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셸 오 Nov 02. 2023

코코로 부채 & 키키 파우치

폴인홈 (FALL  IN HOME)

미요는 가끔 작은 쇼핑을 즐긴다.

얼마 전에 새로 생긴 소품가게는 그녀의 기분을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가게다. 일본 수입품인 가방. 부채. 손수건. 인형 등등 볼 것이 많다.


얼마 전에 화려한 분홍색 꽃무늬 플레어 치마를 샀다. 그건 가을이나 겨울에 어울리는 옷이 절대 아니었다.

그 치마를 발견한 순간 미요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을 마주한 것 같았다.


눈에 찍어 두고 집에 왔는데 두고두고 생각났다. 분홍색은 미요가 좋아하는 색이 아니다.

게다가 그 화려한 꽃무늬에 어울리는 상의가 미요에게는 없다.

문득.

미요는 오래전 병원에서 마주쳤던 한 할머니가 생각났다.

그 할머니는 아주 깡마르고 나이는 80이 넘어 뵈는 고령이었는데 진분홍색 재킷 상의와 무릎까지 오는 타이트한 치마를 입고 병원 복도를 걸어 다녔다. 게다가 핸드백도 분홍, 구두까지 같은 분홍색 힐!


흰머리와 주름진 얼굴에 비해 반듯하게 떨어지는 옷의 질감과 분홍색이 어울리지 않아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차림이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보았지만 할머니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무심히 지나쳤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나이에 따라 정해진 옷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당시는 요즘에 비해 무척 보수적인 시절이었는데. 용감하게 입고 싶은 색의 옷을 입고 하이힐을 신었던 그 할머니를 미요는 멋지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련된 차림은 아니었지만 입고 싶은 대로 입었던 건 사실이니까.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기보다는 남의눈을 먼저 의식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성향이다. 그런 사람들의 눈을 무시하고 내 하고 싶은 대로 멋을 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미요는 단정하고 장식이 없는 옷을 입는다. 특히 짙은 단색-네이비. 다크카키. 짙은 개나리 색-이 잘 어울린다. 그런데 그런 화려한 꽃무늬 분홍치마라니. 여태껏 그런 옷을 산 적도 없고 입은 적도 없다.


그런데 그 치마가 왜 미요의 눈에 들어와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무척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결국 미요는 그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그 치마를 사고야 말았다. 내년 봄. 벚꽃이 활짝 필 때 입으리라 생각하며... 그러면 철쭉꽃과 개나리꽃 사이에 치마가 묻혀서 도드라져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치마를 사고 나서보니 이 가게의 입구도 빨강에 가까운 찐 분홍이다! 봄에 피어나는 분홍색의 꽃을 보노라면 마음속에 생명의 불꽃이 피어난다. 아마도 미요는 분홍색의 치마를 샀다기보다 봄날의 생명력을 산 게 아닐까.

그녀가 가게에 들를 때마다 산 것들은 거의 일본 제품이다.

하나는 마녀배달부 키키의 그림이 그려진 빨간 파우치. 이건 열고 잠그는 방식이 좋다.

부채는 토토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사슬 모양이 그려진 손수건, 또또. 르 슈크레 손가방,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미요의 손에서 떠날 줄 모르는 애용하는 가방이 되고 있다.


평소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미요로서는 그런 그림을 놓칠 리가 없다. 다 마음에 드는 것들이다.

그녀가 마음에 드는 것들을 파는 이 가게를 어찌 좋아하지 않으랴.

사장님은 남자인데 머리를 백으로 다 넘기고 아주 깔끔하고 선하게 생겼다. 서비스로 준 녹차 사탕은 정말 맛이 좋았다.


인생은 수많은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이 소품가게야 말로 수많은  인생의 에피소드들을 간직한 곳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 매이션을 좋아하고 그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미요처럼 토토로가 그려진 부채를 서슴없이 사게 될 것이다. 그런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런 소품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토토로 부채는 작은 가방에 쏙 들어가고 갖고 다니기 좋게 길쭉하니 좋다.


물건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립스틱이나 작은 손거울을 넣어 다니는 사람은 미요처럼 열고 닫기 편한 파우치를 살 것이며 목이 아픈데 단맛 사탕이 싫다면 이 가게의 녹차 사탕의 맛에 빠질 것이다.

게다가 가게 한 편에 나란히 걸린 여러 가지 옷들을 자기 몸에 대 보는 순간 잠시의 행복감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삶의 단조로움에 빠진 사람의 감성을 일으키는 그런 가게들은 찾는 이에게 상상하게 한다.

아름답고 행복한 상상을.


그것을 현실로 만들고 싶은 우리는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전 01화 카푸치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