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건

(7)

by 선이정

인도에 산 적이 있다.


브런치 메인에도 떡하니 쓰여 있으니, 이제 와서 내 입으로 말하기도 새삼스럽지만.


해먹과 야자나무가 있는 풍경에서 요가를 하거나 칵테일을 홀짝거리는 일상은 없었다. 한 달 살기 같은 세련된 유행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나는 문자 그대로 흙먼지 이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 다니는 성실한 직업인에 가까웠다. 관광객처럼 동동 떠다니지도, 현지인처럼 자연스레 스며들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흘러 다녔다.


포도알 같은 눈망울의 아이들을 돌보며 함께 살았다. 10대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다. 그런 일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 같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 아닌가? 내게는 노래는커녕 마음의 여유 한 톨도 없었다. 그전까지 나는 경쟁에 눈을 부라리는 인간, 항상 빳빳하게 긴장한 인간이었다. 이게 다 7차 교육과정과 입시 무한 경쟁 때문이라고 농담처럼 웃으며 말하지만, 시대정신만 탓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냥 내가 팍팍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초연하고 여유로운 사람이 제일 부럽다.


그나마 인도에 사는 동안 나를 들여다보는 법을 조금 배웠다. 모든 밥을 급식처럼 먹고, 모든 옷을 교복처럼 입고, 삶의 모든 일을 숙제처럼 받아들이는 방식은 그곳의 삶과 양립할 수 없었다. 수십 명 아이들의 밥과 옷과 공부를 봐주는 생활은 그 자체로 종종 전투에 비견될 만한 에너지를 요구했으나, 전투마처럼 달리면서 할 일은 아니었다.


두 자릿수 뺄셈을 배우고, ‘잡식성’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고, 놀다가 옷을 찢어먹지 않을 만큼 자라려면 아이들에겐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몇 번이라도 다시 설명하고, 외운 내용을 확인해주고, 바느질을 하면서 찬찬히 기다렸다. ‘더 빨리, 더 열심히’만 스스로 되뇌었던 10대의 나에게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기분이었다. 분명 좋은 변화였다. 피곤하고 정신이 좀 없어서 그렇지.


그 시절 일기는 대부분이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굴러가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수십 명의 아이들과 사는 자체로도 정신없는 일인 데다가, 기계가 아닌 이상 사람은 중간중간 잘 쉬어야 하는데 나는 쉬는 것과 노는 것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철부지였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차라리 앓아눕도록 아프면 아예 쉬겠는데 증세가 은은하게 계속되어, 일손도 못 놓고 스트레스만 받았다.


끝장을 봐야겠다. 안 풀리는 수험 과목 대하듯이, 해결해야 할 장애물을 대하듯이, 또 그렇게 숙제를 바라보듯 결의를 다졌다. 그날 처음으로 나를 위해 죽을 끓였다. 여름 나라의 동네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에는 한계가 있었다. 무도 멸치도 없이 양파만으로 국물을 내고, 야채를 다지고, 흩날리는 쌀을 한참 불렸다. 죽이 부글부글 끓기를 기다리다 문득 바라본 창 밖으로 오후의 마지막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태양이 사람이었다면 분명 우리의 눈이 마주친 순간으로 기억했을 그 잠깐. 청승맞게도 눈물이 흘렀다. 어느새 결의는 잊혀 있었다. 얼마만인지도 모를 만큼 오랜만에, 비로소 쉬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속 쓰림은 그렇게 끝났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애초에 위장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입사 이후 “집에 가고 싶어요.”라는 말에 1위를 내어주고는 있지만, “정신없어.”는 여전히 내 입버릇 상위권에 있다. 내가 벌인 일과 나를 찾아온 일이 서로 머리채 잡고 뒤엉켜 눈사태처럼 번져가는 상황에 아연실색하는 날들도 많다.


그러다 문득 지쳤다고 깨닫는 날엔 정성껏 요리를 한다. 이런 날만이라도 공들여 만든 음식을 먹고 싶어서. 맛과 영양보다는 그냥 그 느낌을 받아먹고 싶은 것 같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는 시간, 그 시간을 밀어 넣고 소중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을.


그런 날 나는 커리를 만든다. 양파를 곱게 송송 썰고 향신료를 볶아서, 닭고기나 감자나 계란이나 다양한 야채를 넣어서, 오래 뭉근하게 끓여낸다. 무엇이 힘들다 말로 꼬집을 수도 없는 날들이 남루하게 이어질 때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건 정성뿐이니까.



그 맛이 그리워진 자가격리자는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별 게 없다. 그럴 수밖에. 점심은 회사에서 먹고, 저녁은 복싱 가기 전에 간단히 먹어 버릇하고, 요리할 시간은 좀처럼 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집에 양파랑 계란은 있다. 직구로 구비한 향신료도 있다. 이 정도면 에그 커리를 할 수 있지. 점심으로 부리또를 배달시켜 먹으면서, 커리에 넣을 요량으로 고수를 따로 추가했다.


신나게 만든 커리인데 혼자 먹으니 잘 줄지도 않는다. 지겹도록 먹고 마침내 냄비를 비운 다음 날 아침. 배달 어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린 카페라테가 간절히 마시고 싶어서. 나는 커피를 마셔야 일의 능률이 올라가는 K-직장인이니까. 무심하게 손가락을 슥슥 넘기는데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띈다. 좋아하는 동네 빵집, 점심 조금만 지나서 가도 빵이 줄줄이 품절인 동네의 인기 빵집이 배달을 하고 있었다!



재택근무 점심 때나 퇴근 후에나 가볼 수 있다 보니,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샌드위치와 카페라테 한 잔을 주문한다. 배달을 이렇게 두근두근 기다리기는 처음이었다. 그 날 오전 정말 신나게 일했다.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건, 정성뿐이 아니었다. 셀프 정성도 좋지만, 전문가 손길이 닿은 맛있는 음식은 더 좋았다.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건 생각보다도 더 많고 풍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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