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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은 있어도 권위 따위

집사는 오늘도 고양이에게 사회생활을 배운다.



나는 고양이 넷을 모시고 사는 집사다. 30대 중반 공황장애와 공포증이 극에 달했을 때, 첫째 사랑이를 시작으로 넷째까지 일 년 만에 대가족이 되었다. 냥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이런 모습의 나'는 고사하고 어쩌면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큰 위로이자 스승이 되어주었고,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준 냥이들.


새끼 때부터 사람 같은 녀석도 있고 점점 사람처럼 변하는 녀석도 있다. 냥이들을 보면서 인간인 나보다 더 인간적인 면을 볼 때나 집사보다 더 사회생활과 처세술, 대처능력뛰어난 것을 볼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앞으로 브런치를 통해 '한국형 인간관계'로는 사회성 제로에 가까운 집사가, 고양이들에게서 수년간 배운 것들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 별, 사랑, 미카, 크림


서열은 있어도 권위 따위 개나 줘버려


흔히 사람들은 고양이는 서열이 없다고들 생각하는데,, 살아보니 고양이들 사이에도 서열은 있는 것 같다. 다만 그에 따른 권위나 특권, 소유욕이 다른 동물과 비교해 적을 뿐.


강아지를 보더라도 서열에 따라 자리 또는 소유물(방석, 하우스, 장난감 ) 이 있다. 그런데 고양이는 그때그때 기분이나 취향에 따른 선택이 있지 '네 것 내 것'은 없다.

서열 막내가 가장 위(왼), 대장인 첫째가 맨 아래(중앙), 둘째와 막둥이가 함께 가장 위에서 잠을 자기도(오)


고양이 필수템인 캣폴을 예를 들어보면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의 습성 상, 캣폴의 가장 윗자리가 상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자면.


하지만 캣폴 맨 꼭대기에 서로 앉으려고 싸우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날 그때의 기분이나 취향 또는 의지(높이 올라가 보려는)의 문제이지 서열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캣폴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고양이에게는 마찬가지다.


반면

우리는 종종

굳이 내 취향도 아니고 원하지도 않으면서 

위치나 지위를 명분으로

쥐고 있을 필요도 없는 것을

꼭 쥐고서 놓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귄위'라는 것에 대한 고민



"그렇게 하면 팀장의 권위가 낮아진다."

"그래서 우리 팀을 함부로 본다."

"왜 그렇게 하냐, 잘해주면(한번 해주기 시작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


조직에서는 경력이 점점 쌓일수록 책임져야 하고 관리해야 할 사람과 사안이 많아진다. 특히 우리 팀의 관리 소관은 이 공장부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사람까지 포함한다. 이러다 보니 나와 가장 잘 어울이지 않는 이 '권위와 위력'이 가장 쉬운 관리 수단이라는 현실을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평소보다 식사하는 직원 수가 갑자기 늘었던 날, 구내식당 운영업체에 이를 미리 알려줬다. 나는 괜히 신경이 쓰여 음식이 넉넉하게 준비되고 있는지 식사 시간 15분 전 구내식당에 가서 확인해 보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 실무자 간 전달이 잘못되어 늘어난 인원만큼의 음식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업체는 재료는 있지만 준비할 사람이 부족해 15분 안에는 음식을 더 만들지 못한다는 입장이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배식을 할 테니 (업체)직원분은 음식을 더 만들어 달라"라고 말했다.(참고로 나는 보건증을 가지고 있다) 직원들을 굶길 수는 없지 않나. 다행히 음식은 준비가 되었고 직원들 식사에 문제는 없었다.


배식하는 의사 이익준, 이미지 출처: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그날 팀장이 배식하는 것을 본 직원들은 이벤트처럼 재미있어하기도 놀라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을 다 말할 순 없어 그냥 '알바 중'이라고 농담까지 하면서 즐겁게 배식을 마쳤다.

하지만, 그냥 재미있는 해프닝 같은 이 일에 대해서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있더라. 그놈의 '권위'가 뭔지.


무조건 '권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필요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권위'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느냐는 것이다. 단순히 직급이나, 계약서 상의 '갑', '원청'이라는 이유로, 예전부터 그랬으니까...라는 이유로.

이것이 맞느냐는 거다.  


나는 팀장이 구내식당에서 배식을 한다고 해서 권위가 낮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사유의 시선이 낮은 것이 문제가 아닐까.


사유의 시선이 낮은 것이 문제


나는 다소 답답하리만치 원리원칙주의자다. 어머니는 자주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라는 말씀을 나에게 하시는데,, 뭐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것처럼 내가 그렇게 '맑은 사람'은 아니다. 그냥 불필요하게 이래 저래 엮이는 걸 싫어할 뿐이다.


평소 업무를 할 때 최대한 실무자들의 의견을 듣고 따른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 웬만한 결정은 실무자들이 하고, 임원 보고도 직접 하도록 한다. 팀원들이 자리를 오래 비워도 필요한 이유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뭘 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나는 솔직히 일만 제대로 돌아간다면 재택근무를 하든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든 상관없는 사람이다.


실제로 구매팀 팀장을 할 때에는 계약서를 담당하는 직원이 외부로부터 업무 간섭이 너무 많아서 노트북 챙겨서 근처 카페에서 일을 하든지 집에서 재택근무하든지 업무 효율 높은 방향으로 선택하라고 했었다.



그 대신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을 인지하면 '친절한 경고'를 몇 번 한다. 경고를 통해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준다. 그럼에도 이 '친절한 경고'를 무시한 사람이나 업체는 가차 없는 나의 결단에 뒤늦게 후회를 한다. 이미 그때에는 어떤 회유(?)와 외압(?)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친구들은 가끔 '너무 사이다'라며 나를 '정의의 사도'나 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공익적인 의도는 별로 없다. 사람들과 부딪히는 걸 싫어하는 소심쟁이에 까칠한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식당에서 배식을 하든, 현장 근무자들에게 고개 깊이 숙여 인사를 하든, 직원들 대신 마트에서 장을 보든, 운전을 하든, 청소를 하든 나의 권위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한 적도 행동을 주춤한 적도 없다.


고양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캣폴의 맨 윗자리를 두고 싸우는 일이 일어날 수 없듯, 나에게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개념의 '권위'는 일어날 가능성이 없을 것 같다. 현재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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