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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7분 소설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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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Oct 17. 2015

#새로운 사람들

                        

그녀는 19**대도시 조산원 205호실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우랄 알타이 어족의 피를 받은 사람으로서 몽고족의 후예답게 절대 정착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멀리 타국에서 베트콩이 쏴대는 총알 속을 뛰어다녔고 그녀의 어머니는 조선족 여인답게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리며 아이를 길러냈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진을 잘 받는 키 큰 미인이었으나 방랑자 같은 남편을 모시느라 폭삭 늙어버렸다.

 그녀는 그래도 그림책들과 바다의 파도와 모래 자갈들,  해 돋는 풍경과 넉넉한 인심 속에 둘러싸여 밝고 건강하게 자랐다.

 그녀가 12살이 되던 해.

 그녀의 아버지는 살던 곳을 떠나 작은 도시로 살림을 옮겼다.  이전까지는 대도시안에서만 옮겨 다니던  삶이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그는 아내의 의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그냥 그곳으로 옮기자 하면 떠돌이 유목민처럼 살던 천막을 거두고 남편을 따라나서야만 했다.

 검고 빛나는 머리칼에 둥글고 귀여운 얼굴을 한 동아.

 그녀의 가족이 그 작은 도시에 터를 잡고 제일 먼저 한 것은 가족사진 찍기였다.  그때 그녀에겐 이미 두 살 터울로 동생이 둘이나 있었다. 눈망울도 또렷한 흑백사진 속의 그 아이는 몇 달 후의 시간을 결코 몰랐으리라.

 동아는 여 섯살.

 그 아이는 시내버스가 막 출발하려 하자. 동네 아이들과 그 뒤를 대롱대롱 매어 달렸다. 이제 속력을 내면 버스에서 뛰어내려야 했는데 바지 멜빵 끈이 그 버스에 걸렸다. 아이는 버스의 속력을 못 이겨 손을 놓고 머리를 땅에 부딪혀 질질 끌렸다.

짧은 순간.

 그녀가 학교서 수학 문제를 못  풀고 교실 뒤편에 가서 섰을 때.

  아이의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친구와 소주잔을 부딪혔고.

 동아 엄마는 그 순간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며 괜스레 허한 마음을 추슬렀다.

그의 바로 형 성아가 동네 아이들과 짖고 까불고 놀다가 넘어지던  그때.

그녀의 막내 동생 동아는 그렇게 죽었다.

그녀는 이 슬픈 기억의 페이지를 넘기고 또  빨리 넘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기억만은 절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삶이 금이 갔던 것. 아니 지진이 나듯 그렇게 벌어졌던 것.

 그 갈라진 틈새가 이어져 특급품이 안되어도 좋았다.  그런 금 같은 건 아예 생기지 않았어야 좋았을 것을.

그  작은 도시, 차가운 땅에  동아를 묻고 그녀의 남은 가족은 일 년도 안되어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사춘기에 도달했던 그녀는 침울한, 괴로움과 비애 속에서도 망각의 힘을 빌어 동아에 대한 기억을 차츰 잊었다.

 다시 돌아온 고향의 바닷가는 모든 게 그대로였다.

 다시 넓은 바다와 거기에서 뛰어오르는 고기떼. 망망대해 수평선에서부터 자잘하게 부서지는 햇살. 언덕같이 솟구치던 태풍이 지나간 후의 바다. 자갈을 좌르르 쓸어내리며 깊은 물속으로 끌어가는 파도의 물갈퀴.  끊임없이 밀려드는 물이랑 들이 바위를 때리고 물러날 때 자기도 또한 바위같이 끄떡 앉는 이해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해 한바탕 철썩철썩 휘갈기고 넓은 바닷속으로 같이 들어가는 평안을 느꼈다.

 

 그녀는 19**년  38살이 되던 해 다시 큰 바다 곁을 떠나 작은 도시로 이사를 왔다.

 인생의 수레바퀴는 전혀 예측하지 않은 길로 들어서게 마련인 것을 그녀는 그때 깨달았다. 예전처럼 완강한 누군가의 고집대로 움직인 것이 아니었기에 마음 놓고 원망할 대상도 없었다.

 그래서 좁고 갈 곳 없는 타지에서 그녀는 무력하게 자신을 구겨 넣었다.

 늘 시간이 오후  두 시에 가까워 오면 그녀는 단조로운 현실이 주는 나른한 분위기에 젖어 어깨 근육통이 도지려 하였다. 밖에 나가 산책을 하려다가도 어제 본 사람과 오늘도 보는 아줌마, 할머니들,  어제 갔던 길을 걸어 그저께 마주쳤던 그 사람들을 또 보고 계속 반복되는 바다와 산과 밭과 차도들.

시내라고 한 바퀴 도는데 삼십 분도 안 걸리는 거리의 지도를 그녀는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그냥 드러누울 때가 많았다.

 낯익은 택배기사가 마트 가는 길에서 짐을 부리고 있고 쌍욕을 해대던 택시기사가 몸서리쳐지게 싫었는데 어느 날 그 택시를 또 타게 되고, 옷가게 주인은 누구의 언니고 갈빗집 주인은 누구의 친구고.

 윗집 사는 사람도 앞 동의 사람도 아파트 경비실 아저씨도 다 그녀를 아는 누군가와 긴밀하게 얽혀있었다.

이 도시에서는 그녀가 어디에 있든지 같은 사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녀는 처음에 이 작은 도시를 이 도시의 사람들을 미워하였다. 그녀는 그들의 모습 속에 바로 자신의 모습인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고 있는 것이란 것을  미처 몰랐다. 그녀의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은 결코 그녀를 자극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였다.

 어린 시절 가여운 어린 영혼을 강탈했던 작은 도시에 대한 원망이 그녀를 계속 건드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운명에의 슬픔만이 도사렸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단순하게 아무런 요구 없이 운명에 자신을 내어 맡기지 않을 거라는 욕망의 촉을 건드린 사람들을 만났던 것이다. 이 작은 도시에서.

  새로운 낯선 사람들.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 가지이며 그것은 자기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들여다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녀 주변의 사람들은 거의 자영업자로 또는 직장인으로 또는 실업자로 인생을 끝장내고 있었다. 그녀는 누구든지 자신이 좋은 운명을 가지길 원하지만 그러나 방법을 찾지 못할 뿐이라고,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어 사회 속에서 규정되고 획일화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거라고 늘 생각해왔다. 누가 그런 틀에서 건져내 줄 것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없는 세계로 던져진 것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임을 잊지 않았다.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 것인가. 이제 새로운 자유를 줄 어떤 구조 안에서 희망을 씨를 혼자가 아니라 같이 뿌리게 된 것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꿈은 그녀가 든든하리라 여겼던 땅도 세상의 흙탕물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더욱더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좁은 소견도, 이방인에 대한 텃새도 없는 그들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기독교의 귀의에서 맛본 경이로움과 감탄과 감사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을 접하는 동안 미래의 가능성을 예감하며 또는 의심하며 그렇게 그들을 훑어보았다.

  자동차 회사 임원, 공무원 , 사업가, 요리사 그리고  은행 과장, 기획 대표 등 다양한 종류의 직업을 가진 자들의 모임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철인 3종 경기 우승자, 1년에 76권의 책을 읽는 책벌레, 인생의 절반을 가족에게 희생한 주부로, 좀 더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꿈을 접었던 사람, 수줍음을  잘 타며 다정한 사람, 말이 없어도 내면이 견고해 보이는 사람 등등이 있었다.

그들은 다양한 읽은 책들을 가져왔고 그것들을 소개하거나 선물을 주기도 하였다. 술과 음식이 없는 담백한 지식의 공유는 모임을 진지하고 성숙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깨어난 사람들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그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함으로, 앞으로는 행복해 보이던 사람들의 연대를, 축제를 갈망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선선한 바람이 불던 초가을 저녁이었다.

   그들 모임의 한 사람이 모임 회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였다.

그들은  접시접시마다 이전에 먹었던 그 어떤 맛보다 더 싱싱하게 살아 오르는 혀의 감각을 느꼈다.  인간의 미각이야말로 정신적인 것에 기인함을 다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식사였다. 그들이 남은 삶을  향해 나아갈 때 담쟁이 덩굴처럼 몇 줄로 튼튼히 얽어 줄 것이란 믿음이 온몸의 감각을 싱싱하게 살아 오르게 한 것 같았다.

그들의 환하게 열린 큰 마음이 그녀에게는 동해바다처럼 깊고 편안했다. 그녀가 큰 바다 속으로 빠져들 때의 평온함으로 그들 속에 있을 때 예전에 넓은 바다를 마주하고 앉았던  그때를 느꼈다.

이 모든 것이 또한 그녀가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느껴지는 새벽 종소리 같은 것이기도 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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