놀람도, 나에게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된 지 오래이기도 하고, 더군다나 감동도 잘 받지 않는 사람인터라 이 때까지 많은 페스티벌이나 공연을 보아오면서 사실 그리 더 놀랄 것도 없다 싶었는데 이 때의 충격은 이 때까지 것과는 좀 다른 방향이었다. 의심스러우면서도 당황스러우면서도,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진짜 자극인 것 같았다. 그런 자극이 심지어 자주 있던 것이 아니어서 더 생소하고 놀라웠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잠시동안 촌스러웠던 놀람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니, 첫번째 공연이 끝난 이후에는 셋 체인지를 하는동안 쉬는 시간이 있었다. 그 사이 2층까지 빼곡하게 찬 공연장을 둘러보았다. 위에서 보면 1층이 꽉 차서 더 멋져보일 것 같았다. 처음 둘러보는 페스티벌은 적응 기간이 조금 필요하고 위치와 운영 방식들을 파악하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데, 그런 부분을 감안하지 않아도 몽트뢰는 공연이 많은 데다가 일정을 조금 길게 잡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일정이 바뀔 여지가 있을 것 같아 티켓을 미리 구매해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게 더 잘 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첫 공연이 끝나고 나니 더 강하게 들었다. 몽트뢰재즈페스티벌은 에딘버러페스티벌처럼 많은 참가작 중에 고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음악페스티벌에서의 며칠동안으로 집약된 타임테이블을 늘려 더 많은 상차림을 한 데 담은 것 같았다. 잠시동안 스트라빈스키에서 본 공연 덕에 재즈클럽도, 재즈랩도 전부 궁금해졌다. 각각의 공연장에서는 어떤 맛을 낼 것인가.



두번째 스테이지의 주인공 라나 델 레이는 노래를 부르는 인형이라는 수식어로 예쁘다고만 칭찬하기엔 아쉬울 정도로 이미 그녀의 음악에는 특별한 아우라가 있었다. 비단 외모에서 오는 느낌만이 아닌 음악에서조차도 복고스러운, 레트로한 느낌이 있었다. 최근 팝 가수 중에 5-60년대의 컨셉을 전면에 가져와 퓨쳐재즈라는 이름이라고 해도 재즈를 앞세운 아티스트가 있는지를 떠올려보려니, 노라 존스 이후에 나타난 대중적이고 젊은 다른 아티스트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전에 비해 재즈가 다른 트렌디한 장르에 밀려 예전만큼 그리 대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독자적인 장르를 선택해서 저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그녀는 영리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고집이 있다고 해야할까. 미국에서 '영국판 아델'이라고도 불리며 아델과 비견되는 가수라고 하지만, 내가 느꼈던 그들의 차이는 분명했다. 내가 느꼈던 아델은 좀 더 R&B와 록의 사운드에 접해있다면, 확실히 라나 델 레이는 재즈에 맞닿아있었다. (그게 결론적으로 뿌리를 같이 한다고 해도 말이다.) 넋을 놓고 바라보던 무대가 끝이 났다. 공연이 끝났는데도 한참 아쉬운 마음이다. 사람들이 나가며 비어가는 공연장의 모습을 보니 이 곳도 꽤 크구나 싶어진다.


공연이 끝난 후 12시부터는 재즈클럽을 개방해 새벽까지 연주를 했다. 테이블에 맥주든 와인이든 놓고 모르는 사람도 좋으니 옆 사람과 이야기도 했다가, 음악도 듣다가, 사람 구경도 하는 이 시간이 비로소 내가 몽트뢰에 왔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다. 이래서 그 때 그 곳에 있던 그들이 행복해보였구나 싶어진다. 그래서 오고 싶었던 거였구나하고, 그 때의 내가 왜 그토록 이 곳을 열망했는지를 다시 깨닫는다. 브베로 옮겨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떼어 숙소로 향하면서도 나에게 여기 머무를 시간이 아직 좀 더 있음을 위안하며, 쌀쌀한 날씨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어느새 나직이 '좋다'라고 혼자 읊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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