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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7분 소설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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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Dec 10. 2015

#비(B)양의 일일(一日)

비양은 어려서 천식을 앓았다.

천식은 깊은 바닷속에서 숨을 못 쉬는 답답함 같은 것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불치병이라고 할 수 있다.     

비양은 큰 병원이란 병원의 천식 클리닉은 다 다녀보았으나 완치되지 않았다. 그래서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반에서 몸도 마르고 키가 작은 편에 속했다. 그리고 호흡곤란 증세로 늘 고통을 받았다. 그때 비양의 어머니는 지인으로부터 천식치료를 잘한다는 병원을 소개받게 된다.


먼 지방에 있던 그 병원은 천식약을 직접 조제해 주사하는 곳이었다.

비양은 어머니의 강요로 그곳에서 천식 주사를 한 달간 맞게 되는데 그 주사로 인해 갑작스럽게 체중이 풍선처럼 불어났던 것이다. 약 부작용이었다. 비양의 몸은 비좁은 비닐에 물을 꽝꽝 채운 듯 터질 듯 살이 트고 갈라졌다. 되돌릴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돌이킬 수 없었다. 게다가 소개받은 지인의 자녀들은 부작용이 없었으므로 비양의 체질을 탓했을 뿐, 그녀의 어머니는 천식은 나았으니 다행이라고 위안을 하였다.     

 그러나 비양은 천식이 그 약으로 치료되었다고 생각지 않았다. 저절로 나이가 들어 나았거나 아니면 얼린 홍시 한 박스를 먹고 큰 가래 덩이를 뱉어냈던 그 이후에 나았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문제는 그때 그 이후부터 비양은 비만체질로 바뀌어버려서 그 어떤 걸로도 살이 빠지지 않았다. 운동, 경락마사지, 걷기, 굶기 등등... 누가 옥수수수염 달인 물이 좋다고 해서 먹으면 몸이 되려 퉁퉁 붓고 그 붓기는 살이 되었다. 누가 한약을 지어먹으라고 해서 한약을 먹으면 생리과다에 생리불순이 이어졌다. 비양은 몸의 어딘가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아노미에 빠진 것이라고 단정을 내렸다.

그러나 다행인지 비양은 외모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20킬로 이상 불어버린 몸을 보면서도 

살을 빼려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보다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빠질 살도 아니었다. 그녀의 몸은 약물로 인해 불어난 육체가 마치 단단한 실리콘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대학에 가서도 비양은 다이어트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부모 곁을 떠나 살면서 되려 살이 더 쪘다. 아니 약의 부작용이 계속 작동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비양은 요즘 말하자면 청년기 무취업자에 해당했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 하지만 어떤 무식한 사람들은 비양의 대학을 지잡대라고 불렀다. 그녀가 보기에 굳이 대학의 서열을 따지자면 그보다 못한 대학이 훨씬 많았다. 그러면 그 많은 학생들은 쓸모없단 말인가? 학벌과 지성은 같지 않다고 비양은 무수히 외쳤다.

그러나 졸업생은 많고 회사의 문은 좁다는 것을 알고도 대학의 문을 들어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최소한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 그것만으로 차별을 받고 싶지는 않은 심사이기도 했고 또 다른 것을 해야 할 때 학벌 제한 기준 같은 것에서부터 쓴 맛을 봐서는 안 된다는 가족들의 강력한 주장 덕분이었다. 그렇게 대학문을 나섰지만 예견했던 대로 그녀를 불러줄 직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까 캠퍼스에서 4년을 버틴 비양에게 남은 것은 졸업장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대학 졸업장을 돈을 주고 산 기분이야."

“그런데 이 대학의 졸업장이 이만한 가치가 있어?”     

사회에 평균치는 되기 위한 조건부 충족을 위해 그 많은 돈을 대학에 퍼붓다니.. 차라리 그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고 그녀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라도 일자리를 얻는 것조차 비양에게는 힘들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쉽게 취직이 안 되는 이유를 살찐 몸매 때문이라 생각했고 늘 다이어트를 강요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그녀에게 다이어트를 강제할수록 비양의 마음속엔 반항심만 생겨났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 후 1년.. 2년.. 3년이 흐르는 동안 비양은 자격증만 세 개나 땄다.

바리스타. 논술. 제빵사... 그것도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서 한 것이지. 비양이 원해서 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때 쯤이던가. 아무 능력도 없이 보였던 비양에게서 타고난 능력이 발견되었다.

하루는 정수기 물맛이 달라졌다며 생수를 사서 마시는 딸을 보며 그녀의 어머니는 정수기 회사에 전화를 걸었고 자신이 판매하는 정수기가 최고라고 자랑하던 사장이 직접 필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그러했다. 

     

“따님이 예민하군요.”     


그때서야 비양의 어머니는 그녀의 딸이 어려서부터 모든 것에 예민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감각이 바늘 끝보다 더 예민해서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던 것을.

싱크대에 몸을 숙이고 앉아 필터를 다 바꾼 사장이 일어서며 말했다.     


" 특별히 비싼 미제 필터로 갈아드렸습니다. 이젠 물맛이 좋을 겁니다. 댁의 따님같이 정수기의 물맛을 구별해내는 사람은 처음입니다. 미제 필터는 정말 고가이지만 특별히 무료로 해드리겠습니다."

      

 미제 필터 덕분인지 이전의 물맛보다 부드러운 것을 그녀도 느낄 수 있었다. 정수기 사장이 돌아간 후 비양은 그녀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자신은 여태껏 방 안에 앉아 대문 밖 복도를 걷는 가족들의 발자국 소리를 면밀히 구별해 낼 수 있었다. 몸의 체중이 어느 쪽으로 쏠리는지 구둣발을 찍어대는 각 사람의 걷는 소리들을 청각으로 분별해 내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올라오는 소리에 따라 누가 탔는지 알아내기도 한단다. 인원은 몇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등등

딸의 말을 들은 여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렇듯 예민한 세포를 가진 육체가 약의 부작용을 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해서 그 이후로 비양은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다이어트의 압박은 물론 취직에 대한 압력도 확실히 덜 받게 되었고, 주변의 간섭에서 멀어진 비양은 차츰 자신만의 방법으로 불어난 체중을 원래 체중으로 돌려놓게 되었다. 약의 부작용이 시작된 지 딱 15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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