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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Oct 26. 2023

카푸치노

저스트 커피

삶이 나른해지거나 지금처럼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찬 기운이 옷 안으로 스며들 때, 정신과 육체의 피로를 위로해 줄 맛있는 카푸치노, 그것 한 잔이며 족하다. 미요가 자주 찾는, 카푸치노를 맛있게 만드는 카페가 있다. 커피의 고소함과 씁쓸함에 약간의 단맛..그리고 짙은 계피향은 무한한 설렘이 있다.


저스트 커피


그녀는 사람들과의 만남 대부분을 이 카페에서 한다.

년 전  카페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미요 역시 새로운 모임을 결성했다. 책모임이다. 처음엔 10명 정도가 모였었다. 모임 장소로 여러 카페를 전전하다가 어느 날부터 저스트로 모임장소를 결정했다.


천장이 높아 시원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북적대지 않아 좋았다. 그땐 책모임 인원도 5명으로 줄어있었다. 그야말로 찐 독서광들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주말 토요일 저녁, 해가 질 때면 책이 든 가방을 들고 한 사람씩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설 때, 회원들의 눈은 로버트루이스의 책 읽는 여인들 속 밝게 빛나는 눈빛을 닮았다.

모임 회원 중에 하얀색 말리부 차를 타고 다니는 변회원은 늘씬한 몸매와 지적인 눈매를 지녔다. 그녀는 거의 대부분 10분 일찍 카페에 도착해 자줏빛 우단 소파에 앉아 회원들을 기다린다. 그때 그녀의 모습은 조지 클라우센의 책 읽는 여자와 흡사하다.


책모임 회원들은 다들 세상을 읽는 날카로운 눈을 갖고 있고 서로의 생각을 거침없이 나누기에  맛있는 라테와 홍차와 커피를 빼놓을 수 없다. 그것들은 일터에서, 일상에서 단단해진 마음을 녹인다. 그리고 생각을 집중하게 만드는 카페 인테리어는 말할 필요도 없다.


저스트 카페는 그런 곳이다.


책모임 외에 미요는 학부형들과의 만남의 장소로 이 카페를 정했다. 한 번은 잘생긴 두 아들을 3살 터울로 둔 어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첫째 아들은 지금 고3인데 3년 전 처음 미요에게 왔을 때 큰 아들은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7080의 가요를 즐겨 들었다.

수업을 하다가도 잠이 오면 갑자기 바닥에 몸을 엎드려 헛둘헛둘 푸시업을 한다. 해군장교가 꿈인, 제복이 어울리는 멋진 남학생이다.


 아래 남동생은 가무잡잡한 피부에 웃을 때면 가지런한 하얀 이가 눈처럼 빛나는 아이다. 지금 중 3이다. 그때도 미요는 그 아이들의 어머니와 카푸치노를 마시며 아이들에 관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향긋하게 코끝에 와닿은 계피향과 함께.


두 번 째는 귀엽게 생긴 외모와 달리 보이시하고 쿨한 여학생의 어머니를 만났다. 확고한 고집을 가진 딸과 달리 엄마는 서울말을 쓰는 부드럽고 우아한 여인이었다. 그때도 미요는 카푸치노를 마시며 입시 문제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었고 딸은 서울의 명문 대학에 합격했다. 그때 그 어머니가 감사하다며 백화점 쿠폰을 내밀었던 곳도 이 카페다.


그리고 자식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이 부모라면서 힘닿는 데까지 도우려던 학부모. 늘씬한 키의 모델 같은 몸매를 지닌 딸처럼 여학생의 어머니도 선한 눈매에 키가 무척 컸다. 저스트 카페 안에서 커피를 마주하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때 학부모들은 미요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었다. 그것 역시 편안한 카페 안의 분위기가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카푸치노는 미요에게 사업적인 대화를 할 때 이성적인 사고를 갖게 하고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를 친숙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다.


 또한, 이 곳은 실내의 변화된 인테리어를 계절따라 감상할 수 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와는 다른 카페 주인만의 개성과 감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육중한 카페 문을 딱 열고 들어서면, 나이키 대리점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데이지 꽃무늬의 나이키 신발이라든가. 주인 취향의 옷들이-특히 가죽점퍼나 티셔츠- 장식처럼 걸린다. 그리고  도라에몽  인형, 레고로 만든  자동차도 전시되고 태그호이어 같은 명품시계가 투명한 박스 안에서 다람쥐바퀴처럼 천천히 돈다.


그런 시계는 손목에 안 차면 죽는다고 무라카미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루와~'에서 주인공은 말했었지.

그리고 주인의 시바견이 있는데 튼튼하고 야무져 보인다.

이 검은색 시바견-이름은 요시-은 손님들이 예뻐해 주면 카페가 들썩이도록 짖으면서 온몸으로 반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 카페 오픈 시즌에는 입구에 빨간 나이키 박스가 피라미드처럼 쌓여 있었다.

'저렇게 많은 나이키 신발을 샀었나?' 의문이 들 만큼 많은 박스였다. 그래서 손님들은 주인의 취향이 담긴 카페 안의 감성을 눈으로 즐긴다. 커피의 향기와 마들렌, 치즈케이크의 맛과 함께 온 감각이 들썩인다.

 오늘도 미요는 삶이 심심해질 때면 이 카페를 찾는다. 사장은 미요의 입맛에 딱 맞춘 카푸치노를 만들어 준다. 너무 달지 않고 적당하게 그리고 시나몬 가루 듬뿍~!. 미요의 동네에 있는 많은 카페들 중 이 카페만큼 맛있는 카푸치노는 없다!

한 번은, 카페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갑자기 중년의 남자들이  몰려 들어왔다. 8명 정도 되는 인원이었다.

조용하던 카페 안이 시끌벅적해졌다. 의자 끄는 소리, 주문하는 소리.... 그들은 4인용 테이블 앞에 옆 테이블의 의자들을 가져다 놓고 모여 앉았는데 카페 주인은  8명 분의 아메리카노를 만드느라 갑자기 바빠졌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음성이 드넓은 공간에 웅웅 거리며 울렸다.


 드디어 음료가 나오고 그들은 빠르게 그 시원한 음료를 들이마셨다. 그것도 동시에. 음료를 깨끗이 다 비운 그들은  또 우르르 문밖으로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카페 안에 찾아온 정적. 그들이 앉았던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점심을 먹고 나른한 오후를 활기차게 보낼 힘은 식후의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아닐까?

그리고 잠시잠깐의 잡담으로 활력을 더하고. 21세기 바쁜 도시인들의 휴식처는 바로 카페지.. 미요는 그렇게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미요는 이런 카페를 작은 행사의 공간으로도 사용할 수 있겠다 싶었다. 가까운 미래에 펼쳐진 미요의 독서 강연회는 어떨까?  이 카페서 작은 음악회도 열렸다고 하니 앞으로 카페는 여러 방면에서 필요한 시민들의 휴식처 및 소규모  공연장이 될 것이다. 멋있지 않은가?

자신의 삶을 바꾸려면 환경을 바꾸라는 말이 있다. 정체된 삶이 싫었던 미요는  살던 곳에서  탈출하듯 빠져나와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그녀가 이사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말했다. 삶의 터전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미래는 확실하지 않고 낯선 곳에서의 시작은 더 그러하다. 그러나 변화를 두려워하면 변화가 없다. 미요는 단조로웠던 삶의 환경을  바꿈으로써 승리했다. 언제든지 시작해도 늦지 않다.


 그녀이제 낯설 첫인상을 벗고 새 동네를 친근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녀가 내린 연약한 잔뿌리가 지칠 때마다 힘을 준건 카푸치노다. 오랫동안 저스트 커피의 카푸치노를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올해 다가올 크리스마스 때 이 카페 안에 새롭게 바뀔 성탄절 분위기를 상상해 보면서 미요는 행복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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