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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책으로, 요리로, 커피로, 온갖 귀여운 문구 사용으로, 일기 쓰기로… 다 좋아하는 것들이지만, 이렇게까지 쉼 없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지금 이토록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건 순전히 즐거워서 하는 행동이라기보다는 노력의 측면이 좀 섞여 있다. 불안을 몰아내고, 무료함을 덜어내고, 스트레스를 풀어보겠다는 노력.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 치고 애써도 이따금씩 불안이 유독 짙게 드리우는 때가 있었다.
자려고 누우면 괜히 미열이 감도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럴 때마다 벌떡 일어나 체온을 쟀다. 재 보면 35.8도. 아니면 36도. 미열은 고사하고 36.5도보다도 낮았다. 다시 누우면 목이 괜히 간질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건 뭐 측정도 못하고 어떻게 알지? 열이 없다는 게 똑똑히 찍혀 있는 체온계를 생각하며, 아닐 거라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잘 알려진 심리학 용어 플라시보 효과의 반대말은 노시보 효과다. 밀가루로 만든 가짜 약을 먹으면서도 좋은 약이라고 믿고 먹으면 상태가 호전되는 경우를 일컫는 플라시보 효과와 달리, 노시보 효과는 좋은 약임에도 부정적 효과를 믿으며 먹으면 병세가 악화되거나 심지어 없는 병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멀쩡한 몸을 가지고도 “이러다 갑자기 증세가 생겨서… 코로나 양성이 되면 어떡하지?”라는, 확률도 낮은 막연한 불안을 알약처럼 삼키다 보니 괜히 나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을 가장 빠르게 벗어나는 방법은 음악이었다.
낮에는 주로 차음 기능이 있는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음악을 들으면서 일했다. 환기를 자주 하라는 권고 사항도 있고 답답하기도 해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냈는데, 바로 옆집이 건물을 새로 올리는 공사를 하고 있어서 소음이 심했기 때문이다. 평소 재택근무할 때에는 ASMR을 켜 놓을 때 집중이 제일 잘 되지만, 소란스러운 마음을 잠재우는 데에는 K-POP이 최고였다. 맑고 밝고 흥이 가득한 노래들. 세상의 그림자 같은 거 모른다는 듯이 희망찬 노래들. 소녀시대 <힘내>나 오마이걸 <dun dun dance>, 방탄소년단 <permission to dance> 같은 곡을 들으면 마음이 딱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신나게 일하다가 그것도 지치면 평소 좋아하는 인디나 발라드 곡들로 넘어갔다. 그러면 서서히 마음에 온기가 솟았다.
노래 한 곡마다 하나의 세계가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 잠깐 몰입해 있을 수 있다는 것. 가사로든 멜로디로든 나를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 스트리밍 어플의 랜덤 재생이 틀어주는 대로 내 플레이리스트 속 노래를 쭉 듣다 보면, 평소에도 좋아하던 노래들이 또 한층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 그건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개중 몇 곡은 들으면서 바로 가사를 연필로 슥슥 써보게 될 만큼 마음에 쑥 들어왔다. (꼭 연필이어야 한다.) 노트를 뒤져 그런 곡들을 다시 헤아려 본다.
<어른>, 정밀아 – 항상 사랑하는 가수의 곡이라, 여태까지 나온 모든 앨범을 항상 듣고 있다. 그래도 유독 좋아하는 곡을 물으면 주로 다른 곡을 이야기하는데, 이때는 “마음이 이리저리 구르는 밤 기분이 좀 신기한 밤 아니 좀 이상하고 울적한 밤”이 딱 내 시간 같았다. 아주 괴로운 것도 아니지만 또 행복한 것도 아니고, 싱숭생숭 가라앉은 밤. 노래 자체는 또 잔잔하면서도 가사가 유쾌하고 귀여워, 그런 밤 함께 있기에 참 좋은 노래였다.
<trying my best>, Anson Seabra – 얼마 전이었더라. 유튜브 구독 목록을 쭉 보다가, 1시간 전에 이 가수가 엘렌 쇼를 통해 TV 첫 출연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내겐 처음 들어본 이름인데, 알지도 못하는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텔레비전 데뷔 소식까지 곧바로 볼 수 있다니. 진짜 온 세계가 연결되어 있긴 하구나, 새삼 느끼며 별생각 없이 눌러봤는데, 노래도 목소리도 좋아서 그의 곡을 모두 플레이리스트에 끌어넣었다. 유독 이 곡의 한 소절이 마음에 닿았다. “I’m trying my best to be okay”. 괜찮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구절이.
<데이트> 몽트뢰 버스킹 버전, 이소라 – 이 곡을 고등학교 때 처음 들었는데, 그때 들으면서는 어쩐지 텅 빈 놀이공원을 상상했다. 분명 불꽃도 푱푱 터지고 회전목마도 돌아가는데, 기묘하게도 사람만은 없는 놀이공원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그러나 <비긴 어게인> 몽트뢰 버스킹에서 부른 버전은 아이들 소리나 공원의 작은 백색 소음이 들어가 있어, 비로소 내 마음속 놀이공원에도 사람들이 들어왔다. 자가격리 중인 마음에도 들뜬 공기가 닿을 만큼 선명하게.
<왈츠를 배워볼게>, 신승은 – 혼자 있는 시간이 이렇게 외롭고 힘들 줄이야, 하면서 앞으로 남은 삶을 혼자 살기는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로서는 1인 가구를 기반으로 그려져 있는 인생 지도를 어느 천년에 어떻게 바꿔가야 하나 싶어 심란해질 때, 이 노래를 들으면 힘이 났다. 우리의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늙어갈 거라는 찬란한 기쁨.
좋은 노래라고 다 들은 건 아니다. 너무 슬퍼지는 노래는 듣지 않았다. 일신상의 이유로 거른 노래도 있다. 샤이니의 <lock you down>는 듣지 않은 반면 온앤오프의 <누워서 세계 속으로>는 종종 들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누우면 다시 미열인지 목 아픔인지 모를 것들과 전전긍긍하게 되었으므로, 이 해결법도 음악에서 찾았다. 유튜브에서 숙면 음악을 이것저것 검색해 보았는데 기묘하게 소리에 집중하게 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이 곡 저 곡 뒤적거리다 조성진이 연주하는 드뷔시의 <달빛>을 한 곡 반복 걸어 놓고 잠을 청했는데, 이거였다. 꼭 구름 위에서 잠드는 기분이었다. 드디어 방법을 찾았다. 불안의 안개가 몰려오면 달빛 드는 구름까지 훌쩍 올라서면 된다. 음악이 나를 거기까지 끌어올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