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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Dec 21. 2023

무화과 피낭시에 & 말차바치디다마

 릴리 

적어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기 전까, 과자는 미요의 소중한 간식거리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과자를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너무 오랫동안 비슷한 맛의 달달한 과자 맛에 질렸는지도 몰랐다. 특히 마트에 진열된 비스킷이나 튀긴 과자는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


가장 맛있었던 과자는 초등학교 때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과자들이었는데 미요가 늘 사던 것은 계피맛 과자(?)였다. 계란처럼 생긴 동그란 통에 둘둘 비닐처럼 말려서 타원형의 구멍 난 곳으로 끝을 잡아당기면 그 안의 비닐 같은 것이 계피 냄새를 풍기며 줄줄 달려 나왔다. 그것은 입안에 넣자마다 곧 녹아버렸다. 옛날 과자라는 이름으로, 그때 팔던 과자들이 요즘도 재판매되고 지만 그 계피맛 과자는 아직 나온 것을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년 전부터 미요가 가끔 찾는 과자점이 있다. 솔직히 과자라고도 빵이라고도 단정할 수 없는 경계선 과자들이라 생각되지만, 이 가게의 입구가 얼마나 동화 같은 지 직접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게 있다.

전혀 상상도 할 수 없고,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눈에 확 띄는 예쁜 가게를 발견할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을.


특히 요즘 작은 가게들이란 주변의 대형 커피점 같은 가게들에 묻혀 골목 안 여기저기 숨어 있다가 '나 여기 있었는데?' 라며 갑자기 눈에 띈다. 그 작은 가게들의 존재감이란 얼마나 대단한 지 그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는 안 될 만큼 예쁘다는 사실이다.


미요가 '릴리'를 첫 방문했을  때, 종이 딸랑거리는 문을 밀고 들어서자마자, 앙증맞은 쿠키와 스콘들이, 타르트와 피낭시에가,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혀의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눈을 먼저 사로잡는 예쁜 과자들.

미요는 마구 흥분해 이것저것 바구니에 집어넣었었다.

집에 가져가서 몇 날 며칠 질리도록 과자를 먹을지언정... 이 새로운 것들을 어찌 그냥 지나치랴.

다음에 와서 사 먹어 보겠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과자를 향한 미요의 탐욕이 클라이맥스를 달리는 것이다.


 만일 그녀가 그곳에 오후에 들르지 않고 오전,  과자가 막 구워진 시점에 들른다면 카드값을 더 많이 감당해야 될지도 몰랐다. 다행히도, 미요는 늘 늦잠을 자는 사람이고, 오후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에라야 집을 나서기 때문에, 그녀의 집에서 4킬로나 떨어진 그 '릴리' 과자점에 도착할 때쯤이면 , 이미 맛난 과자들은 거의 다 팔리고 난 후라서, 진열대에 남은 과자나 스콘을 골라서 사게 되는 것이다.



결국,  '릴리'의 스콘과 피낭시에와 과자들을 거의 맛본 미요는 이후부터는 입에 맞는 것만 집중 공략하게 된 것인데 그것이 바로 '무화과 피낭시에와 말차바치디다마' 다.


'무화과 피낭시에'는 미요 입에 적당히 달고 또 홍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무화과피낭시에' 한 개를 들고 야금야금 씹으면, 바스러지는 빵더미 안에 달달한 과육이 무너지면서 어금니에 씹히는 무화과 씨의 감각이 아주 매력적이라서 계속 씹고 싶어 진다. 그 씹는 느낌은 미요만 들을 수 있는 내면의 소리다.

또한 무화과는 씨가 곧 꽃이니까 무화과를 먹는 것은 곧 꽃을 먹는 것이라 더 행복하다고 여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먹는 즐거움을 주셨다고 한 것은 말 진실이다. 힘든 노동의 , 먹는 즐거움은 더 배가된다.


'말차바치디다마'는 녹차를 좋아하는 미요의 딸 유키도 좋아한다.  어릴 때 가게서 흔하게  팔던 계란과자처럼 생긴 동그란 과자 -물론 더 부드럽고 바삭한 식감-  사이에 녹차가 잔뜩 발라져  있어서 그것을 한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  부서지는 비스킷 사이로 말차가 섞이면서 "음~~"하는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비스킷의 달달함을 누르는 말차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아침 공복에 무화과 피낭시에와 말차 과자 그리고  홍차를 곁들이면 간단한 아침 식사로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릴리'를 방문했다가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릴리'가 이사를 간다는 것이었다. 시골집을 사서 과자점으로 리모델링 중이라고, 주인이 내미는, 새로 이사할 곳의 주소지는 미요가 자주 들를 만한 거리에 있지 않았다.


미요는 '릴리' 과자를  못 먹게 된 것보다, 이 예쁘고 아기자기한 가게 건물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더  서운하였다.  따뜻한 감성의 노란색이 도는 베이지빛 가게의 입구문과 과자가 그려진 간판과 예쁜 실내의 장식들이 다 먼지로 사라질 테니 말이다.

그날 이후,

한 달 만에 '릴리' 옆을 지날 때는 이미 과자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제 막 새 가게가 리모델링 중이었다. 가만히 보니 통유리였던 가게 전면은  전부 벽으로 막아  페인트를 칠했고 사람 한 명만 들어감 직한 문만 하나 달려있어서 꼭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 같았다.


어떤 가게가 '릴리' 대신 새 이름을 달고 등장할지 궁금하긴 했지만 봄날의 개나리가 핀 것처럼 주변을 환하게 밝히던 '릴리'는 쉽게 잊히진 않을 것이다.


모든 기억과 추억은, 먹는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 미요의 눈과 입맛을 사로잡던 ' 무화과 피낭시에'와 '말차바치디다마'.....


이름도 이국적인 과자들은, 앞으로 미요의 기억을 떠올리는, 가장 진실된 감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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