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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면접을 하면서

은은한 빛이 나는 알맹이를 가진 사람

얼마 전 우리 팀에 들어올 신입사원을 뽑는 면접이 있었다.

면접관으로 팀장인 나와, 우리 팀 과장들이 함께 했다.

지원자들도 긴장하겠지만, 사실 면접관들도 떨리긴 마찬가지이다.

짧은 시간 안에 오랫동안 함께할 사람을 알아본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력하게 긴장한 모습의 지원자가

인터뷰룸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으면

나는,

내가 누구이며

함께 있는 면접관들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우리 팀은 어떤 일을 하는 팀인지 등을 

지원자들에게 먼저 소개한다. 그리고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이 자리는 우리가 00 씨를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00 씨도 우리를 알아가는 서로를 위한 시간입니다.


우리도 00 씨가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일까'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지만,

00 씨도 '내가 다니고 싶은 곳인지',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인지' 판단해야 하니

우리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하게 이야기해요."


라고 말한다.

그제야 지원자들의 긴장된 표정이 조금은 풀린다.


나는 면접은 맞선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면접관)가 직원을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 아닌, 지원자도 회사를 판단하는 자리인 것이다.

이것이 내가 그들에게 우리를 먼저 소개하는 이유이다.


이렇게 시작하면 지원자들도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더 많은 말들을 진솔하게 하게 된다.

오고 가는 질문과 답변 속,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러티브는 마치 에세이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다.

시간이 다소 많이 걸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생생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끄덕이고 또 많이 웃어준다.


사실 그들이 하는 말은

두서가 없기도, 동문서답일 때도 있다.

외워 온 내용을 기억해내느라

동공 지진하는 모습을 보이면

괜찮으니 물 한잔 마시고 천천히 하라 따뜻하게 말해준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것도 실력이고 검증이다. 그래서 압박면접도 하는데 왜 그렇게 부드럽게 대하느냐.

뭘 그리 시간과 에너지 쏟으며 유난스럽게 하느냐,


글쎄.


예전에 대학생 마케팅 대회 심사위원을 할 때의 일이다.

여러 대학 참가팀 중 한 여학생이 발표를 했다.

무대 위를 왔다 갔다 자유롭고 능수능란한 모습이 같은 대학생들의 눈에는 대단히 멋지게 보였을 거다.

(아마도 그 친구는 당시 유행하던 '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 스타일을 연습했던 것 같다)

결과는? 나를 포함한 다른 심사위원들에게도 그 학생이 속한 팀이 좋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다.


왜?


무대 위 어떻게 걷고, 언제 어떤 제스처를 하고, 말은 어디서 끊었다가 다시 시작하고,,

그녀의 발표 스킬은 나무랄 때 없었다.

그런데,, 그 마케팅 프로젝트 내용에 대한 진심이, 알맹이가, 에너지가 전달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친구는 팀의 프로젝트 내용보다는 발표 스킬을 더 연습했던 것 같다.

물론 발표 스킬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용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

(당시 나는 그녀가 연극하는 것 같다 생각했다. 내용이라는 시나리오와는 따로 노는 연극 말이다.)


그 분야에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이 사람이 지금 이걸 알고 말하는지 모르고 말하는지 알맹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어떤 지원자는 외모, 춤, 노래,

뭐 하나 나무랄 때 없는데

심사위원들과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 노래의 에너지, 진심, 의미 전달이 부족한 것이다.


알맹이는 흉내 낼 수 없고,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다.

알맹이를 가진 사람은 말투는 좀 서툴러도, 스펙은 좀 낮아도, 실수는 좀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더 빠른 속도와 더 큰 폭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굳이 면접에서 압박면접이니 하는 이유로 긴장감을 올리지 않는 이유다.

우리는 그 알맹이를 알아보면 되는 것이다. 방법이 무엇이 되었든.

다만,, 진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그 알맹이가 더 빛을 내기에 나는 이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그 두서없는 말 안에서도

에너지와 빛을 내는 사람이 있다. 

(물론 언변까지 좋은 지원자라면 금상첨화겠지)

정말로 빛이 나는 사람이 있다.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알맹이를 가진 사람인 거다.

이력서에 적힌 화려한 내용이 단순 스펙이 되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하나하나를 자신의 씨앗, 알맹이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빛이 난다.

은은한.


내가 우리 술 공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렇게 활짝 탁 트인 하늘.


오늘도 면접 마무리로

'마지막으로 질문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냐'라고 물었다.

한 지원자가 이런 말을 했다.

'자기소개부터 할 줄 알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면접관들이 먼저 소개해 주었다'며

'이렇게 부드럽고 편안한 면접은 처음이었다'라고

'올 때보다 면접을 마무리하는 지금 이 회사에 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라고.


물론 좋은 점수 따기 위해 하는 예의상 말일 수도 있겠지만.

이 얼마나 고마운 말인가.


오늘

자신의 알맹이를 가진 빛이 나는 훌륭한 지원자들을 만나 기뻤다.

누가 우리와 함께 일할지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의 알맹이는 꼭 우리 회사가 아니더라도

어느 곳에서도 빛을 낼 것이고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라는 것.

  


* 쓰다 보니 너무 주관적으로 보이는 것 같은데, 당연히 우리 회사에는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채용 시스템이 있으며, 그것에 근거하여 평가 절차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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