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셸 오 Dec 14. 2023

마들렌 & 버터크림라테

말랑


'말랑'을 찾는 사람들은 날마다 그 수가 늘어났다.


완연한 여름이었던 때,

늘 지나치던 곳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다. 눈이 하얗게 쌓인  숲 속의 집처럼, 입구도 실내의 테이블도 벽도 모두 하얀색. 그땐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한적했다.  


이후 가을을 지나 어느덧 12월이 되었다.

사람들은 집에 있다가도 따분해지면 이곳을 떠올리는 것인가 보았다. 미요처럼.  누구든지 일상의 따분함에,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지쳐서, 혹은 남편과의 다툼, 시어머니와의 갈등, 등을 해결하기 위한 배출구가 필요할 때면 이 곳을 찾는 것이리라.


따사로운 겨울 볕이 들어오는, 오후의 카페 '말랑'은 남자들은 거의 한 명도 없고 다만 삼삼오오 테이블을 가운데로 두고 여자들로 가득했다. 아.... 아니다. 미요가 코트를 벗으면서 보니 저 구석진 곳 테이블에 젊은 남녀가-그들은 연인이겠지-맥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호대로 차와 커피를 주문하고 , 만약 아이들을 데려 왔다면 카페 구석에 마련된 모래 놀이터  위에서 제멋대로 놀도록  놔두고, 눈길을 아이들에게  주면서,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비록 무대는 없지만, 미요는 이 홀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일상삶으로부터 초대된 살롱의 손님들 같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근세의 살롱처럼, 사람들은 차를 손에 들고 눈빛을 마주치면서, 미소 짓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카페 주인은 당연히 살롱의 마담이리라.

우연히도 이 말랑의 주인이 중년의 여인인 도 더 그런 느낌을 자아내도록 한다.


어디 먼 곳으로 굳이 떠나지 않아도 실컷 재미를 볼 수 있는 곳이 카페다. 가끔은 한 카페의 인테리어나 시그니처 메뉴가 지겨워질 때, 언제든지 사람들은 다른 카페를 찾아 떠날 수 있다.


아무튼,

12월 초, 방문했던 '말랑'정말 왁자지껄했다.  처음과 달리 커피에 중독된 여자들은 점점 흥분해서 목소리가 더 커졌다. 


미요와 유키는 노트북을 펼쳐 놓았다.

미요는 자신이 좋아하는 버터크림라테는 맛만 보고 곧 유키에게 돌려준다. 대신 밀크티를 마셨다.

크림의 크리미 한 맛 뒤에 쏟아지는 커피의 쌉쌀하고 묵직한 맛이 미요의 혀를 압도한다. 하지만 갱년기라니. 불면의 밤을 보내는 것이 커피 한 잔을 참는 것보다 힘들기에 맛만 본다. 입맛을 다시면서.

말랑의 넓은 통창으로 겨울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진다. 무대 위에 펼쳐지는 화려한 불빛보다 더 강렬하다.

잔뜩 껴 입고 온 옷들이 무색할 지경이다.

 저 멀리 높은 산 위로는 나무들이 먹으로 그린 듯 줄지어 있고 그 위로 흰 구름이 그림처럼 정지해 있다.


버터크림 라테의 뒷맛ᆢ 여운이 짙다.

버터크림 라테는 이 카페가 최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맛만 보는 것도 어딘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차를 반쯤 마실 때쯤에는, 미요의 테이블 왼편 여자들의 이야기가 쟁쟁거리는 꽹과리 소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둘 다 목소리가 동시에 커져서 수그러들 줄 몰랐다. 한 여자는 뭔가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는 것 같았는데, 듣는 상대방도  덩달아 목소리가 커졌던 것이다. 아마도 이야기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  모양이었다.


미요의 눈은 노트북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그들만의 소리가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과 워낙 불협화음이라 그들 바로 옆자리의 미요는 견디기 힘들 만큼 집중을 방해받는 느낌이었다.  

반면, 오른 편의 50대 이상으로 뵈는 여인 둘은 소곤소곤 이야기를 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할뿐더러 그들의 옷차림이나 얼굴 표정만 봐도 퍽 교양 있어 보였다.


오늘은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겠구나. 불평불만을 잘 말하지 않는 딸 유키조차 인상을 찌푸린다.


" 다 마시면 나가자."


그렇게 말하면서 미요는 홀을 둘러본다. 카운터에는 늘 자리를 지키던 여사장이 없다. 어디를 간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늘 카페 안에서 미끄러지듯이 걸어 다니던 여사장. 미요는 그녀를 마담이라고 호칭한다. 마담이 없는 살롱은 거품 없는 맥주처럼 싱겁다.


미요는 며칠 전 일을 떠올린다.

그녀가 대여섯 명의 지인들과 점심 식사 후 '말랑'의 문을 들어섰을 때, 먼저 미요를  알아본  마담의  통 큰 서비스가 펼쳐졌다.


" 어어?  미요 님은 여기 사장님과 특별한가요? 이게 다 뭐예요?"


미요의 일행 중 누군가가 놀라서 말했다.


" 아뇨 아뇨  여기 사장님은 다른 손님들에게도 똑 같이 하는데 오늘은 더 많이 주셨네요" 미요 역시 당황해서 말했다.

 

긴 회색의 롱치마와 니트를 입고, 프랑스 여배우 시몬시뇨레의 머리 스타일을 하고, 이 카페의 여주인이, 그리고 직원들이 그들 앞에, 주문한 식사를 차례로 들여오듯이 트레이에, 그들이 주문한 차와 커피 여섯 잔 외에 치즈스틱 여섯 개,  구운 마들렌이 접시에 담겨 차례로 날라져 오고, 놀란 입을 다물기도 전에 감귤까지  그들의 테이블을 가득 채웠던 것이다.


주인 마담의 서비스에 다들 흡족한 미소를 띠고 구수한 마들렌을 입에 물었다. 아,이런 때야 말로 가장 편하고 다정한 표정을 숨길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드디어 세에라쟈드의 이야기처럼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던 것이다.



"옆 테이블 사람들이 나갔어."


유키의 속삭임에 미요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갑자기 찾아든 정적. 무지막지한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처럼 적막하기까지 한 조용함이었다. 다른 곳의 테이블에서 잡담하는 소리들을 다 합쳐도 옆 테이블의 그녀들보다 목소리가 작았다. 미요는 한숨을 내 쉬었다.


"옆 자리의 여자가 뭔가 불만이 많았던가 봐"

유키가 말한다.


미요는 순간, 기뻐서 웃고 떠드는 소리보다 더 듣기 힘든 것이 바로 원망하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옆자리의 그녀들은 이 에서 스트레스를 맘껏  풀었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를 앞에 두고 더 흥분하거나 흥미진진하거나... 사람들은 한없이 목소리가 커지게 마련인 것을,

 미요도 사람들을 마주할 때, 처음에는 소곤소곤하다가도 점점 흥이 돋으면  목소리가 커지게 마련이고 듣는 사람들도 같이 맞장구를 치듯 큰 목소리를 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서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우리 서로 목소리를 좀 낮춰요."


하는 것이다.

 

다시 정적이 찾아든 실내는 뜨겁게 지는 겨울의 태양빛으로 인해 나른해지기까지 한다. 미요는 유키가 남긴 버터크림라테를 들이켰다. 오늘은 좀 늦게 자지 뭐.


그렇다ᆢ 미요는 이번에야 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카페의 본질을 깨닫게 된 것 같았다. 스스로 원하면 언제든지 살롱의 자발적인 모임에 참석할 수 있다. 단 커피 한 잔 값은 입장료다.  그곳에는 다양한 카페의 인테리어와 시그니처 메뉴가 있고 가슴속 사연을, 일상을, 풀어냄으로써 휴식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우아한 마담이, 직접 손님을 문 앞까지 마중하고 배웅하면서, 직접 음료를 날라다 주는 곳, 이 시대의 살롱 '말랑'이 있고, 그곳은, 아주 진하고 묵직한 맛의 버터크림라테가 있고  말랑말랑한, 구수한 마들렌이  구워지는 곳이다.








.


.





이전 07화 엘더플라워 블랙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