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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7분 소설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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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Oct 10. 2015

#화려함의 뒷모습

   데이나 토마스라는 외국인 여자였다.


  그녀를 만나기 며칠 전, 모영은 모조품 수입가게에서  ***통 가방을 하나 구입하였다. 진품이나  다름없이 잘 만들어진 프리미엄급 가방이었다.  

진품 같은 가짜를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샀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다. 모영의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산 가방이 다 진품인 줄 알고 부러워했지만 단언컨대 모영 스스로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자 사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다만 명품의 디자인이나 박음질이 야무지고 어느 옷에든 잘 어울리는 그러한 장점들이 좋았다.

모영은 그런 식으로 모조품 가방을 서너 개 사들였다. 형편도 안되면서 카드를 긁어가며 진품을 사들이는 여자들보다 스스로는 훨씬 실속 있다고 여겼다.


 그 날은 회사 입사동기 외숙이와 약속 후 시내 커피숍에 먼저 가 앉아 있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북적였다. 커피를 주문 후 창가 2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였다. 한 외국인 여자가 모영에게로 다가오며 미소를 지었다.

유창한 한국말을 썼다.

 "안녕하세요?  데이나라고 해요. 당신은 명품을 좋아하세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모영은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그녀의 커피잔 옆에는 얼마 전에 산 모조  **리 지갑이 커피숍 포인트 카드와 함께 놓여있었던 것이다.

"아뇨....."

 모영은 테이블 위의 지갑을 가방 안에 넣어버렸다.

"네~그거 혹시 모조품은 아닌가요?"

"네?"

모영은 얼굴빛이 불쾌함으로 빨개졌다.

"아.. 기분 나빠하지는 마시고요. 음 혹시 명품 모조품을 사시는지.."

모영은 완전히 기분이 잡쳤다는 표정을 띠며 자리에 일어서 버렸다.

'대체 날 뭘로 보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깊은 바닷속 같은 파란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는 양이 모영을 질책하는 듯이 보이기도 했고 경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요즘 시대에 모조 명품 한 개 없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모조품이야 1초 백이라 할 만큼 지천에 널렸다.

 모영은 외국인 여자에게 냉정하게 등을 돌린 체 주문한 커피 한잔을 받아 들고 커피숍을 나왔다.

 

 거리에 나서자마자 여기저기  *넬이니  ***통이니 *찌니 하는 브랜드의 가방을 든 여자들이 수시로 지나친다.

모영은  생각할수록 하고많은 여자들 중에 그녀가 왜 자신을 주시한 건지 기분이 상했다.

저녁 퇴근 무렵의 시내는 사람들의 무리가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 왜 나와있어?"

멀리 친구 외숙이가 모영을 알아보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완전 기분 잡쳤다. 다른 데로 가자."

상황 이야기를 다 들은 외숙이가 깔깔 소리 나게 웃었다.

"혹시 외국 신문기자 아냐?"

"기자?"

"그래 한국 여자들의 명품취향을 취재하려는.. 아니면 모조품을 사는 여자들의 야릇한 심리 같은 것..."

"그래도 그렇지 하필 나야?"

"명품을 사는 사람들의 밑바닥에 깔린.. 상류계층에 합류하지 못하는 열등의식 같은 게 있잖아."

"난 열등의식이고 뭐고 항상 말하지만 디자인이 좋아서 쓰는 거라고 진짜는 돈 주고 사래도 싫고.."

모영은 순간 그렇게 말하면서도 진정 그랬던가 하고 자신을 의심했다.

 외숙은 그런 모영의 어깨를 감싸면서 말했다.

"흠..... 명품회사의 마케팅 전략을 위해 조사차 나온 것일 수도 있고..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

"명품회사라면 너무 턱없이 가격을 받는 것에 대한 성찰이나 좀 하라 그러지.."

"그런 대기업 마케팅 전략에 넘어가는 사람들도 문제지. 뭐."

" 아 정말. 기분 잡쳤어. 오늘은 맥주를  마셔야겠어."

"그래 우리  술 마시면서 사회적 병리현상이나 파헤쳐볼까?"

두 젊은 여자는 소리 나게 웃으며 근처 맥주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간은 자정을 갓 넘기고 있었다.

모영은 외숙과 헤어져 시내 중심가의 골목길로 접어 들었다.   모영은 쓰레기가 가득 쌓인 골목, 사람들이 안 보이는 지점까지 들어온 후 속에 있는 것을 다 게워내고 말았다.

"쳇 기분이 더러우니까 소화도 안되는군."

몇 시간 전만 해도 불을 환하게 켜고 사람들 소리로 왁자했던 시내는 하나 둘 불이 꺼지고 말았다.  밤이 깊어진 빌딩 건물의 뒷골목은 음산하리만큼 적막했다.

속엣것을 다 뱉어낸 모영은 어지럼증을 느끼며  큰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이의 작게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모영은 순간 몸을 정지했다. 머리끝이 쭈삣서는 것이다. 그러나 모영은 그 소리를 무시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래도  어렴풋하게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에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자 등 뒤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그녀는 순간 자동적으로 몸을 돌렸다.

길을 잃은 아이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발길을 아이의 울음소리가 나는 쪽으로 정신없이 돌렸다.

 골목 안으로 들어와 오른 쪽 골목으로 발을 돌리는 순간 아이의 울음소리가 딱 그쳤다.

 바람이 불어왔다. 섬뜩하니 무서워진 모영은 다시 발길을 돌려 골목을 벗어나려 했다.

"아줌마.."

모영은 갑자기 비명을 꽥 질렀다.  

아이가 그녀의 발을 잡았던 것이다.  10살은 되었을까. 남자애 한 명이 쓰레기통 옆 건물로 들어가는 문 입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모영은 아이에게 가까이 얼굴을 내밀었다. 납치를 당한 걸까?

그녀는 오싹함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기  큰길에 차들의 빵빵 대는 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그녀는 휴대폰을 덜덜 떨면서 꺼내 들었다. 여차 하면 신고할 생각이었다.

"너 여기서 뭐해?"

"아줌마... 살려주세요."

모영은 땅바닥에 널브러진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이의 차가운 손의 촉감이 모영의 심장 속으로 얼음 같은 피가 흐르듯  파고들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아이도 벌벌 떨고 있었다.

"일어서 봐... 길을 잃었어?"

모영은 아이를 잡아 일으키다가 놀라서 그만 기절할 뻔하였다. 아이의 다리가 부러져 있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어..?"

"걸을 수가 없어요..."

모영은 휴대폰의 플래시를 아이의 얼굴에 비추었다. 아이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었다.

"경찰에 신고해줄게. 어떡해.. 다리를 다친 거야?"

"아저씨들이 이렇게 만들었어요.... 아저씨들이 오기 전에 도망가야 해요."

모영은 아이가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해 폭행을 당한 것이라고 직감했다.

아이는 모영을 재촉했다. 아이의 얼굴은 공포로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보였다.

모영은 일단 아이를 업고 큰길로 나가는 것이 급선무일 거 같았다. 자신의 가방을 목에 걸고 아이를 업었다.

몇 번을 시도했으나 아이는 생각보다 무거워서 모영의 등에 잘 업히지 않았다.

그때서야 모영은 깨달았다. 아이의 다리에 차꼬가 채워진 것을.

그리고 아이의 손에 뭔가 들려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방의 버클이었다.

 모영은 울음을 터트렸다.

 "안돼. 다리에 쇠가 채워져 있어서 너를 데리고 갈 수가 없어."

그때였다.  

옆 건물 안에서 건장한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모영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심장소리가 골목 안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그 남자를 보자마자 아이는 모영의 옷을  잡고 다시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모영은 머리끝이 서는 두려움으로  온몸이 고무줄처럼 늘어지는 것을 느꼈다. 힘이 쑥 빠져져 아이를 잡아 끌 수가 없었다. 모영이 아이의 손을 놓치자마자  건장한 남자는 아이를 가볍게 안고 문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모영은 기계적으로 아이가 간 곳을 비틀거리며 따라 올라갔다. 허름한 계단을 소리 나지 않게 오르며 벽에 축축 처지는 몸을 기대었다.  겨우 계단을 다 오르자 넓은 공간에 가득 쌓아 올린 가방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가방들을 비집고 안을 보자 그 안에 아이들 수 십 명이 옹기종기 뭔가를 조립하고 있었다.

 장난감을 조립하는 줄 알고 가까이 다가간 모영은 가슴이 철렁하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 손에는 그녀의 눈에 익숙은 가방들이 들려 있었고 그 아이들은 일제히 그 가방의 버클을 달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자  많은 아이들이 고개를 들고 모영을 일시에 쳐다보았다.

아이들의 퀭한 눈들이 모영을 원망하는 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때 모영에게 도움을 구했던 아이가 말했다.

"우리는 잡혀왔어요."

그때 다른 아이가 말했다.

 "여기서 도망갈 수 없어요."

이제 다른 두 아이가 울면서 고함을 쳤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가방을 만들어야 해요."

  공장 안 아이들이 일제히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당신들이 가방을 싸게 산만큼 우리들이 이렇게 고생을 해요."

모영은 놀라서 입으로 손을 막고 뒷걸음질 쳤다.  아이들이 발버둥을 치자 다리에 채워진 차꼬들이 왈그락거렸다.  모영은 아니라고 아닐 거라고 고개를 무수히 흔들었다.

 갑자기 아이들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기계적으로 가방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공장 안에는 가방의 버클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 가득 찼다.

 그때 누군가가 모영에게 고함을 질렀다. 공장 주인이었다. 그는 무섭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면 모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눈을 떴다.

방안이었다. 아직 새벽인지 어둠이 짙었다.

꿈이었어....

 심장이 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

모영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눈에 고였던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영은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몸을 옆으로 뒤척였다.

그때  지난밤 읽었던 책이 침대 밑으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며칠 전 데이나 토마스가 커피숍에서 건네준 책 이었다.

< 럭셔리,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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