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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넉넉 Apr 05. 2022

태몽, 혹은 나의 기도

화요일 에세이

옛날 주막 같은 마루청. 한 남자 아기가 티 하나 없는 백옥 같은 하얀 마옷을 입고 안채의 방에서 마루로 기어 나온다. 아이의 피부, 손, 맨발 때문인지, 그 하얀 마옷 때문인지, 새하얗게 빛을 내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고 오로지 아이만 보인다. 그 빛이 어찌나 밝은지. 꼭 유럽 그림 박물관에서 많이 봤던 아기 예수님 그림들에서처럼 마루청 위의 아기에게서도 후광이 밝게 일렁인다. 


주막인지 식당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그곳 주인이 아기에게 다가와 무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주문을 하라는 것일까. 아기를 대하는 주인의 태도가 무척이나 겸손하고 다정해 보인다. 새하얀 피부의 아기는 새하얗게, 사랑스럽게 미소 지으며, 주인의 얼굴 께에 가까이 간다. 주인의 귀에 작은 손 하나를 대고 소곤소곤 속삭이는 듯하다. 뭐라고 말하는 걸까. 주인은 만족스럽게 아기에게 웃어보이곤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먼발치에서, 혹은 티비를 보듯 아기를 빤히 바라본다.

      

너는 누구니. 참 어여쁘다.      



얼마 안 되어 주인은 새하얀 국수발이 가득 담긴 나무 접시를 들고 온다. 국수발에서도 하얀 빛이 발하는 것 같다. 아기는 함박 미소를 지으며 자기 앞에 놓인 수북한 국수발을 바라보더니, 바로 하얗고 작은 손가락으로 국수발을 한 올 두 올 집어서 입에 넣는다. 정성을 다해 국수발을 먹는 볼이 통통, 동그란 번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 같다. 양념 하나 안 되어 있는 국수발이 어디가 그리 맛있다고 저렇게도 맛있게, 행복감에 젖어 먹는 걸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꿈인지 생신지 모르게 이토록 생생한 그림.     


아, 어쩌면 깨끗하고 하얀 국수발 있는 그대로의 모습처럼, 

내 아가, 너도 그렇게 너 있는 모습 그대로 깨끗하게, 순수하게 나에게 왔는지 모르겠다.


-

꿈에서 깨고 나는 천장을 멍하게 쳐다보며 막연하게 행복했다.

이유 모를 눈물이 흘러나왔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아직 가져보지 못한 존재이지만 이상하게 벌써 그 존재가 그리워서.

그만큼 마음이 꽉 차오르게 생생해서. 


정말 사랑스러웠는데... 언제 만날 수 있을까.

빛과 같은 아들이려나,,, 아들이어도 딸이어도 상관없다.


깨끗한 국수발처럼, 꿈속 오밀조밀 작고 사랑스러운 아기처럼,

내 아가, 너도 그렇게 나에게 오기를 겸허하게 기도한다.

순수와 사랑 그 자체인 너를 있는 그대로 두 팔 벌려 안아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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