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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7분 소설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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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Sep 15. 2015

#섬으로 날다

 

  그해 여름. 뉴스에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여느때보다 덥다고 했다. 이 땅의 무더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곳을 잠시 떠나고 있었다.

그녀는  북적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항의 모습을 뉴스로 보면서 애써 침착했다. 아니 막상 여행을 떠난 뒤부터 이어지던 고생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며 집이 제일 편해라고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그 위안이 어느날부터 무색해지고 있었다. 그녀가 가장 편안하게 여겼던 둥지가 실은 너무 좁다는 사실과 그것의 안락함이 일상의 모든 것을 접고 떠나지 못하는 자의 위안일 뿐이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도 둥지를 떠났다.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을 날았다. 섬이었다. 그곳의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관광객들로 만원이었다. 섬의 한적한 분위기는 십 년 전에나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녀가 가려는 친척집은 섬 속의 섬이어서 한결 조용할 것이었다.  배를 타기 위해 공항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을 더 달렸다. 작은 섬으로 향하는 터미널에도 때를 잡아 여행을 시작한 사람들로 꽉 찼다. 그렇지. 그녀는 아직도 여름이 끝나지 않은 9월의 초순임을 기억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피해 배의 맨 위층으로 올라가 시퍼렇게 갈라지는 바닷물과 저 멀리에 다가오는 섬에 눈길을 주었다. 출렁이는 바닷물과는 상관없이 조용히 잠든 것 같은 낮은 땅이었다.


  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였다.

 친척집에 여행가방을 풀고 하얀 모래가 있는 바닷가로 향했다. 여름의 뒤끝이라 해변에는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거나 발에 물을 담근 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젊은 도시 여인은 신발을 벗고 빛나는 모래더미 속에 맨발을 넣었다. 여기 모래는 지압에 좋았다. 도심 속을 거닐던 그녀의 연약한 발이 하얗게 표백된 모래알 속으로 쑥 빠졌다. 다양한 크기의 모래가 발바닥을 엄청나게 쏘아대기 시작했고 여자는 팔짝 팔짝 뛰었다. 하얀 모래에 반사된 태양빛은 벌침처럼 사람들의 드러난 맨살을 쏘았다.

그렇게 모래밭을 거닐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시간을 보내니 해변에 그늘이 지고 어느덧  바다는 텅 비었다.  섬을 떠나는 마지막 배는 섬을 채웠던 차와 사람들을 다 태우고 떠나버렸던 것이다.


순간 먼 옛날 신비로웠던 원시의 바다가 나타났다.  바다는 수면 위로 얇고 보드라운 비단을 넘실대며 한낮에 사람들의 발아래 뒹굴었던 모래알들을 가만히 쓸어주었다. 태양은 뜨거운 입김을 거두고 그늘을 드리우며 모래사장에 홀로 앉은 여행객의 마음을 깊은 심연 속으로 끌어가는 것이었다.


 저 멀리에서부터 길게 타원형으로 이어진 모래밭은 예전에 비해 모래 양이 줄어든 게 확연했고 사람들이 버리고 간 시커먼 고무보트에는 찢어진 헌 옷과 모터가 모래에 반쯤 묻힌 체  이 태고의 바닷가에 문명의 흔적을 남긴 체 침묵하고 있었다.


 해안가를 따라 지어진 펜션과 식당 등 현대식 건물들은 자연이 빚어낸 검은 빛 바위들과 흰색의 자갈들과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색채를 이방인처럼  마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휩쓸고 간  텅 빈 해변가에는 피부병에 걸린 떠돌이 개와 먹을 것을 찾는 회색빛 고양이가 어슬렁 거렸다. 종일 여행객들에게 장사를 하고 분주히 움직였을 식당의 주인들은 때 늦은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여자는 황혼이 비치는 해변길을 돌아 숙박할 집으로 가면서 길 아래 바닷가에 웅크린 구멍이 숭숭한 검은 바위들을 내려다 보았다. 오랜 세월 바닷바람을 올올이 담아내며 그것들은 몸에 수많은 구멍을 내었을 것이다. 그 미세한 바위구멍 안에는 수만 가지 속내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바람과 모래알들의 몸부림과 고둥들과 조개들의 터전이 되어준 바위들의 듬직함이 오랜 세월을 견딘 내공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조금은 끈적한 바닷 바람을 맞으며 그녀는 맨발로 길바닥을 걷는다. 식어가는 한 낮의 뜨거움이 온기로 남아 발바닥을 감싸주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섬의 항구에는 종일 차량들을 실어나르던 도선의 휴식이 있었다. 조용히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는 동안 낯선 이방인을 무심하게 보아주던 집들과 돌담길과 마늘밭과 바다가 어둠 속에 조용히 사라져갔다.


  그녀 또한 도시에서의 자신을 잠시 잊고 덩그러니 남겨진 자신을 발견할 때 그녀 안의 그녀를 마주해온 섬에서 하루를 마감하며 지친 날개에 다시 날아오를 힘을 얻었음을 느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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