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빛을 입고

사연 10

by 하프타임 크래프트


호주에서부터 남편의 손에 들려 이 좁은 공방까지 찾아온 성경이 있었다.처음에는 그저 먼 길을 건너온 책이 라고 생각했는데, 작업을 시작하고 보니 마음도 함께 도착해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국 날짜를 잘못 알고 있었던 탓에, 며칠 동안은 시계 초침 소리를 곁에 두고 작업하는 기분이었다. 손은 바쁘게 움직였고, 마음은 자꾸 시간을 헤아렸다. 짧은 며칠이었지만 그 안에 해야 할 일은 분명했고, 끝내 맞춰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작업대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채운 끝에 성경을 건네드리던 순간, 남편분의 표정이 먼저 풀어졌다.


“정말 예쁘네요.”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작업 내내 몸에 쌓인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애써 맞춰낸 시간은 늘 그렇게 짧은 말 하나로 보상받곤 한다.


요즘 우리 공방에서 가장 자주 고르게 되는 색은 올리브 그린이다. 이번 성경도 그 색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찾아오신 자리에서 어머니의 성경까지 같은 색으로 맡기셨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호주로 돌아갈 성경과 이곳에 남아 다시 작업을 기다릴 어머니의 성경이 같은 빛을 입고 있다는 것이,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방식으로 마음에 닿았다.


올리브 그린은 눈에 띄게 화려한 색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 바라볼수록 숲의 고요함 같은 것이 있다. 차분하고, 조용하고, 쉽게 질리지 않는다. 그래서 멀리 떠나는 책에도, 오래 곁에 둘 책에도 잘 어울리는 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쯤 그 성경은 구름 위를 지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울의 작은 공방에서 여민 가죽 옷이 바다 건너 낯선 공기 속에서도 제 역할을 잘 해주었으면 한다. 내가 하는 일은 이 골목 안에 머물러 있지만, 내가 만든 성경은 때로 국경을 넘어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이번 작업은 그 사실을 다시 조용히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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