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넉넉 Apr 19. 2022

태생부터 도도한 재재

화요일 에세이

재재는 태어나기 전 뱃속에서부터 도도했다.

아니, 어쩌면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향이려나?     


임신 약 5개월부터 초음파와 입체초음파를 같이 봤다. 

5개월 때까지 초음파로 재재를 볼 때마다 두 손 두 팔로 얼굴을 가려서 어떻게 생겼을까 늘 궁금했는데(물론 초음파로 보는 얼굴이 얼마나 뚜렷할까마는), 처음 입체초음파로 볼 때도 재재는 도도하게 자기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두 번째 입체초음파로 볼 때는 그나마 얼굴의 반절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어 나와 남편이 황송함과 경외감에 환호성을 질렀었다.


세 번째 입체초음파를 할 때도 재재는 자기 얼굴을 엄마 배 벽으로 향하고 절대 보여주질 않았다. 나와 남편은 우리 재재 눈.코.입이 어떻게 생겼을까 무척이나 궁금해 했는데 이번에도 그저 복스러운 귀와 측면 볼만 볼 수 있었다.


입체초음파의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물론 이것은 아쉬운 이유가 거의 되지도 않는다.) 꼭 보고 싶었지만, 우리 재재가 지금은 엄마아빠에게 쉽게 사랑스러운 얼굴을 안 보여주겠다는데, 혹은 쑥스러워서, 졸려서, 눈이 부셔서, 귀찮아서 안 보여주겠다는데 할 수 있나. 우리 아가를 존중해줘야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건강하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함 가득이었다.

 

“뿜뿜아(재재 태명), 다음번에는 그 도도함을 조금 내려놓아줄 수 있겠니. 엄마아빠가 우리 아들 뱃속에 있을 때 얼굴도 정말 보고 싶거든! 그래도 뿜뿜이가 세상에 나와 엄마아빠를 보고 더 큰 기쁨을 주고 싶거든, 아니면 너무 쑥스러워서 아직은 아니라 여겨 계속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거든, 엄마아빠는 존중해!”


재재는 지금도 잘 때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엄마 가슴이나 배 쪽에 얼굴을 파묻고 자는 걸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다 그게 정말 편한 걸까?

 

어쩌면 재재의 도도함 혹은 쑥스러움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 행동을 재재에게서 매일같이 보게 된다. 재재는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꽤 오랫동안 내 손을 잡고 자기 얼굴을 가리거나, 내 뒤편으로 가 내 엉덩이나 허벅지에 자기 얼굴을 묻곤 한다.


또래들을 처음 만날 때도 재재는 한 동안 그들을 똑바로 마주하지 않고 내 손을 자기 입술에 가져가거나, 내 뒤쪽에 서서 다른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빤히 바라본다. 그 후에 천천히 다가가 아이들의 목소리, 움직임, 말들을 따라하며 조금씩 조금씩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재재는 여러 번의 비슷한 ‘처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편이다. 이를 테면, 이전에 만나 반갑게, 재미있게 시간을 보낸 이라도 하루, 이틀, 일주일 정도 짧은 텀을 두고 만나면 다시 처음부터 친해지는 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재재는 매우 수줍음을 많이 타고(혹은 매우 도도하고), 그럴 때마다 재재는 슬며시 내 손을 자기 입으로 가져가거나 어느새 내 뒤쪽으로 위치해있는 것이다.


그런 재재를 보고 많은 어른들이 지나가며, 또는 쳐다보며 말한다. 

“아이고, 사내아이답지 않게 자꾸 엄마 뒤로 숨으면 어떡하니.”

“활달하게, 배포 있게 인사랑 해야지.”

“꼭 여자애같이 수줍어하네?”

...


다른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깊이 자리한 생각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재재의 소중한 조각들은 나와 남편만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걸 재재가 꼭 알 수 있도록 다정함 가득한 설명을 해주기 위해서는 나와 남편이 먼저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재재의 ‘소극성’을 재재만이 지닌 ‘도도한 매력, 아이로서 신중한 모습’으로 재재에게 돌려줄 수 있어야겠다.


엄마아빠를 믿는 마음, 모든 것에 신중하려는 자세, 잘 관찰하고 적절하게 반응하기 위해 준비하는 아이의 최선. 재재의 이런 조각들을 나와 남편은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 한다. 얼마나 소중한 조각들인가...


재재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손을 가리고 자신의 얼굴을 잘 보여주지 않았도 재재를 존중한다고 말했던 그때처럼, 나와 남편은 지금도 그러고 있다. 우리 아이를 사랑하며 존중하는 것은 앞으로도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재재가 뱃속에 있었을 때 우리가 재재와 한 약속을 오래오래 지키고 싶다.


재재야, 엄마아빠는 약속을 꽤 잘 지키는 사람들이야. 엄마아빠 한 번 믿어봐~!


이전 03화 만삭촬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