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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Dec 28. 2023

안나카리나 장미 & 왁스핑크

래예

미요는, 5년 전,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한 꽃집이 생기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후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꽃가게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그런 중에서도 오랫동안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는 꽃집이 있는데  바로 '래예 플라워'다.


12월의 꽃집은 5월 보다 더 사람들로 북적거리게 마련이다.

성탄절과 연말과 졸업식이 연이어 있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왠지 연말에는 꽃집에서 그저 무작정 꽃다발 한 개를 사서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어 진다.

미요는 생각한다.

꽃 한 다발을 사들고 가서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미요 자신에게는 늘 장미꽃다발을 사서 자기만족을 느끼면서도 정작 꽃다발을 누군가에게 사주는 일은 흔치 않았다.

오히려 꽃다발을 받은 적이 더 많았음을 깨닫게 된다. 길을 걷다가 길모퉁이에서 장미 한 송이를 사서 무심히 넘기던 그 손길.. 기억난다. 그 장미 한 송이에 담겼던 마음을 눈치채고 더 좋았던 기억.

왜일까. 졸업식이나 입학식 때 받았던 꽃다발들에겐 정이 남아 있지 않다. 너무 형식적이어서였을까.


'예 플라워'는 식물보다는 수입 꽃들이 많고 플로리스트들에 의해  만들어진 크고 작은 꽃다발이 상시 준비되어 있다.

적게는 오천 원에서 몇 만 원까지 다양해서 지나치다가 예쁘게 포장된 꽃다발을 사기만 하면 되는 곳이다.

뭣보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큰 통에 담긴 꽃들을 손님이 스스로 선택해서 꽃다발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만 골라서 카운터로 가져가면 주인은 그 꽃을 이리저리 키를 맞추어서 종이로 예쁘게 포장을 해 준다.

이때 미요는 보통 장미 몇 송이와 유칼립투스만으로 꽃다발을 만드는데, 여기서 다른 꽃들을 잘 못 섞으면 꽃다발이 왠지 조화롭지 못하게 된다.

전문가들의 손에서 조합된 꽃다발들은 색과 여러 꽃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색색이 조화롭지만 말이다.




미요의 집 바로 앞에 꽃집이 생기기 전에는 늘 이 '예'를 들락거렸었다.

미요가 힘들 때 꽃가게의 꽃들은 왠지 힘내라 힘내라 하면서 힘을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꽃을 사면 또 기분이 좋아지고 힘도 났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에 하나님이 계시니 인간을 핑계치 못할지라'는 성경 말씀처럼 정말 꽃은 보기만 해도, 그 향기를 맡기만 해도 힘이 솟았다.


흡사 체코의 꽃시장 가운데 있을 법한 아름다운 꽃가게다. 입구부터 다채로운 식물과 화분과 꽃다발이 가득하니 그 가게를 그냥 못 본 척하기가 힘들다.  요즘은 성탄이 가까워서 가게 입구는 수많은 꽃들로 풍성해지고 있었다. 저 멀리서 걷다 보면 '예'는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그냥 두근두근한다.



이곳에는 매번 새로운 이름의 장미와 꽃들로 가득한데,

그날은 미요의 눈에 확 띄는 장미가 있어서 주인에게 꽃 이름을 물어보았다.

직원도 꽃 이름을 몰라  메모를 찾아보고서야 대답한다.


" 그거 안나카리나" 예요.


"그럼 이건요?"


미요는 유칼립 비슷한 식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왁스핑크"


와... 이름도 어쩜 그렇게 실물에 맞게 예쁠까.

안나 카리나 장미는 미요가 이제껏 사 왔던 장미와 생김새가 달랐지만 무척 고귀한 기품을 내뿜었다.

형광색이 감도는 핑크빛인데 미요가 입술에 자주 발랐던 코랄 빛 같았다. 꽃다발을 가져와서 화병에 꽂아두니 갸녀린 잎들이 벌어지는 것이 얼마나 예쁜지. 미요는 몇 번이나 안나카리나 장미에 얼굴을 처박고 향을 맡았다. 그것은 장미 얼굴에 하는 미요의 뜨거운 키스였을지도 모른다. 이후 활짝 커지는 장미의 얼굴은 마치 야생 장미덩굴에서만 보던 모양 같기도 했다. 그래서 더 좋았는지도.


안나카리나의 배경으로 산 왁스핑크도 예뻤다. 그런데 집에서 자세히 보니 작은 꽃봉오리 모양이 꼭 겨울에 피는 매화처럼 생겼다. 이것도 안나카리나처럼 꽃망울이 커지고 꽃이 폈고 또 장미보다 생명이 더 오래갔다.

단지. 안나카리나의 배경역할만 하기엔 아까운 기품 있는 꽃이다.


오늘도 미요는 '래예'앞을 지나가며 보니 가게 안에는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더 많다.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꽃보다 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아는 남자는 분명 아름다운 여인을 얻게 될 것이다.

 하루하루의 반복된 삶을 살 때  꽃 한 다발을 가슴에 품어 본 사람은 안다. 그 꽃다발 의 놀라운 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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