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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Nov 30. 2023

크림치즈 펌킨 케이크 & 블루베리 요거트 프라푸치노

 별 가게

오래전부터, 미요에게 별가게는 흥미를 끄는 곳이 못 되었다.

그때 미요가 맛본 별가게의 첫 커피 맛도 별로여서 자주 들르지 않았기에 여러 가지 메뉴를 알지도 못하고 맛을 볼 수도 없었다. 어쩌면 대단한 것인 양 광고를 먼저 들어서 실제로는 기대이하였는지도 몰랐다.

수많은 개인 카페들 사이로. 또 어디를 가든 도심의 한 복판에 자리 잡은 별가게를 무심히 지나치며 과연 대기업은 언제 어디서나 가장 좋은 입지의 가운데서 위용을 드러냈다. 하지만 미요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미요의 딸 유키는 달랐다.


 "엄마 이번에 별가게 갈 거야. 시즌 메뉴가 나왔데" 유키가 말한다.


"뭔 시즌메뉴? 장삿속이지 뭐냐." 미요는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아냐 시즌별로 나오는 메뉴가 맛있다고" 유키는 미요의 말을 귓등으로 흘린다.

  또 어느 날은  같이 길을 걷다가


"오늘은 별가게 쿠폰을 선물 받았어"  유키가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선물도 쿠폰으로 하나 보다고 미요는 생각한다. 늘 별가게 선물이고 쿠폰이다.

유키는 별가게로 들어가고 미요는 바깥에서 딸을 기다린다.

여기저기 눈길을 주면서. 그러면 십여분 뒤에 유키는 별가게의 커피를 손에 가득 들고 나타난다. 아주 큰 컵이다.

크림이 뚜껑까지 눈처럼 쌓인  대형 커피 한 잔을 한 손에 든 유키의 모습은 흡족해 보이고 까만 커피 위로 솟아오른 하얀 크림은 미요가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유키의 손보다 큰 그 대형커피 한 잔을 유키는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야금야금 마신다.


 미요의 남동생도 그랬었다.


"누나는 별가게서 커피 마셔?"


"아니.  거기 커피 맛없어" 미요는 대답했다.


"여기 개인카페 있는데 줄을 서서 마셔. 별가게 보다 맛있어" 동생은 말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개인 카페란 카페는 다 가본 미요가 요즘은 별가게에게 흠뻑 빠져들었다는 사실이다.


여름 시즌에 유키와 들렀던 날에 말이다.

미요는 '크림치즈 펌킨 케이크' 와 ' 블루베리 요거트 프라푸치노'의 맛에 홀딱 반해버렸던 것이다. 하얀 치즈와 노란 호박이 백설기처럼 쌓인 삼각형 케이크 한 조각에다가 얼음을 가득 담은 블루베리 요거트 프라푸치노의 차가운 맛은 절묘했다.


" 아 맛있다 맛있어" 미요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때 미요는 카운터에 전시된 여러 가지 다양한 과자와 케이크들을 눈여겨보게 된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왜 별가게가 인기가 많은가도 여실히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이후, 그 호박케이크와 블루베리를 한 번 더 사 먹었지만  아직도 미요는 먹어보지 못한 음료와 과자와 케이크를 서서히 다 맛보고자 마음먹었다.


 요즘은 겨울이 되면서 별가게는 또 다른 시즌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역시 대기업은 다르군..." 미요는 크리스마스 분위가 퐁퐁 넘치는 새로운 메뉴판을 눈으로 훑어보면서 말한다

실력 있는 조리사들과 맛의 대가들이 만들어 내는 시즌 메뉴를 그동안 함부로 평가한 것에서 미안함을

느낄 정도로 매번 새롭게 나오는 메뉴들은 시각과 미각을 자극한다.


그뿐이랴. 갑자기 삶이 따분해질 때 거리를 걷다가 잠시 들러 기분을 전환하는 곳. 작고도 소소한 행복을 찾게 해 주는 곳이 별가게가 되어 버린 것이다.


늘 마시던 커피의 맛에 질려갈 무렵  신선한 얼굴로 나타나는 새로운 시즌 메뉴를 미요도 기다리면 고대하게 된 것이니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변덕스러운가.


어디 그뿐인가. 예전에는

"별가게는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 사나워 조용한 곳으로 가자"라고 미요가 서둘러 별가게 문을 밀치고 나갔다면 이제는


"시끌벅적하니 시내에 나온 것 같아 좋다" 라고 미요는 말한다.


"참.. 엄만 변덕이야."  유키는 그런 미요를 기가차 하면서 웃는다.


미요는 사람이 없는 시골도 좋지만 사람이 북적대는 도심도 좋아한다. 조용한 곳에서 한가로이 사색에 잠길 때도 힘을 얻지만 많은 사람들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도심의 거리도 생기가 돌게 해 준다.

그러나 카페는 조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미요다. 사람이 띄엄띄엄 앉았고 빈 테이블도 여럿 보여서 한가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곳. 조용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카페를 좋아했었다. 그런데 너무 조용한 카페는 오히려 따분하고 책을 읽을 때 집중력이 더 떨어졌다.


한 번은 별가게-사람들의 잡담으로 북적대고 시끄러운-에서 책을 한 권 다 읽은 사건이 일어났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의 웅웅대는 잡음속에서 오로지 책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무튼 그때부터 별 가게는 미요에게  첫 순위의 카페가 되어버렸다.

 

오늘도 미요는 유키와 함께 노트북을 들고 별가게로 향한다. 사람들의 잡담들 속에서 꿋꿋하게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처럼 미요 역시 노트북을 펼칠 책상이 비어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땅 위에 뒹구는 낙엽들을 밟으며 코트 깃을 잔뜩 세운체 별가게로 들어선다.


 자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남자 목소리, 여자 목소, 웃음소리, 낮은 소리, 높은 소리가 카페라떼처럼 섞여 연말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도심 한가운데 카페에 앉은 느낌이다. 그렇다. 미요는 이런 분위기가 좋다. 사람들의 생기가 가득한 곳,

낮게 가라앉은 공간보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서 미요는 생기를 얻는다. 힘을 얻는다. 살아 있다는 느낌을 오롯이 느낀다.


'딸기 아사이 레모네이드 '와 '라떼'와  '토피넛 팡도르'를 주문했다. '토피넛 팡도르'는 올 겨울 신 메뉴다. 처음 먹어본다. '딸기 아사이 레모네이드'는 시원한 음료에 송송 썰린 딸기 토핑이 섞여 들었다. 겨울의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알맞다.

'토피넛 팡도르'는 생김새가 화산 같다. 길게 원통형으로 솟은 꾸덕한 빵 안에 아이보리색 크림과 견과류 그리고 꿀이 깔려 있다.


 미요가 칼로 그 빵을 자를 때 화산이 폭발하듯 안에 있던 크림과 꿀이 쏟아졌다.

달다. 아메리카노와 어울리는 맛이다.


미요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옆 테이블에서 한 여자가 뜨개질을 하고 있다. 예쁜 회색의 스웨터를 짜는 것 같다. 대단한 솜씨를 발휘하여 손을 열심히 놀린다. 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사람은 많이 보았지만 뜨개질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신선하다.

미요는 말을 걸어 무엇을 뜨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실례가 될까 싶어 관둔다.

뜨개질을 하는 여자들을 보면 겨울의 차가움을 녹여주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난로 앞에 앉아 손가락에 실을 걸고 머플러를 뜨거나 모자를 뜨는 여인들을 상상한다.

아무튼.

별가게는 동네 사랑방처럼  편하고 즐거운 곳이라고 미요는 생각한다. 이렇듯 별가게가 매번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이유는, 누구든지 편히 쉬며 대화를 나누고 글을 쓰고 책을 읽은 수 있도록 실내의 테이블 배치며 의자며 벽에 걸린 그림들이 다 한몫을 하기 때문이란 것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미요가 무엇을 하든 관심 없이 자신들이 이야기에만, 글 쓰는 데만, 업무를 보거나 과제를 하거나.. 얼마든지,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미요에게 더없이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맛난 커피나 시즌 메뉴 한 잔으로 쉬어갈 수 있는 공간.

미요는 이런 공간이 주어진 축복받은 세상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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