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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쑤 Apr 06. 2023

불면

그래 원래 인간은 밤에 힘들어. 그토록 많은 이들이 잠 못이루는 이유야. 밤이 되면 단어로 묶여있던 정령들이 살아나고 말을 걸기 시작하지. 그런데 왜 외롭냐고? 그 정령들이 다 부서진 너이기 때문이지. 그들이 몰려오는 소리는 저승 어귀에서 혼자 서있는 너를 기억하게 만들거든.


그날도 결국은 낮에 마신 커피를 기억해내었다. 수면욕과 반대되는 부잡스런 뒤척임 중간에 떠오른 커피는 이미 떠나간 친구의 메시지 같은 거였다. 이제 와서 찾아 읽어봤자 답할 필요도 없는.


베개를 끌어안았다가 얼굴을 푹 뒤집어 쓰는 일을 반복하다 결국  똑바로 누워서 정령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파, 아파. 여기가 아파."

정령들이 말한다. 그들은 굿판에 불려온 귀신들처럼 자기 얘기를 떠들기 시작한다. 이 녀석이 떠들기 시작하면 저 녀석도 시작한다. 긴긴 스토리를 시작한다. 울고 싶고 화내고 싶은 귀신들이 구천에서 이곳으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잘 산다는 것은 밤마다 이 녀석들이 얌전하길 기다렸다가 얼른 잠에 떨어지는 일이다. 그네들이 꿈 속에서 즐거운 활극을 벌이고 무대 연습을 하라고 시간 맞춰 죽은 척 하는 거다. 그걸 못하고 매번 멀쩡한 상태로 그들을 만나려니 이 밤이 그대로 굿판이 되어 버렸다.


지난 밤에는 한쪽 어깨만 빠져나가는 좁은 문을 열고 두더지 땅굴과도 같은 복도를 들락날락하는 꿈을 한참 꿨다. 아침에 깨니 모로 누워잔 한쪽 어깨가 문에 걸렸다 빠졌다는 반복하느라 잘 펴지지가 않았다.


아침마다 지난 밤의 꿈을 떨쳐내는라 숨이 차다. 밤새도록 허리를 웅크리고 돌아다니면 땅굴은 내부가 하얀 병원 건물같았다. 벽에서 빛이 나오는 것처럼 환했지만 나는 위생적이고 현대적인 건물 안에 갇혀 이문을 열고 저쪽으로 나가는 길을 찾느라 밤새 온몸을 비틀어야 했다. 


낮이 되면 꿈을 증발하지만 밤이 오면 정령들은 어제 못다한 이야기를 하려고 머리맡에 기다리고 있다. 나는 핸드폰을 붙잡고 그들은 못 본척 한다. 웃기는 동영상을 한참 보면서 그들이 알아서 떠나길 기다린다. 하지만 그네들은 질기다. 피부 밑에 촉수 하나를 심어놓고 흔들거리면서도 떠나질 않는다. 머리 꼭대기에 서라운드 시스템 오디오처럼 자리를 잡고 떠들어댄다.

"기억해줘 기억해줘. 잊지말고 기억해줘"


기실 기억의 원판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새겨져 있다. 그래서 듣기가 싫었던 거다. 잠을 자려면 숨이 차고 머리가 뜨거워지는 그런 얘기들은 해로우니까. 그래서 어떤 날은 동영상을 보다가 웃음을 머금은 채로 잠에 뚝 떨어진다. 그런 날은 정령들이 벌써부너 문을 열고 들어간 꿈 속 안에서 놀고 있었다. 

내 귀여운 귀신들, 그들은 저승까지 나를 따라올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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