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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7분 소설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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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Oct 01. 2015

#달빛 속에서

고독을 마주하다          

     한 젊은이가 친구들과 산에 갔다가 혼자 뒤쳐져 길을 잃어버렸다.

이리 저리 흩어져 사진을 찍다 날다람쥐가 소나무 몸통 위로 기어오르는 것을 보고 쫒아다니다 일행들을 놓친 것이다.

단풍잎이 떨어지던  가을산에서의 낮은 짧았다.먼저 간 친구들을 찾던 그는  잎이 수북한 사잇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마을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진 좁고구불한 흙길을 걷다 보니 앞에 언덕이 가로 놓였다.

 갑자기 난감했다. 낙엽이 수북하게 깔린 언덕에는 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우두망찰 산에서 얼어 죽나 보다 했는데 언덕 위로 연기 같은 게 보였다.

  급하게 언덕을 뛰어 올랐다.

 언덕을 오르니 발 아래로 갓 내린 어둠 속에 십여 채의 집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낡은 화첩 속의 그림을 보듯 지붕들이 있고 지붕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음을 놓은 그는 발걸음을 재촉해서 언덕 아래 마을로 접어들었다.

 그 마을 앞 돌다리 아래로 계곡물이 침침하게 흘러갔다.  

어느 집에 가서 신세를 질까.

잠시 후  집집마다 하나 둘 희미한 불빛이 켜졌다. 내려선 길에서 가장 가까운 집 앞에 이르자 개가 컹 짖었다. 그러나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개만 계속 짖어댔다.

  주변을 돌아보니 삽시간에 어두워지고 말았다.  길을 걷다 헛다리를 짚어 넘어지면 큰일이다 싶었다.

 집들이 여기저기 뜸하게  떨어져 어느 집에를 가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다가  불빛이 좀 선명한 외딴집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다른 집들하고 유난히 홀로 더 떨어져 있었다.

 젊은이는 거기로 발길을 돌려 가파른 길을 올랐다.

 주변에 떨어진 낙엽들이 그의 발아래 서걱서걱 밟혔다.

  대문도 없는 초가집에 도착하니 안에서 마침 가래 끓는 기침소리가 들렸다.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계시는가?

툇마루에 다가서서 계십니까 했다. 그때 창호지 문에 사람 그림자가 비치더니 문이 철컹 소리나게 열렸다.

문고리를 잡고 내다보는 사람은 흰머리와 수염이 고슴도치처럼 까슬한 노인이었다.

 "뉘요?"

"네  산에 왔다가 길을 잃어서요."

  열려진 문으로  방안의 할머니가 보였다. 나이가 둘 다 많이 들었다.

"들어오시우"

 노인은 아무 의심도 없이 그를 방 안으로 들였다.

방안에는 벌써 자려고 준비 중이었던가. 이불이 깔렸고 이불 머리 밑에는 고구마와 무가 있었다.

 할머니는 귀가 안 들리는지 젊은이가 말을 해도 못 알아듣고 그냥 손짓으로 앉으라 하고 누워버렸다.

그런 할머니의 뒤통수에 쥐꼬리만 한 머리가 둘둘 말려져 은빛 비녀가 꽂혔다.

젊은이를 들인 후 노인은 칼을 들더니 고구마를 깎는다. 생고구마를 깎고 있었던가.

 노인은 문득

"일행들은 없이?" 하면서 보지도 않고 묻는다.

"예... 조금 뒤쳐서 사진을 찍다 보니 그만.."

그는 엉거주춤 이불을 밀치고 앉았다.

"여기 따순데로 앉우."

그러고는 노인이 자신의 이부자리를 들추었다.

 젊은이는 배낭과 사진기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앉았다. 미지근한 방바닥이 엉덩이에 따습게 느꼈다.

"거기서 자고 낼 가시우. 밥은 드셨소?"

그러면서 삶은 고구마를 내밀었다. 붉은 고구마가 껍질이 일어나도록 잘 삶아졌다. 그는  고구마를 두어 개 먹고  가져온 생수를 마셨다.  

 노인은 생고구마도 잘라서 건넸다.  그는 그 땅땅하게 여문 고구마 조각을 입안에서 한참 굴렸다.

 그는 노인이 내어준 자리에 누웠다가 사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길을 잃어 긴장한 탓에 피로가 갑자기 밀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잤을까.

 바깥의 귀뚜라미 소리에 눈을 떴다.

 창호지 문으로 달빛이 새어 들었다. 어디선가  여우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방안에 새어 든 달빛은 전등 빛보다 밟게 노인부부의 방을 비추었다.  그는 갑자기 정신이 맑은 물처럼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달빛에 익숙해진 눈은 선명하게 방안의 것들을 인식하게 했다.

 벽장에 걸린 옷 서너 가지.  바느질 소쿠리.  낡은 서랍장이  보였다. 할머니는 젊은이 옆에서 등을 보이고 모로 누웠고 노인은 문가에 이불을 덮고 쭈그린 체 자고 있었다.

 젊은 그는 한참을 눈을 뜨고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람도 없고 조용한 긴 긴 밤이었다.

 깊은 산속 외딴 시골 집에,

 그는 자꾸 두 노인의 적적함을 떠올렸다.

 늦은 저녁에 노인은 홀로 무와 고구마를 깎다가 잤는지 그의 머리맡에는 그것들의 껍질이 수북하였다.

그는 순간

 이런 긴긴 밤, 두 외로운 노인을 위해 자기가 깊은 산속 어두운 마을 속으로 찾아들어온 것임을 깨달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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