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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7분 소설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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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Oct 29. 2015

 #솥뚜껑을 잡은 여인

 초등학교 6학년이던 어느 날,

 영희는 교실 책상을 같이 쓰던  친구 명희 집에 놀러 갔다.

새 학년이 되어 친하게 지내었건만 집이 멀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그날 같이 가게 된 것이다.

명희 집은 산 위 가파른 길을 많이 올라가는 외딴곳에 있었다. 집 옆에는 밭도 있고  염소도 두 마리 메어져 있었다. 도심 속의 전원처럼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두 소녀가 열린 대문을 들어섰을 때 송아지만 누렁이가 갑자기 쇠줄을 들썩이며 미친 듯이 짖어댔다. 

영희는 놀라고 무서워서 친구 옆에 엄마야 하고 숨어버렸다. 그때였다.

아주 느린 화면을 보는 것처럼 손에 호미를 든 여인이 그들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명희가 그녀에게 "엄마"라고 불렀다. 

 그녀는 한 마리 곰처럼 느릿느릿 걸어서 왔는데 아주 먼 거리를 걸어오는 것처럼 기다리기에 갑갑할 정도였다. 앞에 다가온 그녀에게 

 영희가 명희 뒤에서 얼굴만 내밀어 인사를 꾸벅하자 그녀는 딸애의 친구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았다.

가까이서 본 명희 엄마의 얼굴은 마치 만화에서 보던 도라예몽 같다고 영희는 생각했다.

 명희의 제지로 잠시 조용해진 개를 보며 영희가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순간 개는 다시 몸을 들썩이며 영희를 향해 짖어대기 시작했다. 눈에 눈곱이 끼고 땟물이 꼬질한 개의 이빨이 사납게 드러났다. 영희는 고함을 빽 지르며 다시 친구의 등 뒤로 숨었다.

그때였다. 이 엄마가 누렁이 앞에 대고 발을 땅바닥에 한 번 "쿵!"하고 세게 굴렀다. 땅을 울리는 그 소리의 육중함에 놀랐던가 누렁이는 귀를 번쩍 세우는가 싶더니 후다닥 자기 집으로 숨어버리고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보통 엄마들은 자식의 친구들이 왔다고 하면

네가 우리 딸 친구구나. 공부는 잘하냐.  부모는 뭐하시냐. 어디 사냐 등등 속사포처럼 물어보며 몸 전체가 뚫어지도록 탐색하기 마련이다.

그런이 엄마는 한 번 씩 웃을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배터리가 다 닳아 새로 충전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의 여자였다. 두 손을 앞으로 가져가서 모으고 번득이는 눈으로 긴장하며 바라보던 영희는 이내 마음이 편해져 옴을 느꼈다. 그렇게 개를 한 번 혼내고 난 후 그녀는 티셔츠 위에 꽉 끼는 낡은 니트조끼를 덧 입고  꽃무늬 몸빼바지를 입은 체. 개 집 옆에 있던 바가지를 들고는 어슬렁어슬렁 집 뒤로 걸어가 버렸다.

알아서들 놀아라는 듯이.

소녀들은 그제야 대청 마루에 가방을 던져두고 마당 구석에 있는 토끼에게 풀과 당근을 주고  대문 밖에 갓 자라난 상추를 뜯으며 재미있게 놀았다.

그런데 곰 엄마는 그동안 딸의 친구에게 무엇인가를 대접하려고  했던가 보았다.

 명희는 엄마가 고구마를 삶아준다고 했다면서 영희의 손을 잡아 부엌으로 이끌었다. 집 뒤편에 있던

부엌은 ㄱ자형 재래식으로  부뚜막에 아궁이가 세 개나 되었다.

 그리고 큰 아궁이에는 검고 큰 솥단지가 걸려있었다.

그런 큰 쇠솥은 텔레비전 사극 드라마에서만 보던 것이었다. 

아궁이 속 장작불은 마지막 뜸을 들이는 듯 희미한 불빛을 보이며 꺼져가고 있었다.

 엄마 곰은  머릿수건을 하고 아궁이를 불쏘시개로 휘젓다가 아이들을 힐끔 보는  듯하였다.

 부뚜막 검은 솥에서 허연 김이 연기처럼 솟아올랐다. 고구마 삶는 냄새가 부엌에 가득 찼다.

 새끼곰들이 부엌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엄마 곰은 새끼들이 배고플까 봐 본능적으로 그랬을 것이다.

갑자기 허리를 펴고 일어서더니 성급하게도 뜨거운 솥뚜껑을 크고 넙적한 맨손으로 들어 올렸던 것이다.

 무척 뜨거웠을 텐데...행주도 없이.


 보통 사람들은  "앗 뜨거워~ "하는 소리와 함께 솥뚜껑을 잽싸게 내려놓게 마련인 것을.

 이 여자는 맨손으로 잡았던 뚜껑을 들자마자 익은 고구마는 확인도 안 하고 도로  살짝 덮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천천히 내뱉는 것이었다.


"씨.. 이.. 바..ㄹ."

다소 무뚝뚝하고 감정이 없어 보이고 둔하기까지 해 보이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 한마디는 그 어느  것보다도 강렬하게 영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곰 엄마의 마지막 배터리 충전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이 강렬하고 웅장한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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