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8
어떤 책은 여행자처럼 공방에 들른다. 이번 성경도 그랬다. 미국에서 건너와 잠시 한국에 머무는 동안, 출국 전까지 새 옷을 입혀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정해진 시간이 있었고, 그 안에 마쳐야 한다는 마음이 작업 내내 한켠에 놓여 있었다.
겉보기에는 제법 멀쩡한 책이었다. 하지만 표지를 벗겨보니 안쪽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책등은 이미 갈라져 있었고, 내지는 손끝에 닿기만 해도 조심스러울 만큼 약해져 있었다. 겉은 아직 버티고 있었지만, 중심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저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늘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완벽하게 처음으로 되돌리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더 무너지지 않도록 중심을 다시 세우고, 한동안 버틸 수 있게 붙들어주는 사람에 가깝다. 성경리폼이라는 일이 내게 자주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이번 작업에는 올리브 그린 가죽을 골랐다. 숲을 닮은 차분한 색이었다. 오래 읽히는 책일수록, 쓰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은 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손볼 곳은 분명했다. 겉을 새롭게 만드는 일보다 안쪽의 흐트러진 중심을 다시 붙잡는 일이 먼저였다. 책이 다시 제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부터 차례로 손을 댔다.
이제 이 성경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작은 공방에 머문 며칠은 길지 않았지만, 그 시간이 이 책을 조금 더 오래 붙들어주는 바탕이 되었으면 한다. 튼튼해진 책등이 바다 건너에서도 제 역할을 다하며, 의뢰인의 손 안에서 다시 오래 읽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