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격리 첫날, 담당 공무원은 수많은 안내사항을 쏟아내면서 쓰레기에 대한 설명은 “격리 끝날 때쯤 다시 설명해 드릴게요.” 하며 나중으로 넘겼다. 어차피 밖에 못 나가는 사람, 당장 급한 것부터 우선적으로 기억하게 하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차피 보건소에서 전달받은 키트에 쓰레기 처리 안내지도 들어 있었다.
같이 들어 있던 주황색 쓰레기 봉지를 보았을 때는 흠칫 놀랐다. 의료 폐기물에서나 보던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갈고리 모양으로 뻗어 있어 어쩐지 무섭게 생겼다. 이건 생물재해 마크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생물재해는 ‘실험실이나 병원에서 일반 세균ㆍ바이러스 따위의 미생물이 외부로 누출됨으로써 야기되는 재해나 장애’다. 다시 말해 코로나바이러스가 있을지도 모르니 내가 버리는 모든 쓰레기도 위험물질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거다. 봉투에 아예 ‘이 폐기물은 감염의 위험성이 있으므로 주의하여 취급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평소에는 동생과 나 둘 다 직장인이고 주말엔 부모님 집에 가다 보니, 쓰레기가 아주 많이 나오진 않는다. 쓰레기가 너무 오래 쌓여 있지 않도록, 작은 종량제 봉투를 쓴다. 조금씩 자주 버리다 보니, 내가 만들어내는 쓰레기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눈에 잘 포착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2주 조금 못 되는 기간 동안 내가 뿜어내는 모든 쓰레기가 이 봉투에 모이게 될 것이었다. 그건 불편한 직시였다.
저 쓰레기들은 다 소각되려나? 의료 폐기물은 보통 소각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평소 내가 버린 일반쓰레기는 어떻게 처리되고 있지? 소각인가 매립인가? 문득 내가 열심히 내다 버린 쓰레기가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숨만 쉬어도 쓰레기가 나온다는 기분이 들 만큼, 쓰레기 배출은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 이렇게나 모른다니.
문득 궁금해져 찾아본다. 서울특별시 자원회수시설 홈페이지에 폐기물 처리과정이 요약되어 있다. (https://rrf.seoul.go.kr/content/acwac131.do) 한 단어로 요약하면 매립이다.
당연히 환경에 좋을 리 없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오염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계속해 본다. 환경부 블로그에 정리돼 있다. (https://m.blog.naver.com/mesns/221307942662) 매립지 설치할 때부터 동물 서식지가 파괴되고, 침출수 유출로 수질 오염 가능성 있고, 유해가스나 악취도. 수질 오염 이전에 토양 오염도 되겠지. 최초로 만들어진 칫솔도 아직 썩지 않았다는데, 그럼 웬만한 쓰레기는 여전히 썩지 않고 거기 있겠지.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나 사료로 활용된다고 한다. 사료? 무난하고 순한 음식만 있는 게 아니라, 고추기름이나 고추냉이 묻은 음식들도 들어갈 텐데 사료로 괜찮을까? 아니 사료로 ‘활용’되는 건 맞을까? 설마 음식물 쓰레기 째로 먹이는 건 아니겠지? <고기로 태어나서>에서 읽은 장면이 생각나 그런 불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저자가 닭과 돼지와 개를 키우는 농장에서 각각 일하고 쓴 에세이인데, 소위 ‘짬’이라 부르는 음식물 쓰레기만을 먹으며, 신선한 물도 발 디딜 땅도 없이 허공의 철창에서 크는 개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던 것이다.
검색해 보니 같은 의문을 품고 몸을 움직여 확인한 사람들의 글이 있다. 가루로 만들긴 하나 보다. (https://brunch.co.kr/@greenshifter/10) 그래도 <고기로 태어나서>에서 읽은 내용까지 겹쳐 불편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만일 도살장이 유리 벽으로 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모두 채식주의가 될 것”이라는 폴 매카트니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분리배출한 재활용 쓰레기는? 잘 떨어지지 않는 페트병의 비닐 라벨을 박박 긁어가며 열심히 분리했는데, 애매한 게 있으면 [내 손 안의 분리배출] 앱에서 검색해가며 최선을 다했는데, 재활용이 잘되고 있을까? 아쉽지만 아닌 경우도 꽤 많다. 단일 재질이어야 재활용이 되는데, 아무리 열심히 분리해도 다 분리할 수 없는 복합 재질 물품들도 많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이나 비닐류만 해도 엄청 다양하고. 솔직히 이 정도로 열심히 하는데도 재활용이 안된다면 그건 물건 만드는 기업 탓이 아닌가 싶다.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기업들도 최근 신경 쓰기 시작하는 추세다. 명절 선물 세트에서 햄 캔을 덮은 플라스틱 뚜껑을 제외한다든지, 아이폰 출시될 때 비닐 포장을 뺐다든지. 하지만 그만큼 교묘한 거짓도 많다. 얼마 전 스타벅스 리유저블 컵은 실제로 몇 번 쓰지도 못할 내구성의 플라스틱 컵인데 그걸로 이벤트 해서 돈만 벌고 환경엔 오히려 악영향을 끼쳤다. 직원 업무 강도까지 해서 이번엔 욕 꽤나 먹은 것 같던데 앞으론 이런 그린워싱 좀 안 하려나 모르겠다.
이런저런 내용을 찾아보는 동안, 주황색 쓰레기 봉지는 조금씩 차올랐다. 격리가 종료된 다음 날, 공간이 꽤 남아있는 주황색 봉지를 구깃구깃 쥐고 일반 종량제 봉투에 쑤셔 넣었다. 수거 신청 전화까지 하고, 안내받은 대로 다음 날 아침 일찍 봉지를 내놓았다. 나름대로는 줄이려고 애쓴 결과였다. 하지만 알고 있다. 집안의 생활에만 집중하면 됐던 격리 기간과 달리, 이후로는 또 정신없다고 바쁘다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착착 넣고 분리배출에 최선을 다하는 선에서 만족하며 별생각 없이 살 나를.
문명화된 현대 서울을 살면서 쓰레기를 뿜어내는 삶이란 불가피하고, 쓰레기 하나 버릴 때마다 깊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것도 못할 짓이다. 생각만 해도 벌써 피로하다. 멋지고 큰 한 걸음을 성큼 옮길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덜 피로하게, 조금이라도 더 잘 쓰고 덜 버리는 방법을 고민한다.
일단 다른 건 몰라도 ‘안 사는 게 제로 웨이스트’, ‘아껴 쓰는 게 제로 웨이스트’라는 말만큼은 마음에 새기기로 했다. 물건을 새로 사고 싶을 때 물건 값뿐 아니라 기존에 쓰던 물건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나 훗날 이 물건을 버리게 될 때의 쓰레기까지 비용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 개 살 거 한 개 사고, 한 번 쓰고 버릴 거 두 번 쓰고 버리는 것.
사실 쓰레기는 너무 거대한 문제라서 사실 나보다 기업이나 정부가 할 일이 더 많긴 하지만, 나도 자그맣게 걸음을 떼어 보기로 한다. 햄 캔의 플라스틱 뚜껑을 제외한다는 기업의 결정 뒤에는 뚜껑을 수거해 기업에 다시 보낸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던 것처럼, 여태까지 나아진 것들도 다 작은 한 걸음들이 모여 큰 임팩트를 이뤄낸 거니까. 그렇게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순환의 일부가 되기로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