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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7분 소설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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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May 28. 2016

#소낙비가 내릴 때

그 속으로 가세요

 무더웠던 한여름날의 이야기다.

 우리 집 골목 맨  안쪽에는 아버지의 사촌 누나가 살았는데 우리는 그녀를 고모라고 불렀다.  그 집은 장독대가 엄청 컸는데 장독마다 간장. 된장. 고추장. 장아찌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집 안주인은 깍두기를 잘 담갔다.

 엄마는 열병에 걸린 어린 딸을 간호하고 있었다.

 19**년 그 해 여름은 석 달 내내 더웠고 가뭄이 들었다.

 친척들과 바다에 갔다 온 이후 일사병에 걸렸던가. 열병이 나서 몇 날 며칠을 열에 시달렸다. 선풍기조차 틀지 않은 좁은 방은 무척 후텁지근했다.  땀으로 눅눅한 몸을 뒤척이며 무거운 머리를 들었다 놨다. 머리에 커다란 돌을 달아놓은 것만 같고  머릿속이 안갯속처럼 뿌연 것이 갑갑하였다. 울고 싶은데 울음마저 열에 잠겼다.

 그때 갑자기.

  지붕 위에서 "톡톡 툭 투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팎으로 조용하던 방 안에서 그 빗방울 소리는 무척 크게 들렸다. 그리고 창문에 굵은 빗방울이 비치는가 싶더니 갑자기 투닥투닥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리고 또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 갑자기 쏴아~하는 소리와 함께 빗줄기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슬레이트 지붕에 따발총이 쏟아지듯  요란한 빗소리가 지나가고 천둥이 번쩍 하며 어두워진 방안을 조명처럼 밝혔다가 사라지곤 했다. 바람을 따라 수많은 빗줄기들이 아픈 아이를 깨우듯 차례로 지붕을 요란하게 밟고 지나갔다. 며칠간 열에 지쳐 누운 아이는 귀를 뚫어주는 빗소리와 후텁지근한 방안으로 시원하게 스며드는 찬 공기에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바깥의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이는 어느새 그 비 가운데 서 있었다. 배추 잎에도, 떡갈나무에도, 돌담 위에도, 장독대에도, 기와지붕에도, 누구 집 세숫대야가 바람에 불려 가며 내는 소리도.. 각양각색의 빗소리가 어우러지는 그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그  "쏴아 쏴아~"하며 쏟아지는 빗소리가 아이의  몸속 열기를 식혀주기 시작했다.

어린 딸은 몸을 뒤척이며 힘없는 목소리를 냈다.


"엄마. 밥.. 밥 줘."


옆 방에서 아이 소리를 들은 엄마는 부랴부랴 밥상을 차렸다.

잠시 후 소반에 놓인 쌀밥과 국 그리고 간장 종지에 담긴 깍두기.

 밥상 위에 놓인 빨간 깍두기의 시큼한 냄새가 아이의 후각을 자극했다.

며칠 동안 죽도 못 먹은 아이는  얼굴이 해쓱하니 여위었다.

 그녀는 고모집 깍두기가 맛나게 익었다며 아이 밥숟갈에 얹어 먹여주었다.

 아이에게 깍두기 한 종지는 타는 목을 시원하게 적시고 시큼하게 씹히는 무의 질감이 죽어가는 입맛을 살아나게 하였다.

 아이는 자꾸만 밥이 먹고 싶어 졌다.  깍두기 종지는 금방 비워졌다.

 그녀는 깍두기 접시를 비우며 딸이 밥 먹는 게 기뻐서 고모집 안채 장독대에 깍두기를 뜨러 빗 속을  또 달려갔다 왔다. 그날 저녁에도 딸은 또 시큼한 깍두기를 찾았다. 그녀는 또 빗속을  걸어 깍두기를 얻어왔다.


"깍두기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엄마의 파머머리에는 빗물이 대롱대롱 달려있었다.

아이는 고모네 집 큰 장독대 안에서 키가 제일 작은 단지 안에 깍두기는 없고 국물만 남아 있는 것을 상상했다.

엄마는 지나치게 깍두기를 많이 가져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참 용하게도 그렇게 깍두기 다섯 종지를 먹은 다음 날부터 아이는 서서히 열이 내렸다.

열기로 뜨거워진 대지를 적시던 그 빗줄기가 아이의 열병을 식혀주고 입맛도 살아나게 하였던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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