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B Aug 23. 2021

꿈, 무의식과 만나다

프로이드는 공격성과 상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학자다.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라고 불렀고 상처를 치유하는 데 꿈을 활용하기도 했다. 그의 제자 융은 ‘무의식은 자연이고, 자연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융은 집단 무의식을 연구하는데 세계적인 공헌을 했는데 자기 내면의 진실을 찾아가는 중년기 심리학을 집대성하며 ‘무의식의 의식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또, 반복되는 꿈을 무시하게 되면 정신병이 생긴다고도 말했다. 그만큼 우리가 꾸는 꿈은 놀라운 선물이자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 가장 바깥쪽에 의식(자아)이 있고, 한 겹씩 안으로 들어가면서 개인무의식, 집단무의식 층이 형성되어 있고, 가장 안쪽에 마음의 중심이자 핵인 자기(self)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의식과 개인 무의식 사이에 콤플렉스가 분포되어 있고, 집단 무의식 안에는 원형과 아니무스(아니마)가 자리를 잡고 있다.      


에고(Ego)가 외계규범에 적용해 나아가는 데 사회적인 역할, 전통, 가치관을 배우는데, 페르소나(Persona)는 외적 인격이며 비본질적인 것을 말한다. 비본질적인 것, 환상을 찾을 때 병이 생기는데, 이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며 마음의 병이 생겨 무의식과 단절이 생긴다. 페르소나와 자기를 구분해야만 무의식에 도달되며 순수인격에 도달할 수 있다.      


아니무스(Animus)와 아니마(Anima)본질적인 것으로 의식과 무의식을 접촉시켜 준다. 아니무스(Animus)는 여자들안에 있는 남성성이고, 아니마(Anima)는 남자들안에 있는 여성성이며 의식과 무의식을 접촉시켜 준다.      


내가 꾸는 꿈속에 나타나는 것들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모두 내 것이다. 내 안의 감정은 모두 내 것이다. 모든 문제의 답은 내 안에 있다. 내 꿈속에 나타나는 이성은 아니무스이며, 내 꿈속에 나타나는 동성은 그림자(Shadow)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림자는 자아와 동질성을 지니며 부정적인 기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지역감정이나 인종편견처럼 집단적인 특성도 지니며 투사할 때 에고와 대상과 특별한 관계가 된다. 나의 그림자, 감정적인 집착이 있는 한 그곳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하며, 투사가 있으면 감정적인 집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림자가 많을수록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림자는 꿈을 통해서만 바꿀 수 있다. 내 뒷모습은 남이 말해주거나 꿈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림자는 때로 유치하게 보이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의식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꿈에는 반드시 메시지가 있다. 꿈에 못마땅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과 비슷한 점을 적어봐야 한다. 그것 또한 나의 모습이므로 있는 그대로 거울처럼 받아들이고 수용하게 되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다고 한다.



2014년 4월 이혼으로 가정이 깨질 것 같은 극심한 고통 중에 있을 때 충격적인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 이 두 가지 고통스러운 과정은 나를 더 많은 꿈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전보다 꿈도 많이 꾸고, 꿈 자체가 너무 선명해서 일어나서도 다 기억이 날 만큼 또렷했다. 그만큼 무의식이 보내오는 신호가 많았다는 것을 꿈 해석을 통해 알게 되었다. 꿈은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내면과 무의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래서 ‘꿈’에 대해 공부하는 그 시간을 무척이나 기다렸다. 흥미롭고 신비롭고 흥분되고 떨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꿈을 해석하는 시간동안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했던 나의 무의식과 만났다. 


내 꿈을 들여다보고, 그 꿈이 갖는 상징성을 해석해보고 더듬거려 보는 이 시간을 기다려왔다. 이 시간이 평생 해 보지 못한 경험을 하는 시간이었기에 너무나 좋았다. 누군가는 점쟁이에게 꿈 해몽을 부탁하고 복채라도 주어야 하는 거냐며 비아냥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모르는 상태였던, 이전과는 달리 조금씩이라도 나를 알아간다는 기쁨이 있었기에, 신비로운 힘에 기대서라도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은 너무 소중한 작업이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꿈’이라는 영역, 그 속에 담긴 나의 마음을 알아가는 일은 그래서 신비롭고 신이 났고 통쾌하기까지 했다. 꼬여가기만 했던 내 마음이 점점 펴지고 음지에서만 있었던 나의 무의식이 양지로 나왔다.      


햇볕 잘 드는 바람 부는 창가에서 나는, 나를 말리고 나를 널고 바람 따라 이리저리 기분 좋게 흔들리면서 그렇게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내 마음은 뽀송뽀송 잘 마른 빨래처럼 펴지는 듯 했고, 그 사이로 햇볕 냄새가 기분 좋게 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한다는 말이 그렇게 힘든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