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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Nov 16. 2023

다즐링 히말라야 & 밀크티

마리봉포레

미요에게 홍차의 첫맛을 황홀히 안겨준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지인의 집에 방문하였는데 집주인이 내놓은 차에서 아주 좋은 향이 났다. 그 붉은빛의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어맛~! 이거 무슨 차예요?"


라는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차 한잔을 다 마시도록 쉴 새 없이 터지는 감탄사에 주인은 그 홍차를 선뜻 미요에게 선물하였다.

분홍색 원통형에 담긴 수입 홍차였다. 안을 보니 여러 꽃잎과 찻잎이 뒤섞여서 마치 색종이를 잘게 부숴 은 듯한 모습이었다. 


후일 그 차를 찾아 인터넷의 홍차 사이트를 뒤졌지만 생각보다 수입 홍차들은 가격이 만만치 않았고 그와 비슷한 홍차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이후 인터넷을 통해  '아삼'이나 '아마드 티'를 사서 크티로 만들고 뜨거운 물에 우려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TWG 브렉퍼스트'를 사서 시나몬 스틱과 꿀을 넣어 마시고 있다.  이 차는 무더운 여름에 냉침으로 얼음을 넣어 마시면 기관지와 폐에 산소의 청량함이 스며든다.  마시는 순간 목을 따갑게 긁는 느낌을 주는 탄산음료의 그 텁텁한 뒷맛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느낌이다.


미요의 책모임 시작부터 지금껏 같이 해온 회원 중에 아름다운 눈에 특색있는 목소리를 가진 '리'가 있다.  그녀는 미요에게 불쑥 예고도 없이 꽃다발을 집 앞까지 사다 주고는  쌩하니 차를 몰고 가버리는 사람이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빠르게 간파하는 사람이지만 겉으로의 내색은 잘 안 한다. 직관적으로 판단하고 맺고 끊는 것이 빠른 편인 미요에게 느긋하게 융통성을 요구하는 사람도 '리'다. 물론 그녀도 삶에서 지긋지긋한 고민거리가 있을 터이지만 늘 잔잔한 강물처럼 차분한 느낌을 준다. '리'는 무엇이든 끈기 있게 기다려 주는 멋진 여자다. 


 일요일 오후 5시는 책모임을 갖기로 한 날이었으나 '리'와 미요 빼곤 다들 없던 일이 생겨서 모임을 미뤄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샘~우리 홍차카페 갈까요?"


"네? 그런 곳도 있나요?"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산계곡에 자리 잡은  홍차카페  '마리봉포레'를 찾게 되었다. 기와집 형태의 건물 앞마당으로 들어서자 가볍고 향긋한 냄새가 진동했다. 차에서 내리자 향은 더 짙어졌는데 카페 주변의 만리향 나무들이 뿜어내는 향이었다. 예전에 선물 받았던  홍차와 꼭 닮은 향이었다.


그들은 벽장마다 각양각색의  홍차로 가득 채워진 카페 안을 둘러보며 산이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50종은 넘을 것 같은 찻잎을 담은 샘플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것의 향을 일일이 맡아본 후 주문하는 거였는데 거의 다 생소해서  차례로 하나씩 먹어봐야 할 것들이었다. 

그래서 주문서에 안내된 차를 마시기로 하였다.

그들은 '은근히 퍼지는 베리향과 꽃향기의 조화'를 맛보기 위해  '1001 나이트 밀크티' 와 


인도산  '첫물차로 찻잎에서 달달한 꽃향기와 은은한 머스캣향'이라 적힌 '다즐링 히말라야'를 주문했다.


차를 기다리면서 카페 안을 느긋하게 둘러봤다. 사각의 격자창 밖으로 카페 안마당이 보인다. 격자창의 매력에 눈을 거둘 수가 없다. 위아래로 크기가 다른 격자창의 초콜릿색과 아이보리 화이트의 커튼이 너무 잘 어울려서 카페의 실내 분위기를 이국적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밀크티와 홍차

드디어 주문한 밀크티와 홍차가 나왔다.

먼저 홍차를 '리'와 나누어 마셨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한 모금... 입안에 두고 혀로 굴리면서 천천히 목 뒤로 넘겼다. 한마디로 끝내기에는 다양한 맛이 숨어 있었다. 오! 진짜 와인을 맛보는 것 같잖아?


"뒷맛이 좀 거칠지 않아요?" 미요의 말에 '리' 역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히말라야 계곡의 바람일까? 바람에 쓸린 눈일까?

히말라야 산속 깊은 곳에는 매서운 눈보라를 뚫고, 죽을 각오를 하고 산맥을 넘어가야만 볼 수 있는 별천지가 있다고 한다. 티베트의 승려들은 험한 여정에  몸을 상해가며 꼭 한 번은 그곳에 다녀온다고 하는데 그곳에 당도하는 순간 봄날처럼 기온이 따스하단다.  상처도 아물게 하는 약초, 생명수 같은 물,  세상에는 없는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하다는 히말라야의 산속이 갑자기 생각났다.


이 다즐링은 그곳의 꽃향기일까? 미요는 히말라야 야생의 자연을 맘껏 즐겼다.


다음은 밀크티도 나누어 마셨다.


 "음~~ 너무 좋다 좋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역시 처음 느끼는 향과 맛을 지녔다. 차맛에 홀랑 빠진 그녀들의 얼굴에 어느새 생기가 돈다. 어느덧 저녁해가 지고 가족끼리 왔던 손님들도 빠지고 카페 안은 어느새 미요와 '리'만 남았다. 그녀들의 티팟과 찻잔도 깔끔하게 비었다.


미요와 '리'는 그냥 가기에 아쉬워 'HARNEY and SONS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한 통씩 샀다.

카운터에 전시된 홍차들과 홍차 향을 음미하는 '리'

카페 문을 나서니 가을 저녁 만리향이 은은하다. 아직도 입안에는 다즐링 히말라야 홍차 맛이 여운처럼 남았고 콧속으로는 꽃향기가 거침없이 들어온다. 홍차빛 같은 저녁놀이 지고 있었다.


격자창-너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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