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뭐... 어쩌라고
나는 만26살에 취직을 했다. 5급공채 시험을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공기업 취준으로 돌리는 바람에 취업이 조금 늦었다. 어린 나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 회사에서 정년을 맞이할 생각으로 입사를 했다. 2주간의 연수가 끝난 후 나는 기피부서 중 한 곳인 OO팀에 발령을 받았다.
신입이었기에 당연히 나한테 선택권 따윈 없었다. 사실 원하는 부서도 딱히 없었다. 경력이라고는 인턴 3개월이 전부인 쌩신입인데 어느 부서의 어느 업무가 나한테 잘 맞는 일인지를 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저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할 수밖에 없지. 부서 배치를 받고 보니 나는 국회와 정부연락방을 담당하는 대관업무 담당자였다. 그리고 그게 내 성향과 전혀 맞지 않는 업무라는 건 반년쯤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 사람인데, 나에게 주어진 일은 그 반대였거든. 일을 하면서 모든 부서의 온갖 자료를 다 받아보니 대충 무슨 느낌인지는 아는데 그 업무 담당자가 아니니 제대로 아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내가 다닌 회사는 공기업이었기에 4~5년 주기로 순환을 해야했고, 그렇기에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때로는 순환근무인데 나에게 잘 맞는 업무만 할 수 있길 바라는 내가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4년만 참으면 다른 부서로 갈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 버티자 생각하고 1년 반을 버텼다. 이제 2년 반만 더 버티면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부서를 옮긴다고 해서 내 적성에 맞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는데, 어쩌다가 적성에 맞는 업무를 배정받더라도 4년 뒤에 또 다른 부서로 옮겨야 하는데,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하고 있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쯤 업무와 관련해서 불쾌한 일을 겪었다. 종종 겪는 일이었다. 모든 걸 떠먹여주길 바라는 것. 일이 잘못되면 모든 게 내 책임인 것처럼 말하는 것.
참고로 내 업무는 정답이 없는 업무다. 국회의원 자료요구에 답변을 해야 하는데, 이건 사실 정답이 없다. 수학 문제처럼 답이 딱딱 나오지 않는다. 그럴듯한 선택지가 여럿 있을 뿐이다. 이런 의미로 질문했겠지? 이 정도로 답변하면 되겠지? 하고 추측할 뿐이다. 내가 독심술사도 아니고 국회의원의 정확한 질문 의도를 알 리가 없는데, 현업부서 담당자들은 종종 내가 자료작성 방향을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며 짜증을 내곤 했다.
그들은 항상 답지가 없는 문제집을 나한테 주면서 답지를 만들어 오라고 요구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내가 국회담당자니까 당연히 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정도란 게 있잖아? 답이 틀리면 전부 내 책임이 되는 게 반복되니 나는 완전히 질려버렸다. OO씨가 그렇게 하라니까 그렇게 할게라는 소리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일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확신과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는 내 의견을 말하지 않는 타입이고, 정답은 언제나 하나를 외치는 사람인데, 계산기 두드려서 숫자가 딱 나와줘야하는 사람인데, 질문 자체가 애매해서 해당 업무 담당자인 본인들도 정답을 모르는 문제를, 매번 쌩신입인 나한테 그럴듯한 답안을 만들어오라고 하니 미쳐버리겠더라고.
그래도 1년반 동안은 잘 참았는데, 사소한 계기로 완전히 질려버려서 더이상은 못해먹겠다! 하고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가고 싶었던 회사가 회계 자격증이 있으면 서류에서 가산점을 준다기에 회계 공부를 시작하려다가 이럴 거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전문직 준비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세무사 시험에 도전했다.
세법 공부는 처음이었기에 처음엔 너무나 막막했다.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고 이 많은 걸 언제 다 외우나 싶었다.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어 하며 꾸역꾸역 객관식 문제집을 풀어내려갔다. 그러다가 선지 하나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맥반석 오징어가 과세대상인지 묻는 선지였다.
그냥 오징어는 면세지만 맥반석 오징어면 과세란다. 이렇게 사소한 거 하나하나에 규칙을 정해놓았다니. 예전의 나라면 이걸 언제 다 외우냐고 짜증을 냈겠지. 하지만 나는 1년 9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독심술사 혹은 궁예가 되어야 하는 불확실성 그 자체인 업무를 해왔다.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정답 찍기에 제대로 질려버렸단 말씀. 맥반석 오징어 과세? 오히려 좋아. 오케이 다 외워줄게. 세무사 합격 가보자고. 그렇게 세무사 시험에 진입하고 벌써 4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운 좋게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올해 합격은 불가능하단 걸 알지만 그래도 2차 시험장에서 뭐라도 쓰고 나오고 싶어 열심히 공부중이다. 공부할 게 정말 많지만 싫지 않다. 공부하다 보면 즐거울 때도 있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 문제에 답이 정해져 있다는 게, 그 답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게 정말 안심이 된다.
세무사 시험에 도전하기 위해 퇴사한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 쌩퇴사를 하는 게 대단하다고, 용기가 멋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솔직히 용기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 놀랐다. 그게 그렇게 보이나? 나는 그저 누구보다 나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그 고통 속에 내버려둘 수가 없었을 뿐이다. 언젠가 괜찮아질 수도 있으니까 그냥 버텨보라고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잖아. 안 괜찮아지면 어쩔 건데? 아무리 남들이 버티라 말해도 나 자신은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지금 하는 일이 너무나 적성에 안 맞고, 운 없으면 퇴직할 때까지 적성에 안 맞는 업무만 주구장창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이걸 가만히 있는다고?
시험에 계속 떨어져서 오랫동안 백수로 지내는 거, 솔직히 좀 무섭긴 하지. 하지만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은 채로 그냥 냅뒀다가 상처가 곪아 터져버리는 게 더 무섭다. 지금의 내가 고생을 하더라도, 미래의 나는 같은 이유로 고통받지 않았으면 해. 싫은 사람 얼굴 안 보게 해주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회사가 싫으면 맘 편히 관둘 수 있는 능력을 주고 싶다. 그런 마음에서 쌩퇴사를 한 거다. 그리고 아직까지 조금의 후회도 없다.
그렇게 나는 서른 가까이 되어서야 적성을 찾았다. 조금 늦은 것 같지만, 아니 진짜로 조금 늦긴 했는데, 그래도 뭐 나쁘지 않아. 이제라도 내가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았으니 정말 다행이야. 마흔에 깨닫는 것보단 서른에 깨닫는 게 낫잖아. 미래의 나는 적어도 지난 1년 9개월 동안의 나보다는 훨씬 행복할 거라고 확신해. 내가 꼭 그렇게 만들어 줄 거니까.(사실 지금도 회사 다닐 때보단 행복함)