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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Nov 23. 2023

코타츠 & 가로수길

고코로

5년 전, 12월 30일쯤이었을까.


차를 타고 간 곳은 하얗게 페인트 칠을 한 것 같은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저 멀리.

눈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가로수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 풍경을 따라 찻집과 카페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그때 같이 동행했던 '경'은 미요를 그중의 한 카페로 안내했다.

직사각형의 큼지막한 유리창으로 그들이 차를 타고 지나온 가로수 을 훤히 볼 수 있는 '커피 고코로'였다.

게다가 일본식 코타츠라니.. 코타츠는 단 두 개뿐. 카페에서 가장 좋은 큰 통창아래, 방석에 앉아 코타츠에 발을 넣고 바깥을 볼 수 있었다.

추운 겨울이라 그랬던 걸까? 코타츠 자리는 비어 있었고 운 좋게도 그녀들은  코타츠에 발을 밀어 넣은 채.

저 멀리서부터 카페 앞까지 자작나무처럼 하얀 가로수를 바라보았다.


말이 없어도 되는 편안함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한 여름을 인내한 푸르렀던 나뭇잎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덧없이 말라비틀어진 나뭇잎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잠시 후 '경'과 미요 앞에 놓인 드립커피, 진하디 진한 다크커피였다.

그녀들은 한동안, 말없이 겨울의 차가운 풍경에 시선을 던지며  뜨거운 커피를 홀짝 거렸다.

다양한 커피잔들을 병풍 삼아 열심히 커피를 드립 하는 여주인의 커피를 내리는 손놀림도 왠지 한가롭고 고즈넉했다.


"인생에 죽음이 없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그때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고통스러운 인간의 삶이 영원히 지속되다면?"


"끔찍하지.. 요"


그렇게 그날의 카페에 갔던 시간들은 미요의 기억 속에 사진처럼 선명히 새겨졌다.


이후 몇 번이나. 봄. 여름. 가을에 다녀갔다.


몇 주전, '경'과 함께  카페를 다시 찾았다.

가을이 무색하게 다들 반팔차림이다.


조용했던 지난 날의 카페를 기대했으나 실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코타츠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다가  할 수없이 창이 반쯤 가려진 곳 테이블에 앉았다. 직원이 예전보다 늘었다. 찻잔도 늘었다.


그들이 앉은 창밖으로 가을이 아닌 여름이 보였다. 추분이 지났건만 볕은 아직 눈부셨고 잎을 다 떨군 나무들 사이로 푸른 잎을 가득 달고 있는 나무들이 보인다.


"고코로는 겨울이 어울리는 카페야."


문득 '경'이 말했다.


"맞아" 미요가 대답했다.

겨울에 이 카페의 코타츠에 발을 넣고 나뭇잎을 다 털어버린 가로수 길에 눈길을 주고 있을 때면,  눈으로 가득 덮인 이국한적한 카페에 앉아 있다고 느낄 만하다.


미요는 문득,

낙엽이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뒹구는 가을을 떠올려 본다.  갈색의 잎을 구부리고 땅에 뒹구는 낙엽만큼 쓸쓸한 것이 있을까 하고.


6년 전,

언제나 허리가 곧고 당당하게 걷던 미요의 엄마가 지팡이를 집고 낙엽이 뒹구는 길을 걸어갈 때. 그 뒤를 따르던 미요는 마치 그런 엄마의 모습이 이제 곧 떨어질 낙엽처럼 불안하고 위태롭게만 느껴졌다.


밥을 못 넘기면서 살이 급격히 빠지고 어느 날 갑자기 허리가 굽어버렸다. 한 올의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쏟결국엔 땅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엄마는 그 후 몇 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미요에게 가을은 불안한 계절이다. 오히려, 벌거벗긴 했지만 죽음의 고통을 잊고  봄의 생명을 준비하는 겨울나무들에게서 미요는 안정감을 느낀다.


5년 전, 미요가 그렇게 엄마와 작별을 하고 '경'을 만났을 때, 그녀에게는  엄마가 존재했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오늘 '경'의 곁에도 엄마가 없다. 그래서 5년 전보다 더, 그녀들은 엄마 없는 하늘아래 사는 삶에 대해서. 더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까지도.


그들에게 엄마란 차가운 겨울. 그들의 시린 발을 녹여주던 코타츠와 같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녀들에게

엄마가 있었던 시절은 찬란한 여름날 같았지만 말이다. 이제 둘 다 찬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해서 강한 엄마가 되어갈지는 의문이지만.

추운 겨울,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며 지나온 시간들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공간. '고코로'에 느긋이 앉아 멀리멀리 펼쳐진 산과  열지어 선 가로수와 하천의 산책길을 바라볼 때 인생은 한결 더 깊어진다.


이때 하얀 까지 내려 준다면 더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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